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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신화’ 깨야 위기 돌파한다
[Finance]금융완화 통한 성장정책의 허실
[19호] 2011년 11월 01일 (화) 윤석천 economyinsight@hani.co.kr

윤석천 경제평론가

‘돈폭탄’이 터지고 있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가 주춤거리는 사이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이 약 142조원에 달하는 돈보따리를 풀었다. 유럽중앙은행 역시 유로존의 재정위기를 핑계로 돈풀기를 계속하고 있다.
미국도 유동성 완화 정책을 완전히 그친 게 아니다. 미국의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지난 10월4일 의회 합동청문회에서 3차 양적 완화 실시를 묻는 질문에 “즉각적인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이는 강한 부정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으로 읽어야 한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국가들 때문에 손해를 본다고 판단한 스위스와 일본의 중앙은행도 유동성을 늘리고 있다. 파운드·유로·달러 약세로 인한 자국 통화의 강세를 막기 위한 조처다. 선진국이 이러니 신흥국도 가만히 있을 순 없다. 한국은 인플레이션 위험에도 금리를 인상하지 않고, 터키와 브라질 등은 오히려 내리고 있다.
   
벤 버냉키 미 연준 의장은 최근 3차 양적 완화를 시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의 기자회견 모습.

유행이 된 금융완화 정책
선진국과 신흥국을 막론하고 정통적·비정통적 방법을 모두 동원해 돈풀기에 여념이 없다. 이게 지구촌의 현실이다. 이런 돈풀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8년부터 본격화됐으니 벌써 3년이나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효과는 의문이다. 오히려 최근의 경제지표들은 금융완화 정책이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한동안 침체에서 벗어나는 듯하던 세계경제는 다시 암울한 상황이다. 유럽 국가의 재정위기는 말하기도 고리타분하다. 이젠 유럽 은행에까지 병이 퍼져 위태롭다. 미국 경제는 더블딥(Double-dip·이중침체)으로 진입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중국 경제 전망은 역시 그리 밝지 않다. 경착륙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돈을 더 풀어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금융위기에 대처하는 유일한 해결책인 양 선전한다. 그 배경에는 성장론자가 있다. 이들은 오늘날의 경제학을 대표한다. 성장론자는 경제성장을 최선으로 선전한다. 부채를 기반으로 한 성장이라도 상관없다. 경제성장 외에도 대안이 있다는 것을 숨긴다. 성장하지 못하면 마치 큰일이라도 나는 듯이 야단법석을 떤다. 성장은 기득권을 위한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성장론자의 주장을 살펴보자. 이코노미스트 리처드 쿠의 주장이 관심을 끈다. 노무라종합연구소의 수석연구원으로서 책 <거시경제학의 성배>의 저자다. 한국에서는 <대침체의 교훈>이란 제목으로 출간됐다.
그의 주장을 살펴보는 것은 그가 일본의 장기 불황을 연구해 나름의 논리적 해결책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 경제위기의 모습이 일본의 과거 장기 불황과 비슷한 것도 이유다.
쿠는 대단한 용어 하나를 만들었다. 바로 ‘대차대조표 침체’ 또는 ‘대차대조표 불황’이다. 현재의 글로벌 위기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 개념이다. 대차대조표 불황은 거품화된 자산(특히 부동산) 가격이 폭락할 때 생기는 깊은 경기침체를 말한다. 민간 경제주체들이 자산 가격 하락에 대응해 빚을 줄이는 것이 원인이다. 부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과정에서 소비가 줄어 불황이 시작된다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 디레버리징(Deleveraging·부채축소)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불황을 말한다. 과거의 일본, 현재의 미국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그의 주장은 비교적 간단하다. 민간이 빚을 갚아나가기 때문에 발생하는 대차대조표 불황 중에는 정부가 재정지출을 줄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단기적으론 재정 적자가 심해지더라도 가열차게 재정을 늘려, 심지어 중앙은행이 인쇄기를 돌려서라도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게 결국은 재정 적자를 줄이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한다. 한마디로 중앙은행과 정부는 돈을 풀어 무너지는 경제를 지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일반적 성장론자들의 주장이다. 일리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국가 부채를 최종적으로 담보하는 건 민간 세금이다. 가계와 기업이 무너지는 마당에 세수가 늘어나기 어렵다. 오히려 준다. 불황기의 국가 부채 건전성은 그 자체로 이미 훼손됐다.
이러니 국가 부채를 마냥 늘릴 순 없다. 재정정책에도 한계가 있다. 결국 시간이 문제일 뿐, 과소 소비 공황은 피할 수 없다. 신용 확대에 의존하는 월가식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현재의 성장론은 이미 그 한계가 뚜렷하다.
문제는 또 있다. 설사 돈을 풀어 성장하더라도 그 과실을 일부가 독식하게 된다. 유동성 확대를 통한 성장에서 일부 자산시장의 인플레이션은 필연이다. 재정 적자를 감수하고 돈을 풀어 지속적 경기부양에 나설 때는 말할 필요가 없다.

성장 과실을 독식하는 기득권층
인플레이션의 승자는 누가 뭐래도 ‘돈을 쥔 자’들이다. 바로 부자와 기득권이 과실을 취하게 된다. 서민과 빈자에겐 무엇이 떨어질까? 기껏해야 정부의 일회성 구호자금과 일자리가 전부다. 그나마 그것도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실제론 돈을 강탈당하는 것이다.
우리는 50~60년 전보다 확실히 잘살고 있다. 그렇다면 10∼20년 전과 비교하면 어떤가. 누구도 지금이 그때보다 더 풍요롭다고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분명히 연 몇%씩 성장했는데도 우리 삶은 더 팍팍해지고 있다.
어쩌면 절대빈곤을 넘어서면서부터 성장은 의미 없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성장’이란 프레임은 우리 의식을 완벽히 지배한다. 성장은 절대 복종의 유일신이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성장의 그림자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금융 실패로 인한 상시적 공황, 고실업,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우울한 불균형, 전방위적 환경파괴 등. 이게 성장이 낳은 오늘의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 성장의 환상을 갖는가? 이런 환상은 그야말로 종교에서나 가능한 일 아닌가.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논리를 무시한 채 성장론이 득세하는 이유는 뭘까. 성장이 부정할 수 없는 종교가 된 배경에는 성장해야만 먹고살 수 있을 거라는 잘못된 믿음이 있다.
성장론이 득세하는 큰 이유는 성장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성장과 일자리는 비례한다는 믿음이 우리를 지배한다. 성장이 일자리를 만든다는 건 일정 부분에서만 사실이다. 오히려 일자리를 파괴하는 경우가 더 많다.
성장은 기술혁신을 낳아 생산력의 눈부신 발전을 이끈다. 생산력이 발전하면 기존 노동력은 기계 등으로 자연스럽게 대체되는 게 일반적이다. 이는 벌써 100여 년 전에 마르크스가 예측한 사실이다.
아파트의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이나 굴착기 같은 건설장비 등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일자리를 앗아갔는지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성장이 없어도 일자리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아웃소싱과 인간을 기계로 대체하지만 않아도 지금보다 일자리는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
성장론자는 성장이 없으면 기업이 생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기업이 죽으면 모두 죽는다고 협박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기업이 생존해야 할 이유는 오로지 자본가에게 초점이 맞춰졌음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 기업은 수익 극대화를 목표로 한다. 누구를 위한 수익 극대화인가? 생산수단을 온전히 소유한 자본가를 위해서다. 흔히 성장해야 고용을 늘리고 종업원의 임금을 올려줄 수 있다고 강조하지만, 그 성장의 과실은 대부분 언제나 자본가 몫으로 돌아간다. 자본가의 수익 극대화 욕망에서 밑거름이 되는 게 성장론이다. 고용을 유지하거나 늘리는 데 기업 성장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더 이상의 성장이 없어도 자본가 몫을 줄이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분배 없는 성장의 한계
성장은 ‘자본주의의 꽃’이 아니다. 함정이다. 성장으로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자본가의 끝없는 욕망은 현대를 항시적 과잉생산 시대로 만든다.
자본가는 기술혁신을 무기로 노동자를 해고한다. 이런 과정에서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성장과 반비례해 점차 감소한다. 소득이 줄어드니 과잉 생산물을 소비하기 위해 빚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때를 노려 기득권은 ‘빚 권하는 세상’을 만든다. 신용이 무책임하게 남발된다. 유동성 완화 정책이 끝없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결국 공황은 피할 수 없는 상시적 현실이 된다. 신용 팽창의 유한성과 노동자의 실질임금 감소로 과소 소비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황은 성장에 기댄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노동의 땀이 배지 않은 신용에 기반한 성장이 부르는 참사다.
무분별하게 돈을 퍼붓는 성장이 해결책이 아님을 이제는 민중도 깨닫고 있다. 이는 지구촌에서 부는 민중시위 열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위대는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는 것을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돈을 퍼붓는 것을 비난한다. 성장의 과실이 기득권에 집중되는 것에 분노한다. 잘못된 분배와 불평등이 폭동을 부른다. 이것이 잘 표현되는 게 미국의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시위다. 월가 시위대는 “우리는 미국의 최고 부자 1%에 저항하는 99% 미국인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외친다.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성장만으론 현재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돈폭탄’을 터뜨리는 것만이 해결책은 아니다. 설사 돈을 풀어 경제가 연 10%씩 성장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유동성 완화에 기댄 성장보다는 분배의 공평성에 집중하는 게 작금의 위기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다. 성장의 불편한 진실을 알아버린 분노한 민중을 달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maporiv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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