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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재대결
[Scholars Column]
[17호] 2011년 09월 01일 (목) 로버트 스키델스키 economyinsight@hani.co.kr

로버트 스키델스키 Robert Skidelsky 영국 워릭대학 정치경제학 명예교수

1992년 92살에 사망한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는 한때 경쟁자보다 장수함으로써 결정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은 학자로 간주됐다. 하이에크가 누린 커다란 행운은, 케인스가 사망한 뒤 거의 50년 동안 생존해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을 극렬하게 지적으로 공격하던 경쟁자에게 사후 승리를 거둔 것이다.
하이에크가 추앙받던 시기는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중앙집중식 경제계획에 반대를 표명한 하이에크의 저서 <노예의 길>(1944)의 내용을 인용한 1980년대였다. 그러나 경제학에서는 최종적 결론이 있을 수 없다. 중앙집중식 경제개발의 총체적인 비효율성에 대항하면서 시장체계를 옹호한 하이에크의 논지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했지만, 시장체계에는 연속적인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케인스의 견해가 경제부처와 중앙은행 관계자 사이에서 지지를 받았다.

   
2008년 9월 파산 신청 당시 미국 대형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본사 모습. 이 은행의 파산으로 촉발된 세계경제 위기가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논쟁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1980년대 새롭게 조명받은 하이에크
다만, 그뒤 지난 25년 동안 주류 경제학을 지배한 시카고학파의 ‘합리적기대형성이론’에 의해 전통적인 이 두 가지 학설의 위상이 실추됐다. 이 이론에 따르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우발적 상황에 관한 완벽한 정보를 경제 당국이 가지고 있다면, 경제학 이론의 범위를 벗어난 사건이나 돌발상황의 결과를 제외하면 체계적 위기는 결코 발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세계 경제가 거의 붕괴 위기에 놓인 2007~2008년 상황이 벌어지자 ‘합리적기대형성이론’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물론 이 경제학을 옹호하는 수장들은 아직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케인스와 하이에크가 다시 사후 논쟁의 영역에 등장했다. 두 학자 간 논쟁의 핵심 쟁점은 1930년대 대공황에서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많이 변하지 않았다. 시장경제를 붕괴시키는 요인은 무엇인가? 시장 붕괴에 대한 올바른 대응은 무엇인가? 향후 시장 붕괴를 방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1930년대 초 하이에크, 그리고 오늘날 하이에크 추종자들의 판단에 의하면 ‘위기’는 저축보다 많은 투자에 의한 과도한 신용 확대에서 비롯된다. 은행들은 실제 예금주가 요구하는 것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을 실행함으로써 모든 종류의 투자 프로젝트에 일시적으로 이익이 발생한다.
그러나 그런 투자는 현재 소비액에 대한 경제주체의 미래의 실제 선호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투자를 충족시킬 저축을 마련할 수 없다. 다시 말해, 그런 투자는 중앙은행의 재정적 수혈이 있는 경우에만 지속된다. 그러나 시장 투자자들은 모든 투자 프로젝트의 완성에 충분한 저축액이 없다는 사실을 마침내 파악하게 된다. 이때 경제적 호황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모든 인위적인 경제적 호황에는 자멸의 원인이 잉태되어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친 뒤 다시 경기가 회복되려면 잘못된 투자가 감축되는 것과 함께, 소비가 감소하고 저축이 증대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케인스와 현재의 케인스 학설 지지자들은 이런 위기가 정반대의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들은 저축에 비해 투자액이 작아지는 것을 가장 주요한 요소로 꼽는다. 이때 소비 혹은 총수요가 완전고용을 달성하기에 부족한 상태가 되는데, 이것이 예상수익률을 붕괴시킨다고 본다.
이런 상황은 소비자가 돈을 빌리는 방법으로 한동안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과도하게 돈을 빌린 소비자가 소비를 줄이게 한다.
사실, 위기 발생 원인에 대한 케인스학파와 하이에크학파의 설명은 많이 다르지 않다. 두 이론은 모두 과도한 부채가 경기변동에서 핵심적 구실을 수행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이론이 도출한 결론은 서로 사뭇 다르다.

절약 강조한 하이에크, 소비 중요시한 케인스
하이에크가 주장한 회복 방법에 따르면, 과잉 투자를 제거하면서 소비자 저축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케인스의 경우 기업의 기대수익률을 유지하기 위해 과도한 저축 성향을 줄이고 소비를 늘려야 한다. 즉 하이에크는 절약을, 케인스는 소비를 더 중요시한다.
1930년대 케인스와의 논쟁에서 하이에크가 패배한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순전히 과잉된 부분을 제거하려는 정책 탓에 정치적으로 심각한 상황이 발생한 것은 아니다. 독일에서 이런 상황 때문에 히틀러가 정권을 쥔 것이다. 케인스가 지적한 것처럼 가정, 기업 및 정부 등 모든 당사자가 동시에 저축을 늘린다면 사람들이 저축하기에는 너무 가난하게 될 때까지 경제가 침체되는 상황을 막을 방법은 없다.
이것이 하이에크 주장에서 결함이었으며, 그에 따라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하이에크에 등을 돌리고 케인스의 ‘경기부양 정책’을 옹호하게 되었다. 경제학자 리오넬 로빈스가 회고한 것처럼, “오늘날 심각한 디플레이션에 직면한 상황에서 잘못된 투자를 줄이고 저축을 장려하는 주요 정책은 적합하지 않다. 이것은 마치 술에 취해 살얼음 낀 연못에 빠졌다 구출된 사람에게 ‘원래 당신의 잘못은 몸이 너무 뜨거웠던 것’이라며 담요와 자극제를 주지 않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

하이에크 이론에 현재 위기 대응법 안 보여
하이에크 이론의 광신자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2009년 전세계의 일사불란한 경기부양책 때문에 또 다른 대공황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은행을 구조하고 경기 관점에서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많은 정부가 지출한 비용 때문에 정부의 신용도가 떨어지거나 붕괴된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민간분야의 소비가 취약할 때 공공부문마저 지출을 줄인다면, 비록 경제 붕괴 같은 최악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더라도 몇 년간 불경기에 시달릴 것이라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정책은 변해야 한다. 유럽에서는 거의 희망이 없다. 진짜 문제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정책을 답습할 것인지 여부이다.
케인스 학설 지지자들은 거시경제 관리 방법을 강화해야 향후 그와 같은 심각한 위기를 방지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하이에크 학설 지지자들에게는 내세울 만한 방법이 없다. 과도한 신용 발생원으로 간주되는 중앙은행의 폐지처럼, 하이에크 학설 지지자들이 선호하는 치유책을 사용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심지어 중앙은행이 없는 경제에서는 낙관주의와 비관주의의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실수에서 비롯된 결과에 대한 무관심의 행태가 불량한 정치와 윤리이다.
하이에크는 자유의 철학가로서는 뛰어나지만 1930년대 케인스와의 논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다시 대결하더라도 패배할 것이 뻔하다.
ⓒ Project Syndicate·번역 이해동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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