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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에서 기술 하나로 소재산업 일궜죠” 한겨레
Interview ● 박주봉 대주·KC그룹 회장
[47호] 2014년 03월 01일 (토) 조일준 economyinsight@hani.co.kr

박주봉(57) 대주·KC그룹 회장은 ‘자수성가’의 전형이다. 초등학교 때 부친의 사업이 부도나면서 온 가족이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구두닦이·거리행상 등 막일로 숙식을 해결하며 8년 만에 중·고교를 마쳤다. 스무살 때 트럭 한대로 사업을 시작해 화학소재 중견기업을 일궈낸 그의 인생 역정과 기업 이야기를 들어봤다.

조일준 부편집장

   
▲ 한겨레 탁기형

주력회사인 KC가 유일하게 국산화에 성공한 수산화알루미늄, 고순도 알루미나 등 화학제품들이 일반인에게는 생소하다.

수산화알루미늄은 보크사이트 원광석을 1천℃ 고온에서 화학약품을 넣고 끓여서 추출하는 백색 분말이다. 여기에 다른 원료들을 첨가한 가공품이 제올라이트인데, 더러운 물질이나 불순물을 침전시키는 성질이 있다. 비누·치약·물티슈부터 의류, 카펫, 정수장 용품까지 800여종의 제품에 널리 쓰인다. 음식으로 치면 소금처럼 중요한 산업 기초소재다.

고순도 알루미나는 2천℃의 고열 용광로에서 만든다. 발광다이오드(LED)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등 고부가가치 제품의 원료다. 디스플레이 패널을 얇으면서도 단단하게 만드는 핵심 재료다. 여기서 더 나아가 햇빛에서도 화면이 잘 보이는 디스플레이를 구현하는 소재 제품을 KC-포스코 합작회사인 포스하이알에서 생산할 준비를 이미 갖췄다. 앞으로 시장성이 엄청나다.

2001년 민영화 대상이던 한국종합화학을 인수해 KC를 설립하면서 화학소재 사업을 시작했다. 외환위기의 파장이 가시지 않은 때에 전혀 낯선 업종의 기업을 사들이는 게 무모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나.

그전까지는 물류사업과 철강사업만 했다. ‘갑’이 아니라 ‘을’이나 ‘병’의 처지라서 자율적 기업 경영이 거의 불가능해 답답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조건으로 공기업 매각이 잇따를 때, 국내 유일의 기초화학원료 업체인 한국종합화학을 잘 키우면 우리 회사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이 분야에서 크게 발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막상 인수하고 보니 민간 기업 같으면 진작 문을 닫았어야 할 만큼 한심했다. 고통스러운 구조조정과 혁신을 거쳐야 했다.

당시 국내 산업계는 화학 신소재 분야에서 축적된 지식과 기술이 일천했을 텐데 어떻게 수산화알루미늄과 고순도 알루미나 등의 국산화에 성공했는가.

가장 어려웠던 게 국내에 관련 전문가와 기술자가 없었다는 점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전문업체 출신 기술자를 영입해 기초부터 배우고 외국 전문가들을 더 스카우트하면서 꾸준히 기술을 쌓아나갔다. 당시 일본은 자국 기술자들이 우리나라로 못 오게 다 묶어버렸다.

판로 개척에 어려움은 없었나.

국내 대기업들이 이미 품질이 검증된 수입 제품을 선호하는데다 일본의 초대형 업체가 헐값으로 덤핑 공세를 펼쳤다. 국내 업체들이 우리 회사 제품을 구매하지 않도록 압박하기도 했다. 직원들에게 월급을 못 주고, 금융권 돈줄도 끊기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과 어려움이 있었다.

나는 대기업들에게 “KC가 문을 닫으면 그다음부터는 훨씬 더 비싼 값에 수입할 수밖에 없다”며 최소한의 구매를 설득했지만 귀를 기울이지 않더라. 정부와 국회에도 반덤핑 대응을 호소했으나 잘 안 됐다. 파산 직전까지 갔다가 8개월 만에 반덤핑 관세가 부과되면서 기사회생했다.

KC 상품의 세계시장 경쟁력은 어느 수준인가. 마케팅에 어려움은 없었나.

우리가 만드는 기초소재 제품 8가지 중 3개는 세계 1~2위를 다툰다. 아무리 좋은 판로와 네트워크가 있어도 품질과 가격 경쟁력이 없으면 안 팔린다. 우리는 ‘상품 경쟁력만 갖추면 어디에 내놔도 한번 써본 사람은 우리 제품을 또 쓸 것이다’는 신념으로 맨땅에서 시작했다. 대만·일본·유럽 업체들에 샘플을 가지고 가서 “일단 써본 뒤 (구매 여부를) 결정해달라”고 요구했다. 문제가 있을 경우 생산라인 전체 제품에 불량이 나므로 시험 사용 자체가 큰 모험이다. 실험실에서 수차례 실험과 검증을 되풀이한 뒤에야 생산라인에 투입해본다. 대만이 우리 제품을 맨 먼저 구매했고, 그 실적에 힘입어 다른 업체들에도 판로가 열리기 시작했다.

소재 국산화하자 일본 업체들 덤핑 공세

연구·개발 투자와 기술인력 확보 여건은 어떠한가.

현재 매출의 2%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그 비용을 더 늘리면 10년 뒤쯤엔 엄청나게 좋아질 것을 알면서도 당장 급한 돈 쓸 데가 많은 중소기업 처지에서 그걸 못해 너무 안타깝다. 독일은 지방자치단체가 연구소와 산업클러스터를 만들어 기업이 그곳의 연구인력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그렇게 해서 품질을 높인다. 우리가 아는 ‘히든챔피언’(우량 강소기업)들도 그렇게 운영된다. 굉장히 바람직한 모델이다.

잇따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교역장벽이 낮아지고 있는데.

업종과 기업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우리는 더 불리해졌다. 일본·유럽·중국의 경쟁 업체들도 우리와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 판다. 기업 규모나 매출이 우리보다 20~30배나 큰 초대형 글로벌 기업들이다. 현재 KC의 생산품은 기껏 8가지다. 외국 경쟁 업체들은 화장품·연고·반도체칩 원료 등 50여종의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어낸다. 평균 판매가도 우리는 1t당 80만원인데, 외국 선진업체들은 그 10배인 1t당 800만원이다. 비싼 것은 1t당 5천만원까지 간다. 우리가 포스하이알에서 생산을 준비 중인 제품도 1t당 3천만원짜리 고부가가치 상품이다.

국내 화학·소재 학계와 산학협력을 할 수는 없나.

몇몇 대학과 연구기관에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연구과제를 맡겨보기도 했는데 아직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 못 된다. 외국에서 전문인력을 데려와야 하는데 여유 자금이 없어 고부가가치 제품 연구를 못하고 있다.

주력이 화학회사고 다른 계열사도 중공업과 장치산업이다보니 산업안전과 환경문제에도 민감할 것 같다.

보크사이트는 가공 뒤 잔재물이 생기는데, 선진국들은 그것을 바다에 자연 방류로 폐기한다. 그린피스가 오스트레일리아와 일본 업체의 산업폐기물 현장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오스트레일리아는 문제가 없었으나 일본은 환경에 영향을 준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지상매립을 한다. 우리는 현재 해양폐기와 지상매립을 병행하고 있다. 폐기물 가공 과정을 거쳐 산이나 바다 매립용 복토제로 재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 관련 기관과 협의 중이다.

   
▲ 박주봉 대주·KC그룹 회장은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이 자신을 강하게 만들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마음을 길러주었다고 말한다. 한겨레 탁기형

우리나라의 산업재해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최고 수준이고, 그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안전사고는 대부분 협력업체에서 난다. 대기업이 너무 낮은 값에 하도급을 주다보니 협력업체들은 비용을 낮추고 납품단가를 맞추기 위해 안전규정을 무시하고 위험을 감수한다. 땜질식 행정 규제나 처벌이 아닌 근본적 치유를 해야 한다. 위험수당을 별도로 책정하고, 관련 법규를 강화해 엄격히 적용하고, 무엇보다 기업들의 인식과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는 고질적인 문제다.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으로서 보는 대기업·중소기업 상생협력의 현주소는.

최근 5~6년 새 상당히 좋아지고 있지만 앞으로 훨씬 더 잘돼야 한다. 지금까지 대기업 중심 경제정책으로 이만큼 성장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앞으로도 그렇게 해선 국민소득 3만~4만달러 시대를 맞기 힘들다. 강소기업을 많이 키우고 그 씨앗들이 성장해 글로벌 시장에서 이길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줘야 한다.

대기업 오너들이 2세, 3세, 친인척 몫까지 다 챙겨주려고 아주 작은 업종까지 문어발 확장을 해오다가 이제는 다시 내놓아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그래선 안 된다. 지금처럼 흘러가면 10~20년 뒤엔 불과 5~6개 기업이 우리나라 경제력의 대부분을 장악할 수 있겠구나 싶다. 그러면 중소기업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아무것도 없다.

중소기업의 자생력 강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자금·인력·마케팅, 뭐 여러 가지가 다 돼야 하는데, 그중에도 핵심은 ‘강인한 기업가 정신’이다. 시장은 갈수록 어렵고 여러 변수가 생기지만 ‘열심히 하면 반드시 된다’는 확신을 갖고 노력하면 어려운 문제도 저절로 풀려간다고 믿는다.

“고부가가치 소재 개발에 주력할 것”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오너소사이어티’(고액 기부자 클럽)에 이름을 올리고, 지역 공동체에 땅을 기부하고, 장학재단을 운영하는 등 ‘사회적 기업’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불우했던 성장 과정이 삶의 가치관에도 영향을 미쳤나.

어릴 때 공부는커녕 날마다 끼니와 잠자리를 걱정하며 자라면서 ‘남을 돕는 것’의 소중함을 체득한 것 같다. 우선 우리 회사 임직원들부터 만족할 수 있을 만큼 베풀도록 최선을 다하고, 그다음엔 주변에도 눈을 돌리려 노력한다. 우리 회사 생산직의 평균임금이 대기업 평균의 90% 수준은 된다.

중학생 때 학교 숙소나 평화시장 공장에서 먹고 자다가 친구네 집 바깥방에서 한달 정도 더부살이를 한 적이 있다. 친구가 식구들 몰래 나를 배려해준 거다. 그 집에 내 또래의 어린 식모가 있었는데 어느 날 내게 몰래 밥상을 갖다주다가 친구의 큰형에게 들켜 호되게 꾸중을 듣고 울음을 터뜨리더라. 그 식모는 ‘자기나 나나 똑같은 신세’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나는 커서 절대 불쌍한 사람에게 야박하게 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울 용문중·고교 시절 선생님들이 “너는 할 수 있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열심히 살면 꼭 보답이 온다”고 격려해주신 것도 큰 힘이 됐는데, 지금도 그 은사님들을 만난다.

평소 건강관리나 취미생활은.

주말에는 집 주변의 산이나 천변로에서 조깅을 한다. 취미나 문화생활은 거의 해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럴 기회가 없었던 까닭에 뭘 해야 할지도 잘 모른다. 요즘엔 기타 연주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치열하게 살아왔다. 때로 ‘힘들다’거나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가끔 혼자 산에 오르거나 숙소에서 명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단 한번도 가족여행을 가본 적이 없는데, 앞으론 그런 기회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죽거나 병들면 무슨 소용이 있나. 맏딸이 결혼해 출가하고 아들이 대학에 들어간 뒤에야 ‘내가 자녀들과 함께 지낸 시간이 거의 없었구나’ 하는 아쉬움이 짙다.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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