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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로 경제 살리고 사회통합 이뤄야
[Cover Story]한국의 경제 현실과 부유세 신설 필요성
[18호] 2011년 10월 01일 (토) 정동영 economyinsight@hani.co.kr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서울 강남의 타워팰리스와 고층 아파트의 야경.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부자 증세에 반대하는 논리에 대해 “타워팰리스의 시각에 갇혀 세상을 보는 것”이라고 비판한다(왼쪽).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지난 9월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리는 민주당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오른쪽).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 ‘부자 증세’ 회오리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전세계 3위 갑부이자 미국의 두 번째 부자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지난 8월14일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부자증세론’을 주창한 이후, 프랑스의 ‘슈퍼 부자’들도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낼 수 있도록 특별기부세를 신설해달라”고 정부에 청원하면서 부자 증세 열풍은 유럽 전역은 물론 이웃나라 일본에까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말뿐만이 아닌 실제 국가 정책과 법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최근 “‘일자리 만들기 법안’의 재원 대부분을 부자들에 대한 증세를 통해 조달하겠다”고 공언했다. 일본의 신임 총리는 취임하자마자 각료들에게 증세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할 정도다.
이제 부자 증세는 거스를 수 없는 전세계적 화두이자 시대적 대세가 되고 있다. 이는 과도한 국가 채무와 낮은 경제성장률로 정부 세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복지 확대와 재정 적자 완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전세계적 대세가 된 ‘부자 증세’
지금으로부터 1년 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내가 부자 증세를 외치며 ‘부유세’를 대안으로 주창한 지 1년 만에 이처럼 전세계적 흐름이 되고 있는 걸 보면서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때는 “너무 나간 것 아니냐”는 비판, 더 나아가 비아냥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부자 증세 없는 보편적 복지는 허구이자 말장난에 불과하며,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 해도 장기적으론 국가에 엄청난 재정적 부담을 지우고,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또다시 복지의 발목을 잡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집을 짓기 전에 토대부터 굳건히 다져놔야 한다는 소신은 지금도 한 치 변함이 없다.
 
부끄러운 ‘대한민국 슈퍼 부자’
눈을 크게 뜨고 세계를 보자. 그리고 우리 안의 닫힌 현실을 돌아보자. 선진국 부자들은 정부에 대고 “나에게 세금을 더 걷으라”고 난리인데, 우리나라의 부자와 재벌들은 “나부터 세금 깎아달라”고 아우성이다. 그러면서 뒤로는 서민과 아이들 밥그릇을 뺏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이것을 이명박 정권이 정권 차원에서 철저히 지원·보호해주고 있다.
대한민국의 부자와 기득권 세력은 입만 열면 선진국처럼 하자면서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것은 선진국의 흐름과 정반대로 말한다. 역사에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우리 스스로 부끄러운 자화상을, 불편한 진실을 솔직히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증세 없이 보편적 복지가 가능했다면, 이미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다 했다.
증세 얘기만 꺼내면 아직도 ‘세금폭탄’ 운운하며 경기를 일으키는 이들은 정확히 ‘강남 타워팰리스’ 주민을 대변하거나 그들의 논리에 포획된 사람들이다. 부자 증세를 해봐야 세금 더 내는 부자들은 고작 국민의 1~5%에 불과하다. 나머지 95%는 증세에 아무런 해당 사항이 없다.
부유세나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의 ‘사회복지 목적세’,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의 ‘소득세·법인세 최고세율 구간 신설’ 같은 부자 증세 제안이 이 시점에서 중요한 이유는 그 자체가 지닌 세입 증대 효과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 시점에서 부자 증세야말로 보편적 복지의 주춧돌이자, 세금폭탄이 아닌 사회통합세이기 때문이다.
내가 제안한 부유세는 순자산 30억원 이상 개인과 1조원 이상 법인에 순자산액의 1~2%를 부유세로 부과해 연간 7조8천억원의 복지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가 제안한 사회복지세는 부자 할증세와 누진적 직접세로 400만원 이상 소득세 납부 개인과 5억원 이상 법인세 납부 대기업, 상속증여세 납부자, 종합부동산세 납부자에게 납부 세금의 15~30%를 추가로 부과해 연간 15조원을 확보하자는 구상이다. 또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의 소득세·법인세 최고세율 구간 신설은 소득세 과세표준 1억2천만원 초과 구간과 법인세 과표 1천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해 각각 40%와 30%의 세율을 적용해 연간 8조3천억원(소득세 2조원+법인세 6.3조원)을 복지 재원으로 확보하자는 방안이다.
다만, 부유세는 단순히 세금을 더 걷는다는 의미보다 도입 과정에서 조세체계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고 탈세 등 지하경제를 절반으로 줄이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부유세 도입을 기본으로 하되 사회복지세와 소득세·법인세 최고세율 구간 신설 같은 누진적 직접세 강화를 병행해 실시하는 것이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부자 증세 하면 무슨 큰일이 날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세금을 많이 내고, 적게 버는 사람은 적게 내자’는 게 바로 부자 증세이고 부유세다. 탈세가 많다고, 그것만 제대로 걷어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탈세를 획기적으로 방지하자는 대책이 부유세다. 그래서 조세정의와 부유세는 동의어다. 부유세가 좋은 점은 요즘처럼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갈수록 불안이 증폭되는 사회를 통합하고 안전하게 이끌며, 그게 오히려 부자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사회통합세’라는 점이다. 부자와 재벌이 존경받는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거꾸로 가는 MB 정부
   
지난 8월25일 낮 서울 은평구 진관동 은빛초등학교 급식실에서 학생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한국의 복지예산 확충이 절실한 상황에서 부자 증세는 피해갈 수 없는 길이다.
우리나라의 복지 수준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연간 100조원 이상의 추가적인 재정지출이 요구된다. 저출산·고령화의 심각성을 감안하면 그보다 더 늘어날 수 있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다. 우리 모두의 현재와 미래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재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19.3%로 OECD 평균보다 7.3% 정도 낮다. 이명박 정부의 부자 감세를 그대로 시행하면 이는 더 벌어질 것이다.
우리나라 복지재정 수준이 전세계적으로 최하위라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우리나라의 공공복지 지출은 7.48%로, OECD 평균 20.6%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OECD 30개국 중 멕시코에 이어 꼴찌에서 두 번째다.
특히 이 정부 들어 겉으로 내세우는 복지 확대 주장과는 달리 해가 갈수록 복지예산 증가율이 떨어지고 있다. 매년 10%를 상회하던 전년 대비 복지예산 증가율은 지난해 8.8%, 올해 6.3%로 급감했다. 이런 경향은 중·장기 재정계획상으로도 마찬가지여서 2007~2011년 국가재정 운용계획상 연평균 9.7%에 달하던 복지예산 증가율이 2008~2012년 계획에는 8.7%, 2009~2013년 계획에는 6.8%, 급기야 올해 제출된 2010~2014년 국가재정 운용계획에는 5.9%로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이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GDP 대비 공공복지 지출 비중은 향후 더욱 낮아질 것으로 예상돼 우리의 복지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한다.
더군다나 기업하기 좋은 나라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미명 아래 펼쳐온 MB식 자유경쟁 시장주의와 대기업 위주의 성장정책의 결과는 실로 참담하기 그지없다. ‘저성장-고실업-양극화 심화-저출산·고령화-저성장’이라는 최악의 악순환에 빠져들었다.
 
‘용기 있는 야당’만이 정권을 얻는다
어린이·청소년의 행복지수 3년 연속 OECD 최하위, 출산율 세계 최하위, 일자리의 양과 질 세계 최하위이고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 세계 1위, 한국인 전체 자살률 세계 1위인데 사회복지 지출은 세계 최하위…. 최악의 지표들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세계 1위를 싹쓸이하고 있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 사회의 우울하고 불안한 현주소다. 제아무리 재벌 대기업의 주가가 오르고 수출이 늘어도, 서민의 살림살이는 갈수록 팍팍해지는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고 있다.
부자 증세를 두려워해서는 이 정권의 오류를 극복하고 보편적 복지를 제대로 실현할 수 없다. 덮어놓고 부자 증세만 하자는 것도 아니다. 4대강 등 토건 예산을 삭감하고, 부자 감세를 철회하고, 그래도 모자라는 부분은 부자 증세로 하자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때 장롱 속의 금을 꺼내 국가 부채를 갚는 데 쓰라고 내놓은 국민이다. 그런 국민을 안 믿고, 잘못된 관념에 빠져서 해야 할 말을 못 하는 건 야당으로서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듣기에 불편하지만 피해갈 수 없는 진실이라면 솔직히 국민에게 고하는 게 상책이다. 부자 증세를 말하면 표 떨어진다? 그건 우리 국민을 바보로 보는 것이다. 국민의 대다수는 정치인들이 모두 ‘복지, 복지’ 하는 데 대해 “그거 무슨 돈으로 할 건데?”라고 바로 되묻는다. 구체적이고 과감한 재원 마련 계획 없이, ‘증세 없이도 보편적 복지를 할 수 있다’는 주장이야말로 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또 한 가지 복지 비용과 관련해 중요한 대목은 복지가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건강과 교육수준 및 직업훈련의 향상 등 인적자본의 질을 높여서 생산성을 증가시키고, 삶이 안정됨에 따라 노동조합의 임금 인상 요구가 완화되고 구조조정도 원만히 이뤄질 수 있으며, 내수를 진작해 경기 부양 효과도 있다. 복지가 성장을 저해하는 좌파 포퓰리즘이 결코 아니란 소리다.
지금 우리는 사회 구성원 전체가 배려와 협동, 돌봄과 나눔을 통해 ‘더불어 잘사는’ 경제구조로 나아가야 한다. 그 기본적 바탕이 되는 게 바로 ‘보편적 복지’다.
문제는 말이 아니라, 신념과 철학에 기반한 용기와 실천이다. 누구나 보편적 복지를 말할 수 있지만, 누구나 보편적 복지를 실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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