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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세정책, 세계적 경제불황 잉태
[Cover Story]‘감세정책=경제활성화’라는 상식의 몰락
[18호] 2011년 10월 01일 (토) 김보근 economyinsight@hani.co.kr

김보근 편집장
 
지난 30년간의 ‘감세정책 시대’는 마침내 마침표를 찍을 것인가? 최근 대표적인 감세정책을 취하던 미국과 한국이 감세정책을 포기하거나 증세정책을 표방하고 나서는 등 큰 정책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는 1980년대 미국의 도널드 레이건 정부 들어 본격적으로 시작된 ‘감세정책’이 마침내 정치적 영향력을 잃게 됨을 뜻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월19일 오전 백악관 연설에서 재정 감축 방안과 함께 1조5천억달러에 이르는 증세 방안을 발표했다. 증세 방안의 뼈대는 연소득 100만달러를 넘는 최고 부유층 45만 명에 대해 최저 세율을 부과하는, 이른바 ‘버핏세’다. 공화당은 ‘계급투쟁’이라고 규정하며 강하게 맞서지만,  1980년 레이건 행정부 때부터 지속돼온 감세 기조가 바뀔 수 있다는 정책적 의미가 있다.
한국에서도 한나라당이 지난 9월16일 의원총회를 열어 국회에서 소득세와 법인세 최고 구간 추가 감세를 철회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이명박 정부는 지난 9월7일 “한나라당의 건의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감세안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감세정책은 ‘MB노믹스’의 핵심이라는 점에서도 큰 정책 변화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정책 변화는 미국과 유럽 ‘슈퍼 부자’들의 증세 요구와 맞물리면서 지난 30년간 지속된 ‘감세의 시대’가 막을 내릴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게 한다.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의 ‘농민시장’에서 한 상인이 소시지를 팔고 있다. 여러 나라가 지난 30년간 감세정책을 펼쳤지만 그 결과는 ‘실패’였다(왼쪽).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과다 채무 등을 이유로 일본의 신용등급을 ‘Aa2’에서 ‘Aa3’으로 한 단계 낮춘 지난 8월24일, 한 시민이 도쿄 거리를 걷고 있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 동안 감세정책을 통해 경제회복을 노렸지만 실패했다(오른쪽).

한국과 미국의 감세정책 변화
한 시대를 풍미한 감세정책의 본격적인 출발점은 1980년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 출범이다. 레이건은 1970년대 발생한 스태그플레이션과 복지지출 확대에 대한 재정적 어려움을 이유로 감세와 세출 삭감을 기조로 한 일명 ‘레이거노믹스’ 정책을 전개했다. 이에 따라 집권 다음해인 1981년에는 75%에 이르는 최고 세율을 50%로 낮추었고, 1986년에는 50%의 최고 세율을 다시 최고 세율 15%와 최고 세율 28%의 2개 세율 구간으로 대체하는 등 지속적으로 감세정책을 펼쳤다.
이런 감세정책에 기반한 레이거노믹스는 경제적으로 그리 높은 점수를 받지 않았다. 레이건 행정부의 경제정책을 ‘경제적’으로 평가할 때, 자원 배분의 왜곡을 심화했고 재정 적자를 심각한 수준으로 확대시키는 기폭제 구실을 했다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이를 ‘정치적’으로 평가한다면 그 결과는 사뭇 달라진다. 감세 혜택을 받는 이들이 주로 부와 권력, 언론에 대한 영향력을 독점하는 덕에 정치적으로는 후한 평가를 받는다. 이에 따라 이후에도 감세정책은 주로 각국의 보수정권에 의해 선거에서 주요한 공약으로 내세워지고, 또 실행됐다.
감세정책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복지체제가 강하게 뿌리내린 유럽의 개혁적 정당들도 감세정책의 영향을 받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 사민당 출신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1998년 실시한 ‘세금개혁 2000’이다. 우파 기민당에 이어 집권한 개혁 성향의 사민당 정권에서 시행된 이 프로그램은 기민당의 경제정책을 그대로 답습했다. 국민연금 지급액을 물가 인상폭에 따라 고정하는 것을 뼈대로 해서 연간 300억마르크가량의 재정지출 부담을 덜고, 이를 기반으로 세금을 감면해 국민의 실질소득을 높인다는 내용이었다. 이 정책 등으로 인해 슈뢰더 정부는 다음해인 1999년 실시된 지방의회 선거에서 잇따른 패배를 맛보았지만, 그 뒤에도 감세는 기민당과 사민당을 가리지 않고 독일 정치권의 화두가 됐다. 독일은 개인소득세 최고 세율을 2000년 51%에서 2001년 48.5%, 2003년 47%, 또 2005년 42%로 지속적으로 내렸다. 이런 감세정책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공약’과는 달리 독일 경제는 나아지지 않았다. 독일은 경기불황이 계속 이어졌고, 재정 적자 규모도 201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5%를 넘어섰다.
 
화려했던 ‘셀틱 호랑이’의 몰락
‘정치적 평가’에 가려 있던 감세정책의 ‘경제적 평가’는 일본에서 실시된 감세정책 실패 등을 통해 더욱 널리 알려졌다. 일본은 부동산 거품 붕괴로 촉발된 경제위기,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감세정책을 실시했다.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 소득세와 법인세를 지속적으로 낮추면서 경기회복을 꾀했다. 가령 1998~2001년 소득세법 개정을 통해 최고 소득세율을 50%에서 37%로 낮추고, 최고 주민세율 또한 15%에서 13%로 내렸다. 이런 감세정책에도 불구하고 기대하던 경기 활성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어려운 재정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 2011년 기준으로 일본의 국가 채무는 GDP의 212.7%에 이르렀다.
한때 외국 투자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세 등을 통해 외국자본의 유치 성과를 높이던 아일랜드의 몰락은, 과도한 감세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아일랜드는 1980년대 후반부터 외국 투자 기업에 매기는 법인세를 40% 수준에서 12.5%까지 지속적으로 낮췄다. 아일랜드는 2007년 실업률이 4%까지 낮아지고 연간 성장률이 높은 수준을 자랑하면서 한때 ‘아시아의 호랑이’에 빗대 ‘켈트의 호랑이’라 불렸다. 하지만 감세정책으로 취약해진 재정과 과도한 부동산 활성화 정책으로 인해 리먼브러더스 사태 등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한 뒤 2010년 말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감세정책은 나라 전체의 경제 상황을 어렵게 만들 뿐 아니라, 한 나라 내의 사회적 갈등을 격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감세정책의 수혜자인 부자 계층은 세금 감면을 통해 부를 축적할 기회를 얻지만, 중산층과 빈곤층은 재정위기 등으로 경제가 어려워져 실업 등 고통을 더 크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 때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버클리대학 교수는 저서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에서 현재의 경제 상황을 1929년 대공황과 비교했다. 1928년과 2007년 모두 미국의 총소득에서 소득 상위 1%가 차지하는 비중이 23%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빈부 격차 심화는 미국뿐 아니라 독일 등 유럽의 여러 나라가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현상이다. 빈부 격차가 확대되면 경제회복 정책을 수립하기 어려워질 뿐 아니라 사회갈등이 심각해지면서 수립한 정책이 효과를 나타내기도 어렵다.
‘상식’이 한 시대를 버티는 든든한 버팀목이라고 할 때, 대개 커다란 세계적 전환점은 ‘상식의 뒤집힘’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감세정책이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강요된 상식이 이제 흔들리고 무너지려 한다. 이는 세계경제가 또다시 큰 패러다임 변화기에 처해 있다는 말과 같다.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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