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미국의 달러 패권이 흔들리면서 중국에 한층 더 세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세계의 패권이 영국에서 미국을 거쳐 중국으로 이동한다는 내용의 책들도 쏟아져나오고 있다. 미국이 하루아침에 힘을 잃는 건 아니겠지만, 차츰 다극화하는 세계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자리는 갈수록 커질 것이다.
하지만 중국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는 건 위험하다. 지난 30여 년간 경이적인 경제발전을 이끌어낸 요소들이 하나둘 한계를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싼 노동력을 공급해오던 농촌의 젊은 인력이 줄어들고 있다. 임금이 전체적으로 빠르게 상승하고 성장률이 떨어지는 이른바 ‘루이스의 전환점’(Lewisian Turning Point)에 이른 것이다. 이는 성장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여기에 갈수록 심해지는 도농·계층 간 빈부 격차는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응축해가고 있다. 이 때문에 창당 90주년이 된 중국 공산당 정권도 ‘11·5 규획’에서 앞으로의 국정지표를 ‘조화사회’로 삼아 분배와 함께 가는 성장을 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중국의 앞날과 관련해 대비되는 두 개의 시선이 존재한다. 중국은 공산당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빠른 경제성장을 이뤄낸 만큼 이런 체제의 독특함과 장점을 살려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른바 ‘중국식 모델’(China Model)이나 ‘베이징 컨센서스’를 얘기하는 것이다. 반면 중국의 경제적 성공은 1978년 이후 글로벌 개방경제에 편입된 결과이지 중국만의 독자적 성장모델이 있는 건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전문가들은 지금까지는 국가가 주도해 성장해왔으나 본격적인 시장원리의 확대와 정치의 민주화 없이는 경제가 한 단계 질적 도약을 이루기는 어렵고 조만간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본다.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의 천즈우(50) 교수는 “‘자유와 법치에 기초한 시장경제가 국가발전을 이끈다’는 인류의 보편적 법칙에서 중국이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진 중국 경제학자로, 국내에서 <자본의 전략> <중국식 모델은 없다> 등의 저서가 번역 출간됐다. 지난 7월 초 중국 베이징에서 그를 만나 2시간 동안 인터뷰했다.

당신은 ‘중국식 모델은 없다’는 제목의 책까지 썼는데, 중국의 발전모델이 나름대로 독창성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나?
중국 모델이라고 하는 것은 과거의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호랑이들’(Asian Tiger Economies)들의 경제개발 전략과 유사하다. 세부적으로 몇 가지는 다를지 모르나, 기본적으로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성장 모델이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중국은 아직도 그 모델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말 아시아 금융위기를 계기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호랑이들은 경제 운영에서 정부의 지시나 규제를 줄이는 개혁을 단행했다. 그럼에도 아시아 국가들의 정부는 여전히 경제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이 불과 30여 년 만에 국내총생산(GDP) 규모로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것은 대단하지 않은가?
지난 32년간 중국은 서양의 산업기술에 무임승차했다. 중국뿐 아니라 한국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서구에서 산업혁명 이후 200년 넘게 발전돼온 산업기술 없이는 아시아 국가들이 싼 노동력의 이점을 얻을 수 없었다. 지금도 중국 기업들은 몇 달 만에 공장을 짓고 장비를 사들인 다음 컴퓨터, 전자제품, TV 등을 조립해 몇십억달러어치를 팔아치우는 일을 한다. 이것은 아시아 국가들 자신의 힘에 의해서기보다는 서구 국가들과 무역할 수 있는 경제구조 때문에 가능했다.
완전개방하지 않고,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지도 않고, 정부가 규제하고 지도했기에 2008년 이후의 경제위기 국면에서도 중국 경제가 건재한 것 아닌가?
나는 지금의 중국 경제 상황이 양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는 같은 역사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는데, 1980년대 후반~1990년대에 (정부가 역할을 하는) 동아시아 경제모델을 배우자는 유행이 일었다. 하지만 1997~98년에는 아시아 경제위기로 그런 얘기가 쏙 들어갔다. 그리고 바로 지금 우리는 똑같은 논쟁을 하고 있다. 중국의 구조적 문제와 중국이 직면한 도전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이런 방식의 성장모델이 지속될 것이라고 낙관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중국은 경제를 개혁하려 하지만 미흡한 정치개혁이 발목을 잡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깊숙이 들여다보면, 어떤 형태로든 경제위기를 피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경제위기를 말하는가?
현재 중국에는 낭비적인 투자 프로젝트가 한두 개가 아니다. 중국 전역에서 고속철도·통신 등 사회간접자본 시설 건설을 비롯해 국방, 정부청사, 고층건물 등 대형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엄청난 돈이 투입되지만 상당수가 초기자본을 날리고 있다. 1990년대 말레이시아, 타이, 필리핀, 한국, 그리고 일본이 겪은 것이지만 산업에서의 과잉투자가 부동산과 금융시장으로 옮겨붙다가 모두 붕괴되면서 끝났다. 지금 우리는 그것을 중국에서 목격하고 있다.
중국 경제가 위기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
정부 관료들이 대규모 프로젝트의 장기적인 경제적 결과를 고려하지 않은 채 공격적으로 투자를 감행하고 있다. 정부가 주도한 프로젝트들은 규모가 크고, 관련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클 뿐 아니라 돈 낭비 면에서도 대규모다.
금융위기 이후 지난 3년간 중국 관료들은 과거보다 더 오만하고 보수적으로 변했다. 그들은 자원을 통제하고 배분하고 이런저런 정책을 도입하는 데 정부의 권한을 휘두르고 있다. 한 예로 최근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 관료들이 도·소매업자와 제조업체에 물건값을 올리지 못하게 했다. 재료나 임금 같은 투입 요소가 모두 상승했지만 그들은 시장가격을 올릴 수 없었다.
최근 20년간 중국 관료들은 시장에 깊숙이 개입하지 않기 위해 조심했다. 개입했을 때는 죄책감을 느꼈고, 그렇게 한 이유를 정당화해야 할 만큼 방어적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은 채 시장에 개입한다.
중국 관료들이 왜 시장 개입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나?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중국 경제가 지난 30년간 성공했다고 믿기에 정부 개입이 좋은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은 결과적으로 중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점을 더욱 부각시킨다. 정부의 오만한 태도 때문에 권력 사이의 ‘견제와 균형’ 관계를 정착시키는 정치개혁도 어려워진다. 정부 관료들은 ‘경제가 잘 성장했는데, 정치적 개혁이 왜 필요하느냐’고 한다.
결국 위기를 맞게 되고 정치 및 시장 개혁을 할 수밖에 없으리라고 예상하는가?
그렇다. 중국은 정치적 개혁과 시장지향적 경제개혁을 피할 수 없다. 시간이 문제일 뿐이다. 정치개혁은 투명성을 높이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구현하며, 시장은 자원이 합리적으로 배분되도록 이끌 것이다. 하지만 중국식 발전모델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스스로 확신하기 때문에 결국 한국처럼 외부 충격에 의해 개혁을 단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은 1990년대 말 투명성을 높이고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을 도입하는 개혁을 이뤄냈다. 중국도 그와 비슷한 것이 필요하다. 지금으로서는 그런 힘의 재분배나 개혁을 이뤄낼 만한 실질적인 압력이나 인센티브가 보이지 않는다.
정치개혁이 서구 민주주의의 다당제나 투표에 의한 권력 교체 등을 받아들이는 것인가? 중국은 공산당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보는 이가 많은데.
투표로 이뤄지는 민주주의는 정치적 권력 사이에 최소한의 견제와 균형을 제공한다. 그것은 서유럽, 미국 대륙, 일본, 한국, 아프리카를 포함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도입한 시스템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인간 본성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대부분의 자원을 통제할 때, 사람들은 정부의 권력을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도록 감시해야 한다.
‘서구 민주주의’ ‘오리엔탈 비민주주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민주주의적인 가치, 즉 자유와 인권이 서구 민주주의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양과 서양 사이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적 가치는 필요하고, 아시아 국가들이 받아들여야 한다.
당신은 좋은 정부, 좋은 시장이 해결책이라는 것에 동의하는가?
아니다. 요즘 중국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불행히도 과연 누가 그것을 판단할 것인가? 나는 민주적으로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는 정부에 의한 자유시장을 선호한다. 단순히 ‘좋은 정부에 의해 지지되는 좋은 거시경제’가 아니다. ‘좋은’이라는 단어를 넣기 시작하면 그것은 곧바로 주관적이게 된다. 그것은 이런 판단을 내리기 위한 정부 혹은 정치인의 개입에 좋은 근거가 된다.
중국은 지방 단위에서 민주화가 상당히 이뤄지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다. 공산당이 아직 모든 것을 독점하고 있다.
중국은 인구가 13억 명이나 되는데 서구의 민주주의 시스템을 도입하는 게 가능한가?
중국이 연방주의를 채택해야 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지방정부에 더 많은 자율권을 보장해야 한다. 중국은 사실상 31개의 다른 나라들로 구성돼 있다. 지난 30년간 통합정책이 빠른 속도로 실시됐음에도 각각의 지방들이 자신만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비록 정보기술(IT)이 발달해 신속히 소식이 전달되고 옛날과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13억 명의 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공산당은 여전히 절반 이상의 국민이 지지하는 걸로 보이는데.
사람들이 공산당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가령 정부가 ‘어제 우리는 그걸 하지 않았다’라고 발표하면, 많은 사람들이 즉시 ‘정부가 그것을 했다’고 믿는다. 그만큼 정부를 믿지 않는 것이다.
세계의 패권이 중국으로 옮겨오고 있다는 담론이 무성한데.
중국은 많은 부분에서 배울 게 많고, 따라서 세계를 지배할 준비가 아직 돼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네덜란드, 스페인, 영국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패권 국가들은 수세기 동안 세계질서를 만들고 다양한 국가들이 공존할 수 있는 비전을 만들어냈다. 중국이 명확한 리더십을 확보하고 세계질서 구조를 재편하기까지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중국은 궁극적으로 세계를 이끌 것이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말인가?
그것은 아니다. 한 나라가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금융위기는 규범을 지키도록 강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력, 즉 입법권력·집행권력·행정권력뿐만 아니라 실제 중앙은행, 국제무역 시스템을 갖춘 세계 정부의 형태가 갖춰지기 전까지는 이런 경제적 문제점이 계속될 것임을 보여주었다. 만약 미국달러라는 기축통화에 의해 세계경제가 계속 지배된다면 계속 금융위기가 있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중국이 모든 세계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한국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단행했고, 지금은 당시의 무비판적 시장개혁을 후회하는 평가도 나온다. 소득 격차가 심해지고 비정규직 등이 급증해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은 복지를 강조하고 정부의 역할을 중요시하고 있다. 이런 경험이 중국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나?
중국이 계획경제를 할 때는 소득 격차가 별로 없었다. 모든 사람이 가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원에 대한 접근성은 완벽히 불평등했다. 모든 것이 정부 관료에 의해 결정됐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정부에 연결돼 있다면 그 자원에 접근할 기회를 좀더 많이 얻게 되고, 결과적으로 더 높은 소득을 얻었다.
한국 사람들은 1997년 이후 시장개혁과 정치개혁이 이뤄진 것에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 그것이 한국 경제가 최근 경제위기에 큰 타격을 받지 않고 잘 버틸 수 있었던 이유다. 한국 기업의 경쟁력 또한 높아졌다. 한국은 인구 규모에서 보면 큰 나라가 아니지만, 경제 규모는 세계 12위로 큰 편이다. 인구 규모로 따져볼 때, 어떤 나라보다 훨씬 잘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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