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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펀치, 리먼보단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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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2010년 06월 01일 (화) 알파헌터 국제재무분석사 economyinsight@hani.co.kr

알파헌터 국제재무분석사

유로의 하락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2009년 3월 이래 지칠 줄 모르며 상승을 계속하던 세계증시에 본격적인 제동이 걸렸다. 일명 PIIGS라 불리는 포르투갈·아일랜드 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등 남유럽국가들의 재정위기가 도화선이 된 것이다. 이들 국가들 중 직접적으로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한 그리스는 재정적자가 GDP의 14%에 달하며 누적된 국가부채는 120%를 넘어서고 유럽과 IMF의 구제금융 없이는 국가부도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 그리스의 국채는 유통시장에서 2년 만기 국채가 순식간에 38% 금리로 거래되는 등 실질적으로 정크본드(고위험·고수익 채권)으로 전락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국채도 그리스보다 정도는 낮지만 심각한 스트레스를 보이고 있다.
유로를 공통 통화로 사용 하는 유로존 16개국은 유로를 방어하기 위해서 7천5백억 유로 (약 1조 달러)에 달하는 금융 패키지를 내놓았다. 이 패키지는 2008년 미국이 내놓은 사상 최대 금융 패키지를 웃도는 금액이며 무엇보다 시장 예측을 크게 상회하는 규모였다. 그러나 시장에 약발이 먹힌 것은 불과 하루 뿐 유로는 다시 하락하기 시작하고 각국의 주식시장은 폭락을 계속했다.
표면적으로 그리스 등 재정위기에 시장이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스는 실질적인 파산상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피상적인 원인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에 발표된 1조 달러 패키지는 향후 3 년간 상환 기일이 돌아오는 남유럽 4개국의 국가 부채 규모를 능가하는 것이다. 만일 시장이 단순히 원리금 상환 문제로 국가부도를 우려하는 것이라면 지금 시장의 반응은 지나친 것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더 깊은 곳에 있다. 시장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패키지에도 긍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것은 유로라는 실험 통화의 구조적 결함에 있다. 유로존 16개국은 유럽중앙은행(ECU)라는 하나의 중앙은행 아래 통일된 금융 정책을 유지하고 있으나 각국의 재정은 별개이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다르고 민족이 다르므로 재정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사실 당연한 것이다. 정치적으로 독립을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만 통합을 추구한다는 것은 유럽 국가들이 국민들의 동의를 쉽게 얻기 위한 트릭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정치적인 통합이 배제된 상태에서는 통일된 재정정책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유로를 탄생시킨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각국이 재정적자를 3% 이내로 한정시킨다는 약속으로 대신하였다. 그러나 이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
   
 

국채 매입은 시간 벌기일 뿐
이러한 한계 속에서 출범한 실험통화의 미래에 대해 당초에도 많은 경제학자들이 의문을 제기하였다. 밀턴 프리드먼은 유로는 첫 번째로 직면하는 경제 불황에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예언했으며 마틴 펠드스타인 등 다른 많은 경제학자도 유로가 이번 위기를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경제적인 독주를 견제하고 기축통화의 지위에 도전하기 위한 것이 유로를 탄생시킨 주된 목적이었다. 유로에 대한 비판이 주로 미국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기 때문에 유럽의 정치가들은 비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경제학자의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먼저 서로 다른 경제상황에서 동일한 금리 정책을 적용하는 것은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주된 원인이 된다. 가령 스페인과 그리스에서 주택 거품이 발생해도 독일과 프랑스는 거품이 없기 때문에 ECB는 금리 인상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통일된 재무부의 부재이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에서는 각국이 재정적자를 3% 이내로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조항만 있을 뿐 정작 그리스와 같은 나라들이 재정적자를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인 경우 다른 나라들이 그 재정적자를 대신 갚아주는 조항은 없다. 독일이나 프랑스의 정치가들이 유로를 살리기 위해서 그리스나 스페인의 국가부채를 대신 갚아주고 싶어도 독일이나 프랑스 국민들이 이를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에 발표한 패키지는 그리스나 스페인 국채를 ECB가 시장에서 매입하는 조항이 삽입되었다. ECB는 유통시장에서 이들 국가들의 국채를 매입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시간을 버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ECB가 영원히 이들의 국채를 매입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과 IMF가 그리스에 구제 금융을 제공하고 ECB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국채를 매입함으로써 위기 전염을 막는 대신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은 짧은 기간 내에 재정적자를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낮출 것을 약속했는데 이러한 조치는 두 개의 심각한 문제를 노출시킨다.
하나는 그리스 스페인 등은 심각한 불황 속에서 재정을 긴축 운용하여 불황 심화와 심각한 디플레이션에 직면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위기에 빠진 국가들의 국채 매입으로 인해 유로 전체 신인도 저하가 나타날 것이다.
 
그리스가 캘리포니아와 다른점
이번 위기에 대처함에 있어 유럽은 통화 방어를 절대적인 명제로 삼았으나 그것은 일부 국가들의 문제를 유럽 전체 문제로 치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로가 달러에 대해서 약세를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유로의 신인도 문제 때문이다. 그러나 유로의 약세는 한편으로는 유럽의 국가들에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유로의 약세로 인하여 유럽의 수출경쟁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 스페인 등의 긴축 정책이 그들의 국민들에게 가하는 고통은 실로 심각할 것이다. 그들에게 1930년대의 대공황을 충분히 실감할 것이며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상황이 호전되지 않는다면 유로의 일원으로 남아 있는 장점에 대한 의문이 일어날 것이다. 한편 이들 국가들을 지원하는 입장에 선 독일과 프랑스에 있어서도 유로를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에 도전하는 움직임이 있을 수 있다. 문제가 된 그리스 스페인 등의 재정 적자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이들 국가들과 운명을 함께 하고자 하는 의지가 약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상 거론된 이야기 보다 유로가 가진 가장 심각한 문제는 유럽이 최적 통화 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일 것이다. 최적 통화 지대(실질적으로 단일 통화가 사용되는 지역으로 상품과 서비스의 교역과 생산요소의 이동에 의하여 경제가 밀접하게 연결된 지역의 연합체)란 가령 미국의 경우 캘리포니아주의 경제가 심각한 불황에 빠지면 실업이 발생하지만 캘리포니아의 노동자들이 손쉽게 고용상황이 좋은 다른 주로 이동할 수 있다. 또는 다른 주의 기업들이 캘리포니아의 저렴한 임금을 찾아서 거점을 설치함으로써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균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나 스페인의 노동자들은 호황이 지속되는 독일이나 프랑스로 간단히 이동할 수 없다. 언어와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유로 역내에서 발생한 불균형은 균형을 찾아가기 보다 점점 더 심각해진다. 실상 남유럽국가들의 위기의 근원은 유로통합 이래 지속된 독일 네덜란드 등 북유럽국가들과의 불균형에 있으며 이 불균형은 남유럽국가들이 독립된 통화를 갖지 않는 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남유럽국가들이 독립된 통화를 가졌다면 통화 약세를 통해서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살펴보면 유로의 미래는 매우 암울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 경쟁력이 높은 북유럽과 남유럽으로 갈라지거나 유로의 통합 이전으로 돌아가서 각기 다른 통화를 가진 체제로 회귀하는 것이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해결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에 이르기 전 금본위체제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실제로는 고통만 가중시켰으며 결과적으로는 통화체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교훈을 유럽은 더 배워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유럽의 위기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 것인가? 현재 유로 문제는 세계의 주식시장을 뒤흔들고 있으며 TED 스프레드 (미국국채와 은행간 금리의 차)가 상승하고 LIBOR (런던에서 우량은행 간 거래시 적용되는 금리)가 상승하는 등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어디까지나 제한적이다. 2008년 세계를 뒤흔든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제한적인 것이다.
 
금융시장 서서히 안정 되찾을 것
첫째로 유럽의 경제가 세계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생각보다 작다. 가령 미국의 은행들은 남유럽국가 노출도가 5% 정도로 매우 낮다. 유럽 전체에 대한 미국 수출도 미국경제의 1%를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남유럽국가들에 이르면 거의 무시할 수준이라 해도 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유럽의 위기가 미국의 장기금리 저하를 가져오고 유가의 하락을 촉진함으로써 오히려 미국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견해가 나올 정도다. 물론 수출주도의 발전모델을 가진 한국 중국 등의 경우 미국보다는 악영향이 클 것이다.
둘째로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유럽의 근본적인 문제들은 해결이 요원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급성이 아닌 만성적인 문제들이라 할 것이다. 현재는 시장에서 부정적인 반응이 현저하지만 지난번 발표된 1조 달러의 패키지가 실행되면서 서서히 안정을 찾아갈 것이다.
실상 주식시장의 움직임은 전적으로 유로의 영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도 시장은 과거 1년여에 걸쳐 조정다운 조정을 거치지 않고 상승한 탓에 자연스런 조정의 빌미를 찾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필자는 야마이치증권 국제인수부를 거쳐 JP모건 스와프 트레이더와 통화옵션 팀장, 크레디리요네(CLSA) 파생상품부장, 사쿠라글로벌 홍콩 매니징 디렉터를 역임했다. 현재 세무회계법인 대표를 맡고 있으며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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