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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기술은 ‘위기의 지구’ 구할 수 있을까?
[Special ReportⅠ] 미래를 바꿀 8가지 기술
[17호] 2011년 09월 01일 (목) 토마스 피셔만 외 economyinsight@hani.co.kr

토마스 피셔만 Thomas Fischermann <디 차이트> 기자
게로 폰 란도 Gero von Randow <디 차이트> 기자

몰락한 문화로부터 우리는 경이롭게 보이는 기술에서 어떤 것에 주목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이르 요론트(Yir-Yoront) 문화가 종말을 맞이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자.
이르 요론트 문화는 지난 세기까지도 석기시대의 세계를 유지했고, 그들의 주된 도구는 잘 다듬은 돌도끼였다. 1915년 영국 성공회가 그들 근처에 선교회를 세웠고, 원주민에게 조금 더 나은 삶을 선사하기 위해 쇠로 된 도끼를 선물했다. 그것도 꽤 많은 양을 말이다. 그로부터 몇십 년이 지나자 이르 요론트 사회는 붕괴해버렸다.

쇠도끼 공급하자 몰락한 공동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이르 요론트가 사는 곳에는 적당한 돌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돌도끼의 날 달린 부분을 스스로 생산할 수 없어 다른 곳에서 들여와야 했다. 먼 곳에 있는 돌 파는 상인들과의 교역 과정은 복잡했고, 전적으로 남자들이 담당했다. 돌도끼가 모자랐기 때문에 돌도끼를 소유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줘야 했다. 가까운 친척이 우선권을 가졌고, 돌도끼를 빌려주고 빌리는 행위 속에 정교한 사회체계가 생겨났다. 하지만 쇠도끼가 나타나자 달라졌다. 단번에 사회의 위계질서가 흔들렸다. 동생은 더 이상 돌도끼를 빌리러 형에게 가지 않아도 되었고, 여자와 아이들도 도끼를 소유하게 되었다. 이르 요론트 문화는 혼돈에 빠졌고, 필사적으로 새로운 방향을 찾으려 했다. 어떤 이들은 선교사들에게서 치약을 훔쳐 치약 숭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생산이 저하됐다. 이들은 축제 동안 돌도끼에 쓰일 돌을 거래했는데, 축제도 쇠도끼가 대량 유입되고 나서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다.
이르 요론트 이야기가 가르쳐주는 바는 기술이 단지 유형의 것(물질적인 것)들로만 이뤄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기술은 물질적인 것과 사회적 관계, 아이디어, 개념으로 이루어진 복합체다. 문화 자체도 그러하다. 이것은 석기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도 다를 바 없다. 새로운 도구가 도입되거나 새로운 기계가 세상에 나타나는 것이 발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세상을 더욱 나쁘게 만들 수도 있다. 그것은 어느 순간에 어떤 상황에서 새로운 기술이 한 사회로 흘러 들어가는지에 달려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새 기술로 무엇을 하기 시작하는지에 달려 있다.
이제 곧 새로운 기술이 우리 앞에 나타날 것임은 분명하다. 하룻밤 사이에 독일 정부가 원자력발전소를 폐지하기로 결정한 것은 다른 기술들이 원자력을 대체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가령 이런 기술들이 그 ‘성공’의 일부분을 이룰 것이다. 바다에 설치된 풍력발전기, 바이오연료, 에너지 절감 기술, ‘스마트’한 전선망, 노르웨이에 설치된 수력전기 저장기, 아프리카 사막에 설치될 거대한 태양열판 등. 기술의 막대한 힘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이뤄지지 않을 일들이다.
2011년 기술에 대한 낙관주의는 이전 세기와는 확실히 다르다. 예를 들어 1851년 영국 런던에 수정궁(Crystal Palace)이 세계에 공개되고 새로운 기술들이 최초의 세계박람회에서 전시됐을 때, 사람들은 세계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사람들은 기술을 지배하고 기술이 그들의 삶을 풍족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곳곳에서 위기 신호 보내는 지구
과거와 달리 우리는 이제 새로운 기술이 최악의 경우만은 피해주기를 바란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눈을 돌리는 데마다 세계는 ‘비상 신호’를 보내고 있다. 비상사태 첫 번째는 환경이다. 지금과 같이 소비를 계속하고 더 많이 여행하고 경제활동을 한다면, 우리 삶의 터전은 파괴될 것이다.
비상사태 두 번째는 빈곤에서 탈출하려는 움직임이다. 빈곤에서 벗어나는 데는 ‘급격한 성장’이라는 단 하나의 탈출구가 있다. 중국과 브라질, 인도 등 과거 가난했던 나라들이 놀랄 만큼 빨리 성장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렇지 못할 경우 빈곤은 전쟁을 불러오고, 가난한 나라에서 잘사는 나라로의 대규모 인구 이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런 일들의 결과는 예측할 수 없고, 우리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런 나라들이 서구 국가들과 똑같은 경제활동을 한다면 지구의 자원은 금방 고갈될 것이다. 지구에는 충분한 기름도 광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60억 인구가 혹독한 산업사회에서 힘들게 일한 다음 쉬러 갈 휴양지도 충분하지 않다.
비상사태 세 번째는 인구구조다. 서구사회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서도 전체 인구상에서 노년인구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노년층도 먹고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할 수 있는 나이의 사람들은 그들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압박을 받고 있다. 꾸준히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려면 기술혁신이 필요하다. 혹은 은퇴자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와 단지 3~4년을 더 버티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들은 건강해야 한다. 약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까?
다음을 보자. 어떤 필요는 그에 적합한 새로운 기술이 태어나도록 한다는 게 절대적 법칙이다. 현재 ‘세 가지 비상사태’에 대한 대답으로서 제기되는 몇 가지 기술적인 사항을 소개하려 한다. 태양열 비행기와 에너지를 절약하는 대중교통, 유전자변형 식물, 환경보호에 도움이 되는 재활용 기술, 나이 들어서도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브레인 도핑(두뇌 약물) 등. 대단히 매력적인 아이디어들이다. 이런 아이디어들이 현실화될 때 진실로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기술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이르 요론트에 대해 살펴보았다. 기술의 물질적인 면을 믿으면 안 된다.
요즘 가장 많이 토론되는 기술은 에너지 기술이다. 독일은 더 이상 원자핵에너지 사용을 원하지 않고, 이산화탄소를 더 배출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이것이 독일 국민이 바라는 바이고, 베를린에서 결정한 바이다.

   
 
어떤 미래 에너지도 아껴 쓰는 마음 없인 ‘실패’
하지만 우리가 원자력이 아니라 친환경적 에너지원으로 에너지 필요량을 충족할 수 있는지 여부는, 엔지니어와 기업들이 머릿속에 떠올리는 아이디어에만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얼마만큼 많은 돈을 이런 기술에 투자하는지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것들은 주된 요건이 아니다. 만약 미래에 친환경적 에너지를 아끼지 않고 지금처럼 마구 써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향한 잘못된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미래의 친환경적 에너지를 쓰면서 ‘엔지니어들의 발명 덕분에 에너지가 넘쳐나는구나’라고 생각한다면 위험한 난센스다.
아시아에 집중된 태양열판 생산은 아시아의 자연환경에 독소를 배출하고 있다. 새로운 풍력발전기를 설치하려는 긴급 계획은 모든 건설 붐이 그러하듯 환경과 건강에 해를 끼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우리가 절약하지 않는다면 에너지 필요량을 채우기 위해 불가피하게 석탄발전소가 재가동돼야 할 것이다. 그러면 독일에서 ‘원자력발전소 탈출’이라는 아름다운 계획은 허구에 지나지 않게 된다.
가정과 사무실, 거리에서도 근본적인 에너지 절약이 이뤄져야 한다. 사람들은 이를 배워야 한다. 새로운 에너지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기술적인 게 아니라 교육적인 것이다. 정치·경제·시민사회, 그리고 미디어와 교육기관에서도 하나의 도전이 될 것이다. 사람들이 에너지를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나타난다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일이 될 것이다.
배움과 발명 사이에는 피드백이 존재한다. 좀더 낫게 살아보려는 사회에는 기술에 대한 새로운 요구가 있다. 기술은 새로운 것을 발명한다. 몇십 년 안에 우리는 에너지 생산, 에너지 효율 그리고 원자재 부족에 대해 현재와는 다른 것을 말할 텐데, 그것은 발명가와 엔지니어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졌고 사회가 그 아이디어를 유용하게 사용했기 때문일 게다.
당연히 우리는 언제, 어떻게, 무엇이 나타날지 예측할 수 없다. 우연이고 ‘서프라이즈’이다. 18세기 후반 한 스코틀랜드 사람이 증기기관을 개선해보겠다고 어설프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제임스 와트가 응축기를 분리하는 데 성공하자 증기기관 성능은 3배나 증가했다. 이것은 산업혁명 시대의 막을 열었다. 금속공학과 자본, 그리고 수많은 노동자까지 모든 게 준비됐기에 증기기관이 개선되자 산업혁명은 급진전됐다.
그다음에 등장한 발전 추진력도 이와 비슷했다. 1942년 미국인 새뮤얼 루벤은 미니 수은전지를 발명했다. 이것은 처음에는 군대의 라디오에, 다음에는 보청기와 시계에 사용됐다. 6년 뒤 윌리엄 쇼클리는 처음으로 제대로 작동하는 트랜지스터를 만들어냈다. 이 두 가지 기술이 갖춰지자 유인우주선 개발이 가능해졌고, TV가 만들어졌다. 이후에는 컴퓨터 시대가 열렸다. 처음 기술을 창안한 사람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기술은 많은 것을 만들어냈다. 최초 발명자가 생각해낸 게 전부가 아닌 것이다.
이런 예측불허의 일들이 기술의 역사에서는 일반적이다. 사람들이 세우는 계획에서는 단조롭고 단계적인 기술적 발전만이 설정된다. 무기 개발이라든지, 달착륙같이 명백한 프로젝트라든지, 제약업체에서 새로운 약을 개발하기 위해 화학적 결합을 하나하나 실험하는 과정 같은 것에서 때때로 계획한 대로의 단계적 발전이 일어난다. 하지만 진실로 기술발전에서 큰 전환이 되는 것은 사람들이 계획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새로운 물질은 어느 순간 한 실험실에서 나타난다. 혹은 새로운 소프트웨어 기술이 그럴지도 모른다. 경이로운 기술은 대부분 기대하지 않던 곳에서 나타난다.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등장하는 신기술
종종 기술이 기대하지 않은 곳에 쓰이는 것도 혁신을 만들어낸다. 최초의 현미경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물건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후 과학에서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페이스북은 사람들의 만남의 장으로 고안됐지만 튀니지에서는 혁명의 도구로 사용됐다. 많은 경우에 기술은 장난스럽게 쓰이기도 한다. 1980년대에 개인용 컴퓨터가 끔찍하게 윙윙거리는 플로피디스크를 장착하고 나타났을 때, 괴짜 컴퓨터광들은 이 듣기 싫은 플로피디스크의 소음을 프로그램으로 조정해 드라이버에서 소음 대신 비틀스의 <내가 예순넷이 되면>(When I’m Sixsty-four)이 나오도록 만들었다. 작은 예이지만 여기서 배우는 바는 크다. 즉, ‘사용자의 상상력은 기술자의 상상력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휴대전화 문자 기능 발명도 그 한 가지 예다. 휴대전화의 문자 기능은 원래 기술자들에게서는 조정 시그널 정도로 인식됐으나, 오늘날 이 기능은 전화를 거는 기능보다 중요해졌다. 또한 미국 하버드대학 경제학자인 로버트 젠슨의 한 연구그룹이 2007년 발견한 바에 따르면, 남인도해 연안 어부들이 휴대전화 덕분에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들은 휴대전화로 배 위에서 어부들끼리 연락해, 육지에서 그들이 잡은 물고기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양과 가격을 흥정했다. 이는 새롭게 발명된 것이 아니다. 다만 엔지니어들은 이렇게 기술이 이용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뿐이다. 사용자인 어부들이 자신들의 처지에서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휴대전화가 어부들에게는 경이로운 기술이다. 그들은 이 기술을 통해 이르 요론트보다 행복해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술에 대해 낙관적일 수 있다. 경이로운 일은 항상 새로 생긴다.
ⓒ Die Zeit·번역 이상익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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