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째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는 코오롱 정리해고자들의 눈에 4·11 총선은 ‘그들만의 잔치’다. 보수정당도 진보정당도 모두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얘기하지만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등 노동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장기 투쟁 중인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는 이들은 마치 자기 일처럼 돕는 동지들이다. 코오롱 정리해고자를 돕는 행사에 사용될 대형 걸개그림을 함께 만들고 있는 동료 노동자들이 짬을 내 식사를 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2009년 4월 쌍용자동차는 2646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발표했다. 노동조합이 자기 희생을 전제로 제안한 모든 자구책은 거부당했다. 회사는 '함께 살자'는 노조의 요구를 묵살했고, 노동자들은 결국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의 77일. 2009년 여름을 달군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의 옥쇄파업은 결국 8월6일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끝났다. 경찰이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진압하는 모습은 공중파 뉴스에서 그 폭력성을 문제 삼을 정도로 잔인했다. 77일 동안 처참한 고립과 잔인한 폭력을 경험한 그들은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오늘까지 시름시름 앓다 21명이나 목숨을 버렸다. 그러나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버릴 만큼 고통의 기억으로 남은 그날의 진압을 경찰청은 '베스트 진압 사례'로 선정했다.

지난 3월13일 이를 항의하러 경찰청을 찾은 쌍용자동차노동조합의 김정우 지부장은 또다시 경찰에게 끌려갔다. 그가 연행되며 외친 말은 오늘날 정리해고자로 살아가는 많은 노동자들의 현재를 말해줬다. "우리는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힘든 사람들입니다."

복직투쟁 8년, '최장기투쟁' 사업장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사는 '코오롱 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이하 코오롱 정투위)의 최일배 위원장의 오늘도 그렇다. 서울시청 광장에 희망텐트를 치고 경북 구미에서 올라와 농성 중인 그는, 정리해고라는 제도가 가진 모순과 불합리성에 대해 여러 차례 얘기했다.

정리해고로 8년째 싸우는 코오롱

코오롱 정투위는 다른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이 '저런 곳도 있는데 우리는 아직 괜찮지 않느냐'며 스스로 위로할 때 비교 대상이 되는 곳이다. 투쟁사업장에도 계급이 있다. '대기업' '대규모' '서울이나 수도권' '자살' 등 자극적이어야 이슈가 된다. 그저 그런 사업장의 그저 그런 정리해고는 뉴스조차 되지 못한다. 벌써 8년째 싸우고 있지만 코오롱이 정리해고 기업이라는 걸 아는 사람조차 드물다.

"2004년 회사가 경영위기를 이유로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했어요. 당시 코오롱 구미공장에 조합원이 1400명 있었는데, 300명 정도 희망퇴직을 해야 회사가 산다고 그래요. 이전부터 근무 형태를 바꾸면서 이미 실질임금 20%가 줄었기 때문에 우리는 충분히 고통 분담을 했어요. 구조조정을 안 하기로 했는데, 3개월 만에 또 말을 바꾼 거죠. 구미공장은 계속 흑자였어요. 회장이 문어발식 마구잡이로 사업을 확장하는 과장에서 적자 폭이 늘었고, 그 부담을 알짜배기인 구미공장이 진 거죠."

"한 조합원은 너무 억울해서 내가 왜 해고 대상자냐고 관리자에게 가서 따졌어요. 그랬더니 '너는 회식할 때 노래방 도우미랑 잘 놀지도 못하잖아. 그게 사유다' 그런 거예요. 뒤에 부랴부랴 내민 근무평가표 또한 어이없었죠. 근태 한 번 없는 성실한 사람은 자의적 평가로 해고 대상자가 되고, 노조 집행부 경력 있는 사람, 현장에서 입바른 소리 하는 사람은 다 포함됐어요. 어느 누구도 납득할 수 없었죠."

최일배 위원장을 처음 만난 건 3년 전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전국사업장 투어 때였다. '질주'라는 이름을 단 그 행진에는 장기투쟁 중인 해고자가 많이 모였다. '재벌 회장 집에 침입해 할복을 시도한 노조위원장'이란 기사로 그를 알았던 터라 차분하고 순박하기만 한 그의 인상이 뜻밖이었다.

그는 발언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13년 동안 연봉 5천만원의 귀족 정규직 노동자로 살면서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한 것을 너무나 후회한다"고 말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 되어 싸우지 않으면 질 수밖에 없다고 간곡한 목소리로 호소했다. 그때 투쟁 5년째였던 코오롱 정투위는 처음 50명에서 29명으로 줄었는데, 3년이 더 지난 지금은 17명만 남았다고 한다.

다시 만난 그는 연이은 행진과 노숙으로 지쳐 있었고, 얼굴엔 어느덧 주름이 늘어 있었다. 내가 모르는 많은 일들이 3년 동안 회한이 되고 시름이 되어 그 주름 사이사이로 새겨들어 갔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구미의 KEC 정리해고 때 연대하다 구속됐다는 소식도 언뜻 들은 터라, 예의 그 사람 좋은 웃음마저 아팠다. 8년이라니, 도대체 어떻게 그 세월을 견디고 있는 것일까.

"저희는 금속사업장도 아니어서 신분보장기금이나 개인적 생계를 보장해줄 방법이 전혀 없었어요. 그때는 그런 걸 생각할 겨를 없이 싸움에 정신없었기 때문에 실업급여 받고, 개인적으로 적금·보험 해약하고, 타고 다니던 자동차 팔고, 애들 학원 끊고, 이런 식으로 알아서 2년을 버텼죠. 해고 요건이 워낙 말도 안 되니까 당연히 이길 줄 알았고, 길어도 2년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행정소송, 민사소송 다 졌어요. 가족에게 면목도 없고."

"제일 가슴 아팠던 게 정리해고 되고 나서 100일 문화제 할 때 우리 조합원 중에 나이 젤 많은 선배님이 있는데 딸이 '아빠가 자랑스러워요. 아빠 투쟁 자랑스러우니, 아빠 힘내세요' 하는 편지를 썼어요. 그랬던 딸이 1년이 지나서 '아빠는 너무 무책임한 사람이다. 엄마를 저렇게 고생시키는 아빠가 너무 밉다' 그런 거예요. 그 형님이 울면서 투쟁을 그만뒀거든요. 그게 너무 가슴이 아팠죠. 계속 그렇게 떠나보냈죠."

언론의 뭇매 맞은 '회장 집 할복 사건'

5년이 지난 뒤부터는 날을 세지 않고 햇수를 세는 게 편해졌다고 한다. 그렇게 동료들을 떠나보내며 그도 숱하게 고민을 했다. '그만큼 했으면 되지 않았느냐'는 아내의 원망을 들을 때면, 동료들의 아내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죄책감이 들 때면, 나 때문에 이 싸움이 이렇게 길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돈으로라도 해결을 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두 차례나 자해를 시도한 것도 위원장으로서 조합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아무도 탐내지 않는 정투위 위원장 자리를 8년 동안 지키면서 그가 겪어야 했던 고민의 날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해고자 신분으로 10대 노조위원장에 당선됐어요. 당선되고 거의 1년 동안 제가 노조위원장실에 '참을 인'(忍)자를 3개 걸어놨어요.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를 시도해보려고요. 끊임없이 공문을 보내고 교섭 요청을 했는데도 번번이 무시됐어요. 참다 못해 우리 동지들이 구미공장에 있는 35m 송전탑에 올라가서 35일 동안 고공농성과 단식농성을 하고, 경기도 과천의 본사 로비에 들어가서 4일 동안 항의농성을 했어요. 그런데 회사는 단 한 차례도 응하지 않았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회장을 직접 만나는 길밖에 없구나, 그래서 자택을 찾아간 거예요. 공교롭게 공사 중이라 담장이 열려 있어서 집 안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현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유리를 깼지만, 들어가서 최대한 거실 창 쪽으로 나란히 섰어요. 절대 물리적 충돌이 있어선 안 된다, 경찰한테도 서한만 전달하고 갈 거다 그랬는데 경찰 중재도 무산되고 체포조가 움직이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동지들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커터를 꺼낸 거죠. 더 이상 강제로 체포하려 하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동지들을 살려야겠단 생각밖에 없었어요."

언론의 뭇매를 맞은 '회장집 할복 사건'의 전말은 그런 것이었다. 또 한 번의 자해 시도도 과천 본사 로비에서 농성할 때 도저히 경찰의 폭력을 막을 방법이 없어서 그랬다고 한다. 도대체 뭘 잘못했기에, 면담 한 번 하자는, 손에 든 것 하나 없는 맨몸의 우리 동지들을 저렇게 무자비하게 개 끌듯이, 개 패듯이 끌고 가서 패는 것인지, 더 이상 때리면 내 동맥을 끊겠다며 또 한 번 커터를 꺼내들었다고 한다. 농성장을 만드느라 늘 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커터는 무시무시한 무기로 둔갑했지만, 그는 남을 찌르는 대신 자신의 몸을 그었다.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해고자의 삶, 그건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다.

그의 신산한 삶을 치유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지 모른다. 아니 불가능할 것이다. 복직에 대한 기대도 이젠 거의 없다. 그래도 이 투쟁을 놓지 못하는 건 이 땅에 너무나 당연하게 자리잡고 있는 정리해고 문제를 끝까지 알리기 위해서다. 자신들이 '더 치열하게 싸우지 못해 이웃인 구미의 KEC 동지들이 정리해고를 당한 게 아닌가'라는 오지랖 넓은 자책까지 한다.

"정리해고법이라는 게 굉장히 모순이 많고 자본에 유리한 법이에요.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을 것, 노조와 협의할 것,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의해 선정할 것, 해고 회피 노력을 최대한 할 것. 그중 한두 가지라도 충족하면 정당성을 인정받아요. 저희 재판에서도 해고자 선정 기준이 공정치 못했다 인정되지만, 그게 정리해고가 부당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이런 식으로 판결해요. 정리해고를 합리화하는 쪽으로 유권해석을 해버리기 때문에 법을 통해서 이기기는 정말 하늘의 별 따기예요."

"투쟁하면서 세 정권을 다 겪어봤는데, 노무현 정부 때는 관료들이 '이젠 시대가 바뀌어서 기업들이 정권 말 안 듣는다, 투자 안 한다고 오히려 우리를 협박한다'며 발을 뺐어요. 지금 대한민국은 자본의 천국이에요. 한진중공업도, 쌍용자동차도, KEC도, 유성기업도, 그렇게 사회문제가 돼도 해고를 멈추지 않아요."

4·11 총선에서 노동 이슈는 실종된 듯하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오른쪽)와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3월10일 국회에서 야권 연대에 합의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정리해고자 10만 명 시대

"지난해 말 동지들과 얘기했어요.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우리는 이미 최장기투쟁 사업장이 돼버렸다, 이제 그에 걸맞은 투쟁을 고민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어떤 방법으로든 얼마나 정리해고가 심각하고 사회적 문제인지를 알리자,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싸우자 그랬어요. 어떻게든 제도를 바꾸는 투쟁을 하자 그렇게 정리했죠."

꼭 10년 전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진보정당 대선 후보의 말이 장안의 화제였다. 두 차례 개혁정권이 집권한 뒤, 다시 보수정권이 집권했고, 서로 잃어버린 10년이니, 네 탓이니 공방을 하는 지금, 다시 대선 국면을 앞둔 우리 사회의 유행어는 '이게 사는 건가?'다.

이게 사는 건가. 우리 시대에 딱 맞춤한 말이다. 진보고 보수고, 개혁이고 나발이고, 이놈저놈한테 다 나라를 맡겼어도 내 사는 꼴은 이 모양인 게 화가 나기에, 도대체 이건 누구의 잘못인지조차 모르겠기에, 이젠 물음조차 의미가 없다. 그냥 넋두리요 자책이고, 허공에 부서지는 메아리처럼 탄식할 뿐이다. 도대체 이게 사는 건가.

2011년 정리해고된 노동자가 노동부의 공식 통계로 10만 명이 넘었다. 1998년 이후 최대 수라고 한다. 2만 명, 3만 명, 많을 때도 10만 명 아래였던 정리해고 노동자 수가 최근 들어 10만 명 넘게 가파르게 치솟은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국가가 부도났던 때도 12만 명이었는데, 지금 우리 사회는 그때처럼 부도 직전인 것인가? 그렇다면 정리해고를 한 사람들의 오늘은 어떨까? 뼈를 깎는 고통으로 구조조정을 하겠다던 기업들은 노동자들만큼 고통스러운 세월을 견디고 있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은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재벌 그룹 소유주들은 앉은 자리에서 주식배당금으로 돈잔치를 벌였다. 특히 정리해고 기업의 오너들이 가져가는 배당금은 수백억원이다. 해고된 노동자들이 주장하듯, 사람을 자르기는커녕, 수천 명을 더 고용할 수 있는 돈을 가지고도 기업들은 해고를 한다. 납득할 수 없는 현실에 이들은 복직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내가 해고된 이유를 제발 납득시켜달라고, 그럴 수 없으면 사과라도 한마디 해달라고, 원직 복직을 외치며 한 발짝도 물러날 수 없다던 결기를 가졌던 해고자들은 이제 "제발, 미안했다고 한마디만 해달라"며 회사를 향해 호소한다.

"이 사회가 정리해고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문제 있는 사람, 뭔가 잘못된 사람, 무능력한 사람이에요. 아이들과 아내한테 그런 아빠로 보이고 싶지 않아요. 이건 평생 가는 거거든요. 근데 회사가 '미안하다' 사과하면 면죄부를 받는 거잖아요. 별거 아니라도 살아갈 날이 더 많고, 아이들한테도 떳떳하고. 그 명예를 회복하고 싶어요."

"투쟁할 때 몸이 힘들고 고달프지만 나름대로 우리의 정당성을 알아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게 작지만 굉장히 힘이 커요. 예를 들면 과천 본사에서 2년 동안 천막농성을 했을 때, 지역의 동지들이 마치 자기 문제처럼 우리와 함께해주는 거예요. 면담을 요청하러 에스컬레이터 타고 올라가는데 아래에 보니까 경찰에게 무자비하게 구타당하고 폭력에 짓밟히는 동지들이 보이는 거예요. 정말 자기 싸움처럼 격렬하게 항의하고 온몸을 던져서 싸우는 걸 봤을 때 감격했어요. 생계가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최소한의 생계를 지원해주던 동지들도 있었어요."

장기투쟁 중인 노동자들을 만나면 판에 박힌 듯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이들이 그 어려운 시간을 견디는 힘은 자신의 정당성, 그리고 내 일처럼 연대해주는 동지들 때문이고, 가장 원하는 건 진심을 담은 회사의 사과, 너희 잘못이 아니었다는 사회적인 인정, 그것이다.

노동자에겐 관심 없는 정당들

인터뷰 당일에 최 위원장은 정당마다 다니며 '정리해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하라'며 항의 방문을 하고 왔지만, 별로 희망이 안 보인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선거를 앞두고 보수정당도 진보정당도 모두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얘기하지만, 믿었던 진보정당마저 야권 연대니 후보단일화니 선거 일정에만 몰입할 뿐 노동 의제에 관심 없는 거 같아 서운하단다.

파업에 들어간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한바탕 사랑의 짝짓기 쇼를 끝내고, 유쾌하고 세련된 파업의 장면들이 사라진 서울시청 광장. 개혁적인 시장의 탄생으로 이제 농성텐트를 칠 수 있게 된 광장에서, 2명이 몸을 맞대고 자야 하는 작은 1인용 텐트로 향하는 그의 쓸쓸한 뒷모습이 묻고 있었다.

1987년, 2008년, 2011년 이 광장에 모인 100만 명, 10만 명, 수만 명의 사람들이 외쳤던 민주주의는 과연 무엇이었느냐고. 정권 교체에 환호하고, 촛불 혁명에 감동하고, 개혁 시장 탄생에 기뻐하던 우리가 잊고 있는 건 과연 무엇이냐고.

이선옥 르포작가 namufree@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