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부편집장
　
‘용산역세권 개발 급물살’. 지난 7월13일 코레일이 서울 용산역 철도정비창 부지를 포함한 56만6800㎡을 개발하는 용산역세권개발사업 관련 기자회견을 연 다음날 한 경제신문이 뽑은 기사 제목이다. 기자회견 때 배포된 보도자료에는 ‘용산역세권개발사업 정상화 방안’이라고 쓰여 있었다.
총 31조원이 투입돼 ‘단군 이래 최대 역사(役事)’라 불리는 이 사업은 2007년 8월 시작됐다. 그러나 땅값 연체와 공사비 지급보증을 둘러싸고 땅 주인인 코레일과 출자회사들이 크고 작은 갈등을 빚는 바람에 4년여 동안 사업이 중단됐다. 이날 기자회견은 이 사업을 오는 9월부터 재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출자회사들의 사업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특혜성 조처가 무더기로 나왔다.

총 31조원이 투입되는 용산역세권개발사업 부지인 서울 용산역 철도정비창 전경. 2016년 이후에는 이땅에 국제업무단지가 들어설 계획이다(동그라미 안).

탈세 기업을 위한 특혜
이보다 하루 앞선 7월12일 국세청은 세금을 내지 않고 주식·현금을 증여·상속한 기업체 사주와 고액 자산가 204명을 적발했다. 이들은 주식을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관리하거나 해외 유령회사, 위장 이혼 등의 수법을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세청은 “악덕 기업주들의 편법 대물림을 뿌리 뽑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겉으로는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사건에는 한 가지 공통분모가 있다. 국내 관광업계의 선두주자이자, 롯데그룹의 방계회사로 분류되는 롯데관광개발(주)가 두 사건의 ‘주연 배우’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 회사의 사주인 김기병 회장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막내 매제다.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은 국세청에 수백억원대의 세금을 탈루한 혐의로 620억원을 추징당하고 검찰에 고발됐다. 그는 700억원대의 주식을 두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계열사 퇴직 임원 명의로 주식을 관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김 회장은 가짜 소송과 허위 서류까지 만들어가면서 세금을 탈루했다. 자기 주식을 퇴직 임원들 앞으로 명의신탁해놓고, 이 주식이 마치 20년 전부터 아들이 실제 소유주인 것처럼 주주명부를 꾸몄다. 국세청은 “죄질이 매우 나쁘다”며 김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에 배당돼 있다.

그런데 김 회장은 용산역세권개발사업에 참여한 30개 업체들이 출자해 만든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주)(이하 드림허브)의 대표로 있다(<그림> 참조). 롯데관광개발은 코레일(25%)에 이어 가장 많은 지분(15.10%)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페이퍼 컴퍼니’Tip&Tap인 드림허브의 자회사로 실제 시행사 역할을 하는 용산역세권개발(주)의 최대주주(70.10%)다. 증여세를 내야 할 두 아들 가운데 차남인 한준씨가 이 회사의 이사이자 경영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따라서 김 회장 일가는 용산역세권개발사업이 성공할 경우 출자사 가운데 가장 많은 이익을 보게 된다.
반면 김 회장이 부담해야 하는 리스크는 상대적으로 적다. 코레일이 사업을 정상화하겠다며 특혜성 조처를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레일은 지난해 삼성물산이 컨소시엄에서 탈퇴하자, 롯데관광개발을 비롯한 나머지 출자사들의 자금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국제업무단지에 들어설 랜드마크 빌딩을 4조1천억여원에 미리 사주기로 하는 파격적인 조처를 내놓았다. 이는 8조원에 이르는 땅값의 절반을 랜드마크 빌딩으로 대신 받겠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땅값 납부까지 연기해주는 등 마치 작심한 듯 선심을 쓰고 있다.
코레일이 내놓은 사업 정상화 방안을 보면, 코레일이 이 사업을 추진하는 목적이 뭔지 헷갈릴 정도다. 코레일은 애초 고속철 사업으로 인한 6조원의 부채를 청산하기 위해 이 사업을 추진했다. 따라서 8조원에 이르는 땅값만 제대로 받아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하지만 코레일은 애초 계약과 달리 랜드마크 빌딩을 미리 사주기로 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땅값을 4조원의 현금과 랜드마크 빌딩으로 받기로 한 것이다. 문제는 과연 랜드마크 빌딩이 실제 4조원의 가치가 있느냐다. 코레일은 이 빌딩이 완공되면 4조원 이상을 받고 다시 팔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근의 부동산 경기 추세를 볼 때, 재매각은커녕 분양이 제대로 이뤄질지도 의문이다. 특히 여의도와 상암동, 문정동 지역에 대규모 오피스 빌딩 단지가 들어설 계획이어서 랜드마크 빌딩이 완공될 시점에는 서울 지역에 사무실 공급 과잉 사태까지 우려된다.
코레일은 랜드마크 빌딩의 계약금 8320억원을 오는 9월과 내년 3월에 드림허브에 내기로 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드림허브로부터 올해 토지대금 8010억원을 받기로 돼 있는데, 그 돈으로 계약금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잔금(빌딩 대금의 80%)은 빌딩 준공 때 내는데, 이 돈은 드림허브에서 받을 땅값 3조9천억원으로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코레일이 받을 땅값의 절반은 고스란히 출자사들 주머니로 되돌아가는 셈이다.
코레일은 드림허브가 2012~2014년에 내야 하는 땅값 2조2천여억원을 2015년 이후로 연기해줬다. 땅값 8조원 가운데 지금까지 2조원을 납부한 드림허브는 이번 조처로 총 6천억원의 금융비용을 아낄 수 있다.
코레일은 드림허브의 최대주주(25%)다. 따라서 총 30조원에 이르는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데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여기에다 랜드마크 빌딩까지 떠안게 되면서 불필요한 리스크를 부담하게 됐다. 만약 사업이 실패하면 엄청난 손실을 피할 수 없다. 드림허브에 팔았던 땅까지 되사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부담은 고스란히 납세자들에게 전가된다.
반면 드림허브는 랜드마크 빌딩의 매출채권을 담보로 자산유동화증권을 발행해 사업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다. 출자사들은 굳이 제 지갑을 열지 않아도 된다. 이 때문에 코레일이 납세자들의 주머니를 담보로 대기업들의 배를 불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코레일의 전직 고위 임원은 “사업 조건이 업체들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변하고 있다”며 “코레일 경영진이 공기업의 책임과 의무를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구조조정 불가피하다면서 땅값은 왜 안 받나

김기병 롯데관광개발(주) 회장(오른쪽)과 허준영 코레일 사장이 2009년 10월 사업협약 변경에 합의한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허준영 코레일 사장은 2009년부터 5천여 명 감원을 목표로 한 구조조정을 밀어붙였다. 그는 “2010년까지 연간 6천억원인 영업적자 규모를 3천억원 수준으로 줄일 수 있고, 2012년에 1천억원 이상의 흑자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정도로 부채 문제가 심각하다고 떠들어댔던 그는, 6조원의 부채를 갚고도 남을 땅값을 제대로 받지 않고 출자사들에 특혜를 주는 이유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코레일은 용산역세권개발사업 이전부터 이미 롯데관광개발과 여러 사업을 추진했다. 코레일은 2004년 롯데관광개발과 함께 코레일관광개발을 설립했다. 현재 코레일이 지분 51%를, 롯데관광개발이 지분 39.2%를 갖고 있다.
롯데관광개발은 또 2005년 코레일과 KTX 관광레저(주)를 설립해 KTX 승객에게 무료로 나눠줄 무가지 발간 사업을 진행했다. 이 사업은 최종 시험판 인쇄까지 마치는 등 실행을 코앞에 두고 있다가 김 회장 쪽의 요청으로 갑자기 중단됐다.
업계에서는 김 회장이 코레일 소유의 역사 부지를 개발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 코레일 쪽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공을 들였다는 말도 나온다. 이에 대해 코레일 관계자는 “롯데관광개발은 삼성물산 컨소시엄 업체로서 참여한 것일 뿐, 이전 사업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코레일은 이 사업의 시행 주관사였다가 땅값 체납과 지급보증 등을 둘러싸고 코레일과 갈등 끝에 컨소시엄에서 탈퇴한 삼성물산에도 선심을 쓰고 있다. 코레일은 최근 2905억원 규모의 용산 철도기지창 토양오염원 처리 공사를 삼성물산에 맡겼다. 코레일은 “컨소시엄 탈퇴 전에 이미 삼성물산에 맡기기로 돼 있던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사업 환경이 불리해졌다고 판을 깨고 나간 업체의 몫까지 챙겨주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업계에서는 코레일이 랜드마크 빌딩 건설 공사에 삼성물산을 참여시키기 위해 선심을 베푼 것으로 본다. 이 사업의 시공사는 오는 9월에 선정된다. 그러나 삼성물산 관계자는 “지금까지 나온 것 외에 추가적인 조처가 있어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땅값을 아예 깎아주거나, 국제업무단지에 들어설 빌딩의 용적률을 높이는 등 ‘특혜’가 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출자사들은 주판알을 튕기는 여유를 즐기고 있지만, 삶의 터전이 개발 대상에 포함된 서부이촌동 주민들의 속은 타들어간다. 지난 8월11일 서부이촌동 대림아파트 정문 앞에서 만난 50대 여성은 용산역세권 통합개발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막 빠져나온 대림아파트 단지에는 ‘통합개발 결사반대’라고 적힌 소형 현수막이 단 한 채도 빠짐없이 발코니 난간에 걸려 있었다.
“저 현수막이 내걸렸다고 해서 모두 통합개발에 반대하는 건 아니에요.”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현수막과 자신을 번갈아 쳐다보는 기자를 이해한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개발에 찬성하는 주민들의 사랑방 구실을 하는 인근 사무실로 기자를 안내한 그는 메모지에 그림을 그려가며 개발이 불가피한 이유를 설명했다. 사무실 정면에는 개발이 끝난 뒤 들어설 용산 국제업무단지 조감도가 붙어 있었다.
코레일이 2006년 용산역세권개발사업을 처음 발표했을 때는, 이 아파트를 비롯한 서부이촌동 일대는 개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한강 르네상스 사업’을 추진하고 있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코레일에 이 지역을 함께 개발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코레일 사장이던 이철 전 의원은 “입주한 지 얼마 안 된 아파트를 허물고 새로 개발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데도, 오 시장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고 회고했다. 결국 코레일은 2007년 8월 이 지역을 포함한 56만6800㎡의 광활한 땅을 개발하는 사업계획을 최종 확정했다.
하지만 사업자로 선정된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2009년 3월 8조원에 이르는 땅값의 중도금 4027억원을 체납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2008년 발생한 미국발 금융위기와 부동산 경기 침체로 프로젝트파이낸싱(자금을 빌리는 사람의 신용도나 다른 담보 대신 사업계획의 수익성을 보고 자금을 제공하는 것)에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부동산 경기가 최고조에 달한 2006~ 2007년 상황을 토대로 마련된 이 사업에 상당한 거품이 끼어 있음을 확인한 금융권은 돈줄을 끊어버렸다. 삼성물산을 비롯한 30개 출자사들은 위기를 느꼈다. 부동산 경기가 전혀 딴판으로 변했는데, 과연 땅값 8조원을 상쇄하고도 남을 이익을 낼 수 있을까. 결국 삼성물산은 2010년 코레일의 땅값 지급보증 요구를 거절하면서 코레일과 갈등을 빚다 컨소시엄에서 탈퇴했다.

주민들 “우린 철새처럼 쫓겨날 운명”

용산역세권 통합개발을 반대하는 대형 현수막이 내걸린 서울 서부이촌동 대림아파트.

사업 파행으로 인한 피해는 온전히 주민들의 몫이었다. 통합개발 계획 발표 뒤 이 지역의 땅값이 천정부지로 뛰자, 서울시는 2007년 8월 이곳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이로 인해 부동산 거래가 완전히 끊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업 중단 사태까지 발생해 부동산 시세는 곤두박질쳤다. 대출을 끼고 아파트를 구입한 주민들이 특히 큰 타격을 받았다. 이들은 땅값 보상 등이 만족스럽게 이뤄지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한다.
처음부터 개발에 반대했던 주민들은 개발 뒤 들어설 국제업무단지가 자신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라고 생각한다. 여느 재개발 사업과 마찬가지로 시행사의 땅값 보상은 새 아파트에 입주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라는 게 그 이유다. 결국 대다수 주민들은 한강 야경이 일품인 이곳에서 쫓겨나고 말 것이다. 마치 계속되는 한강 개발로 쉼터를 점점 잃고 있는 철새처럼.
cjlee@hani.co.kr

Tip&Tap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
특정 프로젝트를 위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로, 실제 영업활동은 자회사를 통해 한다. 법적으로 엄연히 자격을 갖추고 있어 유령회사와는 다르다. 해당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대개 자동적으로 해체된다.

추징금은 제대로 냈을까
김기병 사주 일가의 탈세 수법
김기병 회장 일가의 차명 주식이 드러난 것은 2008년 롯데관광개발(주)의 두 전직 임원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이 계기가 됐다. 이들은 회사를 떠난 지 18년째 되는 2006년, 각자 집으로 배달된 우편물을 받고 깜짝 놀랐다. 롯데관광개발 보유 주식 현황과 주주명부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의 주식 수다. 둘이 합해 185만5천 주(18.55%)였다. 당시 주가로 환산하면 총 735억원어치에 달했다.
이들은 회사 쪽에 주주명부에서 삭제해달라고 요청했으나, 회사는 2년 동안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만약 나중에 실제 소유자에게 반환하더라도, 이 주식이 자신들 소유가 아니었음을 증명하지 못하면 거액의 증여세를 내야 하는 처지였다. 불안에 떨던 이들은 결국 직접 수소문 끝에 이 주식의 실제 소유자가 김 회장의 두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들은 지체 없이 회사를 상대로 ‘주주지위 부존재 확인 및 명의개서 이행청구’ 소송을 냈다. 소송이 제기되자 김 회장은 모든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국세청이 부과한 620억원의 추징금 납부 기한은 지난 7월30일이었다. 이 돈을 내야 할 책임은 일차적으로 두 아들에게 있다. 만약 기한 내에 납부하지 않으면 바로 재산이 압류된다. 또 처음 한 달 동안에는 5%, 이후에는 매달 1%의 가산이자가 붙는다.
이처럼 추징금 미납 때 져야 할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국세청 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내더라도 일단 추징금은 납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롯데관광개발 쪽은 <이코노미 인사이트>의 확인 요청을 “사주의 프라이버시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국세청이다. 국세청도 “납세자의 프라이버시라 공개할 수 없다”며 확인 요청을 거부했다. 그렇다면 애초 탈세 사실도 공개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