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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은 왜 덜 벌어야 하나?
[Perspective]
[2호] 2010년 06월 01일 (화) 티에리 페슈 Thierry Pech economyinsight@hani.co.kr

* 소득 양극화는 1980년대 이후 세계화 흐름 속에서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뚜렷한 사회경제적 추세다. 한국뿐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소득 양극화는 당면한 경제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소득 최상위 0.01%에 속하는 이른바 '별세계 사람들'은 그동안 '세금을 통한 재분배'를 통해 나머지 집단과 연결돼 있었으나 요즘에는 이 닻줄마저 끊어버렸다. 이 세계를 들여다보면서 한국의 현실을 한번 생각해보자.-편집자 주

티에리 페슈 Thierry Pech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편집 부국장

   
 
재산소득과 고액 연봉, 세제 완화 등으로 소득이 껑충 뛴 갑부들은 먼 바다로 나아가고 소득 격차는 심화된다.
최근 몇 주 사이에 토론 프로그램 2개가 나란히 전파를 탔다. 프랑스 국립통계및경제연구소 (INSEE)의 연구 보고서(_아래 주1) 발간에 맞춰 ‘소득 불평등’을 주제로 한 토론과 지방선거 결과 이후 ‘세금 상한선’을 주제로 한 토론이 그것이다. 우연치고는 시기가 너무도 잘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한 것은 두 문제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소득분배가 불평등할수록 세금을 통한 소득 재분배는 더욱 정당성을 얻는다. 근래 프랑스의 소득 불평등은 상류층에서 더욱 확대됐다. 한 줌의 선두 그룹이 무리에서 빠져나와 나머지 무리와의 격차를 한층 벌리는 가운데, 정작 그들이 내는 세금은 이런 흐름을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소수의 초고소득층은 사회의 나머지 집단과 연결된 닻줄을 이렇게 끊어버렸다. 물론 나머지 무리도 매우 늘어진 형태를 이루지만, 그들간 격차는 무리로부터 멀찌감치 달아난 자들과 그들을 가르는 격차와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앞서나가는 것이 정당한 걸까?
이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소득의 최상위 10%(세전 월소득 3천유로 이상_주2), 즉 프랑스 중간소득의 2배)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왜냐하면 상위 그룹 내 격차가 나머지 90% 내 격차보다 월등히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상위 0.01%라는 매우 폐쇄적인 클럽에 가입하려면 월소득 8만2천유로의 선을 넘어야 하는데, 이 액수는 ‘상위 10%’의 문을 통과하기 위해 올려야 하는 소득의 27배에 해당한다. 더욱이 몇 년 전부터 불평등의 바람이 가장 세차게 휘몰아치는 곳이 바로 이 최상단이다. 최상단 0.01%의 소득이 2004∼2007년 40%나 껑충 뛰었는데, 이는 분포도 하단 90%의 소득 총합보다 무려 4배나 높다.

부자들은 어떻게 닻줄을 풀었는가?
당연히 소득계층 정상에서는 재산소득이 소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이들이 많다(전체 소득의 절반에까지 달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INSEE가 확인한 소득 상승은 부분적으로는 2008년 금융 위기 이전 시기의 부동산 가격과 주식 가치의 상승과 관계가 있다. 분명한 것은 이런 소득이 당사자 개인의 능력과는 무관하다는 점이다. 이런 종류의 소득은 상당 부분 상속이란 수단을 통한 세대 간 이전에서 비롯된다. 이 소득은 증여에 대한 세제적 지원과 막대한 유산에 대해서까지 모든 상속세를 거의 폐지하다시피 한 최근 상속 세제 개편에 따른, 이른바 ‘혈통에 따른 부’다.

   
 
정당화될 수 없는 그들의 부

게다가 물려받은 주식 가치의 상승은 상속인의 투자 관리 능력보다는 주식시장의 세계적 성장세에 힘입은 바가 더 크다. 뒤집어보면, 2008년발 세계경제 위기로 최상위 부자들의 수입이 줄어들 것은 자명하지만(감소분이 얼마일지는 지금으로부터 몇 년 뒤 INSEE가 말해줄 것이다), 그런 손실이 이 거부들의 투자 실력이 돌연 나빠진 탓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재산으로만 소득 격차 확대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순 없다. 노동 임금 측면에서 살펴봐도 부자는 비율적으로 훨씬 많은 몫을 차지해서, 최상위 1%가 5.5%를 가져간다. 그리고 이 분야에서도 부유층의 소득이 다른 계층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INSEE에 따르면, 최상위 봉급자(임금수준이 가장 높은 민간 분야 정규 봉급자의 1%)의 임금은 2002∼2007년 실질적 가치로 연평균 5.8%의 상승률을 기록한 데 비해, 다른 계층은 평균 2.3% 오르는 데 그쳤다.(_주3) 여기에서도 정당한 근거를 찾기는 결코 쉽지 않다. 이들 임금 상위층의 노동이 창출한 가치가 다른 생산 인구가 창출한 가치보다 월등히 증가했다고 볼 근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 경영인의 보수를 비롯해 최상위 보수 수준을 설명하기 위해 경제학자들이 내세우는 대부분의 학설은 경험적으로도 오류라는 게 자명하게 드러난다. 대기업 경영인이 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보수를 받는 소기업 경영인이나 다른 봉급쟁이보다 일을 더 많이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물려받은 재산도, ‘황금 낙하산’도, 곤경에 처했을 때 도움의 손길을 부탁할 인맥도 없는 중소기업 경영인이나 다른 봉급자보다 훨씬 낮은 수위의 모험을 할 뿐이다.
고액 연봉자는 이를테면 공개 시장에 나온 희소 물건이어서, 높은 보수를 위해서라면 최고 입찰자가 국외에 있더라도 기꺼이 찾아갈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프랑스는 대기업 사장의 보수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_주4) 이들 가상의 ‘시장들’은 세분화돼 있고 또 대단히 민족주의적이기까지 하다. 어쨌든 시장이 그들의 높은 임금 수준을 설명해야 한다면, 경쟁의 게임에 뛰어든 대기업은 서로 자신의 경쟁력을 과시하고 더 뛰어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고액 연봉을 앞다퉈 제시하려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CAC 40(자본 기준 프랑스 100대 기업 중 40개 평균주가를 가리키는 프랑스 주식 지표-역자) 가운데서 최상위 보수들 간의 격차는 예상과는 정반대로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 모에헤네시(LVMH) 그룹 회장의 보수는 매년 그런 식의 격차를 보이더니, 2008년 스톡옵션을 포함해 무려 1730만유로(연 최저임금 1091년치와 맞먹는다)에 달했는데, 이는 마르탱 부와이그(580만유로) 보수의 3배에 달한다. 그렇다고 마르탱 부와이그가 이 목록의 최하위에 있는 것도 아니다.
표: <별세계 사람들>은 2009년 프랑스에서 가장 높은 보수를 받은 운동선수, 가수, 배우, 기업 경영인의 소득을 보여준다. 여기에 사용된 수치들은 다양한 출처에서 인용한 것으로 세심한 조정을 거쳤다. 그럼에도 이 수치는 이 인물들이 얼마나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들의 소득은 최저임금(사회보장 부분을 포함한 2009년 가치, 즉 연간 1만8828유로)의 200배가 넘는다. 이런 예외적인 인물들이 다른 사람보다 일을 훨씬 많이 해서 연간 3천 시간, 즉 평균보다 2배 이상 일을 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들로부터 서비스를 제공받으려면 시간당 1500~6300유로를 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억을 돕자면, 지난해 세후 최저임금은 시간당 8.82유로였다.)
실제로 변한 것은 당사자의 능력이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다. 이전까지 지배적이었던 방식과는 다른 보상과 이익의 분배 방식이 일정한 공식적 동기에 따라 발전했는데, 이 새로운 방식이란 기업 경영을 오로지 기업 주주들에 대한 충성을 과시하는 데 사용한 것이었다. 스톡옵션이나 주식 분배는 바로 이런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대기업 경영인 보수의 상당 부분은 더 이상 봉급의 형태를 띠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들의 보수도 자산 자본주의 시대로 진입했다. 그들의 경영실적은 주식시장 주가에 따라, 혹은 기업의 시장 가치에 따라 평가되는데, 그럼에도 이들 경영인의 능력 또는 실수가 이 두 측면에 얼마만큼 기여했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나마 이런 형태의 보상이 주주 이익에 대한 경영인의 관심을 키웠다면 모르겠지만, 많은 사건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심지어 경영인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부유해지는 걸 지켜보는 것이 주주 이익에 부합되는가라고 묻게 된다. 그러나 정반대로 그런 보상 방식이 경영인을 임금 노동자의 이익과 관심사에서 더욱 멀어지게 만든 것은 분명하다.
물론 근래 들어 대기업 경영인만 그처럼 거부가 된 것은 아니다. 프로 축구 선수의 소득은 그들 소득을 훌쩍 넘기기 일쑤고, 소송에 휘말리는 법도 없다. 최고 랭킹 스포츠 선수들, 쇼비즈니스계의 스타들도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대형 은행의 딜러 또한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앞에 제시한 인물들 사이에 유사성이 없지는 않지만, 이들을 일종의 범스타 시스템 속에 뭉뚱그려넣는 설명 방식은 타당하지 않다.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예술가를 ‘1인 기업가’와 동일시할 수는 있지만, 자신이 몸담은 기업의 협력관계와 하위 조직에 직접적으로 의존하는 딜러나 경영인의 경우는 그렇게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그들 모두는 그들에게 교육과 건강을 제공하고, 마침내 성공을 마련해준 사회에 대해 진 빚이 전혀 없고, 자신의 고소득은 오로지 타고난 재능이나 자질에 의한 당연한 권리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재빠르게 도시의 삶을 사업가의 삶이란 개인적 차원으로 끌어내리는 대중매체의 도움에 기대어, 특출한 자질을 지닌 인물이라고 자처한다.
대기업 회장들은 세계화가 깊이 진척된 경제세계에서 진화한다. 그들은 미국이나 영국 동료들의 것과 비교해 자신의 보수를 측정하며, 노동자 임금은 중국의 노동비용에 견줘 평가한다.

세제 문제
최저임금 노동자는 TV나 잡지를 통해 막대한 재산이나 황금 낙하산, 딜러들의 천문학적 보너스와 같은 멋들어진 장면을 바라보면서, 중국 노동자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다는 사실에 행복해해야 한다. 여기서 좌초하는 것은, 동일한 세계에 속해 있고 서로 상대방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다. 사회 정의란 무엇인가. 재능과 능력, 혹은 공적 효용성에 입각해 서로를 견줄 수 있는, 비슷한 사람들의 도시를 건설하기 위한 공통 기준을 만드는 것이다. 사회를 만든다는 것, 그것은 무엇보다 공통 척도를 만드는 것이다.
최상위 고소득자는 이런 척도의 감각을 상실한 게 명백하다. 집단 의존성과 사회적 빚이란 부담감을 떨치기 위한 이들의 시도는 준이탈 상태를 만들어냈고, 여기에 세금 정책이라는 기름이 부어지면서 이 상태는 더욱 편리한 관행이 되었다. 이 세금 정책은 근래에 나타난 과도한 부분을 시정하려는, 소득 재분배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기는커녕 사회계층 간 실질적 격차를 축성하는 제도적 구실이었다. 드 빌팽 정부에 의해 소득의 60%까지로, 이어 필롱 정부 때 50%로 낮춰진 세금 상한선이란 조치는 분명히 이런 경향의 노골적인 상징물로 남을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최상위 부자들의 탈세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실행된 세금 상한선은 극소수 사람들에게만 그 혜택이 돌아간다.
막대한 보수를 옹호하는 것으로도 성이 덜 찼던 많은 경제학자들은 그와 동시에 최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수준을 정당화하려 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것을 하향 조정하자고 갖은 애를 써왔다. 특히 근래 많은 경제학자들은 최저임금과 비경제활동 인구에게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전 소득을 고려하면 최저임금 수준이 지나치게 높고, 이 때문에 노동 의욕을 저해하고 경제적 효율성을 말살시킬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발상의 저변에는 일정한 수준의 효율성에 도달하려면 높은 수준의 불평등도 괜찮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런 불평등 교리는 여러 국가 상황을 각각 검토해보면 금세 그 기반이 흔들린다. 만일 이 교리가 사실이라면, 가장 평등한 나라의 경제 성적이 초라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국내순생산(NDP) 성장률과 불평등 수준 사이에는 어떤 특정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모든 상황이 존재할 따름이다. 다시 말해 NDP 성장률은 높지만 매우 불평등한 나라가 있는가 하면(예컨대 미국), 성장률은 정체됐으나 매우 평등한 나라(스칸디나비아반도국)가 있고, 성장률이 낮거나 중간 정도를 보이면서 평등한 축에 속하는 국가(프랑스…) 등이 있는 것이다. 한 나라의 경제성장률은 단지 소득분배만이 아닌 다른 많은 변수의 결과인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더 평등한 소득분배가 경제의 효율성을 제어하는 요인은 결코 될 수 없다.

경제학자들의 불평등 교리
그러나 최상위 부유층에 대한 과세 기준을 대대적으로 완화하게 한 것은 그런 상징적인 불평등 교리가 아니었다. 이미 2000∼2001년 좌파가 추진한 조치들도 부유층 과세 기준 완화에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2006년 도미니크 드 빌팽에 의해 실시된 소득세율 개혁 또한 여기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를 제한하고 재산 상속을 과세 대상에서 빼주기 위해 제정된 많은 법규들도 마찬가지다. INSEE에 따르면, 그 결과 최상위 부유층 10%의 실질적 과세율은 소득의 20%를 넘지 않으며, 최상위 5%의 경우에는 25%에 겨우 미칠까 말까 하는 정도다.
이와 같은 불평등의 일대 장관(壯觀)에서 밀려오는 불쾌감을 진정시키고 다시금 연대 서클에 부자들을 묶어놓으려 한다면, 정부는 조세정책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려는 단호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정부가 기록적인 부채를 해결해야 하고, 또 최상위 부유층이 이러한 노력에 자신의 몫을 다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시도는 더욱 정당하다. 그러려면 마땅히 세금 상한선을 철폐하고, 부유층에 대한 한계 세율을 대폭 상향 개정하며, 막대한 재산 상속에 대한 상당한 과세가 가능하도록 관련 세제를 재정비해야 할 것이다. 실로 막대한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번역 유정희

1) <가계의 소득과 유산>(2010년판), 국립통계및경제연구소(INSEE) 사이트의 아래 주소에서 찾아볼 수 있다. www. insee.fr/fr/themes/document.asp?reg_id=0&ref_id=REVPMEN10a
2) 여기서는 각 개인별로 계산한 가처분소득을 말한다.
3) 다음 사이트를 방문해볼 것.
www.insee.fr/fr/themes/document.asp?ref_
4) 2009년 10월 출간된 <프라임 뷰> 경제문제연구소의 한 연구에 따르면, 프랑스는 심지어 대기업 경영인에게 가장 높은 보수를 지급하는 유럽연합 회원국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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