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이슈
     
시장의 질주와 ‘죄수의 딜레마’
[시장 들여다보기]
[18호] 2011년 10월 01일 (토) 조계완 economyinsight@hani.co.kr

조계완 부편집장

   
1930년대 미국 포드자동차 공장 모습.
앙구스 매디슨이라는 인류 역사의 경제지표 분야에 뛰어난 경제학자가 있다. 그가 펴낸 <세계경제>(OECD·2001)에는 기원후(A.D) 1998년까지 세계경제 성장률 추이를 보여주는 간명한 그래프가 제시돼 있다. 이 그래프는 1800년의 장구한 세월 동안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계속 바닥을 기어왔음을 한눈에 보여준다. 세계경제의 1인당 총생산(GDP)은 기원후 0년에 444달러(1990년 국제달러 기준), 1000년 435달러, 1820년 667달러로 산업혁명 이전까지 거의 변함없었다. GDP 성장률로 따지면 0∼1000년 0.01%, 1000∼1820년 고작 0.22%에 불과했다. 이른바 ‘맬서스의 (인구)함정’에 갇혀 경제성장도 인구도 무려 1800년간 바닥의 정체 상태를 면치 못한 것이다. 물론 산업혁명 이후에 인류의 소득성장률은 가파르게 상승해 1998년 전세계 1인당 GDP는 무려 5709달러에 이른다.
매디슨을 비롯한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지난 200년간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눈부신 발전을 가져온 원천은 바로 ‘시장의 확장’이라고 강조한다. 지역·인종·정치문명의 차이를 넘어 시장논리가 끊임없이 영토를 넓히면서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이뤄지고, 이를 통해 경제가 성장하면서 인류가 더 많은 소비, 더 높은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조지프 슘페터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 “자본주의 생산의 전형적 업적은 저렴한 옷감, 저렴한 면직물과 레이온 직물, 저렴한 부츠, 저렴한 자동차 등이고, 일반적으로 부자에게 대단한 의미를 가질 것으로 생각되는 개선이 아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비단 양말을 가지고 있었다. 자본주의적 업적은 전형적으로 여왕을 위해서 더 많은 비단 양말을 마련해주는 데 있지 않고, 공장의 여공들이 끊임없이 줄어드는 노력을 대가로 비단 양말을 손에 넣을 수 있게 해주는 데 있다”고 말했다.
 
비단 양말과 ‘모델T’, 그리고 성장의 원천
노동자와 서민이 비단 양말이든 자동차든 시장에서 상품을 더 많이 구입할 수 있게 되면서 자본축적이 더 빨라지고, 그래서 인류가 빠른 경제성장을 구가해온 것은 사실이다. 자동차를 보자. 미국인들의 일생은 흔히 ‘바퀴 위의 인생’(Life on the Wheel)으로 불린다. 1896년 헨리 포드라는 32살 기계공이 자신의 첫 사륜차를 팔면서 자동차산업의 역사가 시작됐는데, 포드자동차의 황금시절을 열어젖힌 차종이 바로 ‘모델T’다. 모델T는 1908년 첫 출시 때 대당 850달러로, 1908∼09년 1만607대가 팔렸다. 1911∼12년에는 7만8440대가 팔렸는데, 가격은 대당 690달러로 떨어졌다. 가격이 낮아지면서 이 차를 직접 만든 포드자동차 노동자까지 자신이 생산한 모델T를 구입하면서 이듬해 (1913∼14년)에는 판매량이 24만8307대로 대폭 증가하면서 가격이 550달러로, 이어 1916∼17년에 73만41대 판매에 대당 360달러로 가격이 또 떨어졌다. 대량생산뿐 아니라 대량소비가 자본축적의 원천으로 등장한 셈이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에서 자동차 공장은 1905년 121개에서 1923년 2471개로 늘어 가장 큰 산업으로 성장한다. 1960년 미국 자동차산업 노동자에게 지급된 총급여는 1890년 미국 전체의 국민소득에 맞먹을 정도로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언젠가 미국의 연방대법원장 루이스 브랜다이스는 “햇빛이야말로 최고의 살균제”라고 말했는데, 시장이야말로 최고의 성장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시장에서의 소득분배 불균형을 옹호하면서 ‘최소국가’의 기초를 세운 로버트 노직은 <아나키, 국가 그리고 유토피아>에서 “헨리 포드에게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동차를 샀다고 가정하자. 그 당시 (태어날 때부터 존재한 소유 불평등에 기초해) 돈을 갖고 차를 구입한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이것이 곧 포드가 시장에서 벌어들인 엄청난 소득 자체를 수상쩍은 것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포드가 소득을 얻게 된 것은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노직은 덧붙인다. “나의 아내가 (내가 없었다면 결혼했을) 다른 구혼자를 거절한 이유가, 부분적으로 나의 어떤 노력의 대가가 아닌, 즉 나의 날카로운 지성과 멋있는 용모, 또 붙임성 있는 품성 때문이라면 그 거절당한 구혼자는 지성과 용모에서의 불공평성에 대해 합법적으로 불평할 수 있을까? 나 때문에 그 구혼자가 결혼 승낙을 얻어내는 데 방해가 되었으므로 이제 타인들에게서 돈을 거둬 그의 성형수술이나 지적 훈련을 위한 비용으로 지불함으로써 그를 나와 대등한 선택 기회에 서게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경우 그를 위해 남들이 돈을 지불하는 행위는 정당화되는가?” 시장에서의 불평등과 단순한 의미에서의 기회균등을 사회정의론 철학을 동원해 옹호한 것이다.
슘페터가 말한 자본주의 발전은 곧 시장에 대한 맹신이었다. 시장은 그 피해자들까지 매혹시키는 신비로운 마력을 지녔음이 분명하다. 1973년 경제학자 앨버트 허쉬만은 이를 ‘터널효과’로 설명했다. 2차선의 긴 일방통행 터널에서 차가 꽉 막힌 상황을 가정하자. 잠시 뒤 오른쪽 차선이 조금 풀려 차들이 움직이면 내가 주행 중인 왼쪽 차선도 곧 뚫릴 거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내 차선의 차들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도 ‘언젠가 내 차선도 움직이겠지’ 하는 생각에 그 전보다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기대가 좌절되고 여전히 오른쪽 차선만 움직인다면 나와 내 차선의 운전자들은 ‘뭔가 반칙이 있다’며 점차 크게 분노한다. 이어 차선을 넘어가는 등 격렬히 반응한다.
 
만물의 상품화와 노동분업
여기서, 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소득분배 불평등이 크고 내 옆 사람의 소득만 점점 커지더라도 얼마 뒤에는 내 소득도 자연스럽게 커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터널효과’다. 부유해진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모두 성장을 좋아한다. 허쉬만은 경제성장 과정에서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분배 불평등을 공평한 분배보다 오히려 선호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불평등을 정치적으로 인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 후생 측면에서 불평등이 오히려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진다는 얘기다. 물론 시간이 지나도 분배가 개선되지 않으면 참을성이 한계에 달하고 분노로 돌변하게 되지만. 이처럼 시장이 가져다주는 물질적 풍요에 대한 기대는 우리를 사로잡은 묘약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불평등이 고착화·양극화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정보기술(IT) 시장을 보자. 1990년대에 정보기술이 주도하는 ‘신경제’에 대해 “새로운 유토피아가 도래했다”고 성급하게 환호했지만 우리는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가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주범임을 점차 뒤늦게 깨닫고 있다. 자고 나면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기존 기술이 파괴되고 진부화하는 주기가 빨라지고, 그래서 단기성과주의로 경제가 바뀌면서 장기적 미래를 내다보는 ‘인내하는 자본’이 멸종되고 있다. 정보기술에 적응하는 기업·노동자와 그렇지 못한 쪽의 디지털 격차도 점차 크게 벌어진다.
백낙청 선생은 정보화 물결이 막 일기 시작하던 1990년대 중반 어느 강연에서 “‘정보사회’라는 말이 얼핏 듣기에는 참 멋있다. 정보가 제일이라는 것이고, 하기 힘든 노동이 줄어든 사회라는 뜻으로 달콤하게 들리고, 이제 총칼도 돈도 아니고 지식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고 그럴듯하다. 하지만 내가 이해하기로는 정보사회라는 것이야말로 물질 개벽이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극치에 달한 사회이고 정말 살기 좋은 세상이라기보다는 물질문명에 인간이 노예가 되는 현상이 더욱 심각해진 사회라고 생각한다”고 설파했다.
기계가 그 자체로는 인간에게 좋은 것일지라도 그것이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될 때 해악을 끼칠 수 있듯이, 시장이라는 제도 역시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될 때는 위험할 수 있다.
매디슨 등 경제학자들은 성장의 비결을 시장의 확대(곧 ‘만물의 상품화’)라고 주창하지만, 지난 2세기 동안 놀라운 경제성장의 원천은 기술 진보, 더 정확히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맨 앞에 제시된 ‘노동분업’이었다. 10명이 일하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어느 핀공장에서 만들어내는 못은 하루 20개도 채 안 됐다. 이 공장에선 철사를 늘리고 못대가리를 망치로 평평하게 두드리고 끝을 뾰족하게 가는 모든 공정을 노동자 한 사람이 수행했다. 그런데 역시 10명이 일하는 다른 핀공장에서는 하루에 무려 4만8천 개의 못을 만들어냈다. 한 사람은 하루 종일 철사를 늘리고, 옆 노동자는 망치로 두드리는 일만 하고, 그 옆 사람은 뾰족하게 핀 끝을 가는 작업만 하는 노동분업이 기적적인 산출량 증가를 가져온 것이다. 경제성장의 불씨는 시장논리, 즉 이기심에 따른 극대화 행동뿐 아니라 인간과 기계가 서로 작용하는 방식(기술)에서의 진보에 있었던 셈이다.
시장경제는 계약에 의한 경쟁적 교환체제다. 버스요금 1천원을 지급하면 승객인 나를 신속하고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이동시켜준다는 계약이 맺어진다. 그런데 시장에서 교환 원리는 간단하다. ‘지불 용의’가 가장 큰 사람한테 자원을 배분하면 그가 그 자원을 잘 활용해 투입한 돈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내려 할 것이므로, 최적 효율이 자동적으로 달성된다고 가르친다. 즉, 민주주의는 ‘1인1표’이지만 시장원리는 ‘1원1표’다. 가장 많은 돈을 지불하면 자원을 이용할 권리가 주어지므로, 옛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 보여주었듯 이제 남의 돈을 잘 차입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따라서 불법 대출 등 로비가 판치는 부패 구조는 시장원리 자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슘페터는 시장은 위험을 감수하는 창조와 혁신의 도전적 메커니즘이며, 이것이 경제성장의 또 다른 원천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현실의 시장은 자신이 감수해야 할 위험조차 타인에게 전가한다. 국가는 민간 기업의 사업이윤을 보장해주기 위해 제도적으로 기업의 여러 위험을 사회화해주고, 주식시장은 미수매매거래와 증권담보대출을 허용해줌으로써 빚내어 주식을 더 사라고 권유한다. 이미 주식시장에 참여한 사람들의 리스크를 줄여주는 것이다. 급전 대출자들의 고금리에는 자신의 나쁜 신용뿐 아니라 잠재적으로 떼먹고 달아날 다른 고객들의 돈을 벌충하는 것까지 흔히 반영돼 있다.
 
시장의 질주와 사회적 진화
   
경제학자 앨버트 허쉬만은 경제성장 과정에서의 소득불평등을 ‘터널효과’로 설명했다. 폭설이 내린 지난 2월, 부산 백양터널에서 차들이 정체를 빚고 있다.
경쟁적 시장은 개인의 경쟁하려는 속성을 부추기고 키워낸다. 매정하고 경쟁적인 사람이 성공을 거둔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런 행동을 따라하고, 지나치게 협동적인 사람은 이용만 당하고 나약한 인간으로 간주됨에 따라 협동적 행동은 만류될 것이다. 열대우림의 나무들이 적당한 키와 넓이를 차지하면 평화롭게 공생할 수 있는데도 서로 햇빛을 더 많이 차지하려고 키 경쟁을 하다가 과밀포화 상태에 살고 있고, 우리는 앞자리에서 누군가 일어나면 다 같이 서서 불편하게 야구를 관람해야 한다. 이기적 본성 때문에 사회적으로 최적이 아닌 결과를 선택하게 된다는 ‘죄수의 딜레마’다.
물론 시장 경쟁은 중요하다. 경제적 효율성을 촉진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이 삶에 불어넣는 활력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나치게 경쟁적인 사람에게 눈살을 찌푸린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시장으로 가는 길>에서 “자본주의는 개인들의 이기적 행동과 비이기적 행동이 특이하게 결합된 환경에서, 즉 한 사람의 말이 그 사람의 명예가 되고, 경제적 인정보다는 사회적 인정(즉 신뢰)이 계약을 강제하는 환경에서 가장 번창한다”고 말했다.
찰스 다윈 역시 이기심보다는 공동체 정신이 ‘자연선택적 진화’의 원리라고 말했다. “고결한 도덕적 가치를 지닌 사람이 많은 집단은 그렇지 못한 집단에 비해 훨씬 유리하다. 집단에 대해 충성하려는 성향이 강하고, 용감하며, 타인에 대해 동정심을 갖고 있어서 항상 다른 사람을 도울 자세가 되어 있을 뿐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 집단이 그렇지 않은 다른 집단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을 자연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점차 높은 도덕적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 차지하는 수적 비중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이타적 인간의 출현>, 최정규) 그렇다면 지난 2세기 비약적 경제성장의 원천을 시장논리의 확대가 아니라 이타적 인간의 수가 늘어난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kyewan@hani.co.kr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조계완의 다른기사 보기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강대성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백기철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