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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참여재정’, 부자증세 견인차로
[Special ReportⅡ] 복지 논쟁
[17호] 2011년 09월 01일 (목) 오건호 economyinsight@hani.co.kr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지금 대한민국이 복지국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복지국가 담론은 우리 시대의 화두를 ‘경쟁과 성공’에서 ‘연대와 공존’으로 바꿔간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역사에서 획기적인 일이다. 현재 복지국가를 둘러싼 뜨거운 논점은 ‘돈’, 과연 ‘복지국가 재정을 마련할 수 있느냐’이다. 누구는 우리나라가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고 하고, 또 누구는 돈은 있으나 조세 저항이 커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내 답은 이렇다. “우리나라에는 복지국가를 이룰 충분한 재원이 있다. 지금 절실한 것은 국민의 동의를 이끄는 적극적인 증세정치다.”

돈은 있다!
   
 
올해 우리나라가 지출하는 복지재정 규모는 대략 국내총생산(GDP) 대비 9%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복지지출(GDP 19%대)에 비해 무려 약 10%포인트, 현재 가격으로 약 130조원이 부족하다. 우리나라에는 정말 복지에 사용할 돈이 없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재정지출 개혁을 통해 일부 복지 재원을 충당할 수 있다. 낭비되는 토목지출, 필요 이상의 국방비, 대기업에 제공되는 세금 감면 등에 대한 수술이 필요하다.
또 돈은 있다. 공공복지가 아니라 시장복지로 사용되는 돈이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이 가입자와 정부로부터 조성한 건강보험 재정이 약 34조원이다. 보험의료학계 자료에 따르면, 2008년 민간의료보험의 보험료 수입도 33조원에 이른다. 이미 우리는 국민건강보험에 내는 돈만큼을 민간의료보험에 내고 있다.
노후 대비 비용은 더 심각한다. 올해 국민연금공단은 노사 몫을 합해 총 26조원의 연금보험료를 거두었으나, 민간 생명보험회사들의 보험료 수입은 무려 90조원에 육박한다. 국민이 국민연금에 납부하는 것보다 3배 이상의 돈을 시장연금에 내고 있다. 소득재분배 효과도 없고, 주주이윤과 광고비로 인해 거품이 가득한 것이 민간보험이다. 이 재원만 공공복지로 전환된다면 우리나라도 복지국가를 구현할 수 있다. 결국 보편복지를 위한 재정 확충은 돈을 새로 만들어내는 경제력이 아니라, 낭비되는 재정지출과 시장복지로 사용되는 돈을 공공복지로 전환하는 정치력에 달려 있다.
그런데 공공복지 재정이 늘어나는 경로는 세금과 사회보험료인데, 현실에선 조세 저항이 상당히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소득세와 사회보험료의 경우, OECD 평균에 비해 두 세금이 부족한 세입 규모가 GDP의 9%, 금액으로 100조원이 넘는다. 우리가 소득세와 사회보험료만 다른 나라만큼 낸다면 사실상 필요한 복지재정을 거의 충당할 수 있다.
보통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복지재정 방안을 두고 ‘지출개혁론’과 ‘증세론’으로 양분된 듯하지만, 복지국가를 실현하려면 양자 모두 필요하다. 재정지출 개혁을 통해 마련되는 돈만으로는 근래 민심이 요청하는 보편복지를 실현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재정 전략’을 짜듯이, 이제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세력들도 종합적인 복지재정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여기에는 필요한 복지재정 규모, 조달 원칙, 실행 방안 등이 담길 것이다.
복지지출 목표는 어느 수준으로 정할까? 앞으로 두 차례 ‘5개년 복지국가재정확충계획’(<표> 참조)을 통해 향후 10년간 복지지출을 OECD 평균 수준으로 올리는 것은 어떨까? 우리나라에 부족한 복지지출 규모가 GDP의 약 10%, 약 130조원이므로, 절반을 차기 5년에 달성한다고 하면 향후 5년 내 확충 목표액은 연 65조원이다. 참고로, 이 금액은 현재 진보정당들이 제기하는 복지 확충 규모와 엇비슷한 수준이다.
내가 생각하는 65조원 확보방안은 다음과 같다. 먼저 재정지출 영역에서 토목 12조원, 국방비 3조원, 국민연금 급여 자연 증가분 7조원 등 재정지출 개혁을 통해 총 20조원을 마련한다. 이는 현재 약 40조원의 토목지출 중 4분의 1을, 약 30조원의 국방지출에서 10%를 줄인 금액이다. 조세 영역에서는 대기업에 집중되는 비과세 감면 폐지로 5조원, 보유세 등 자산세제 개혁으로 5조원 등 약 10조원을 확보한다. 그래도 여전히 35조원이 부족하다. 이를 어떻게 충당할까? 결국 보편복지를 이야기하는 세력에게 적극적인 증세는 불가피한 과제로 대두된다.

   
지난 7월 민주노총과 참여연대 등 전국 389개 노동민중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서울 한국언론재단에서 ‘복지국가실현연석회의’ 발족식을 열고 있다.

복지재정 전략을 마련하자
지금까지 진보 진영에 익숙한 논리는 부자와 대기업, 정부가 내라는 ‘부유세 방식’이었다. 이런 선언적 방식으로는 재정 방안의 현실성도, 보편복지를 바라는 시민들을 복지국가 운동의 주체로 호명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참여재정’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재정확충운동을 제안한다. 참여재정운동이 지닌 3대 증세 원칙은 <그림>과 같다.
첫째, ‘복지증세’하라. 복지지출 목적으로 한정된 증세를 하자. 우리나라는, 재정지출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감안할 때, 세입과 복지지출을 결합하는 복지증세가 효과적이다. 일반적으로 사회보장세(사회복지세), 사회보험료 등이 지출 목표가 복지로 정해진 복지목적세다.
둘째, ‘보편증세’하라. 근래 부상하는 보편복지 흐름에 맞춰, 되도록 많은 사람이 증세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보편증세를 강조하는 이유는, 증세 활동을 통해 일반 시민들이 복지운동의 주체로 나서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중간 계층이 복지 재원 마련에 참여하면서 부자들에게 더 많은 책임을 이행하도록 하는 주체로 성장해야 한다.
셋째, ‘부자증세’하라. 복지 재원은 소득재분배 효과가 극대화되도록 상위 계층이 실질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즉 과세 대상에서는 되도록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보편증세를 추구하되, 복지재원의 계층적 성격에서는 상위 계층의 책임성이 분명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부자증세는 보편증세와 조응할 수 있는 원칙이다.
3대 증세 원칙에 따라 나는 ‘복지지출 목적과 연계된 사회복지세 도입’(20조원), ‘국민건강보험료 상향’(15조원) 등 총 연 35조원의 복지재정 충당 방안을 제안한다. 사회복지세는 지출 용도가 복지로 정해진 복지목적세다. 근래 시민사회 진영의 증세 방안 논의를 보면, 소득세·법인세·보유세·주식양도차익과세 등 갖가지 세목이 등장한다. 이런 ‘병렬적 종합’은 조세개혁 보고서에는 어울리겠지만, 복지재정 확충을 위한 사회운동 의제로는 적합하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복지국가 재정이 곧 마련되겠구나’ 느낄 수 있는, 그래서 이것을 중심으로 대중적 증세운동(입법운동 등)이 전개될 수 있는 상징적 세목이다. 사회복지세는 기존 세목들을 과세 대상으로 삼는 단일 세목이어서 대중적 증세운동을 위한 상징적 의제가 될 수 있다.

“우리가 더 낼 테니, 국가와 기업도 책임을 더 져라”
내가 제시하는 사회복지세는 현행 국세 중 직접세인 소득세·법인세·종합부동산세·상속증여세와 주로 고가품에 부과하는 개별소비세 등의 세액에 10~30%의 누진율을 적용하는 부가세(Surtax)로서 복지증세·보편증세·부자증세의 3대 원칙이 적용된다. 사회복지세 세입이 모두 복지에 사용되고, 전체 경제활동인구 중 직접세를 내는 전체 60%가 참여하며(면세자 40%는 사회복지세 적용 제외), 직접세액에 다시 누진율을 가진 사회복지세가 부과되므로 조성되는 세입은 대부분 상위 계층의 몫이다. 사회복지세에 따르면, 근로소득 연 2천만원의 면세자는 사회복지세를 내지 않고, 연봉 3400만원의 근로소득자는 월 3천원을, 연봉 1억2천만원의 고소득자는 월 28만원을 내게 된다(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복지국가 담론과 복지재정 전략’, 사회공공연구소 연구보고서 참조).
국민건강보험료를 통한 무상의료 재정 확충 방안도 3대 증세 원칙이 적용된다. 이는 1인당 1만1천원의 국민건강보험료를 더 내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방안에서 나왔다. 가입자·기업·정부가 지금보다 약 30%씩 더 내고 피부양자 등의 국민건강보험료 체계를 정비해 연 15조원을 마련한다.
이 돈은 모두 국민건강보험 급여 확대에 사용되므로 복지증세이고, 기존에 국가와 기업에 ‘무상의료 재정을 책임지라’는 방식에서 가입자가 ‘보험료를 더 낼 테니 그만큼 국가와 기업도 책임을 더 지라’고 요구하는 보편증세다. 그럼에도 추가로 마련되는 국민건강보험 수입 대부분이 상위 계층과 기업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부자증세 성격을 지닌다. 국민건강보험료 인상 방식이 부자증세 효과를 낳는 이유는 국민건강보험료가 소득별 정률 구조와 기업·정부의 동반 부담 구조를 지니기 때문이다. 즉 가입자 1인당 평균 1만1천원의 실제 내용은 가입자 소득에 따라 3천원에서 수십만원에 이른다. 여기에 기업의 부담액(직장가입자와 동일한 금액)과 국고지원액(전체 보험료 수입의 20%)이 더해지므로 결국 추가 재정의 80%를 상위 30% 계층과 기업, 정부가 부담한다.
참여재정 방식은 부자들에게만 ‘내라!’고 요구하는 것을 넘어 보편복지를 바라는 다수 시민들도 복지재정 확충에 참여하는 ‘내자!(낼 테니 내라)’ 운동을 의미한다. 이때 사회복지세와 국민건강보험료는, 모두 복지국가를 실현하는 핵심 조세라는 점에서 ‘복지국가세’로 불릴 수 있다.
기존 부유세 방식이 아닌 참여재정 방식의 복지국가 증세에 주목하는 이유는, 복지재정 확충 과정에서 대중적 복지 주체 형성의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일반 시민들이 재원 마련 참여를 통해 복지국가 논의에서 ‘관람자’(Observer)에서 ‘행위자’(Actor)로 자신의 역할을 전환하고, 여기서 마련된 자긍심을 바탕으로 부자들을 압박하는 에너지를 만들어가야 한다. 서구의 역사에서 확인되듯이, 복지국가 건설은 강력한 대중적 복지 주체를 필요로 한다. 참여재정 방식의 복지재정 전략을 통해 보수세력의 ‘재정건전성, 세금폭탄’ 논리에 대항하고, 이 과정에서 복지국가 건설을 자신의 과제로 여기는 대중 주체가 세력화하기를 바란다.
mrok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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