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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대운하로 중소기업 혁신의 강물을”
[Issue]한국경제의 허리, 중소기업=김영호 유한대 총장 인터뷰
[2호] 2010년 06월 01일 (화) 조계완 국내편집장 kyewan@hani.co.kr

글로벌 금융·재정위기와 고용 충격 속에 최근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을 둘러싼 논의가 정부, 민간, 그리고 경제연구기관 영역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중소기업은 일자리 창출 경로로, 중견기업은 위기 이후 새로운 경제질서에서 한국경제를 이끌고 갈 주역으로 설정되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2020년까지 세계적 전문 중견기업 300개를 육성해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으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중견기업 육성을 위한 법률적·정책적 근거도 마련하기로 했다. 시장 쪽에서는 “중소기업에서 일자리를 만들어내려면 대기업과의 불평등 하도급 문제가 먼저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대표적인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시장원리에 따른 중소기업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줄곧 주창하고 있다.
지금 중소·중견기업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가?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성장 활력에 불을 지피기 위해 우리 경제는 무엇을 고쳐야 하고, 또 준비해야 하는가? 편집자


조계완 국내편집장

   
 
“중소기업의 혁신·창의 역량을 살리고 흡수해야 대기업도 성장할 수 있다. 지식기반경제에서 글로벌 경쟁력은 서플라이 체인(supply chain·부품납품업체)의 혁신역량에 있다”. 김영호 유한대 총장(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중소기업 문제에 오랫동안 천착해온 경제학자다. 김 총장은 <이코노미 인사이트>와의 인터뷰에서 “중소기업의 혁신과 창의를 일으킬 수 있는 ‘지식의 대운하’를 뚫어야 벤처기업이 중소기업으로, 다시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며 “중소기업을 단지 일자리 창출로만 접근하지 말고, 중소기업 성장 쪽으로 정책적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내내 김 총장은 중소기업들이 혁신·창의를 일으킬 수 있도록 중소기업-대기업-대학간에 지식의 강물이 흘러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5월25일 유한대 총장실에서 이뤄졌다.

지금 정부가 중소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일자리 창출’에 맞춰져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각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 단체들이 일자리 창출에 엄청난 돈을 쓰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생산성 없는 일자리뿐이다. 또 대기업의 일자리 창출 기능이 파괴된 상황에서 중소기업을 일자리 창출의 경로로 상정하고 정책과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통로로 중소기업을 볼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의 혁신과 창의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정책적으로 이렇게 접근해야 중소기업에서 괜찮은 일자리들이 중장기적으로 많이 만들어질 수 있다.
지금 중소기업을 중견기업으로 키우자는 주장이 정부 안에서 나오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이노비즈형(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확보한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은 대략 3천여 개로 알려져 있다. 정부가 이 가운데 300여 개를 2020년까지 ‘중견기업’으로 키우겠다고 표방하고 나섰다. 2007년 현재 중견기업 범주에 들어갈 만한 국내 기업은 28개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28개 가운데 대기업 계열사가 21개, 외국계가 4개다. 나머지가 풍산, 오뚜기, 이랜드 등 3개다. 독자적으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은 이 정도에 불과하다. 중견기업 육성을 둘러싸고 대기업 계열사 지원책이 될 거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벤처에서 중소기업으로, 다시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흐름이 왜 이렇게 약한 것일까?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삼성 등 재벌기업들의 이익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삼성이 자체적으로 이뤄낸 혁신의 결과는 아니다. 오히려 중소기업이 창출한 가치를 더 많이 가져가는 메커니즘에서 비롯된 이익이라고 본다. 우리나라 대다수 중소기업들은 대기업과 납품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몇 년 전 나를 포함해 여러 사람들이 ‘중소기업시대 포럼’을 만들었을 때 나는 ‘99-88-2-34’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중소기업이 우리나라 기업체 수의 99%, 전체 고용의 88%를 차지하는데, 대기업과의 납품관계에서 대체로 불과 2∼3%의 수익을 남기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3∼4년 안에 대부분 죽게 될 거라는 뜻이다. 이익 2∼3%는 세전 수익인데 준조세도 내야 한다. 중소기업이 내야 할 준조세 중에는 대기업의 협력업체 담당자 접대비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연구개발(R&D)을 많이 하고 혁신을 잘하면 돈을 벌 수 있다’가 아니라 오히려 대기업과 잘 사귀어야 사업을 지속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구조에서는 중소기업 안에서 결코 혁신이 일어날 수 없다.
그럼 중소기업이 대기업과의 납품관계에서 어느 정도의 이익을 내야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가.
요즘 나는 ‘99-88-8-88’이란 용어를 쓰고 있다. 대기업과의 하도급 관계에서 적어도 8% 정도의 이익은 남길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어야 중소기업이 팔팔(88)해지고 혁신에 나설 맛이 난다는 뜻이다. 이 정도의 이익이 보장되어야 대학과 중소기업간의 산학협력도 본격적으로 가동될 수 있고, 중소기업에서 괜찮은 일자리도 많이 만들어 질 수 있다. 중소기업이 적정 수익을 낼 수 있어야 임금수준도 높아지고, 수익성과 안정성을 보고 대졸자들이 중소기업에서 일자리를 찾을 것 아닌가?
하도급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8% 수익 보장은 과연 현실성이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바로 대-중소기업간 불공정 하도급 문제다. 누군가 ‘우리나라에서 하도급 피해자는 많은데 가해자는 없다’고 하더라. 내가 보기에는 가해자도 없지만 피해자도 없는 것이 이 세계다. 피해자를 만나려 하면 다들 도망친다. 또 공정거래위원회가 있긴 하나 피해를 고발하는 순간 납품거래가 끊겨 사업은 끝장나게 된다. 언론에서도 하도급 불평등 문제는 거의 노출되지 않는다. 원청인 재벌 대기업들이 언론사에 광고를 주면서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인데 가해자도 피해자도 고발자도 없고 노출도 안되고 있는 것이 불평등 하도급 문제다.
 
‘99-88-8-88’로 가자!
그럼 정부와 대기업이 주창하고 있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은 구호에 불과한가?
대기업들은 환율, 원자재값이 오르면 그 비용을 그대로 중소기업에 떠넘기고 있다. 앞으로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은행세가 도입될 경우 은행들이 이 부담을 차입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들한테 떠넘길 것이라고 한다. 대기업이 부담을 떠넘기면 중소기업 1차 밴더(하청업체)는 이것을 2∼3차 밴더(재하청업체)로 또다시 전가하는 폭탄 돌리기(Buck Passing)를 한다. 비정규직이나 외국인노동자들은 이 폭탄돌리기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에서 억울하게 당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받은 폭탄을 돌릴 데가 없다.
공정거래법도 있지 않은가.
중소기업들이 부당 하도급 문제 때문에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면 정부는 불공정거래라는 본질적인 문제는 그대로 둔 채 돈을 풀어 중소기업을 지원·보호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불공정 질서는 놔둔 채 퍼주기식으로 중소기업 정책을 펴면서 근본문제를 덮고 있는 격이다. 대-중소기업간 공정거래질서가 확립되어야만 중소기업들이 혁신을 하고, 지식기반 기업으로 이행할 수 있다. 지금 글로벌 수준에서 대기업들 간의 경쟁은 서플라이 체인(supply chain·부품납품업체)의 경쟁 구도다. 즉 중소기업의 창의·혁신 기능을 대기업이 어떻게 자기 것으로 연결시키느냐가 경쟁력의 요체다. 그런데 한국의 대기업들은 중소 협력기업들의 창의·혁신 능력을 오히려 죽이고 있다.
국책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은 중소기업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혁신 역량이 없고, 장래성도 경쟁력도 없는 중소기업은 시장에서 도태돼야 한다는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생산성 없는 일자리를 만들어 고용 문제에 대응하고 있는 것을 보라. 차라리 거기에 쓰고 있는 돈을 투입해, 혁신 역량을 잃은 중소기업을 회생시킨다면 더 괜찮고 생산적인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 더구나 불공정 하도급관계는 내버려 둔 채 중소기업 정책자금 퍼주기만 해온 정부가 이제와서 중소기업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주장하는 건 무책임한 행동이다.
대기업이 성장해야 하도급 관계를 맺고 있는 중소기업도 성장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트리클 다운(trickle down·대기업이나 부유층이 성장하고 소득이 늘어 소비가 증가하면 중소기업과 중하위층도 성장하고 소득이 늘어난다는 것) 현상이 있긴 하다. 대기업이 시장에서 중소기업의 물건을 사주고 대기업의 기술이 중소기업에 흘러내려가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납품하는 물건 값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기술을 대기업에 빼앗기는 등 정반대의 ‘트리클 업’(trickle up) 현상이 더 크다. 트리클 업이 훨씬 더 큰, 왜곡된 질서에서는 중소기업의 창의·혁신이 일어날 수 없다. “대기업이 잘돼야 중소기업이 잘된다”는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긴 하나 이제는 “중소기업이 잘돼야 대기업이 잘된다”는 식으로 발상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중소기업은 한국경제의 허리다. 축구도 허리 싸움이라고 하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경제도 허리가 튼튼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서플라이 체인’이 얼마나 튼튼하냐가 세계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기업들간 경쟁의 핵심 원천이다.
 
축구도 경제도 허리가 튼튼해야
오랫동안 ‘납품단가 후려치기’에 익숙한 대기업들이 발상을 바꿀 수 있겠는지.
내가 아는 중소기업인이 이렇게 말하더라. 삼성과 LG에 납품하다가 제너럴일렉트릭(GE)으로 바꿨는데, 납품 첫해에 가격을 3배로 쳐주고 삼성전자에도 계속 물건을 팔아라고 하더라. 매출이 늘어 생산 단가가 떨어지면 GE에도 덕이 된다는 것이다. 또 GE 쪽이 앞으로 생산할 제품을 미리 보여주고 개발에 필요한 기술을 제공해 주겠다고 하더라. 이처럼 중소기업의 활력을 대기업이 활용하는 구조가 돼야 한다. 내가 잘은 모르지만 그렇게 성공한 것이 애플과 구글 아닌가? 중소기업들한테 마음껏 혁신을 해보라고 말하는 곳이 애플 아닌가. 수많은 협력 중소기업들에서 일어난 혁신의 결과들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완제품을 만드는 애플 등 대기업의 몫이다. 반면에 우리 대기업들은 수요독점 메커니즘을 통해 납품가격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중소기업이 새로운 혁신제품을 가져오면 기술자료를 내놓으라고 요구해 삼켜버리기도 한다. 기술을 빼앗기게 될 것을 뻔히 아는데 어떤 중소기업이 혁신에 나설 것인가?
중소기업은 정부로부터 정책적 지원을 받고 있는데…
사실 대기업에 빼앗길 것이 뻔하니 개발한 기술을 아예 중국에 팔아버리자는 생각까지 하는 게 중소기업의 현실이다. 혁신 제품을 개발했을 때 대기업이 원가자료를 내놓으라 하면 별 수 없이 보여줘야한다. 원가자료에 정부로부터 연구개발 정책 자금을 지원받은 항목이 있으면, 대기업은 이 부분을 원가에서 공제해버린 채 납품가격을 책정하기 일쑤다.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금이 사실상 대기업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격이다.
총장께서 요즘 ‘대기업-중소기업-대학-시장’ 사이에 지식이 흐르는 대운하를 뚫어야 한다고 주창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대기업의 경우 중소기업의 혁신 성과를 활용할 수 있어야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선진국을 따라잡는 캐치업(catch-up)경제였으나 이제는 어떻게 앞질러 갈 것인가가 과제다. 앞서 나가기 위한 핵심 역량은 창의와 혁신이다. 즉 ‘후발성의 이익’(경제발전이 뒤늦은 국가가 선진국의 발전모델에서 배워 더 빨리 경제성장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선발성의 이익’이 관건이다. 대기업은 최종 완성품을 조립하는 곳이고, 혁신은 근본적으로 중소기업이 담당해야 한다. 대기업이라도 중소기업의 혁신 역량을 잘 살리는 기업만이 앞서갈 수 있다. 그런데 대-중소기업 간에 공정한 거래질서가 확립되어야 이 바탕 위에서 중소기업에 지식이란 강물이 흐르게 될 것이고, 그 강물에서 혁신과 창의의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다. 앞서 말한 중소기업 8% 이익 보장이 이뤄지면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에 지식 대운하의 한가닥이 끈이 맺어지게 된다. 지식의 대운하를 만드는 것은 대기업에게 유리한 길이기도 하다.
대학과 중소기업간의 대운하는 어떻게 구축될 수 있는가?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전문인력을 대학이 전혀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2009년 국내 중소기업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전문인력이 3만6천여명에 이른다. 중소기업들은 외국에서 전문인력을 소싱하고 있고, 대기업의 경우 값싼 물건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기업으로부터 납품받고 있다. 만들어낼 물건을 팔아먹을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 중소기업의 현실이다. 사실 대학 졸업자는 물론이고 실업계 고졸자도 중소기업에 가려고 하지 않는 풍토다. 대학과 중소기업간에 산학협력이 일부 이뤄지고 있지만, 남녀가 서로 애정없이 단지 정부가 돈을 대주니까 데이트하고 있는 격이다. 덴마크에서는 대학과 중소기업이 일체를 이루고 있다. 오전에 학생들이 대학 실험실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오후에 곧바로 기업에 가 실습을 한다. 기업으로부터는 실습 대가로 장학금 성격의 돈을 받는다. 우리나라 중소기업과 대학의 협력관계도 덴마크처럼 진정한 애정을 갖고 서로 결혼하는 단계로 접어들어야 한다.
중소기업에 어느 정도 비전이 있어야 대학과 중소기업이 지식의 대운하로 연결될 수 있을 것 같다.
납품 중소기업에 적정한 수익을 보장해주는 공정거래 질서가 먼저 확립되어야 대학과 중소기업의 대운하 끈도 맺어질 수 있다. 임금도 낮고 작업환경도 열악한데 중소기업에 가라고 말해봤자 소용없다. 중소기업이 이익을 내면서 혁신을 할 수 있어야 일자리 문제도 해결된다. ‘중소기업-대학-대기업’간에 지식·혁신의 대운하가 시장에서 흘러야 중소기업에서 창의·혁신이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고, 그래야 벤처기업이 중소기업으로, 중소기업이 다시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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