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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만큼 국내 금융도 성장해야"
Interview ● 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장
[39호] 2013년 07월 01일 (월) 정남기 편집장 economyinsight@hani.co.kr

요즘 금융권에서 가장 바쁜 사람 가운데 한명이 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장이다. 국민행복기금 이사장, 서비스산업총연합회 회장 등 여러 직책을 맡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직책들이 서민생활 안정 및 일자리 창출과 직결되는 자리라는 점이다. 따라서 그의 관심사도 기획재정부 차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있을 때와 별로 다르지 않다. 신용불량자 구제부터 농업·서비스업 일자리 창출, 금융산업 경쟁력 강화에 이르기까지 경제 전반에 두루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의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정남기 <이코노미 인사이트> 편집장

   
박병원 은행연합회장은 은행과 채무자 양쪽을 두루 살펴야 할 입장이다. 연합회장으로서 은행업계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지만 국민행복기금 이사장으로서 다중채무자 구제 방안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한겨레 박승화
요즘 많이 바쁜 것 같다. 은행연합회장 말고 다른 직책도 맡고 있나.

국민행복기금 이사장과 서비스산업총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 밖에 대표를 맡고 있는 자리가 여러 개 있다. 가장 영예로운 직책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사다. 나에게는 그게 가장 의미 있는 자리다.

경제기획원 출신 현역 중 가장 선배(행시 17회) 아닌가.

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행시 14회)이 있다. 공직에서 일찍 떠났지만 기획원 출신 선배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기획원 출신을 중용하고 있다. 그들의 장점은 무엇인가.

특정 산업에 묶여 있지 않다. 관료들은 자기가 (맡은 산업을) 관장하고 지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들의 포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 기획원 출신은 아예 그런 게 없으니까 누구를 지배하려 하지 않고 누구에게 얽매이지도 않는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면 퇴직 뒤 잘 챙겨주고 그런 게 없으니까 사단도 없고 마피아도 없다. 어디에도 코가 꿰 있지 않은 사람들이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너무 금융을 중시했다는 지적이 있다.

그렇지는 않다. 금융이 긴급한 이슈였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금융을 키웠다고 볼 수는 없다. 사실 다른 산업은 세계를 휩쓸고 다닐 정도로 성장했는데 금융은 그렇지 못하다. 현대·기아자동차가 국내에 마지막 공장을 지은 게 1996년이다. 그 뒤 해외에 공장을 11개나 지었다. 그리고 현재 3개를 짓고 있다. 그 공장들을 지을 때 필요한 금융서비스를 국내 회사들이 수행하지 못했다.

금융산업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인가.

금융은 없는 집 맏딸 같은 처지다. 고등학교도 못 가고 공장에 취직해서 동생들 대학 보내고 잘 키웠다. 그렇게 뒷바라지한 누나가 지금 천대받고 있다. 서글픈 일이다.

국내 금융사들은 재벌기업들한테 완전히 '을'이다. 내가 우리금융 회장으로 있던 시절 우리은행 행장과 부행장이 재벌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재벌기업들은 세계적인 기업이고 우리는 역량이 떨어지니까 그렇다. 그쪽이 원하는 몇조원 단위의 펀딩을 해줄 능력이 없다. 재벌기업들은 우리에게 전혀 아쉬운 게 없다.

지금 은행들은 중소기업과 서민금융으로 먹고산다. 은행들이 오죽 돈 벌 데가 없으면 가계대출을 1천조원이나 해줬겠느냐. 재벌 대기업이 성장한 만큼은 국내 금융도 성장해야 한다. 시티나 골드만삭스 정도는 안 되더라도 일본 정도의 금융 역량은 있어야 원전이나 대규모 플랜트를 수주할 때 파이낸스를 해줄 수 있다. 파이낸스 때문에 수주가 안 되는 일이 많다.

그러면 국내 금융을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가 제조업에서 성공한 이유는 세가지다. 먼저 처음부터 세계시장을 상대로 수출을 했다. 둘째, 내수시장을 풀어서 국내에서도 수입품과 경쟁했다. 홈그라운드에서 못 이기면 수출도 못한다. 셋째, 부족한 역량을 남에게 빌리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로열티를 주고 부족한 기술을 배워왔다.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려면 최고의 기술, 마케팅,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 자력갱생하겠다고 30년 동안 노력한다고 해서는 경쟁력이 생기지 않는다. 바둑을 둬도 고수하고 해야지 하수와 하면 아무리 많이 둬도 늘지 않는다. 이 세가지가 제조업의 성공 요인이다. 수업료를 내고 배워서 제조업을 일으킨 것이다. 금융도 그런 방식으로 해야 한다.

다른 산업들은 어떤가.

농업도 자본, 기술, 장비가 필요하다. 1960년대 농업을 제조업처럼 했으면 성공했다. 덴마크, 네덜란드 등 농업 선진국을 찾아가서 배웠어야 했다. 그들로부터 세계 최고의 젖소 품종, 화훼 종자, 묘목 등을 도입했으면 농업이 지금처럼 되지 않았다.

"수업료 내고 선진국에서 배우는 게 빠른 길"

그렇게 하면 한국 경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

제조업만으로는 일자리가 안 생긴다. 1991년 제조업 일자리가 516만개였는데 2012년에는 409만개로 100만개 이상 줄었다. 소매업·운수업·숙박업 등 독립자영업에서도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 지금도 공급 과잉이다. 독립자영업자와 무임금 가사노동 종사자가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8.3%다. 월급을 받지 않고 부모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고용된 것으로 분류된다. 이게 15%까지 줄어야 한다. 이 분야의 노동자 700만명 중 350만명이 없어져야 한다는 얘기다.

서비스업에서 일자리를 만드는 방법은 뭔가.

복잡할 것 없다. 제조업을 그대로 따라하면 된다. 첫째, 국내 수요로는 안 된다. 회계사, 변호사, 의사 등 모두 공급 과잉이다. 그러려면 해외 수요를 끌어오는 길밖에 없다. 둘째, 외국 손님을 잡아올 능력이 없으면 배워서 능력을 키우면 된다. 그것은 남한테 의존하는 게 아니다. 독학하는 것보다는 고수에게 배우는 게 빠르다. 셋째, 개방해야 한다. 제조업이 성공한 전략 그대로다.

농업도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보나.

농업에서도 고용 창출이 가능하다. 왜 경쟁력이 없다고 포기하나. 우리는 바로 이웃에 세계적인 고급 식품 수요를 가진 일본과 중국이 있다. 고급 농산물이나 식품을 만드는 데는 몇천만명의 시장만 있으면 된다. 그 정도 수요는 중국과 일본에 얼마든지 있다. 대신 농산물이나 가공식품을 팔려면 최고의 퀄리티(품질)가 필요하다. 우리는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지 농업을 하는 게 아니다. 농업도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처럼 비즈니스에 필요한 모든 생산 요소가 있어야 한다. 기술도 필요하고 비즈니스 스킬도 필요하다. 든든한 밑천도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취직이 잘되면 경제문제가 저절로 풀린다. 젊은이들이 취직이 안 되는 한 그 어떤 문제도 풀리지 않는다. 모든 생각의 초점을 젊은이들의 고용 창출에 둬야 한다.

금융은 무엇부터 배워야 하나.

두바이와 우리가 10여년 전에 똑같이 해당 지역의 파이낸셜센터가 되겠다고 했다. 중동의 중심, 동북아의 중심을 꿈꿨다. 그래서 경제자유구역도 만들었다. 그러나 두바이는 성공했고 우리는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두바이는 처음부터 국제금융센터의 장을 영국 사람으로 데려왔다. 적용되는 법과 금융감독 규정도 영국 것을 적용한다. 그래서 세계 25대 금융회사 중 21개를 유치했다.

   
박병원 은행연합회장은 문화예술계를 지원하는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3월 사들인 강진식 작가의 작품 <Nirvana Spectra>를 설명하고 있다. 한겨레 박승화

"젊은이 취업 안 되면 경제 안 풀려"

일각에서는 두바이가 그렇게 해서 금융위기에 빠졌다고 비판한다.

위기를 맞아 경제자유구역의 부동산 가격이 반토막이 났다고 하자. 뭐가 문제인가? 투자한 해외 금융회사들은 손해를 본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래서 투자 유치가 중요하다. 경제자유구역에 적용해보고 그 결과를 놓고 판단하면 된다.

국내 금융사들의 리스크 관리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

당연하다. 리스크 관리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은행원들은 가만히 놔둬도 리스크 관리를 잘한다. 너무 심하게 해서 탈이다. 언제나 손실을 최소화하는 선택을 한다. 오히려 리스크 테이킹 능력을 키워야 한다. 국내 은행들은 아직도 부동산 담보 대출밖에 안 하지 않느냐. 그건 리스크 테이킹이 아니다. 금융업의 본질은 리스크 테이킹이다.

리스크 관리 능력이 없기 때문에 리스크 테이킹을 안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얘기하면 리스크 관리 능력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과도하게 리스크 관리를 하는 면이 있다. 담보 능력이 없어도 비즈니스모델의 가치를 보고 판단해서 돈을 빌려줄 수 있는, 대출에서 더 나아가 투자까지 할 수 있는 투자은행이 필요하다. 우리에겐 투자은행이란 개념 자체가 없다. 선진금융을 모방하고 베끼는 것부터 먼저 해야 한다.

정책금융이 리스크 테이킹을 하면 어떤가.

그걸 하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걸린다. 지금도 했으면 좋겠지만 못하게 돼 있다. 산업은행이 있어도 옛날처럼 정책금융을 못한다. 낙후지역 개발이나 중소기업 지원 정도만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정책금융기관은 역할이 끝났다. 국제 규범에 맞춘다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없애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WTO가 없어지기나 한 것처럼 정책금융을 되살리자고 한다. 상황이 변한 게 없지 않느냐. 잘못하면 금방 보복관세를 얻어맞는다.

정부가 금융지주사 지배구조 개선 작업을 하고 있다. 회장의 권한이 너무 많다는 얘기가 있다.

현 제도에 큰 문제는 없다. 규정대로 안 하는 게 문제다. 회장이 자회사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할 수 있다. 그러나 선임하고 나면 '누구를 부행장 시켜라'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 지금 룰대로 하면 1년에 한번씩 경영계약을 체결하고 사후에 성과를 평가하게 돼 있다. 자회사 자체의 경영에 관여하는 게 아니다. 일일이 간섭하면 1년 뒤 책임을 묻지 못한다. 제시된 목표를 가지고 컨트롤하는 것이다.

지주사 회장 말고 다른 문제는 없는가.

이사회가 슈퍼권력이 돼버렸다. 처음에는 CEO가 사외이사를 뽑는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이사들이 점점 세진다. 주인 없는 회사들은 잘못하면 이사회가 자기 이익을 추구하게 될 수 있다. CEO가 소신을 가지고 추진하는 것을 받아줘야 한다. 이사회는 주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

국민행복기금은 어느 정도 성과가 나고 있나.

대상자들이 일단 채권추심에서 벗어나게 됐다는 게 중요하다. 대상자들은 대부분 다중채무자여서 여러 명한테 채권추심을 당한다. 평균 2.7곳이다. 신청자가 하도 밀려서 "선착순 아니다. 천천히 와도 된다"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도 몰려들더라. 일단 접수해서 대상자가 되면 그날부터 채권추심이 중단되고, 채무조정이 끝난 뒤에는 한곳을 통해서만 채권추심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행복기금 채무조정 사후정산 방식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는 말도 있다.

빚을 제대로 갚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빚을 하나도 안 갚는 사람이 많다. 대상자 340여만명 중 채무조정 혜택을 받는 사람은 10% 정도 될 것이다. 90%는 방법이 없다. 갚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대상자들은 그래도 최소 50%를 갚는 사람들이다. 50%를 깎아준다는 것은 최소한 50%를 내라는 소리다. 이것을 모럴해저드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 정말 50%도 갚기 어려운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고 갚겠다고 애쓰는 것이다. 금융회사들도 자기만 50% 깎아준다고 하면 손해 보는 느낌이 들어서 채무조정을 잘 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다 함께 모여 협약을 하고 그 판단을 국민행복기금에 맡기는 것이다.

채권 금융회사들에는 손해가 없나.

국민행복기금은 과거의 개념과 다르다. 부실채권을 매각하는 것이 아니다. 사후 정산을 한다. 채권을 한데 모아서 채무조정 비율을 통일한 뒤 회수한다. 그리고 그 비율에 맞춰 나눠주는 것이다. 다만 현금흐름이 중요하니까 국민행복기금이 자기 돈을 금융사에 선불로 일정 비율만큼 내주는 것이다. 50%까지 회수하겠다고 하면서 금융사에 10%만 주면 안 된다. 신용회복기금과의 차이는 회수되는 대로 금융사에 다 돌려준다는 것이다. 물론 사후 정산을 하지 않고 일정한 금액만 받고 털겠다는 금융사가 있다면 원하는 대로 해준다.

나머지 90%의 사람들에 대한 대책은 있는가.

국민행복기금이 나머지 90%의 채권도 인수할 것이다. 그것도 사후 정산으로 갔으면 한다. 그러나 90%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사후 정산을 안 하려는 금융사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나머지 90%의 채무조정은 현실성이 있는가.

그들은 빚을 갚을 의사와 능력이 훨씬 떨어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국민행복기금 이전을 생각해보라. 금융사들이 빚을 100% 받아내겠다고 계속 다그친다. 국민행복기금은 이를 50%로 줄여줬다. 그리고 한군데서만 채권추심을 한다. 그게 이전과 다른 점이다.

평소 마음에 새기는 좌우명은 뭔가.

공성신퇴(功成身退)다. 공을 이룬 뒤에 대가를 바라지 말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공을 이룬 것만 해도 행복한 것이고 거기에서 보람을 느껴야 한다.

야생화 사진을 많이 찍는다고 들었다.

산에 다니면서 야생화 등 사진 찍는 것이 취미다. 운동도 되니까 그게 제일 좋다. 사진 찍을 때 쪼그리거나 엎드려야 한다. 100번만 일어났다 앉았다 해봐라. 굉장히 힘들다. 재작년에 사진전을 한번 했다. 북한에 간염 백신 보내는 단체가 전시회를 하자고 해서 했다. 지금 한국 편이 거의 완성 단계에 있다. 그것이 되면 전시회를 하려고 한다.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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