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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는 사회 시스템이다”
[김국현의 IT 인문학]
[18호] 2011년 10월 01일 (토) 김국현 economyinsight@hani.co.kr

김국현은 정보기술(IT) 칼럼니스트이며 블로그 ‘김국현의 낭만IT’를 운영하고 있다.

모토롤라가 구글에 인수됐다. 모토롤라 하면 원조 휴대전화 제조사 아닌가? 또한 휼렛패커드(HP)마저 사실상 PC사업을 포기했다. HP는 일찌감치 포기한 IBM과 함께 PC산업의 양 기둥이었다. 노키아의 수익률은 밑도 없이 떨어져 마이크로소프트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정보기술(IT)은 지금 대규모 지각변동 중이다.
꽤나 빠른 속도로 전 지구적으로 벌어지는 이 일련의 사태에는 하나의 시사점이 있다. 이제 정말 소프트웨어가 모든 것을 점령해간다는 점이다. 즉, 소프트웨어는 모든 물산을 지탱하는 근간이 되고 있다. 소프트웨어가 약하면 아무리 생산능력이 뛰어나도 순식간에 사그라질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신호탄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소프트웨어야말로 유일무이한 부가가치가 돼가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으로 시작된 이른바 ‘스마트 시대’에 모든 차별점은 소프트웨어에서 나왔다. 물론 제조사들은 이를 쉽게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래서 빌려온 소프트웨어로 승승장구했던 국내 제조사들도, 원조 제조사 모토롤라를 흡수한 구글을 보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조건반사적으로 나오는 대책이란 바로 ‘소프트웨어 강화’다. 소프트웨어 인력을 양성하라 하고, 사람을 더 뽑으라 하고, 급기야 정부가 나서서 운영체제를 만들겠다고 부르짖는다. 지난 한 달간 발표된 일련의 대응을 보니 무슨 국가적 위기가 찾아온 듯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소프트웨어란 노력해 개선할 수 있는 일반 부품과는 성질이 다르다. 소프트웨어는 일종의 사회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설령 훌륭한 운영체제를 만들어낸다고 해도, 이 체제가 운영할 내용물이 없거나, 이 체제가 집단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이 체제 위에서 경제가 성립되지 않거나, 이 체제 위에서 어떤 문화도 형성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로 전락한다. 사회란 그런 곳이고,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다.

   
2009년 4월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 직원들이 서울 종로에서 폐디스크로 정품 소프트웨어 사용을 촉구하는 글씨를 만들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사회는 어떻게 존속되는가
미국의 사회학자 탤컷 파슨스는 ‘사회’란 네 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 유지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사회라는 시스템에는 4개의 필수 서브 시스템이 있다는 것인데, 바로 사회학에서 다뤄온 ‘AGIL’ 도식이다. 흥미롭게도 이 도식은 하나의 소프트웨어 시스템이 중흥하기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먼저 A(Adaptation)는 ‘외부환경에 대한 적응’을 나타낸다. 외부로부터 자원이 들어와 이용되는 적응 과정, 즉 ‘경제’를 뜻한다. G(Goal)는 ‘목표 충족’으로 미래를 위해 목표를 설정해 달성하기 위해 동기부여를 일으키는 일, 즉 ‘정치’를 뜻한다. I(Integration)는 ‘통합’으로, 흩어지기 쉬운 사회 구성요소의 행동을 종교나 언어처럼 제어하는 일이다. L(Latency)는 ‘잠재적 패턴 유지’로 앞에 언급한 여러 가지를 가능하게 하는 ‘문화’나 ‘가치관’을 뜻한다. 파슨스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사회에서 경제 같은 물질적 기반은 물론 정치 같은 목표 설정 기능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문화나 가치관은 물론 심지어 종교나 언어와 같은 사회적 통합 기능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느 원시부족이 사회로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자. 그들은 수렵과 채집을 통해 집단을 위한 경제를 형성하고(A), 앞으로 어떻게 생존해나갈지 또 어떻게 분배하고 어떤 역할로 사냥할지 목표(G)를 이야기할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이 집단이 집단으로서 통합된 형태로 남기 위한 공통의 신뢰 방식(I)을 만들어낼 것이다. 나아가 가정과 부족 장로의 역할을 통해 이 가치는 전수(L)된다. 그렇게 시스템은 기능하면서 형성돼간다. 이것이 파슨스의 ‘사회시스템론’이다.
성공한 사회 시스템으로서의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다. 안드로이드를 예로 들어보자. 자바라는 개발언어를 다뤄왔지만 어딘가 답답함을 느껴온 기존 개발자 집단과, 소프트웨어에 약한 삼성과 같은 제조업체가 서로 외부에서 만나 적응을 꾀한다(A). 공짜와 자유라는 뜻을 지닌 ‘프리’(Free)의 안드로이드 정치 이념이 구글의 이미지 마케팅에 힘입어 형성된다(G). 또 마켓플레이스 및 레퍼런스 모델을 통해 안드로이드라는 하나의 연대 및 환경을 최대한 유지한다(I). 이에 동참하는 개발자와 제조사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이를 다시 개선하고 성과를 전수하고 아이디어를 모으며 전체 안드로이드 문화를 키워나간다.
다르게 보이는 애플도 마찬가지다. 음악과 전화라는 낯선 외계에 과감히 적응했으며(A), 애플만의 독특한 사용자 체험과 자기완결적 정책을 천명하며(G), 두꺼운 애플 애호가들을 무기로 이를 철두철미하게 지켜나간다(I). 그러자 애플과 전혀 무관한 이들이 이들의 기술을 ‘전도’하고 다닌다(L). 소프트웨어가 소프트웨어의 모습을 갖춰나가는 과정은, 사회가 사회의 모습을 갖춰나가는 과정과 비슷했다. 사회가 존속되는 데 결정적으로 필요한 것, 즉 정치·경제·연대·문화의 각 서브 시스템들은 사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곧바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의외로 오랜 시간을 거쳐 숙성되고 빚어진다.

2011년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풍경
외계와 만나 목표 의식을 갖고 연대를 하고 이를 전승하는 일. 이미 사회학에서는 고전이 된 AGIL의 패러다임은 새로운 사회 시스템이 형성되려는 지금, 아직도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우리에게 시사점을 준다. 그것이 무엇이든 사회가 새롭게 생겨난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그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의 영역은 지금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피부에 가장와닿는 건 내가 생활하는 이 사회 자체마저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다. 책도 언론도 전화도 금융도 제조업도 결국 소프트웨어가 모든 것을 바꿔버린다. 이 뒤바뀜을 직접 목격하는 일은 제3자에게는 탐나고도 배 아픈 일이다.
이 바뀜은 새로운 물건이 등장한 결과가 아니라 새롭게 등장한 사회 시스템들의 결과였다. 하지만 산업 세대가 이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다. 사회의 존속이란 복잡다단하게 엉킨 조건들이 모두 갖추어졌을 때 이뤄진다는 것을 1950년대의 사회학이 이미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소프트웨어 혁신을 증기기관처럼 사람을 모아오면 가능한 일인 양 착각하고 있다. 이것이 2011년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의 풍경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無)에서 유(有)로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한두 개 더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회 시스템으로서의 소프트웨어를 직시하고, 그 구성 서브 시스템을 하나하나 되짚어봐야 한다. 우리 환경이 충분히 열려 있어서 과연 외계와 적응할 수 있는지(A), 우리에게 충족할 만한 목표가 있는지,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은 확보됐는지, 우리에게 동원할 열정이 있는지(G)를 따져봐야 한다. 또 제각각일 수밖에 없는 혁신에 연대가 이뤄질 수 있도록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펴고 있는지(I), 무엇보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고 만들고 그 안에서 기쁨과 보람을 얻을 수 있는 ‘기크’(Geek)의 문화가 애초에 존재하는지(L)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그런 뒤에야 이 땅의 소프트웨어가 왜 약할 수밖에 없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만약 누군가 IT에도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면 바로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goodhyun@live.com


* ‘김국현의 IT 인문학’은 이번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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