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기업들은 항상 자금이 부족하다. 시중은행들이 지원하고 있지만 신용으로 수출 기업을 지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럴 때 기업들이 찾는 곳이 한국수출입은행이다. 수출 실적만 좋으면 신용으로 상당한 자금을 빌려주기 때문이다. 김용환 수출입은행장에게서 수출 현황과 과제를 들어봤다. 김 행장은 행시 23회로 공직에 진출해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을 거쳐 2011년 2월부터 은행장을 맡고 있다.

김용환 한국수출입은행장은 300여개의 중소기업을 집중 지원해 ‘히든챔피언’으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수출입은행은 수출 기업들에 담보 없이 포괄금융을 제공함으로써 해외시장 개척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한겨레 정용일

정남기 편집장

일반 사람들은 한국수출입은행이 하는 일을 잘 모른다. 주로 어떤 업무를 하나.

채권으로 자금을 조달해 수출 기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달러나 유로 표시 채권으로 100억달러, 원화 표시 수출입금융채권으로 9조원가량을 조달한다. 신용도가 AA+라서 조달금리가 연 1.25~1.5%에 불과하다.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연 2.3~2.8%)보다 훨씬 싸다. 이 돈으로 기업에 대출해주거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에 투자한다. 대출 마진은 0.5~0.6%로 거의 남기지 않는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 자금은 어떤 식으로 지원하는가.

원래는 PF 사업이다. 사업 주체인 UAE원전공사(ENEC)에 자금을 지원하고 수익이 나면 이익금을 배분받는다. 그러나 내가 강하게 요구해서 UAE 정부 보증을 받아냈다. 그렇게 되면 사실상 일반 대출과 마찬가지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위원회에서 현대투신증권을 푸르덴셜에 매각하는 협상을 6개월 동안 담당했다. 그때 경험을 살려 관철했다.

장기 프로젝트는 금리·환율 등 변수가 많아서 사업 리스크가 크지 않나.

대부분 장기 프로젝트는 고정금리로 한다. 그러나 UAE 원전 사업은 변동금리로 하기로 했다. 이것도 애초 계획에 없었지만 우리가 요구해서 관철한 것이다. 일부에서 역마진 우려를 제기했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환율 변동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대부분 달러로 거래하기 때문에 큰 리스크는 없다.

부실채권 비율은 얼마나 되나.

부실채권 비율이 0.6%밖에 안 된다. 시중은행의 1.46%에 비해 훨씬 낮다. 우리는 담보대출이 거의 없다. 신용으로 하는 게 90%를 훨씬 넘는다. 그래도 부실대출이 거의 없다. 좋은 프로젝트를 하는데다 외국 금융사들과 리스크 셰어링을 한다. 또 자체 해외경제연구소가 국가별 신용 분석을 철저히 한다.

부실이 발생하는 곳은 중소기업 대출이다. 하지만 심사를 통해 대부분 걸러낸다. 시중은행들은 담보가 있으니까 대출 심사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담보가 없으니까 심사를 철저히 한다. 심사 기법이 다르다. 성장 가능성, 기술력, 최고경영자(CEO)의 경영철학 등을 본다. 요즘은 CEO 리스크가 크다. CEO의 평소 행태, 연체 여부 등이 중요하다.

미래 성장 가능성도 본다. 우리는 문화 콘텐츠에만 연간 4천억원을 지원한다. 애니메이션, 드라마 이런 것은 정말 초기에는 마이너스다. 시중은행은 그런 대출을 못해준다. 우리는 심사를 거쳐 신용으로 지원해준다. 영화 <아저씨> <마더> <해운대> 등 우리가 한 것들은 다 성공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심형래씨가 영화 제작으로 잘나갈 때 우리한테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우리는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거절했다.

국내에서는 지적재산권 등 무형재산을 회계 처리하는 게 아직 잘 안 돼 있다. 산업은행이 펀드를 만들어 문화 콘텐츠를 지원하고 있지만 결국 담보를 바탕으로 한다. 우리는 사실상 기술력만 가지고 대출한다. 지적재산권 등을 바탕으로 대출해주고 해외 진출을 도와준다. 그런 게 바로 창조경제라고 할 수 있다.

채권단과 함께 조선·해운 살린다

수출 중소기업들을 중견기업으로 육성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실적만 있으면 포괄수출금융(과거 수출 실적의 60~100%를 지원해주는 방식)을 해준다. 그래서 수출입은행과 거래하는 중소기업들은 거래 은행을 잘 바꾸지 않는다. 시중은행들이 금리를 낮춰준다고 해도 가지 않는다.

또 '포페이팅'과 '수출팩토링'이란 게 있다. 수입국 은행이 개설한 신용장(L/C)과 관련해 발행된 환어음 및 선적서류를 무소구 조건으로 매입하는 금융상품이다. 수출팩토링은 국내 수출자로부터 무신용장 방식의 외상 수출 거래에서 발생된 수출채권을 무소구 조건으로 매입하는 상품이다. '무소구 조건'이란 대금을 못 받을 경우 수출입은행이 떠안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기업 부채로 잡히지 않는다. 지난해 10조원가량 된다.

중견기업 육성을 위해 히든챔피언 대상 기업 300여개를 선정했다. 3년 동안 추진해왔는데 히든챔피언이 7개가 나왔다. 올해 10개가 더 나올 것이다. 수출 3억달러 이상이고 세계시장 5위 이내이거나 매출 1조원 이상이고 수출 비중이 50% 이상인 기업이 기준이다. 히든챔피언으로 선정되면 금리를 0.5%포인트 낮게 해주고, 대출 한도도 유연성 있게 해준다.

해운·조선·건설 경기가 매우 어렵다. 성동조선이나 STX 등의 상황은 어떤가.

우리는 C, D 등급으로 분류될 부실채권은 없다. 조선은 특히 구조조정을 많이 했다. 살아남을 수 있는 것만 남았다. 다만 건설은 구조조정을 조금 더 해야 한다.

성동조선은 환헤지 상품인 키코에 무리하게 투자했다가 1조3천억원이 자본잠식됐다. 그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경영은 정상화되고 있다. 새로 돈이 안 들어가도 된다. 또 건조가 끝난 선박들을 인도하면서 대금의 60%가 들어오고 있다. 올해는 흑자를 낼 것이다. STX는 유동성의 문제다. 예전에는 (선박 인도 전에) 선수금을 20%씩 네번 받았는데 그게 10%씩으로 줄었다. 그 차이를 회사채로 메꾼 것이다. 그런데 회사채가 안 돌고 만기가 돌아오면서 어려워진 것이다. STX는 좋은 회사다. 충분히 살릴 수 있다.

해운과 조선이 6년 동안 고전했다. 지금은 턴오버하는 시기다. 일단 시작되면 회복이 빠르다. 세계적으로 선박 수주량이 늘고 있다. 액화천연가스(LNG)선, 해양플랜트 같은 것들이다. 벌크선운임지수(BDI)도 회복되고 있다. 내년에는 조선과 해운이 회복될 것으로 본다.

수출입은행은 초대형 장기 프로젝트에 투자하거나 금융 지원을 한다. 김용환 행장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 건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겨레 정용일

정부가 선박금융공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수출입은행 업무와 중복되지 않겠는가.

조선사들의 선박 건조 자금은 지금도 우리가 대부분 지원한다. 지난해에도 5조원을 지원했다. 시중은행들은 리스크 때문에 잘 안 한다. 선박금융공사를 따로 만들어서 얼마나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 선박 건조는 큰 문제가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해운사들의 운영자금이다. 그것도 사실 시중은행들이 하면 된다. 기금을 만들어 도와주는 방법도 있다. 누가 어떤 자금을 원하는지, 현재 시스템에서 누가 그 자금을 공급할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현재 시스템으로 도저히 안 된다면 그때 새 기구를 설립하면 된다.

시중은행들의 경쟁력이 아직까지 취약한 것 같다.

시중은행의 업무는 95%가 국내 업무다. 이자 장사, 수수료 장사다. 그리고 5%만 수출 신용장(L/C) 인수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이자와 수수료 수익은 점점 떨어지는데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결국 해외로 가야 한다. 해외에서 합작, 지분 참여, PF, 리스 등을 해야 한다. 이미 기업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국내에서 PF 사업을 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담보대출이다. 시중은행도 해외 대형 프로젝트를 다뤄본 사람들을 영입하고 그런 사람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쌓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동행했다. 중국 상황은 어떤가.

중국은 수출에서 내수로 가고 있다. 중국을 이용해서 가공수출하는 것은 점점 줄고 있다. 앞으로는 내수를 노려야 한다. (가공수출을 하려면) 오히려 미얀마가 좋다. 인프라 비용은 들지만 임금은 중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선박금융공사 설립 업무 중복 우려

한국의 경제력 수준이 세계 8위다. <포천>이 선정한 세계 100대 기업에 들어간 국내 기업 수를 보더라도 8위다. 기업은 경쟁력을 갖췄다. 그러나 금융사들은 훨씬 못 미친다. 하는 일이 똑같기 때문이다. 차별화된 업무가 없으니까 은행들을 합쳐봤자 시너지 효과가 안 난다. 정부가 규제를 풀어줘야겠지만 은행들도 달라져야 한다.

자신만의 경영 방침은 뭔가.

주말에는 직원들이 회사에 나오지 못하게 한다. 요즘은 아이디어가 생명이다. 휴일에는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많이 돌아다녀야 한다. 그래야 아이디어가 나온다. 또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사고를 하라고 요구한다. 기업이 우리를 찾아올 때는 여러 번 생각하고 온 것이다. 기업이 새로운 것을 갖고 왔을 때는 적극적으로 수용하려고 해야 한다. 규정에 맞지 않으면 규정을 바꿔서 해주면 된다. 필요하면 법도 바꾸는데 규정을 왜 못 바꾸느냐. 기업은 우리의 고객이다. 기업을 지원하는 데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jnamk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