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생각하라 스티브 잡스를
스티브 잡스 사망 뒤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곳곳에서 그에 대한 극찬이 봇물을 이뤘다. 그는 헨리 포드, 월트 디즈니, 토머스 에디슨,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비교됐다. <뉴욕 매거진>은 그가 주도해 개발한 아이팟(iPOD)을 빗대어 그를 ‘iGOD’으로 신격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코 훌륭하다고 할 수 없는 이면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비단 그의 개인 성격에 관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성공한 기업가’나 ‘천재’라는 칭호를 넘어 과연 위인으로, ‘신’으로 대우받을 만큼 그는 살아왔는가? 노동·인권·복지 등과 관련해 그는 어떤 족적을 남겼을까? <이코노미 인사이트>가 잡스의 생애를 차분히 들여다봤다. _편집자

필립 베트게 Philip Bethge
라파엘라 폰 브레도브 Rafaela Von Bredow 외 11명

아메리칸드림의 화신인 스티브 잡스를 두고 버락 오바마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역사상 아주 드문 업적을 이루어냈다.” 잡스가 사망한 지난 10월5일 오바마는 “그는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바꾸었다”고 언급했다. 미국 대선주자인 미셸 바크먼은 “미국이 낳은 천재 중 한 명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의 사망 이후 애플 성전에는 꽃과 작은 초, 한 입 베어 물은 사과들이 가득 놓였다. 어둠 속에서 아이패드 화면에 가상의 촛불을 켜고 서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트위터상 10월5일에 초당 1만 개의 메시지가 전해졌다. 어떤 여성은 “애플 상품 중 어느 것이 가장 뛰어난지 결정하는 것은 엄마에게 어느 자식이 가장 예쁜지 꼽아보라는 것과 같다”는 글을 올렸다. 
2001년 9·11 테러 직후의 분위기와 비슷하다. 미국인 전부가 스티브의 친구였다. 사망 소식이 전해지고, 실리콘밸리 쿠퍼티노에는 애플 깃발이 조기로 게양되었다. 이 혼란스러운 순간에 이미 잡스의 친구나 지인, 해설가나 블로거들은 스티브 잡스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칭송하는 글과 사진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스티브 잡스를 헨리 포드나 월트 디즈니, 토머스 에디슨,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비교했다.
하지만 이는 과장됐으며, 객관적으로 보면 잘못된 비교이다. 1955년 태어나 2011년 사망한 스티브 잡스는 발명가도 창조가도 아니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연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일을 완성하고 제품을 개량하는 역할을 했으며, 완벽주의자이자 디자이너이고 장사꾼이었다.
잡스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과거 여자친구인 크리스 앤과 딸인 리사는 시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살았고, 후에 그는 재판을 통해서야 매달 385달러의 양육비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미 백만장자였고, 마지막에는 70억 달러에 달하는 자산을 소유했음에도 말이다.
　
백만장자였음에도 재판 뒤에야 딸 양육비 지급
잡스는 냉정한 사람이었다. 그를 칭송하는 도이치텔레콤 사장인 레네 오버만은 “그는 냉정하고 단호하다”고 말했다. 그에게 아주 적절한 표현이었다. 잡스는 4만6천여 명의 애플 군단을 지휘했으며, 이 군단을 유지하기 위해 수천 명의 중국인 보병을 고용했다. 그곳에서 어린이와 그 어머니들이 몇 달러를 받고 애플을 위해 일했다. 잡스가 좀더 나은 임금을 주거나 인간적 작업환경을 만드는 데는 몇 푼 더 들지 않을 것이다. 그는 독재적인 보스로서 변덕스럽고 다혈질이었다. 그런 자신을 종종 미화했다. 자신은 단호해야 하고 직원들은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그러면 회사의 실적은 따라온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달랐다. 애플은 불합리하게 운영되었고, 그럼에도 실적은 좋았다. 한 프로젝트에서 일하는 애플 팀은 8~10명, 때론 25명으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참을성 있게 스티브 잡스가 보내는 신호를 기다려야 했다. 애플에서 근무했던 데이비드 소보타는 “스티브 잡스는 직원들을 자주 비난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 극찬해 마지않던 성과도 비난했다”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 세상에서 몇십 년 동안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그는 한쪽에선 철학자였고, 다른 한쪽에선 독재자였다. 기술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이 시기는, 40년 전쯤 정치 참여적 히피 운동이 자신을 탐색하는 내면으로 옮겨가면서 시작되었다. 톰 울프는 1970년대를 ‘자기중심 시대’(Me Decade)라고 했다. 잡스는 이런 감수성을 발전시켜 그후 아이팟과 아이폰을, 그리고 ‘i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다.
첫 제품은 1970년대 초반 암시장에 내다 팔던 ‘블루박스’였다. 친구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만든 이 작은 전기 키트를 이용하면 공짜로 전화를 걸 수 있었다. 당시 전화 회사는 통화를 연결하는 조정 시그널로 특정 주파수를 이용했다. 이 주파수를 만들기 위해 그들은 ‘캡 앤 크런치’라는 상표의 시리얼을 사면 딸려오는 장난감 호루라기를 이용했다. 정확히 초당 2600번 진동하는 ‘삑’ 소리를 쉽게 만들어냈다.
　
워즈니악 “애플 컴퓨터는 사실 잡스 발명품 아니다”

스티커, 사과, 촛불….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다채로운 방법으로 스티브 잡스에게 존경과 애도를 표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좀더 차분히 잡스를 평가하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두 스티브는 물과 불 같았다. 워즈니악은 치밀했고, 잡스는 추진력이 강한 사람이었다. 잡스는 금전적으로 어려울 때는 친구와 둘이 나누어 가져야 하는 돈도 슬쩍 속이곤 했다. 워즈니악이 젊은 해커들과 함께 잡스의 양부모 침실에서 납땜에 열중하고 있으면, 잡스는 가끔 얼굴을 들이밀고 가차 없이 이건 좋고 저건 나쁘다고 판단을 내리고 나서 사라졌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애플 컴퓨터를 1975년 차고에서 개발했다고 믿고 있지만, 그것은 1939년 팰로알토의 한 차고에서 시작한 빌 휼렛과 데이비드 패커드의 이야기를 혼돈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에서 개방성은 예전부터 중요했다. 데이터와 프로그램의 호환에서, 모든 이를 위한 즐거움과 진보에서 과거의 애플은 영웅적 기업이었다. 하지만 지난 10년은 과거와 달리 호환성을 제한하고, 자유보다 이익을 더 중시했다. 애플은 2011년 인터넷상의 외부인 출입금지 구역 같은 앱스토어에 자신들의 앱을 올려놓았다.
스티브 잡스는 의사에게서 암이라는 판정을 받았지만 2004년 다시 복귀했다. 췌장암은 희귀하고 공격적인 질환이라 치료 방법이 별로 없었다. 대부분 암이 발견되었을 때는 이미 수술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2008년 말 어려운 일이 닥쳤다. 그는 삶을 연장하기 위해 빨리 간 이식을 받아야 했다. 당시 3400명의 캘리포니아 사람들이 간 이식 수술을 기다렸고, 제때 이식받을 수 있는 간을 찾기는 어려워 보였다. 잡스는 백만장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그는 이식받을 간을 찾기 위해 미국을 뒤졌고, 여기저기서 검사를 받았다. 가능한 모든 곳의 이식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09년 3월, 잡스는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이식받을 수 있는 간을 찾았다. 4시간 뒤 개인 전용기로 멤피스에 도착해 사고로 죽은 20대 중반 기증자의 간을 이식받았다.
잡스는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고, 2009년 12월에는 다시 예전처럼 기력을 회복해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마리아 슈라이버(당시 주지사였던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부인)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는 슈라이버에게 캘리포니아주에서 장기 기증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장기 기증자 수를 늘리기 위해 새로운 법이 빨리 제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슈라이버는 남편에게 이를 전했다. 슈워제네거는 “그는 자신이 부자였기 때문에 빨리 이식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장기 기증이 잘 되지 않는 상황을 바꾸고 싶어했다. 모든 사람이 자신처럼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티브 잡스가 로비를 벌인 결과, 6개월 뒤 법안이 통과되었다. 그때부터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새 운전면허증에 자신이 장기 기증을 원하는지 여부를 표기해야만 했다.
ⓒ Spiegel·번역 이상익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