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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게임 뒤엔 ‘죽음의 노동’ 겹겹
[Trend] 늘어나는 야간작업 등 ‘노동 질’ 악화되는 게임업계
[22호] 2012년 02월 01일 (수) 로랑 장노 economyinsight@hani.co.kr

많은 이들이 ‘게임산업’ 하면 여유로운 작업환경을 연상한다. 하지만 게임업계 내부는 끝도 없는 잔업, 수당도 받지 못하는 야근 등으로 얼룩져 있다. 문제는 이런 열악함이 앞으로 등장할 다양한 ‘창조노동’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게임업체 유비소프트사의 비디오게임 <록스미스> (Rocksmith). 게임업체 노동자 에릭(가명)은 유비소프트의 협력사인 한 게임스튜디오에서 일한 4년 동안 극심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뉴시스 AP.

누구나 한 번쯤 게임산업에 종사하고 싶다는 꿈을 가져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게임산업은 흔히 신명나는 직장으로 통한다. 젊고 패기 넘치는 직원들이 여가 시간(물론 여가 시간이 나는 경우는 드물지만)에는 직접 게임도 즐길 수 있는 꿈의 직장. 한마디로 ‘게임광들의 천국’인 셈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이라 했던가. 재미난 비디오게임은 시간 잡아먹는 괴물과 같다. 모니터를 붙들고 밤을 지새우는 열혈 애호가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다. 프로그래머, 그래픽디자이너 등 각종 개발자들은 납기일을 맞추느라 시간에 쫓기며 살기는 매한가지다. 격무와 잔업은 기본이요, 주말을 반납하는 것도 예사다. 일자리는 불안정하기 짝이 없고, 급여는 쥐꼬리만큼이나 형편없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게임개발자의 노동현실이 그렇게 환상적이기만 한 것은 아닌 셈이다.

‘노동착취’라는 단어가 낯익게 된 게임산업

게임퍼블리셔나 게임스튜디오의 노동착취 문제는 게임산업 관련 잡지에 자주 오르내리는 단골 주제다. 가장 최근에는 오스트레일리아 게임스튜디오 ‘팀 본디’가 개발한 ‘L.A. 누아르’ 게임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제이슨 델라 로카 세계게임개발자협회(IGDA) 전 회장은 “게임을 제작하는 데 무려 7년이 걸렸다. 게임은 대박을 쳤지만, 제작에 참여한 직원들은 생지옥이나 다름없는 삶을 견뎌야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팀 본디’ 퇴사자 가운데 일부가 익명으로 ‘팀 본디’의 경영 실상을 신랄하게 고발했다. 주된 비난의 표적은 ‘크런치 타임’(Crunch Time)이라 불리는 게임업계의 야근 관행이었다. 게임업계에서 널리 통용되는 용어인 크런치 타임은 납기일이 임박하거나 게임퍼블리셔에 중간보고를 해야 하는 시기가 가까워지면서 게임 개발자들이 야근 강행군을 하는 혹독한 근무환경을 의미한다. 일부 직원의 말에 따르면, ‘팀 본디’사에서는 하루하루가 매일 크런치 타임이었다.

크런치 타임은 비단 ‘팀 본디’만의 문제는 아니다. 게임업계에서 야근 관행은 보기 드문 일이 아니다. IGDA가 2009년 전세계 3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게임산업 종사자 중 55%가 정기적으로 크런치 타임에 시달리고 있었다. 반면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 노동자는 6%에 불과했다. 크런치 타임 기간이 아닌 평상시에도 게임산업 종사자의 주당 노동시간은 꽤 긴 편에 속했다. 개발자의 60%가 주당 46시간 이상 일했다. 하지만 일단 크런치 타임에 돌입하면 노동시간을 측정하는 계기판이 휙휙 정신없이 돌아간다. 전체 게임산업 종사자의 35%가 주당 55~65시간, 나머지 35%가 주당 65~80시간을 일했다. 심지어 80시간 이상을 일하는 직원도 무려 15%에 달했다. 더욱이 이런 철야 업무가 최소 2주에서 심지어 2개월 넘게 지속되기까지 했다.

노동량 늘어나도 추가노동수당 꿈 못 꿔

에릭(가명)은 일렉트로닉아츠와 유비소프트의 협력사인 한 게임스튜디오에서 4년을 일했다. 그가 뽑은 최악의 기억은 ‘해리 포터’ 게임을 제작하던 시기였다. “한 달 내내 매일같이 아침 9시에 출근해 새벽 1시에 퇴근했다. 팀이 작업한 성과물이 번번이 퇴짜 맞는 바람에 똑같은 작업을 서너 번이나 다시 해야 했다.” 27살 조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녀는 프랑스 리옹에 위치한 한 게임스튜디오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프로젝트 마감을 앞둔 마지막 몇 달은 정말이지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마무리 작업이 고역이었다. 오류를 일일이 찾아내 바로잡아야 했다. 계속해서 마감 일자가 늦춰졌다.” 강행군에 지친 조엘은 결국 따로 회사를 차려 독립했다. 조엘은 “어느 정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게임산업 종사자의 평균연령은 매우 낮다. IGDA에 따르면, 게임업계 종사자 가운데 35살이 넘는 사람은 고작해야 18%에 불과하다. 더욱이 73%는 자녀가 없다.

문제는 이처럼 하루 종일 일에만 전념하는데도 추가노동수당은 꿈도 꿀 수 없다는 점이다. IGDA에 따르면, 추가노동수당을 받고 잔업을 하는 사람은 전체 조사 대상자의 단 9%였다. 미국에서는 게임산업이 추가노동수당 지급 규정에서 면제 대상이다. 반면 캐나다는 가산 비율로 추가노동수당을 지급하도록 의무화했지만, 실상 규정을 지키는 스튜디오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요리조리 법망을 피해다닌다. 추가노동 내역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거나, 아예 직원들이 알아서 자발적으로 야근을 하도록 압박하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이를테면 동료 간 경쟁을 부추기거나, 팀워크를 내세워 야근 분위기를 조장한다.

프랑스에서 게임산업의 추가노동수당 문제에 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미주 지역만큼 상황이 심각한 것은 아닌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직원마다 증언이 엇갈리는 것을 보면, 기업에 따라 상황이 천차만별일 수도 있다. 프랑스게임산업협회(SNVJ) 대표 줄리앵 빌디외는 “게임산업은 한 번에 일이 확 몰렸다가 다시 한동안 휴지기가 이어지는 식으로 제작 주기가 반복된다. 하지만 노동시간을 1년 단위로 탄력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별다른 분쟁은 없다”고 설명했다.

진실이야 어찌됐든 업계 내에서 추가노동수당 문제는 분명 논란거리다. 종업원 400명 규모의 한 게임스튜디오의 기획팀장으로 일하는 안(가명)도 이런 문제점을 시인한다. “추가노동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문제다. 적어도 마감 기간이 돌아올 때마다 이 문제가 불거져나온다. 만일 직원에게 추가노동수당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다른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를테면 하루 휴가를 보내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사실 추가노동에 대해 상여금이나 휴가 등으로 보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이는 법적으로 보장된 것도 아닐뿐더러, 추가노동시간에 따라 보상 정도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직원들이 시간에 쫓기며 일하는 것은 게임산업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오늘날 새롭게 등장한 지식경제 분야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작업이 프로젝트 단위로 조직되는 지식경제 분야에서는 노동자가 사생활을 침해받을 정도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일이 흔하다. 노동문제에 정통한 마리 조제 르고 캐나다 몬트리올 퀘벡대학 교수도 “지식노동자는 장기간의 안정된 고용계약보다는, 단기 프로젝트에 따른 계약직 형태로 고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지적했다. 지식노동자는 유목민처럼 이 프로젝트, 저 프로젝트로 옮겨다니며 경력을 밟아나간다. 짧은 시간 안에 얼마나 열심히 일할 수 있는지 증명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온 시간과 노력을 다해 일에 몰두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요, 탄력성 있게 언제든 노동에 투입될 수 있게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또 상관이 시키기 전에 알아서 일을 하는 진취성도 지녀야 한다”고 르고 교수는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지식노동자에게 중요한 것은 최선의 노력을 다했느냐가 아니다. 최상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만이 의미 있다. 얼마의 시간이 들었는지는 상관없이, 그저 고객을 만족시키고,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대신 이 고급 인력들은 목적 달성을 위해 어느 정도 자율성을 누린다. 그들은 평판을 중요시한다. 그렇기에 지식사회가 요구하는 암묵적인 규칙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고, 이번 일을 발판으로 다음 프로젝트에 또다시 투입될 수 있다. 전직 프로그래머 조엘은 “게임산업은 시장이 워낙 좁다 보니 업계 내에 비밀이 없다. 경력 관리를 위해 가급적 말썽이 될 만한 일은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다”라고 지적했다.

게임스튜디오와 게임퍼블리셔 사이의 의존적 관계도 게임산업 종사자의 노동조건을 열악하게 만드는 요소다. 게임스튜디오는 개발에 드는 비용을 지원받기 위해 미리 시제품을 보여주거나 견적서를 작성해 퍼블리셔를 설득해야 한다. 문제는 게임개발에 드는 예산이나 시간을 미리 예측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게임개발이 창조적 요소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사실 ‘창조’란 수차례 작품을 뜯어고치며,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참신하고 기발한 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게임스튜디오는 이런 불확실성을 한정된 예산 안에서 대처해야 한다. 유럽 통신미디어 조사기관 ‘IDATE’ 소속 연구원 로랑 미쇼는 이렇게 말한다. “게임 제작은 한없이 지속되는 과정이다. 개발자는 결코 일이 끝나도 끝났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창조하고, 개발하고, 프로그래밍하고, 다시 손보고, 재창조하는 과정이 무수히 반복된다. 숱한 우연으로 점철된 과정이 지속된다. 그러니 그들이 그렇게 걱정하는 것도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결코 우는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다.” 게임스튜디오는 항시 퍼블리셔의 제작비 감축 압박에 시달린다. 따라서 창조 과정에 도사린 수많은 우발적 상황에 대비해 충분한 예산을 마련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음반시장 10년 경험, 게임산업 2년에 맛봐

현재 비디오게임 업계에 몰아닥친 불황도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다크웍스, 마인드스케이프 등 주요 게임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했다. 경제위기로 은행들이 기업에 돈을 빌려주기를 꺼리는데다 일렉트로닉아츠, 유비소프트 같은 대형 상장회사들이 외주 비용을 대폭 삭감하면서 일부 게임업체들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하고 있다. 게다가 설치형 게임기 시대가 저물고 비디오게임이 탈물질화하면서 경제모델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에마뉘엘 포르상 프랑스게임산업육성기관(AFJV) 대표는 “음반시장이 10년에 걸쳐 겪었던 변화를 게임산업은 2년 만에 겪었다. 변화 속도가 급격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온라인, 휴대전화, 태블릿 PC용 게임시장은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더욱이 시장 진입 비용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덕분에 일부 스튜디오는 퍼블리셔로부터 독립해, 자체 자금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이것이 게임산업 종사자에게 무조건 희소식인 것만은 아니다. 사실 게임 제작에 투입되는 인력 수는 프로젝트 진행 단계에 따라 각기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게임스튜디오는 인적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종일제 직원을 동시다발로 진행되는 여러 프로젝트에 돌려가며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퍼블리셔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 스튜디오는 더 이상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기 어려워진다. 당연히 비정규직 직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에마뉘엘 포르상 대표는 “오늘날 시간제 고용은 일반적인 고용 형태가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비디오게임 개발자들은 자기 이익을 스스로 대변해야 하는 처지다. 장 이브 로트리두 프랑스민주노동연맹(CFDT) 산하 컨설팅·문화·통신협회장은 “게임산업은 노조의 불모지대”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노동조합이 전무한 상황에서 IGDA는 ‘고용환경 개선이 곧 생산성과 효율성을 담보하는 요인’이란 사실을 경영자들에게 설득하느라 분주하다. 덕분에 우수한 고용조건을 모토로 내건 군소 게임업체가 등장했다. 이를테면 영국 브라이턴에 위치한 ‘리렌트리스 소프트웨어’사는 자사 홈페이지에 크런치 타임 없이 일한 노동일수를 계기판으로 기록해 게시하고 있다. 하지만 ‘제 버릇 개 못 주는 법’이라 했던가. 알린(가명)은 “유비소프트를 그만두고 동료 몇 명과 독립회사를 차렸다. 절대 우리는 크런치 타임은 만들지 말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이 바닥에서 최소 10년을 일한 우리에게도 크런치 타임 없이 일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 로랑 장노 Laurent Jeanneau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Alternatives Economiques·번역 허보미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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