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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피난처
Editor’s Letter
[38호] 2013년 06월 01일 (토) 정남기 jnamki@hani.co.kr

조세피난처라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먼 나라의 얘기라고 생각한다. 뭔가 은밀하고 복잡한 거래가 이뤄지는 비밀의 제국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수수료만 내면 언제든지 익명의 계좌나 회사를 만들어주는 브로커일 뿐이다.

조세피난처 국가의 홈페이지를 통해 관련 업무를 하는 컨설팅회사나 로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일종의 에이전시(대행사)다. 그쪽 사람들을 만날 필요도 없다. 간단한 서류를 작성해 팩스로 보내거나 인터넷 작업으로 쉽게 유령회사를 만들 수 있다. 비용은 1천달러 정도면 된다. 익명의 계좌를 개설하는 것은 더 쉽다. 영국 런던의 중개인에게 전자우편 한통을 보내고 전화 한 통화만 하면 된다.

이런 조세피난처가 전세계적으로 70여개에 이른다. 스위스 같은 전통적인 조세피난처에서부터 생전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나라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구체적인 실상은 카리브해 케이맨제도의 '어글랜드하우스'라는 건물을 보면 알 수 있다. 케이맨제도에서 제일 큰 로펌이 입주해 있는 평범한 5층짜리 건물이다. 그러나 이 건물을 주소로 두고 있는 법인은 1만8천개가 넘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말대로 "세계에서 가장 큰 건물이거나 세계에서 가장 큰 조세 사기가 벌어지는 건물"이다.

실제로 조세피난처에 등록된 회사들은 실체가 없다. 그냥 현지 로펌에 서류 몇장만 있을 뿐이다. 이쯤 되면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재산 도피나 세금 회피가 그들이 말하는 '조세최적화'가 아니라 사실상 '사기'임을 알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그리피스대학은 최근 전세계 로펌 7천곳에 전자우편을 발송해 유령회사 설립을 요청한 적이 있다. 전자우편에 일부 불법 행위를 암시하는 내용도 담았다. 그런데도 40%의 로펌이 긍정적 답신을 보내왔다. 할 말이 없어지는 대목이다.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의 공조 끝에 카리브해 버진아일랜드 등에 유령회사를 설립한 한국인 245명의 명단을 순차적으로 공개한다. 이수영 OCI 회장(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부부와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의 부인 등이 명단에 포함됐다. 이 밖에 알 만한 재벌 총수와 그 일가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전세계적으로 익명의 유령회사를 운용하는 한국인은 1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도피 자금의 규모 역시 천문학적인 수치일 것이다.

조세피난처는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국내 부유층 상당수가 조세피난처에 익명의 예금계좌를 가지고 있고, 국내 대기업들도 세금 포탈이나 비자금 조성을 위해 조세피난처를 수시로 이용하고 있다.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사태가 이렇게 되기까지 국세청이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다. 이번에도 언론이 나서 실상을 폭로했지 국세청이 한 일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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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기 <이코노미 인사이트> 편집장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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