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 연구교수
　

빌 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

빌 게이츠가 변했다. 소프트웨어 끼워팔기 전략으로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넷스케이프를 굴복시켰고, 툭하면 반독점법(Antitrust Act)과 공정거래법(Aair Trade Act) 위반으로 소송에 불려다니던 정보기술(IT) 산업의 악동이던 그가 ‘착한 기업’과 ‘창조적 자본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변화가 사랑스럽고 천사 같은 아내 멜린다의 영향 때문이라고 말한다. 냉혹한 기업가가 한 여인 때문에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낭만적인 이야기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빌 게이츠가 이야기하는 ‘창조적 자본주의’에 귀기울여보면 그가 낭만적인 사랑의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여전히 ‘승리’에 집착하는 동물적 감각의 승부사임을 느낄 수 있다.
자본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기업은 ‘이익 극대화’ 라는 이기적인 목표를 통해 사회에 기여해왔다. 기업은 이기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킬 만한 좋은 제품을 만들어 인류의 삶을 개선했고, 자본주의 시장 메커니즘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에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역할을 했다. 이런 일련의 활동들이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적어도 그 옛날보다 일용할 양식의 ‘파이 크기’를 확장해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경쟁’의 유전자? ‘상생·책임’의 유전자?
빌 게이츠는 그 누구보다 이런 자본주의의 순기능을 지지한다. 그런 그가 자본주의가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장과 기업의 활동을 통해 더 이상 자원 배분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어린이에게 음식과 식수가 공급되지 않는 것은 시장 논리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노화와 운동 부족으로 동맥경화에 걸렸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건강한 자본주의의 본래 기능을 되찾으려면 ‘창조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빌 게이츠가 2008년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던진 ‘창조적 자본주의’에 대한 화두는 워런 버핏과 에드 글레이저를 비롯해 많은 이들에게 관심과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클린턴 정부의 노동부 장관이자 경제학자인 로버트 라이시 같은 사람들에게는 우려를 사기도 했다. 또한 좌파 경제학자라고 분류되는 존 로머 교수는 차라리 세금을 더 걷는 게 나을 것이라고 코웃음을 쳤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창조적 자본주의’와 ‘착한 기업’에 대해 순수하고도 직설적인 논쟁을 벌이는 세계적인 지식인들을 가까이에서 만나볼 수 있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제3세계 어린이들의 노동력 착취로 글로벌 비정부기구(NGO)의 공공의 적이던 나이키가 ‘착한 기업’으로 다시 태어날 수밖에 없던 사연을 자본주의 논리로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바야흐로 기업도 살아남기 위해 독불장군처럼 나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 많은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경쟁’의 유전자보다 ‘협력’과 ‘상생’의 소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를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부제는 ‘빌 게이츠, 워런 버핏, 그리고 다른 여러 경제학계 거장들과의 대화’다. 게리 베커, 에드먼드 펠프스, 에드 글레이저 등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과 리처드 포스너, 스티븐 랜즈버그, 마틴 울프, 매튜 비숍, 윌리엄 이스털리, 브래드 들롱, 마이클 크래머, 자그디시 바그와티, 로런스 서머스, 팀 하포드, 데이비드 보겔 등 우리 시대의 쟁쟁한 경제·경영학자들이 창조적 자본주의와 ‘좋은 기업’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인 글 60여 편을 한데 묶었다. 그러나 이 책은 경제학자들의 그 흔한, 딱딱한 논쟁 글은 아니다. 격식을 따지지 않아서 오히려 순수하고 직설적이다. 아직까지 ‘창조적 자본주의’에 대한 논쟁에서 그 어느 누구의 손도 들어주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총아 빌 게이츠로부터 시작된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한 논쟁은 심장을 가지고 싶은 양철나무꾼이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가는 길만큼 흥미진진한 여정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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