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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아픔 보듬으며 ‘보편적 복지’ 싹 틔우다
[이창곤의 인물로 보는 복지국가 이야기]윌리엄 베버리지- ② <베버리지 리포트> 탄생의 비밀
[19호] 2011년 11월 01일 (화) 이창곤 economyinsight@hani.co.kr
이창곤 한겨레신문사 부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1941년 6월, 베버리지는 우여곡절 끝에 ‘사회보험과 관련 서비스에 관한 부처간 위원회’ 위원장이 됐다.하지만 그는 한동안 새 임무는 뒷전이었다.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무엇보다 자신의 새 직책은 ‘이름뿐인 자리 앉히기’라고 생각했다.나중에 그는 위원장직에 대해 어니스트 베빈 노동부 장관이 자신을 노동부에서 쫓아내기 위한 일환이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예순둘의 다소 자기중심적 성격의 베버리지는 결국 한직의 자리를 통해 영국 사회보장제도 전반에 대한 일대 개혁은 물론, 새롭고 대담한 사회보장 계획을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오늘날 ‘복지국가의 아버지’로 추앙받게 된다.자신의 직책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베버리지가 새로운 사회보장 계획을 짜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여기엔 그의 개인적 의지보다 당시 영국 사회보장제도의 문제와 사회적 상황이 큰 배경으로 작용했다. 지난 8월 영국 토트넘에서 벌인 시위는 잉글랜드 각지로 번졌다.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에서 싹튼 베버리지의 보편적 복지는 이후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 서서히 시들었고, 이번 시위는 그런 흐름의 부작용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가난은 사회 책임… 폐허 속 깨달은 공감 영국의 사회보장제도는 1897년 산재보상법 도입 이래 나름의 발전을 거듭해왔다.하지만 ‘곳곳에 구멍이 뚫렸고, 썩은 널빤지로 이뤄진 난파선’ 같았다.자산 조사를 통한 ‘낙인’과 구빈법의 유산은 저소득층에게 정부 복지를 되레 회피하게 했다.더욱이 7개 정부 부처가 직·간접적으로 서로 다른 유형의 복지급여를 제공하는 등 관리 주체가 난삽했다. 전문가들은 제도적 문제 외에 전쟁이란 특수한 상황과 이로 인한 영국인들의 전후 사회에 대한 바람이, 베버리지가 큰 틀의 사회보장 계획을 짜게 한 요인일 것이라 분석한다.당시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다.런던을 비롯해 주요 도시는 독일군의 공습으로 속속 파괴됐고,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집을 잃었다.전쟁은 영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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