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석 부편집장
　
스티브 잡스가 사망하기 5개월 전인 지난 5월19일(현지시각), 애플스토어(애플이 직영하는 오프라인 매장) 1호점이 개장된 지 1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언론들은 10주년을 즈음해 애플이 신제품 론칭 등 특별 이벤트를 실시할 것이라며 궁금해했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 ‘애플스토어 2.0’이라고 했지만, 매장에서 제품마다 ‘아이패드2’가 배치돼 작은 키오스크 역할을 할 수 있게 한 ‘매장 업그레이드’ 수준이었다.
깜짝쇼는 회사 경영진이 의도하지 않은 전혀 다른 데서 벌어졌다. 애플스토어 10주년 당일 애플스토어 샌프란시스코점에서 일하는 파트타임 노동자 코리 몰(30)이 주인공이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명언인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를 패러디한 ‘다르게 일하라’(Work Different)를 모토로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세계 3만여 애플스토어 노동자를 대상으로 ‘애플스토어 노동조합’(Apple Retail Workers Union) 설립 동참을 호소했다.
실리콘밸리에서, 그것도 미국의 기업정보 사이트 ‘글래스도어닷컴’에서 3년 연속 ‘최고의 직장 50위’ 안에 들던 애플에서 노조라니 일견 뜻밖이었다. 이어 하루 뒤에는 태평양 건너 중국 청두에 있는 폭스콘 공장 아이패드2 생산라인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직원 2명이 숨지고 10여 명이 다쳤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폭스콘은 애플의 주요 하청업체로서 노동착취와 인권탄압에 따른 잇단 자살 등으로 악명 높은 곳이다.
　
애플에도 노동조합 탄생 기지개

지난 10월15일 노동운동가들이 월가 점거시위를 지지하는 ‘홍콩 점거시위’에서 애플 아이폰을 본뜬 피켓을 든 채 ‘기업들은 노동착취 등을 멈추라’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왼쪽). 애플스토어 노조 설립을 주도하고 있는 코리 몰이 노조 홈페이지를 알리는 홍보 카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잡스의 명언 ‘다르게 생각하라’를 패러디한 ‘다르게 일하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오른쪽).

이번 10월은 미국발 대형 이슈들이 지구촌의 눈과 귀를 붙들었다. 무엇보다 뉴욕 월가 점령 시위와 스티브 잡스 추모 물결이 겹쳐 일어났다. 월가 점령 시위를 지지하는 이들도 대부분 스티브 잡스를 ‘천재적 기업가’ 또는 ‘혁신가’로 추앙하는 편이다. 그의 천재성은 다소 과장은 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월가 점거 시위에서 분출되는 비판의 대상인 ‘1%의 탐욕’에서 스티브 잡스와 그의 애플은 과연 자유로울까? 잡스는 얼마나 많은, 그리고 얼마나 질 좋은 잡(일자리)을 창출해냈을까?
애플스토어 노조 설립을 추진 중인 코리 몰은 스티브 잡스 사망 뒤 <이코노미 인사이트>에 보내온 전자우편을 통해 “노동시간 스케줄이나 급여 수준에 속상해하는 여러 애플스토어 노동자들의 얘기를 애플스토어 노조 홈페이지(www.appleretailunion.com) 등을 통해 전해듣고 있다”면서 “노동법 위반일 수 있는 사례도 종종 접수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파트타임의 경우 주당 28시간 이상 일을 주지 않고, 같은 시간 동안 일하더라도 풀타임 근무에 비해 훨씬 적은 임금을 받는다”면서 “파트타임 노동자는 물론 풀타임 노동자까지 포함해 더 나은 임금과 보상 및 복지를 누릴 수 있는 틀을 만들고자 노조를 결성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코리 몰은 지난 6월 세계적 정보기술(IT) 전문 온라인 미디어 <시네트>(CNET)를 통해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쿠퍼티노에 위치한 본사에서 스티브 잡스나 애플스토어 책임자가 (노조와 관련된) 이야기하기를 원한다. 그들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몰이 기다리던 스티브 잡스로부터의 연락은 끝내 없었다. 스티브 잡스가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쿠퍼티노 본사나 애플스토어 책임자에게서 노조 문제와 관련해 아직 어떤 연락도 멘트도 들은 적이 없다.
　
성공 신화에 가려진 노동법·공정거래법 위반
미국의 노동 전문 저널리스트인 마이크 엘크는 지난 8월 <인 디즈 타임스>(In These Times) 기고에서 “애플은 파트타임 고용을 선호해 풀타임을 원하는 많은 노동자들을 시간제로 유지하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많은 애플 직원들이 애플의 건강보험 상품 보험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인 디즈 타임스>는 미국의 정치·경제적 민주화를 지향하는 비영리 잡지다. 애플은 또 연령 차별 혐의를 받고 있다. 나이 든 애플스토어 영업직들은 “회사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승진이나 재고용을 거부해왔다”고 주장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처우는 영업직보다야 낫겠지만, 이마저 불법 오명에서 자유롭지 않다. 애플은 다른 경쟁 컴퓨터 회사와 담합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연봉을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하는 등 공정거래법(Anti-trust Law)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2009년 미 법무부의 수사 기록을 보면, 많은 기업들이 다른 기업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에게 전화를 걸어 “더 많은 연봉을 주겠다”며 스카우트하는 이른바 ‘콜드 콜’(Cold Call)을 하지 않기로 짬짜미했는데, 여기에는 애플도 포함돼 있다. 이런 담합은 결국 노동시장의 가격 구조를 왜곡하는 것이다.
생산직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애플을 포함한 미국의 컴퓨터 업체들은 지난 수십 년간 생산라인을 미국 밖으로 이전시켜왔다. 이 때문에 한때 200만 명에 달하던 미국 내 컴퓨터 생산직 고용은 이제 겨우 15만 명으로 급감했다.
애플로 대표되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화려한 이면에는 영업직·생산직 등 컴퓨터 산업 전반에 걸친 고용 감소와 비정규직 양산, 임금 통제의 그늘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고 애플이 해외 생산공장에서 모범적 고용을 창출하는 것도 아니다. 중국 내 아이폰 최대 생산공장인 폭스콘에서는 지금까지 모두 13명의 노동자가 자살했다. 중국의 환경 관련 비정부기구(NGO)들은 지난 8월31일 ‘애플의 이면 Ⅱ’를 발표해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 등 중국 각지에 있는 27개 애플 하청업체들이 니켈·구리 등 중금속을 기준치를 초과해 토해내는 등 환경을 오염시키고 지역사회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억만장자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자신을 포함한 ‘슈퍼 부자’들의 증세를 주장하고 있다. 월가의 탐욕으로 비판받는 헤지펀드의 거물인 조지 소로스도 이에 동조해 월가 점령 시위를 지지하고 나섰다. 스티브 잡스의 동료이자 라이벌인 빌 게이츠 또한 증세에 찬성했고, 빌 게이츠 재단을 통해 기부문화에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잡스는 한국 돈으로 8조원이 넘는 막대한 유산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지만 기부엔 인색했다. 물론 그가 1997년 애플의 최고경영자(CEO)로 복귀하면서 줄곧 연봉을 1달러만 받은 것은 대단한 일이다. 넓은 의미의 기부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애플 외부에 대해서는 살아생전 한 번도 공식적으로 기부한 적이 없다. 되레 애플 복귀 뒤에는 애플이 운영해오던 사회공헌 프로그램마저 중단시켰다. 우선 수익을 내는 데 집중하자는 게 이유였지만, 그 뒤 애플이 엄청난 흑자 행진을 거듭할 때도 이를 되살리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가 숨을 거둔 날 미국에서는 프레드 셔틀스워드라는 목사가 89살의 나이로 타계했다. 그는 마틴 루서 킹 목사처럼 1960년대 미국의 저명한 인권운동가였다. 마이크 엘크는 같은 날 일어난, 그러나 사뭇 상반된 두 죽음에 대해 트위터를 통해 이런 문자를 날렸다. “프레드 셔틀스워드의 죽음이 우리에겐 스티브 잡스보다 더 큰 손실이다. 우리는 누가 진정한 영웅인지를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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