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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괴롭히는 자본주의적 시장
[시장 들여다보기] 주식시장, 정보 그리고 권력
[17호] 2011년 09월 01일 (목) 조계완 economyinsight@hani.co.kr

조계완 부편집장

말년에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대결했던 조지프 슘페터는 일찍이 불황기에 할 수 있는 일은 불황이 끝날 때까지 진행되게 내버려두는 것밖에 없다고 했다. “회복은 그것이 스스로 찾아올 때만이 건전하다. 인위적인 자극에 의한 회복은 불황의 결과 중 일부를 그대로 남기며, 그 조정 불량의 소화되지 않은 찌꺼기에 의해 새로운 조정 불량이 추가된다. 그것은 결국 경제를 또 다른 위기로 몰아가게 된다.” 케인스주의적 재정·금융 정책을 동원해 불황을 빨리 극복하려면 오히려 불황을 더 깊게 하거나 또 다른 경기침체를 불러올 것이라고 설파한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수습에 투입한 재정이 결국 ‘국가 부채’라는 큰 문제를 초래하면서 미국 경제의 ‘더블딥’(경기가 반짝 상승한 후 다시 침체하는 현상) 우려를 키우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슘페터가 어느 정도 옳았던 것일까?

   
지난 8월5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뉴스 전광판에 “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했다”는 소식이 떠 있다.

S&P의 시장권력과 170조원의 증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으로 주식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강등 발표 직후 불과 닷새 동안 주가가 300포인트 떨어지면서 무려 170조원이 증발해버렸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가 1년 동안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해 만들어내는 총부가가치(GDP)가 약 1천조원이므로 전 국민이 두 달 이상 일해 만들어내는 가치가 한순간에 날아가버린 셈이다. 단순히 시장 패닉인가, 아니면 시장이 합리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인가? 미국이 국가 부채의 늪에 빠져 이제는 더 이상 추가적인 재정지출이 불가능해진 현실 진단, 이런 진단이 예고하는 질병, 즉 긴축재정에 따른 실물시장의 더블딥 우려가 투자자들에게 작용했을 것이다.
반면 실물시장과 무관하게(?) 어떤 이유로든 순전히 주식시장에서 터진 쇼크가 거꾸로 실물로 전이될 것이라는 생각도 시장 참가자들의 판단을 지배했을 것이다. 예컨대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S&P의 발표로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 그리고 전세계의 수많은 뮤추얼펀드와 민간 투자자들이 보유한 막대한 규모의 미 재무성 채권(국채)에서 엄청난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게 됐다. 즉, 신용등급 하락으로 미 국채의 리스크(채권금리)가 커짐에 따라 채권 가격은 떨어지게 마련이다(채권 가격은 채권금리의 역수다). 또 미국이 돈을 찍어서 채무를 이행할 경우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국채의 실질수익률은 떨어진다. 즉, 전세계 투자자들은 보유 중인 미 국채 가격이 떨어져 채권을 되팔 때 큰 손실을 입게 되고, 재산이 줄어듦에 따라 전세계적으로 소비 여력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각국 정부는 투자 손실에 따른 재정 악화를 만회하기 위해 장래에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여야 하고, 그래서 가처분소득이 또 줄어 상품 소비가 감퇴하게 된다. 결과는 자명하다. 반도체, 스마트폰, 빵, 라면 등 전세계 거의 모든 상품시장에서 물건이 안 팔리게 됨에 따라 기업들의 실적이 추락할 것이다. 결국 기업의 미래 가치를 반영하는 주식 가격은 폭락할 것이다. 미국이나 달러의 패권 몰락 같은 지구정치적 요인 때문에 주가가 폭락한 것이 아니라, 매우 합리적인 예상이 주가를 변동시킨다는 얘기다.
그런데 S&P는 신용등급 강등의 이유로 재정 적자 과다와, 부채상한선을 둘러싼 정치적 타협의 교착 상태 등을 들었다. 더블딥 우려는 S&P의 강등 조처 이후 전세계 주가가 폭락하면서 그 ‘뒷해석’으로 등장했을 뿐이다. 이제, 실물시장과 무관하게(!) S&P의 발표가 주식시장에 쇼크를 던졌고, 금융시장의 쇼크가 오히려 거꾸로 실물시장의 더블딥 공포를 만들어내면서 우리나라 국민이 두 달간 열심히 일해 만들어내는 가치를 허공에 날려버린 셈이 된다. 작은 꼬리가 거대한 실물 몸통을 뒤흔든 격이다. 실제로 전세계 주식시장이 폭락하는 와중에 S&P의 신용등급 강등을 비웃듯 미국 국채의 가격은 오히려 오르고 있다. 이는 사람들이 미 재무성 채권을 여전히 안전자산으로 여기고 있으며, 미국의 채무불이행이나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별로 없다는 시장의 평가다.
여기서 필자가 주목하는 건 ‘시장권력’이다. 전통적인 시장주의 옹호자들은, 시장에서는 그 어떤 개인이나 특정 집단·세력도 권력과 힘을 토대로 시장가격을 좌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시장을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의 세상’으로 그려내고, 나아가 “시장보다 더 좋은 제도는 인류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는 신념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현실에서 S&P라는 일개 신용평가회사가 전세계 기업들의 가격(그 본질 가치로서의 주가)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본질적으로 투자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리스크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신용평가회사는 막대한 권력을 휘두르고, 때로는 시장을 집어삼켜버리기도 한다.
 증권투자회사들은 흔히 “역사상 장기적으로 보면 다른 자산에 비해 주식의 수익률이 가장 높다”고 말한다. 시계열 지수 추세로 보면 옳은 말이다. 하지만 주식을 보유한 채 그대로 갖고 있을 때 그렇다는 것일 뿐, 실제로 장기적으로 보유해 높은 수익률을 낸 사람은 드물다. 케인스가 말했듯이 “장기에 우리는 모두 죽는다”. 그래프가 보여주는 것과 구체적인 실제 현실은 서로 다를 수 있다. 그 뒤편에는 깡통을 찬 수많은 개미들의 한숨과 탄식이 켜켜이 쌓여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한숨을 호도하면서 사람들을 주식시장으로 더 많이 끌어들이려고 주식수익률을 퍼뜨리는지도 모른다. 주식시장으로 더 많이 끌어들일수록 이미 주식을 보유한 사람들이 가진 주식 가격은 오르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증권회사들은  단순히 주식을 ‘중개하는’ 브로커가 아니라, 시장을 움직이는 파워를 가진 기업이다.   

주식시장, 정보, 그리고 시장 실패
   
지난 8월19일, 코스피가 장 개장과 동시에 급락했다.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
주식시장 자체가 ‘글러먹었다’는 뜻은 아니다. 주식시장과 은행은 돈을 직·간접적으로 조달하는 곳인데, 시장에서 돈을 빌리는 것이 나쁜 건 아니다. 다른 사람이 맡긴 돈을 빌려 기업의 생산에 투자해 더 많은 돈을 벌고, 또 돈을 더 필요로 하는 가계가 빌려 학자금이나 집을 구입하는 데 요긴하게 사용하면 좋은 것 아닌가. 이것이 금융중개 기능이다. 그러나 어떤 권력의 작용에 따라 주식시장 자체가 질식 상태에 빠져들면서, 또는 은행이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카드를 남발해 가계부채발 실물경제 위기를 초래한다. 
주식시장은 수많은 경제·정치·사회적 정보가 가장 효율적이고, 또 즉각적으로 종합 처리되는 곳이라고 흔히 말한다. 주가가 경제상황은 물론 사회·정치적 혼돈이나 안보 리스크까지 정확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시장이론은 가격만 쳐다보면 수요와 공급에 대한 모든 동향을 알 수 있으며, ‘모든’ 정보를 ‘누구나’, ‘즉각’ 그것도 ‘공짜로’ 얻을 수 있다고 가정한다. 내가 아는 정보를 경쟁자도 알고, 또 내가 안다는 사실조차 경쟁자도 안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노사 협상 등 교섭 게임에서 상대방의 전략을 모두 안다면 즉각 합리적인 균형에서 타협할 수 있을 것이다. 쓸데없이 교섭하는 데 시간과 비용을 들일 이유가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 노사는 상대방이 교섭 테이블에 제시하는 제안의 신빙성을 의심하게 마련이다. 이른바 ‘정보 비대칭’이다. 진짜로 양보할 수 있는 수준은 뒷주머니에 숨긴 채 노림수에 불과한 안을 제출하는지 확신할 수 없다. 결국 한 달, 1년… 질질 끄는 교섭은 점차 요구 수준의 차이를 좁혀가는 협상 과정이기보다는 상대방이 첫 교섭 때부터 감추고 있던 진정한 양보안이 무엇인지 확신을 갖고 파악해가는 절차일 뿐이다. 타결 시점에서는 상대방의 양보 가능한 수준을 높은 확률로 확인한 뒤 막판 몇 시간 만에 절충하는 건 아닐까? 물론 파업 기간이 길어질수록 회사 쪽은 생산 손실이 커지므로 애초에 마음속에 갖고 있던 진정한 양보 수준을 노조에 꺼내서 보여주게 될 것이다. 이렇듯 시장에서 정보는 부족하거나 비대칭적이고, 정보의 신뢰성을 판단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수반된다. 그런 점에서 시장은 실패하거나 적어도 효율적이지 않다.
어떤 섬에 어부가 있다. 그가 잡은 물고기 가격이 올랐다고 하자. 이 사실을 안 어부는 며칠 동안 더 많이 일해(노동공급) 더 많은 물고기를 잡을(생산)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물고기를 잡아 번 돈으로 사 먹은 빵 가격도 그만큼 올랐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는 이제 다음날부터 예전에 일하던 시간만큼만 물고기를 잡을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루카스가 말한 이른바 ‘섬의 어부’다. 가격 정보를 잠깐 착각할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시장의 생산량은 저절로 균형으로 되돌아간다는 얘기다. 주식시장 역시 충격이 왔을 때 공포가 팽배하면서 시장이 격렬하게 변동하겠지만, 결국 모든 정보가 모이고 사태가 파악되면 다시 정상적인 균형상태로 돌아가는 것일까? 정말로 그렇다면 왜 투자자들은 (충격 이전의 주가지수 수준은 아니겠지만) 적정한 균형상태 수준으로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투매해버리는 ‘비합리적’ 행동을 하는 것일까?
과연 시장에서 개인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단 한순간도 ‘이익을 극대화하는 합리적 선택’ 행동에서 이탈하지 않는 것일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게리 베커는 거지에게 돈을 주는 건 대부분 “(이타심이 아니라) 거지들의 불쾌한 겉모습이나 절절한 호소가 심적 불쾌감이나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덧붙여 <괴짜 경제학>으로 유명한 스티븐 레빗은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거지를 피하기 위해서라면 길을 건널지언정 거지에게 돈을 주기 위해 일부러 길을 건너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기부 역시 단지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합리적 선택일 뿐이란 얘기다. 그러나 또 다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은 “좀더 많은 (선택할) 자유가 항상 이롭다는 일반적 가정은 옳은가?”라고 물은 뒤 “때때로 더 많은 선택의 자유가 곤혹스럽고 당황스러운 상황을 만들어내거나 개인의 일생을 좀더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의사 결정에는 비용이 수반되므로 다른 사람이 세밀한 선택을 하는 동안 자신은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고 갈파했다.
시장주의자들은 “시장 실패는 좀체 일어나기 어렵고, 자본주의의 주어진 운명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나아가 1990년대 중반 ‘닷컴경제’(이른바 신경제)의 도래를 환호하면서 “이제 우리를 괴롭혀온 주기적 경기순환은 더 이상 없다”며 호황과 침체를 오가는 ‘경기순환의 끝’을 성급하게 외쳐댔다. 그러나 지금 찾아온 ‘더블딥’이란 용어는 말만 새로울 뿐 기나긴 불황의 다른 말에 불과하다. 역설적으로 불황과 시장의 실패는 ‘닷컴 경제’가 만들어내는 측면도 있다. 예컨대 닷컴이 만들어내는 기술 융합이 시장 실패의 전형적 사례인 ‘독점’을 더 강화하고 있다. 정보기술(IT)의 놀라운 진전은 간단한 인터넷 회원 가입 절차를 통해 마케팅을 위한 고객 정보 수집 비용을 거의 제로 수준으로 줄이고, 시·공간 거래 비용도 획기적으로 줄여줬다. 판매시장은 지역을 넘어 무한히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자고 나면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수많은 기업들이 날마다 부침하고 있다. 필름카메라 기업이 사라지고 디지털카메라 기업이 그 자리를 차지했으나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곧 디지털카메라 기업마저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그동안 여러 업종의 여러 기업이 벌어들인 돈이 이제 ‘융합독점’ 기업이라 할 수 있는 애플의 금고 속으로 한데 빨려들면서 기존 기업들은 판매 부진에 허덕이고 불황은 더 깊어진다.

선택할 자유와 자본주의적 시장
밀턴 프리드먼은 어디선가 “정치인들은 개인의 친구로서는 성실하고 정직하고 더없이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 그는 지킬 수 없는 거짓인 줄 알면서 뭔가를 약속하는 믿을 수 없는 부류다”라고 했다. 물론 원론적으로 시장과 상품은 자본주의에서만 존재한다. 시장도 그 이상적 형태는 좋은 제도일 수 있다. 그러나 프리드먼의 정치인처럼, 자본주의 경제에서 작동하는 시장은 우리를 괴롭히는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될 수 있다.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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