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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이미 파헤친 세계 금융공황
[역자에게 듣는 경제와 책]
[18호] 2011년 10월 01일 (토) 김수행 economyinsight@hani.co.kr

김수행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

   
 
내가 김진엽 박사와 함께 루돌프 힐퍼딩의 <금융자본>(1910)을 번역 출판한 것이 1994년 3월이고, 2쇄가 1997년 8월에 나왔다. 그때의 주된 출판 목적은 마르크스의 화폐·신용 이론을 금화가 아닌 불환지폐 단계로 연장시키는 것과, 독점적 산업자본과 독점적 은행자본이 융합한 최고 형태의 독점자본인 금융자본(예컨대 재벌)의 가치증식 방법을 부각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새롭게 <금융자본론>을 번역 출간하게 된 것은 2007년 8월에 시작해 적어도 2015년까지는 계속될 현재의 세계 대공황을 이해하는 이론 틀을 국민 대중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다. 이전의 번역을 더욱 쉬운 문체로 써서 대중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게 했다.
이번 세계 대공황에서 주목해야 할 금융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금융기업(예금은행·투자은행·주택담보대출업체·보험회사 등)이 대출 상환 능력도 없는 사람들에게 온갖 미끼를 던지면서 주택담보 대출을 ‘개시한’ 사건 △금융기업이 비우량 모기지 대출을 근거로 온갖 엉터리 증권(모기지담보증권(MBS), 채무담보증권(CDO) 등)을 만들어 투자자에게 고가로 ‘판매한’ 사건 △보험회사가 채권파산보험(CDS)을 만들어 이 엉터리 증권이 파산할 때 보험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한 사건 등이다. 이런 취약한 금융 피라미드가 유지되려면 비우량 차입자들이 모기지 대출의 원금과 이자를 연체하지 않고 제때 갚아야 한다. 그런데 비우량 차입자들이 실업과 임금 저하 등으로 자기의 채무를 이행할 수 없게 되자 모기지 관련 유가증권의 가격이 폭락해 금융기업들이 차입금을 상환할 수 없어 파산했고, 결국 세계 대공황이 폭발한 것이다.

은행의 ‘투자 업무’ 강조한 힐퍼딩의 선견지명
여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금융 지식은 “금융기업이 고객의 예금을 받아 기업에 대부하는 업무보다는 스스로 자금을 차입하여 유가증권 매매에 더욱 열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자본론>에서 힐퍼딩이 은행의 ‘투자 업무’를 특히 강조한 것은 선견지명이 있다. 은행은 주식의 발행가격과 시장가격 차이를 ‘창업자이득’으로 얻기 위해 기업들 사이의 경쟁보다 합병을 추진해 독점 형성에 기여한다. 미국 역사상 기업들의 인수·합병 운동은 기업들의 합리화보다 금융기업에 창업자이득을 주었을 뿐이다. 또한 최고 형태의 독점자본인 금융자본이 형성되는 것은 독점적 은행(또는 산업)의 최대 주주가 독점적 산업(또는 은행)의 주식을 대규모로 매입했기 때문이므로, 여기에서도 주식 투자가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이번 세계 대공황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독점적 금융기업들이 일국경제와 세계경제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는 거대한 투자은행과 예금은행이 정부에 금융규제를 철폐하거나 완화하게 압력을 가함으로써 사기적 불법 투기를 감행할 수 있었다. 또한 독점적 금융기업은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는 신조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정부와 중앙은행에 거대한 긴급구제 금융(미국의 경우 약 20억달러)을 강요해 파산을 면하게 되었다.
이제 파산을 모면한 금융기업은 배은망덕하게 긴급구제 금융 때문에 증가한 예산 적자와 국가 채무를 문제 삼아 각국의 신용등급을 낮춰 각국 정부에 긴축·내핍 정책을 강요했다. 결국 자기들의 손실을 국민의 생활수준과 사회 서비스의 희생을 통해 메우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에 대항해 그리스·포르투갈·아일랜드·스페인·영국·프랑스·미국·한국 등의 국민 대중은 계속 시위나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의 세계 대공황에서는 금융적·재정적 곤란 위에 사회적·정치적 위기가 중첩됐으므로 총체적 위기를 타개하기 어렵다.
정부가 실업자를 구제하려고 재정지출 확대 정책을 취하려 하면 금융기업들이 재정 적자를 문제 삼아 국가 신용등급을 내려 국채 발행을 어렵게 한다. 또 한편으로 금융기업들이 선호하는 긴축·내핍 정책을 실시하면 실업은 더욱 증가하고 대중의 투쟁은 더 격화하며 경제성장률은 감소하고 재정 적자는 오히려 증가하기 때문이다. 지금 선진국의 정부와 자본가계급은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들은 이슬람혐오주의, 불법 이민자 추방 등을 외치는 극우단체를 지원해 총체적 위기의 원인을 모호하게 만들고, 안보 위기를 강조해 인권을 억압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더욱이 이들은 ‘이웃나라를 궁핍하게 하여’ 자기 혼자 대공황에서 탈출하려고 무역·환율 전쟁과 무력적 침략전쟁을 펼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세계경제가 더욱 축소돼 대공황이 심화되고 있다.

금융자본은 대자본가 독재의 절정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금융자본론>의 제5편 ‘금융자본의 경제정책’이 상상력을 부추긴다. 산업자본·은행자본·상업자본을 통합하는 금융자본은 세력이 강대해 정부 정책을 거의 완전히 장악하고, 금융자본을 위한 정책이 국민경제를 위해 좋다는 이데올로기를 선전하고 있다. 금융자본은 국내 시장을 독점하기 위해 보호무역 정책을 실시하게 한다. 독점기업은 생산물을 국내 시장에서 독점가격으로 팔아 초과이윤(국내 가격과 세계 시장가격 사이의 차이)을 얻는데, 이는 국내 소비자의 주머니를 터는 것이다. 금융자본은 세계 각국에 상품을 수출하고, 해외에서 산업용 원료와 연료를 개발하며, 철도와 기간산업을 건설하기 위해 자본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이 자본 수출에 따른 위험과 불확실성을 감소시키기 위해 금융자본은 정치적·군사적으로 강력한 국가를 요구하게 된다. 여기에서 열강들 사이에 자본 수출과 경제 영역을 둘러싼 투쟁과 전쟁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국민은 높은 세금뿐 아니라 생명을 바치게 된다. “국민으로부터 소외된 국가가 민족과 하나로 결합되며, 민족주의 사상이 정치의 추진력이 된다. 계급 적대는 자취를 감춘다”(491쪽).
그러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금융자본론>은 몇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국민 대중이 정치권력 획득에 매진해야 한다. “자본가계급은 직접적으로 감추지 않고 노골적으로 국가기구를 장악해, 모든 노동자에게 훤히 보이는 방식으로 국가기구를 자기들의 이득 수탈의 도구로 만들고 있기”(539쪽) 때문이다.
둘째, 금융자본이 독점이윤 획득에 몰두한다고 해서 국민 대중이 자유경쟁의 회복을 주장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대자본가에 의한 그리고 대자본가를 위한 경제의 의식적 통제 대신에, 사회 전체에 의한 그리고 사회 전체를 위한 경제의 의식적 통제”(537쪽)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국제적 대결이 심화하고 가계 파산이 증가하며, 거대한 실업자가 감소하지 않고 자살이 증가하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거대한 산업기업과 금융기업을 공익사업으로 전환해 민주주의적 통제 아래 국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값싼 자금을 대부하는 방향으로 운영해야 한다.
셋째, “계급 적대에 의거하는 모든 사회형태에서 사회적 대변혁은 지배계급이 이미 권력집중의 최고 가능한 상태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일어난다는 것은 하나의 역사법칙이다. …성숙기의 금융자본은 소수 자본가의 수중으로 경제적·정치적 권력을 집중시키는 최고 단계이다. 금융자본은 대자본가 독재의 절정이다.”(542쪽) 지금 각국의 대자본은 타국의 대자본과 점차 대립하게 되고, 각국의 대자본은 국민 대중을 점점 더 빈곤과 실업과 절망 속으로 몰아가기 때문에, 국민 대중은 대자본가의 독재를 종식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국민 대중의 “힘은 오직 잠재적이며, 지배계급의 세력을 타도하는 투쟁에서 비로소 입증될 수 있기”(541쪽) 때문에, 국민 대중의 투쟁력과 조직이 약하다고 실망하지 말고 새로운 사회의 건설 계획을 세밀하게 세워 추진할 필요가 있다.
<금융자본론>은 지금의 정세를 이해하는 주요한 관점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에서 가장 먼저 독점과 제국주의를 다루며, 레닌의 <제국주의>(1917)에 이론적 토대를 주었다. 물론 이 책은 독일 경제를 중심으로 이론을 구성했기 때문에, 은행자본에 의한 산업자본의 지배가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융합이 자본의 가치 증식에 가장 유리한 형태라고 암시한다. 그러나 자본을 항상 현금 형태로 유지해야 하는 은행자본과 거대한 기계와 설비에 자본을 긴 시간 묶어두어야 하는 산업자본이 각각 분리돼 발달하는 것이, 영국과 미국의 사례처럼 자본의 가치 증식에 더 유리할 수도 있다. 
soohaeng@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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