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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만든 직업병, 그 눈물 가득한 증거들
[경제와 책]
[20호] 2011년 12월 01일 (목) 희정 economyinsight@hani.co.kr

희정 르포작가
 
   
 
윤정씨는 아프다. 그녀는 종일 눈을 감고 있다. 자고 있는 것이 아니다. 눈 뜰 기운조차 없다. 누군가 문병 오면 간병인 아주머니가 그녀의 눈꺼풀을 들어 올려준다. 그제야 그녀는 눈동자를 움직여 사람을 알아본다. 때로 간호사가 와서 윤정씨에게 손을 움직여보라, 발을 움직여보라고 한다. 반응이 없으면 간호사는 윤정씨의 손과 발을 꼬집는다. 자극받은 손발이 미세한 움직임을 보인다. 언젠가 저 움직임마저 없을지 모른다. 그런 윤정씨에게 책 한 권을 건넸다. 눈조차 뜰 수 없지만, 그래서 볼 수조차 없지만 그녀는 이 책을 기다렸다.
윤정씨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팠다. 뇌암이라고 했다. 의사는 윤정씨에게 시한부 1년을 선고했다. 머리 여는 수술을 받았다. 그녀의 얼굴은 약물치료로 퉁퉁 부어 있었다. “얼굴이라도 예전처럼 돌아왔으면….” 그녀가 ‘살고 싶다’는 말 대신 한 말이었다.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이윤정
나는 그녀의 병이 ‘직업병’이라는 말을 들었다. 회사는 그녀가 사용한 화학물질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어떤 안전검사를 거쳤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재직 6년 동안 그녀가 들은 이야기는 삼성은 일등기업이고, 삼성반도체 공정기술은 세계적이며, 직원들은 불량 없이 신속하게 반도체 칩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윤정씨는 6년의 시간을 이렇게 말했다. “힘들었다는 생각밖에 안 나요.”
밤낮없이 일했다. 자리에 한번 앉지 못하고 반도체 칩을 기계에 넣고 빼는 작업을 반복했다. 기계를 열면 고약한 냄새가 났다. 타버린 칩에서 나온 검은 분진이 코와 입으로 들어왔다. 그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불량이 나면 기계 알람은 ‘빽빽’ 울어댔다. 시간이 지체되거나 불량을 잡아내지 못할 경우 사유서를 쓰고 잔업을 했다. 그때 윤정씨 나이, 겨우 열아홉 살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입사했다. 일을 하고 돈을 벌었다. 퇴직 후 결혼을 했다. 그러고 나서 병에 걸렸다. 그제야 그녀는 회사를 떠올렸다. 검은 분진과 역한 냄새, 그것은 타버린 화학물질과 가스였다. 직업병일 가능성이 있었다. 윤정씨는 산업재해 보상 신청을 했다.
 
어떤 확실한 증거
산업재해 보상 업무를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은 윤정씨에게 직업병이라는 증거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녀의 증거는 검은 분진, 역한 냄새뿐이었다. 맨손으로 만지면 빨갛게 발진이 일어날 정도로 독한 반도체 칩에 대한 기억뿐이었다. 그녀는 회사로부터 화학물질 성분과 유해성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들은 바 없었다.
회사는 윤정씨 병이 자신들과 무관한 일이라고 한다. 개인 질병이라고 한다. 직업병이라니, 첨단산업 일등기업에 그런 오점은 없다고 한다. 자신들은 완벽한 안전 시스템을 갖추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증거는 공개하지 않는다. ‘영업기밀’이라고 한다.
직업병 인정은 쉽지 않았다. 윤정씨는 힘들었다. 몸은 불편하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시간을 자신의 병이 어디서 온 것인지 골몰하는 데 쓸 수는 없었다. 운이 없어 몹쓸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싶어했다. ‘직업병 피해자’라 의심되는 노동자들 대부분이 그랬다. 병든 몸을 이끌고 증거를 찾아야 했다. 그들이 찾아야 하는 증거는 회사가 영업기밀이라 감추고, 첨단산업이라는 이유로 전문가들의 연구조차 안 된 것들이다. 찾을 수 없었다. 이들은 포기했다. 잊으려 했다.
그러나 억울했다. 생기롭던 젊은 시절 반도체를 만들며 보냈다. 일하고 잠자는 것이 생활의 전부였다. 화학물질 냄새가 진동하는 작업장에 들어가면 구토가 일고 머리가 아팠다. 생리가 끊기고 유산이 되었다. 결국 큰병에 걸렸다. 몸이 마비되고, 장애가 오고, 죽을 날을 기다렸다. 그러나 삼성과 국가는 개인 질병이니 알아서 하라고 한다. 어떤 보상도 해줄 수 없다고 한다. 직업병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한다.
노동자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자꾸 병든 자신들에게 증거를 내놓으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들은 말했다. “죽어가는 사람들보다 더 어떤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들의 이야기가 곧 증거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윤정씨에게 책을 전했다. 윤정씨는 앙상한 손으로 책을 잡으려 했다. 남편이 눈꺼풀을 들어 올려주자 간신히 눈동자를 움직였다. 그녀는 그렇게 책을 보았다. 이 책은 그녀의 이야기며, 그녀의 유일한 증거였다.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은 삼성전자·반도체에서 일하다 병에 걸린 고 황유미, 고 연제욱, 고 김주현, 고 박지연, 고 황민웅, 고 박진혁, 신송희, 이희진, 유명화, 송창호, 김옥이, 한혜경, 한수영, 이윤정과 이름을 밝히지 못한 수많은 노동자들의 이야기이자, 이들의 증거다.
hihiihih@naver.com


인사이트 책꽂이

   
 
굿 워크
박혜영 옮김 | 느린걸음 펴냄 | 1만5천원
“작은 것은 아름답다”라는 단 한 문장으로 전세계에 ‘생각의 대전환’을 촉구한 E. F. 슈마허의 최후의 강연록. 초판은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인 1979년에 발행됐다. 하지만 좋은 일자리에 대한 그의 주장은 다시 읽어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는 “쓸모없는 기계가 늘어나면 쓸모없는 사람도 늘어난다”고 하는 등 거대 문명에 질식당하는 인간 삶의 회복을 주장한다.

 

   
 
해적국가

강혜정 옮김 | 미지북스 펴냄 | 1만6천원
소말리아 어민들은 왜 해적이 되었을까? 오랫동안 아프리카에 관심을 두어온 언론인 피터 아이흐스테드는 해적을 비롯해 납치된 선원과 인권단체 활동가, 해적 소탕 작전을 벌이는 해군 등을 광범위하게 인터뷰해 그 실체에 접근하려 한다. 그는 해적의 원인으로 오랜 내전으로 무정부 상태에 있는 소말리아 자체를 지적한다.

 

   
 
고전에서 배우는 경영 인사이트 40
원앤원북스 펴냄 | 1만6천원
성균관대 경영전문대 부원장인 한상만 교수가 사람관리에서부터 리더십, 창조경영과 혁신까지 기업경영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의 해결책을 고전을 통해 제시한다. 경제 및 경영학을 전공한 저자는 몇 년 전부터 사서삼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고전 속에 경영자가 알아야 할 원리가 가득함을 깨달았다.

 

   
 
무역전쟁
홍순도 옮김 | 박한진 감수 | 랜덤하우스 펴냄 | 1만6천원
중국 국영방송인 <CCTV>의 ‘경제 30분팀’이 새로운 무역의 흐름을 정리한 책. 최근 세계경제에서 발언권을 높이고 있는 중국의 시각에서 무역전쟁을 설명하는 점이 흥미롭다. 미국은 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서두르는지, 그에 대응해 중국이 아시아의 경제통합을 주도하려는 의도는 무엇인지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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