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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과 미국 더블딥 그 함수관계
[미디어 비평]
[17호] 2011년 09월 01일 (목) 이봉현 economyinsight@hani.co.kr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영국 타블로이드의 전화 도청과 미국발 경제쇼크’. 지난 7월과 8월에 세계인의 관심을 끈 이 두 사건은 언뜻 보기에 별 연관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땅을 조금 더 파보면 ‘두 나무’의 뿌리가 밀접하게 얽혔다는 걸 알 수 있다.
전화 도청은 <뉴스오브더월드>의 기자 몇 명이 취재 윤리를 저버린 행동을 해서 문제가 된 사건이라기보다는 선정적 기사를 위해서라면 불법도 서슴지 않는 상업언론의 문제를 드러낸 것이다. 또 미국발 경제위기는 보수 포퓰리즘을 극단화해 합의와 책임의 정치를 밀어낸 선정적 언론에 적잖은 책임이 있다. 모두 한 사회를 좌우할 만큼 웃자란 언론재벌이 문제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미국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낮춘 뒤 ‘정치적 리더십’ 약화를 강등의 주요한 근거로 들었다. 실제 미국의 민주·공화 양당과 오바마 행정부는 정부 부채 한도 증액을 놓고 몇 달간 벼랑 끝 대치를 했으나, 막판에 이들이 만들어낸 합의는 경제위기를 극복할 만한 비전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극단으로 치닫는 보수 포퓰리즘
그런데 정치적 리더십의 약화가 이번 한 번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처지에 따라 판단이 다르겠지만, 이는 극단으로 치닫는 보수 포퓰리즘과 영향력이 커진 언론재벌이 ‘2인3각’이 돼서 지난 3년간 미국의 정치문화와 관행을 갈아엎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번 부채 한도 증액 협상에서 공화당 내 강경파들은 “재정 적자는 감축하되 증세는 하지 말라”고 ‘몽니’를 부렸다. 미국 정부의 부채가 14조달러나 돼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책임을 따지자면 그중 8조달러는 공화당이 집권한 부시 행정부에서 물려받은 것이다. 오바마 정부에서 늘어난 것도 금융위기를 극복하느라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생긴 게 대부분이다.
더구나 경기회복이 불투명한 여건에서 정부 부채를 줄이겠다고 재정을 긴축하면 경기는 한층 얼어붙고 정부 부채는 오히려 더 늘어날 수 있다. 세금이 잘 걷히지 않고 재정으로 도와줄 곳은 많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장은 재정지출 규모를 유지하되, 증세로 점차 부채를 감축해나가는 게 순리다.
부시 행정부에서 시작돼 오바마 행정부까지 이어진 ‘부자 감세’ 같은 역진적인 조세정책의 결과, 미국 부자들에 대한 과세율은 지난 반세기 중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면 상·하위층의 소득 격차는 역사상 가장 심각했던 대공황 시기와 비슷하게 벌어졌다.
자신에게 엄격한 것이 미국 주류 보수의 미덕이라지만, 부자를 대변하는 공화당의 강경파는 절제와 타협의 전통을 잃어버리고 대결의 정치로 달려갔다. 이들은 재정 적자 감축만 외칠 뿐 증세에는 꿋꿋이 반대했다. 정치평론가 조지 몬비오는 지난 8월1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 기고에서 이번 적자 감축 합의를 ‘억만장자의 쿠데타’라고 불렀다.
이렇게 강경 분위기를 주도하는 의원들의 뒤에는 2009년부터 자생적으로 생겨난 풀뿌리 보수단체인 ‘티파티’(Tea Party)가 있었다. 하지만 티파티에 열성적으로 참가하는 미국 시민의 면면을 보면 부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상당수의 참가자들은 경기침체로 수입이 줄거나 직장을 잃은 서민이다.
이들은 가난한 사람에게 보험 혜택을 주겠다고 추진하는 오바마의 의료개혁을 반대한다. 부자의 세금을 줄이라 하고, 각종 복지 혜택을 감축하자는 의견에 동조하고 있다. 티파티에 열성적으로 참가하는 미국의 가난한 이들이 부자를 걱정해주는 ‘허위의식’에 사로잡혔다면, 그런 생각은 어디서 온 것일까? 미국의 보수는 어떻게 가난한 이들의 분노를 조직해 자신들의 이익에 반대되는 주장에 동조하도록 동원했을까? 이는 <폭스뉴스>를 비롯한 머독 계열 언론사의 활약을 빼놓고서 설명하기 어렵다.
미국에서 머독의 뉴스코퍼레이션이 소유한 지상파·케이블·지역 TV는 일정 시간 전국 시청자의 30% 정도를 장악할 만큼 막강한 전달력을 가졌다. 여기에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포스트> 같은 머독 계열 신문의 영향력까지 합치면 그의 미디어 제국은 미국 사회에서 유력한 정치적 실력자가 된다. 머독은 유력 정치인과의 친분과 로비를 통해 미디어 시장의 규제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려놓을 뿐 아니라, 매일매일의 보도와 오락을 통해 미국민의 생각과 정치적 선호의 밑그림을 그려준다. 이런 밑그림은 보통 보수적이며 전쟁을 지지하고, 친기업적 색채를 띤다. 머독 미디어의 공화당 편향성은 널리 알려져 ‘공화당의 입’이란 말까지 듣는다.

   
<폭스뉴스>의 극단적인 상업주의는 미국 보수의 우경화를 부추기고 있다. 미치 매코널 미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머독의 미디어가 대중을 사로잡고 그들의 생각을 지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대중이 듣고 싶어하는 얘기를 최대한 자극적이고 재미있게 들려준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폭스뉴스>는 대중의 감성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해 이를 교묘히 보수의 이념과 결부한다. 예를 들어 2008년 금융위기의 주범인 월가의 금융자본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작은 정부’ ‘재정 적자 감축’ ‘감세’ 같은 공화당의 정책에 대한 지지로 연결한다. 처음에는 부도를 낸 금융회사에 세금으로 조성된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싫었던 대중은, 나중에는 티파티 같은 곳에 나가 엉뚱하게도 복지나 경기회복에 재정을 쓰는 것조차 반대하는 ‘막무가내’ 보수가 된다.
<폭스뉴스>가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도 파격적이다. <폭스뉴스>가 주로 등장시키는 보수 논객은 지난 대선에서 미국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 같은 사람이다. 페일린은 대선 유세 과정에서 잦은 말실수로 ‘콘텐츠’ 부족을 노출했지만, 그가 방송에서 구사하는 자극적인 표현은 대중의 눈과 귀를 잡아끈다.

상업언론이 낳은 폭력
또 <폭스뉴스>의 토론은 공격적인 질문과 편파적인 진행, 원색적인 비난으로 점철된다. 예를 들어 정치적 쟁점을 놓고 토론할 때 의도적으로 공화당 지지자 3명과 민주당 지지자 1명을 맞붙여,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장면을 보여준다. 다른 언론이 의도적으로 양적 균형을 맞추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인기 토크쇼인 <오라일리 팩터>는 맘에 들지 않는 출연자에게는 거의 대답할 기회를 주지 않고 몰아치거나 ‘입 닥쳐’ 등 험한 말까지 내뱉는다. 머독의 미디어가 영국에서 실종된 소녀의 휴대전화에 부모가 남긴 메시지를 도청했던 것과 미국 <폭스뉴스>의 행태는 상업성과 선정성을 앞세워 저널리즘의 기본을 포기한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그럼에도 <폭스뉴스>의 시청률이 다른 방송보다 높게 나온다는 것이 미국 사회의 고민이다. <폭스뉴스>의 황금시간대(저녁 7~10시) 시청률은 압도적이다. <CNN> <MSNBC> 등 다른 방송의 점잖은 뉴스를 이미 멀찌감치 따돌렸다. 낮 시간에도 경기침체로 집에 머물고 있는 가장들은 TV 채널을 돌리다 험담이 난무하는 <폭스뉴스>에 시선을 고정한다. 이러다 보니 시청률에 일희일비하는 방송사들이 너도나도 <폭스뉴스>의 경박한 스타일을 모방하기 시작해 모든 방송의 ‘폭스화’가 되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폭스뉴스>는 이런 방송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과 ‘상업적 이익’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하지만 방송은 한 사회를 바꿔놓는다.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현대의 신문이나 텔레비전이 기존 질서가 허락한 통념만을 전하는 정치논리와 시청률 같은 경제논리에 종속돼 탈정치적이거나 대중선동적 정치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민주주의 발전을 위협하는 ‘상징적 폭력’ 기제가 되어간다”(<텔레비전에 대하여>, 동문선 펴냄)고 비판했다. 지난 30여 년간의 규제 완화 분위기에서 합병과 신문·방송 겸영 등을 통해 자라나 불법도 서슴지 않을 만큼 막강해진 언론재벌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우리는 지난여름 미국과 영국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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