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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경제학이 주류경제학 제치고 떠오르고 있다”
[Cover StoryⅠ]금융 변종플루 진단:인터뷰/ 금융 석학 신현송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
[1호] 2010년 05월 03일 (월) 조계완 국내편집장 kyewan@hani.co.kr

신현송(50)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은 ‘금융위기’ 이론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경제학자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그 명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신 보좌관은 한국 외환위기 직후 투기자본의 외환시장 공격에 대한 정책당국의 대응을 다룬 유명한 논문을 발표한 바 있으며,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에 따른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미 예측했던 학자로 알려져 있다. 신현송 교수는 <이코노미 인사이트>와의 인터뷰에서 “은행세를 도입하면 한국의 외환시장 취약성을 제어할 수 있다”며 “이번 금융위기는 경제적 충격뿐 아니라 ‘경제적 사고’ 측면에서의 충격이 더 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른바 ‘신흥국경제학’이 주류경제학을 제치고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 안식년을 맞아 올 초부터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으로 일하고 있으며, 올해 말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등을 준비하고 있다. 인터뷰는 4월12일 청와대 연풍문에서 이뤄졌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은?
원인을 이야기 하기 전에 먼저 이번 위기로 파산한 영국의 주택금융기관 노던록(Northern Rock)의 부채를 보자. 노던록은 1998년에 민영화됐는데 그 이후 파산 직전까지 자산이 6배 반이나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연평균 23.5% 정도 성장한 것이다. ‘덩치 키우기’의 극단적 사례다. 역사적으로 금융의 주기는 자산의 증가 또는 감소와 보조를 맞춰 일어난다. 이 기간 동안 노던록의 예금자산은 2배 정도로 성장했다. 그런데 자산을 증권화해 시장에 가져다 팔아 대출자금을 마련하는 등 비예금 자금을 많이 조달하면서 총자산이 6배 반이나 늘어난 것이다. 본래 금융기관은 예금자로부터 저축을 받아 기업이나 다른 가계 등 필요한 곳에 자금을 중개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런데 그런 금융기관이 가계로부터 저축받은 돈을 대출자에게 중개하는 수동적 파이프라인 역할을 넘어 오히려 능동적으로 금융주기를 증폭하는 엔진이 되어버린 것이다.

금융주기란 무엇인가? 생산물시장에서 비즈니스사이클(산업경기순환)이 있듯 금융산업도 일정한 주기를 갖고 호황과 불황이 이어지는 것인가?
그렇다. 금융주기는 역사적으로 수백년 동안 항상 있어왔다. 물론 금융사이클은 비즈니스 사이클과 연관이 있다. 역사적으로 금융주기의 근본적인 성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 이후 대대적으로 일어난 자산 증권화와 금융혁신 흐름 속에서 금융주기가 더욱 발전한 것도 사실이다. 금융혁신 기법 가운데 상당수는 비록 학계에서 첫걸음을 시작했지만 업계에서 꽃을 피운 것들이 많다. 업계의 금융공학자들이 주도한 금융혁신에 따라 위험관리가 첨단화하고 민첩해지고 쉬워지면서 시장에 기반을 둔 자산·금융 증권화가 더욱 확대되었다. 자동차 브레이크라는 위험관리 장치가 점점 좋아지면 예전에 시속 100km를 달리다가 이제 150km로 달리게 되는 것과 같다.
 
증권회사·투자은행이 금융주기 엔진으로 

이번 금융위기가 과거의 여러 금융위기와 다른 점은?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통적인 은행부문에서가 아니라 ‘시장위주 금융기관’에서 일어났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전통적 금융기관들(상업은행)은 자기자본 등에 대한 규제를 받아왔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부터 자산 증권화에 기초한 이른바 ‘시장위주 금융기관’(증권회사·월스트리트 기반 투자은행 등)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예금자산에 기반해 대출하고 시장 진입 등에서 규제를 받는)전통적 상업은행(CB·Commercial Bank) 역시 모기지 증권화 영업에 나서면서 이번 금융위기에 톱니바퀴 역할을 하긴 했으나, 근본적으로는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규제를 덜 받는)‘시장에 기반을 둔 증권 금융기관들’이 금융주기의 엔진 역할을 했다. 2007년 전통적 은행부문의 총자산은 약 13조달러로 미국 국내총생산(GDP) 수준이었다. 반면 2007년 투자은행 등 시장기반 금융기관의 총자산은 17조달러에 달했다.
즉 보증모기지담보부증권 등 자산 유동화·증권화와 연결되어 있는 돈이 무려 17조달러에 달했다는 얘기다. 월스트리트 중심의 시장기반 금융기관들이 거대한 자산 증권화 흐름을 일으키면서 금융시장을 주도했고, 여기서 위기가 잉태된 것이다. 국가마다 위기 양상이 약간 다르고 증상도 차이가 있지만 근본 원인은 자금중개의 통로 역할을 해야 할 금융중개기관들이 오히려 금융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는 데 있다.

20여년 전부터 금융이 실물을 압도하면서 너무 덩치가 커졌다는 비판이 있는데….
금융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단순히 금융자산 거래량보다는 금융자산과 GDP 간의 비율 등 다른 지표로 살펴볼 수 있다. 한국의 경우 2007년 GDP가 연 5% 안팎 성장할 때 금융기관 총자산은 연 20% 정도씩 급속도로 커졌다. 미국의 경우 1954년 3월 시점에 비해 상업은행 자산은 80배 늘었다. 그런데 시장에 기반을 둔 증권브로커들이 거래하는 자산은 무려 800배나 증가했다. 이런 증권회사들이 붕괴됐으니 얼마나 충격이 큰 것인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위기의 원인으로 금융기관의 탐욕을 지목하는 의견도 있는데…. 
금융기관은 매일매일 위험에 접하면서 이윤극대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자기자본 규모와 견줘 투자 및 대출을 일으킨다. 즉 시장 리스크가 축소되면 위험자산을 증가시킬 여력이 생긴다. 어느 경제에 임금소득수준과 부채상환능력을 고려할 때 신용수준이 동일한 100명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95명에게만 대출을 하고 있다면 금융기관은 자산을 증가시켜 대출을 더 늘리려 할 것이다. 이처럼 대출을 늘리는 과정에서 금융혁신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110명까지 대출이 일어난다면 추가된 10명은 본래 신용이 안되는 사람들인데도 금융기관의 자금확장단계에서 대출받은 것이다. 금융기관은 대출시점에서 금융시장이 워낙 호황이고 측정된 대출위험도 낮기 때문에 이들한테까지 대출을 늘려도 괜찮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금융도 주기가 있기 때문에 정점에서 결국 꺾어지게 마련이다. 이 때 취약한 10명에서부터 부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렇듯 부실자산은 사실 호황 때 생겨난 것이다. 호황기에 금융감독정책을 펼 때는 항상 이 대목을 주의해서 부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잡아줘야 한다.
 
호황기 때 금융감독이 중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의 저금리 통화정책을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하는데….
잠재GDP와 실제 GDP간의 차이, 그리고 인플레이션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확정된 법칙에 따라 이자율을 결정해야 한다는 이른바 ‘테일러룰’이란 준칙이 있다. 이 룰에 따르면 2000년대 연준의 이자율이 너무 낮았고, 그래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비판이 있다. 사실 연준의 통화정책은 그동안 실물경제에 초점을 맞췄을 뿐 금융을 등한시했다. 그럼에도 그린스펀이나 버냉키는 연준의 통화정책보다는 미 금융감독당국의 감독 실패가 위기의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즉 전통적 은행에 대한 규제에만 치중했을 뿐 물 밑에서 확산되어온 시장위주 증권회사들에 대한 규제는 매우 취약했다는 얘기다. 문제는 시장위주의 투자은행과 증권회사들에 있었는데 이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면, 국제결제은행(BIS) 쪽의 통화정책에 대한 시각은 연준과 다르다. 즉 BIS 쪽은 단순히 실물경제와 소비자물가에만 얽매이지 말고 금융안정 및 유동성이란 측면을 고려해 통화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내가 정부에 들어와 일하고 있기 때문에 통화정책에 대한 나의 입장을 직접 말하긴 곤란하다.

이번 금융위기가 얼마나 지속될 것으로 보는지?
한국경제가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이면서 위기로부터 치고나오고 있다. 세계경제 차원에서도 급성 위기단계는 지났다고 본다. 자유낙하 단계는 끝나고, 회복세에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한국 경제의 회복세가 탄탄할 것인가. 실망스러운 수준으로 떨어질 우려는 없는지?
지금 모든 경제지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민간 소비·투자가 살아나고 있고, 수출도 우려했던 것보다 탄력있게 튀어오르고 있다. 위기 이후 설비투자가 크게 위축되었는데, 정보기술(IT)부문의 설비투자가 탄력을 받아 활기를 띠고 있어 고무적이다. 이제는 잠재성장력을 키우는 것이 과제다. 

 ‘시장’에 대한 경제학자로서의 견해는?
 ‘시장 실패’를 흔히 말하는데 이는 시장을 부정하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나는 시장을 ‘불완전성’이란 측면에서 바라본다. 시장은 평소에는 자원배분을 잘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고 대체로 잘 맞아떨어지는 기구이지만 가끔은 불완전하다. 시장은 사람들의 경제적 행동과 관련해 정보 비대칭이나 마찰을 일으키는 등 불완전한 측면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시장의 좋은 면도 왜곡될 수 있다. 불완전성이 확대 작용해 작은 씨앗이 크게 증폭될 수 있는 단점을 안고 있는 것이 시장경제다. 가급적이면 시장메커니즘 원칙을 활용하되 시장이 갖고 있는 긍정적 측면의 위력을 우리 목적에 맞게 활용하려면 불완전한 측면도 개선해야 한다.

금융 규제·감독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얘긴가?
시장원리에 반하는 행정적 직접 통제는 시장에서 자원배분의 왜곡을 가져온다. 그러나 ‘시장원칙에 부합하는’ 어느 정도의 규제·감독은 필요하다. 시장원리에 맞는 규제를 약간만 도입해도 시장의 흐름을 제어하고 위기가 확대·증폭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썰매를 탈 때 코스를 아주 약간만 바꿔줘도 진행 방향이 확 달라진다.
사실 파생금융상품과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부채담보부증권) 등 복잡한 금융상품들은 위기의 증상이자 현상일 뿐이지 위기의 원인 그 자체는 아니다. 금융경기를 증폭시킨 이런 상품에 대한 규제·감독은 필요하다. 경제원론 교과서적인 의미의 완전한 시장이라면 손 볼 필요가 없다. 물론 시장은 대체로 잘 작동해 (균형수준으로) 맞아떨어지는데, 그 불완전한 성격 때문에 위기를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를 제어하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시장불완전을 제어하기 위해 또 하나의 불완전한 요소(규제·감독)가 시장에 필요하다는 얘기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달라.
경제학에 이른바 ‘세컨드 베스트(2nd best)’ 정리가 있다. 완전한 시장은 추상적이고 이론적 얘기일 뿐이다. 이른바 완전시장에 이르지 못했다면 불완전한 시장 외에 불완전한 요소가 하나 더 있어서 두 개의 불완전 요소가 존재하는 것이 오히려 더 바람직한 최적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어쩌면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불완전한 것이 하나만 존재하면 이것이 시장위력과 결탁해 더 큰 증폭 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다. 물론 시장 자체의 감시기능이 작동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규제·감독은 시장원리에서 어긋나는 것이다.
금융은 세컨드 베스트 이론의 좋은 사례다. 즉 규제·감독이라는 제2의 불완전 요소를 집어넣으면 애초의 불완전한 시장을 중화·제어하고 시장이 잘 돌아가게 할 수 있다. 금융 감독기능은 이런 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사실 경제정책은 요리책 교본처럼 정형화된 절차와 수단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면, 시장불완전 요소가 무엇인지 파악해 그때 그때 가장 적절한 정책을 찾아내 구사해야 한다.

   
 


금융업에 종사하지도 않고 파생상품이 뭔지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번 위기로 큰 고통을 받고 있다. ‘금융’이란 대체 무엇인가?
금융의 순기능을 다시 찾아야 한다. 피가 순환하는 것처럼 금융은 경제가 잘 돌아가게 하는 혈액이다. 실물생산에 기여해야 할 금융이 가끔 본연의 역할에서 벗어나 자체적으로 금융주기의 엔진이 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그러나 금융업을 온통 매도해서는 안된다. 금융에 족쇄를 채우는 합리적이지 않은 규제를 마구 도입하는 건 포퓰리즘일 뿐이다. 시장과 금융을 위축시키는 건 피해야 한다. 올바른 길로 가도록 제어하면 된다.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항상 ‘시장’보다 옳다는 오만은 버려야 한다. 시장메커니즘은 매우 정교하고 보통 때는 잘 작동한다. 물론 위기직전 동안 금융이 ‘너무 나간 것’도 사실이다. 내가 재직하고 있는 프린스턴대 전체 졸업생들 중 약 40%가 위기 이전에 월스트리트 금융업으로 갔다. 한 세대의 꽃들이 교육이나 과학, 공공부문 등은 외면하고 모두 월스트리트로 몰려갔으니 자원 왜곡이 빚어진 것이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것이 하나의 거품 징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은행세 도입땐 달러유입 제어 가능 

작은 손질만으로도 고장난 금융시스템을 고칠 수 있는가?
국제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금융규제방안들을 보면 획기적인 것이 많다. 오바마 정부가 내놓은 은행세(Obama tax·예금 이외의, 은행이 차입한 자산에 대해 세금 또는 부담금을 매기는 것)는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은행세 역시 큰 틀에서 보면 시장원칙을 적용하는 것이다. 은행 영업을 세세하게 감독·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에 맡기되 자기자본을 파악해 부담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시장의 동력(힘)을 사용하는 방안이다. 시장이라는 말을 나무에 묶어놓고 자기 발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말에 적절한 고삐를 맨 뒤 그 말을 타고 가자는 것이다.

은행세 도입에 대한 국제적 합의 전망은?
현재 국제적인 금융규제안으로 은행세와 볼커룰(은행의 업무영역을 상업은행(CB)과 투자은행(IB)으로 명확히 분리하자는 제안)이 언급되고 있다. 볼커룰은 대형은행 영업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것으로, 주로 예금을 받아 운용하는 상업은행의 경우 시장성·투기성 업무를 하지 못하도록 규제하자는 것이다. 대형은행의 겸업을 차단하자는 것인데, 이 볼커룰 방안보다는 은행세 도입 쪽으로 국제적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속도가 붙고 있다. 반대하는 국가는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 때 자국 금융기관에 공적자금 투입을 거의 하지 않은 캐나다 등 몇국 뿐이다. 은행세는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금융기관들에 투입한 공적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한데, 자산 500억달러 이상인 금융기관에 한해 약간의 세금을 매기자는 안이 제출되고 있다. 은행세를 물리면 은행의 행위도 바꿀 수 있게 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금융위기 책임을 묻기 위한 은행세 도입 보고서를 준비하고 있다.

은행세가 도입될 경우 한국 금융기관에 미칠 영향은?
국제적인 논의 흐름을 지켜보면서 국제공조 아래서 검토한다는 게 우리 입장인데, 은행세는 우리나라에 몇 가지 이점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한국 금융시장에서는 주로 (외국계은행 한국지점 등이 들여오는)외화부채가 아킬레스건이다. 즉 우리가 자체적으로 달러금리를 제어할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헤지펀드 등 시장에 기반을 둔 플레이어들이 달러 금리에 따라 자금을 조달해 국내 채권에 투자하는 ‘금리 차익거래’를 많이 하고 있다. 이것이 원·달러 환율 압박으로 작용하고, 외환시장 취약성을 키우고 있다. 그런데 은행세를 도입하면 어느 정도 금융주기 증폭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긴다. 바꿔 말해 국내 금융시장에 한해 달러금리와 달러부채 규모를 제어할 수 있게 되고, 금융주기를 주도하는 부채의 등락을 잡을 수 있게 된다. 개방된 자본시장을 가진 신흥국들은 은행세가 자국 입장에 맞게 반영되도록 논의를 주도할 필요가 있다. IMF 보고서에도 우리 입장이 상당히 수용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다만 독자적으로 은행세를 도입하게 되면 글로벌 금융자본이 세금을 회피할 수 있는 국가 쪽으로만 흘러갈 것이고, 그러면 은행세를 도입한 국가의 금융시장만 부담만 안게 된다. 국제 공조가 필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은행 대형화 정책은 다르다 

우리나라 정책당국은 은행 대형화를 추구하고 있는데….
은행의 덩치가 크다고 해서 반드시 은행의 시스템 리스크가 커지는 건 아니다. 몰락한 리먼브라더스나 베어스턴스의 경우 씨티그룹(총자산 2조달러)에 비하면 큰 금융기관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들 금융기관이 매우 복잡한 거래를 해왔다는 점이다. 영위하는 업무가 금융기관들간에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있을 경우 파산하면 그 파급효과가 막대해진다. 상업은행업무와 증권업 간에 벽을 두지 않고 겸업하는 유니버셜 뱅킹 전통을 갖고 있는 유럽의 경우 독일 도이체방크는 이번 위기에 가장 잘 대처한 은행 중 하나다. 단순히 겸업한다고 해서 리스크에 취약한 건 아니다. 대형은행이라도 국민들로부터 예금을 받아 그냥 대출해주는 단순한 업무를 하는 은행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일본의 은행들이 그런 사례다. 이런 단순한 모델이라면 매뉴얼대로 영업하는 것이므로 리스크도 크지 않다. 

 ‘대마불사’가 맞다는 뜻인가?
은행 대형화가 이번 금융위기로부터 얻은 중요한 교훈과 크게 어긋나는 건 아니다. 대마불사를 비판적으로 해석할 경우 대마는 ‘큰 말’이란 뜻도 있지만 ‘아주 복잡한 말’이라는 뜻도 함축하고 있다. 은행을 대형화하면 비용절감이나 규모의 경제 효과도 있고 소비자 혜택도 존재하기 때문에 단순히 ‘대마’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아주 복잡한 말’이 아니면 된다.

자본흐름에 대한 통제의 필요성은 인정하는 것인지?
이와 관련해 최근 국제통화기금(IMF) 안에서 굉장히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 2월 IMF보고서(“Capital Inflows: The Role of Controls”)는 자본유입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금융위기 이전에는 경제를 시장메커니즘에 맡겨야 한다고 줄곧 부르짖었던, 또 한국에 대해 자본시장 개방을 권유했던 IMF가 정책을 수정한 것이다. 사실 이번 위기를 돌아보면 자본유입을 통제하는 국가는 충격도 덜 받고 안정된 성장을 하고 있다. IMF 내부에서도 상당히 기조가 바뀌어 이제는 시장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자본흐름에 대한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한국에 요구했던 긴축정책 패키지가 잘못이었다고 IMF 스스로 비공식적으로 여러 번 인정한 바 있다.

유럽 재정위기와 관련해 IMF 지원을 둘러싸고 유로권 내에서 논란이 있는데….
그리스의 재정위기는 단순한 국가부채 문제를 넘어 유럽 공동통화라는 중요하고 복잡한 요소가 개입돼 있다. 유로 가입국가가 아니었다면 그리스가 환율을 평가절하해 위기를 극복했을 것이다. 유로 가입국이라서 통로가 막혀 진퇴양난에 처해 있는 것이다. 재정위기와 관련해 덧붙이면,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선진국이나 신흥국들처럼 막대한 공공 재정지출을 통해 곤두박질치는 경제를 끌어올렸다. 공공지출의 힘이 작용해 제2의 대공황은 모면한 것이다. 경제의 펀터멘털 측면에서 볼 때 재정 부채를 안고 갈 여력이 남아 있다면 재정은 충분히 써야 한다. 민간부문이 성장의 바통을 이어받기 전에 대규모 공공재정을 투입하는 건 경제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다.

글로벌 불균형 해소나 위안화 절상을 둘러싼 갈등 문제는 어떻게 보는지?
위기 이전에 세계 경제는 미국 국민들이 달러 기축통화를 기반으로 빚을 끌어다 소비하는 것에 의존해 지탱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균형잡힌 성장’이 이뤄져야 한다. 미국도 저축률을 높이는 등 재조정에 들어가야 한다. 대신 지금까지 미국과의 교역에서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낸 중국 등 여러 나라들도 이제는 (수출보다는) 내수진작 정책을 펴고 환율을 조정하는 등의 방식으로 부담을 져야 한다. 그래서 글로벌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 올해 말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회의 의장국으로서 우리가 이 점을 적극 알리고 중재 역할을 할 것이다.
 
큰 위기가 오면 경제학도 바뀐다 

‘달러 종말론’ 이야기들이 많다. 달러 헤게모니 몰락에 대한 견해는?
달러 헤게모니는 단기적으로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미국 금융시장이 워낙 발달돼 있고, 거래되고 있는 채권 총량에서도 미국이 가장 많다. 그만큼 미국의 신용도가 아직 제일 높다. 따라서 국제통화로서 달러의 기능에는 당분가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본다. 물론 수십년, 수백년 긴 안목으로 보면 변화는 항상 있다. 신흥국의 실물 경제규모가 커지면 달러 헤게모니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금융분야 쪽으로 연구를 하게 된 계기는?
원래 나의 전공은 미시경제학 쪽 게임이론이었다. 그런데 한국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연구분야를 금융 쪽으로 전환했다. 내가 지금껏 활약할 수 있었던 것도 그때부터 쌓아온 연구가 바탕이 되고 있다. 지금, 정부에 들어와 일할 수 있다는 것을 경제학자로서 큰 보람으로 생각한다.

이번 위기와 관련해 경제학 혹은 금융경제학의 공과에 대한 의견은?
이번 위기로 시장의 완전성을 주창해온 시카고학파의 학문적 위상이 낮아진 건 사실이다. 금융과 거시경제는 서로 직결되는데도 주류 거시경제학계에서는 그동안 금융을 외면해온 것도 사실이다. 이번에 금융이 얼마나 중요한지 많은 사람들이 깨달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솔로 교수가 ‘대공황은 인류 후생이란 측면에서 큰 비극이었지만, 경제학 발전에서는 획기적인 기회였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 위기로 경제적으로 큰 비용을 치렀지만 경제학 발전에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경제학은 어디까지나 실증학문이다. 따라서 큰 위기가 오면 경제학도 바뀌지 않을 수 없다. 흥미로운 건 위기 이후 이른바 ‘신흥국경제학’이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폴 쿠르그먼,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이 신흥국경제학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신흥국이 과거에 겪었던 경제위기로부터 여러가지 경제정책적 지혜를 터득한 이들의 목소리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미국 쪽을 볼 때 이번 위기는 경제적 충격뿐 아니라 ‘경제적 사고’의 충격이 더 컸다.

신흥국경제학을 좀더 설명해달라.
신흥국경제학은 본래 주류 경제학에서 나온 것이긴 한데, (신흥국들이) 금융위기 실전을 경험하면서 검증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시장불완전성을 확실히 파악하고 있는 신흥국경제학이 오히려 지금 주류경제학계와 선진국에 역수입되고 있는 양상이다. 위기가 터진 뒤 국제 경제정책 논의에 적극 개입하고 있는 사람들은 1990년대 신흥국 경제위기를 연구해왔던 사람들이다. 나도 우리나라 외환위기를 공부했었고…. 반면에 주류경제학자들은 최근 논의에 별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신흥국들은 금융위기를 자주 겪었고, 위기극복 사례가 있기 때문에 이번 위기에 잘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경제질서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선진국들이 이제서야 깨닫고 있는 것들은 대개 우리가 12년 전 외환위기 때 이미 경험하고 파악했던 내용들이다.
 

[신현송]
신 보좌관은 대구 출생으로, 금융업에 종사하는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시절에 영국으로 건너간 뒤 영국 애매뉴얼 고교를 졸업했다. 한국에 돌아와 3년 군복무를 마친 뒤, 1982년 옥스포드대 학부에 들어갔다. 1988년 옥스포드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옥스포드대 교수·런던정경대(LSE) 교수를 거쳐 2006년부터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인터뷰 과정에서 신 보좌관은 본인의 대표적인 논문으로 “Unique Equilibrium in a Model of Self-Fulfilling Currency Attacks”(American Economic Review·1998), “Liquidity and Leverage”(Journal of Financial Intermediation·2008)를 꼽았다. 앞 논문은 투기 자본의 외환시장 공격에 대한 정책 판단을 주제로 다뤘으며 90년대 이후 최고의 금융위기 분석 논문으로 평가받고 있다. 뒷 논문은 월스트리트 5대 투자은행의 담보차입과 자산증권화를 분석한 논문이다. 신 교수는 “연말에 G20 정상회의가 끝나면 프린스턴대로 복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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