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철복 <김영사> 편집위원
　

24억 기업가들이 온다

고속철도 노선으로 세계에서 가장 긴 베이징∼상하이 구간 1318km를 달리던 중국 고속철이 지난 7월12일 전기 공급 중단으로 멈췄다. 중국공산당 창당 90주년(7월1일)을 하루 앞두고 개통된 이 고속철 구간은 지난 7월10일에도 전기 공급에 문제가 생겨 열차가 멈춘 바 있다.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에서 지난 7월10일 만원 급행열차가 탈선해 60여 명이 죽고, 100여 명이 다쳤다. 탈선한 ‘칼카 메일’ 열차는 인도 동부 콜카타 인근 하우라에서 칼카로 가는 도중 파테푸르 지역에서 객차 12량과 기관차가 철도 선로를 벗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 열차는 달리다 선로 위에서 멎고, 인도 열차는 아예 선로를 벗어나 사람이 죽고 다친다. 차례로 세계 1·2위 인구대국인 중국과 인도의 철도 체계에서 나타나는 이 차이는 두 나라 사회기반시설의 격차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국 대학입학시험인 가오카오(高考)에서 고득점을 받은 중국의 수재들 사이에 중국 최고 명문인 베이징대학이나 칭화대학 대신 홍콩 대학 진학 열풍이 불고 있다는 최근 보도는 중국 고등교육기관들의 취약점을 엿보게 한다. “IIT(인도공과대학) 입학시험에 떨어지면 그제야 하는 수 없이 MIT(매사추세츠공과대학)에 입학원서를 낸다”라는 인도 고등학생들의 증언은 과학기술, 특히 정보기술(IT)에 유달리 강한 인도인들의 저력을 부분적으로 설명해준다.
　
중국·인도 기업 현장 방문해 증언 채취
<24억 기업가들이 온다>(원제: Billions of Entrepreneurs- How China and India Are Reshaping Their Futures and Yours)는 주목받는 소장 경영학자 타룬 칸나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가 세계 최대 민주주의국가 인도와 세계 최대 공산주의국가 중국을 정치·경제·경영·사회·역사·문화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비교·분석한 역저다. 저자 칸나는 인도 뭄바이의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나 인도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학사·석사·박사 과정을 마쳤다.
칸나 교수가 이 책에서 역설하는 핵심 메시지는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하나는 “24억(중국 13억+인도 11억) 인구가 잘살아보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중국과 인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어떻게 앞으로 세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건설해나갈 수 있겠는가?”이며, 다른 하나는 “중국이여, 인도여, 제발 서로 도와 두 나라 모두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하고 나아가 세계 발전에 이바지하라”는 것이다. <24억…>은 일단 중국과 인도가 향후 세계경제를 선도하리라는 전제 아래 내용을 전개한다. 그렇다고 경제학자의 저술에서 흔히 보듯, 어떤 가설이나 모델링을 통해 그런 주장을 펴는 것이 아니라 경영학자답게 현장과 사실을 중시한다. 두 나라의 기업과 개인을 일일이 방문해 꼼꼼하게 증언을 채취하고 사례를 분석해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런 만큼 각 장의 내용이 독자에게 신뢰감을 준다.
요사이 미국 등으로 조기유학을 떠났던 한국 학생들이 속속 귀국해 한국 학교에 편입학하고 있다는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그 학생들이야 저마다 사정이 있어 귀국했겠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으로 이민해 그곳에서 오래 생활한 한국 교민들이 거주국 미국과 조국 한국을 싸잡아 가리키는 상투적인 표현이 있었다. ‘불행한 천국(미국)과 행복한 지옥(한국)’이 그것이다.
칸나 교수는 <24억~>을 집필하면서, 아니 구상 단계에서부터 자신은 99.9% 객관성을 유지하겠노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비록 자신이 인도 출신이기는 하나 자연인이 아닌 학자 입장에서 양국 비교론을 집필하는 것이기 때문에 학자적 양심을 걸고 어느 한 나라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이고 학문적으로 책을 써나가겠노라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24억~>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인 칸나 박사가 처음 세상에 선보이는 저서이기 때문에, 저자로서는 더욱 객관성을 집필의 으뜸가는 원칙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나 <24억~>을 통독하고 나면 독자의 뇌리에는 ‘지저분한 천국(인도)과 말쑥한 지옥(중국)’ 식으로 두 나라를 비교하는 이미지가 자연스레 형성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2004년 6월 인도 뭄바이 남쪽 마하라슈트라주 암볼리 근처에서 다리를 지나던 특급열차가 탈선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지저분한 천국, 말쑥한 지옥
100년 이상 외국의 지배 아래 있었던 홍콩과 마카오는 차치하더라도, 상하이·베이징·광저우·선전 같은 중국의 대도시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발전하고 있다. 여기에다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를 굳힌 중국은 적어도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지 않는 일반 제조업에서 세계를 휩쓸고 있다. 또한 3조달러가 넘는 엄청난 외환 보유를 무기로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지에서 자원을 싹쓸이하고 있으며, 미국 중앙정보국(CIA)조차 고개를 갸우뚱거릴 정도로 각종 첨단무기 개발에서 재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도로·철도 등 사회간접자본 건설 속도는 단연 세계 제일이다.
중국이 중국공산당의 영도 아래 일사불란하게 국가 건설, 한 걸음 더 나아가 강대국 건설을 향해 매진하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으로, “오래전 민주주의의 맛을 알아버린” 인도 사람들은 태평스럽다고 할 정도로 발전 속도가 느리다. 각 분야에서 발군의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혁신을 거듭하고 있지만, 이런 혁신이 사회 전체에 확산돼 시스템으로 정착되는 단계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고 칸나 교수는 평가한다. 여기에다 인도에는 아직 고질적인 신분제도(카스트)의 잔재가 짙게 남아 있다. 인도에는 물(식수든 생활용수든)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는 시골 주민이 여전히 숱하게 많다.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비동맹회의는 신생 독립국이 대부분인, 아시아·아프리카 29개국이 모여 연대와 비동맹을 다짐한 자리였다. 이 회의의 주역은 인도와 중국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네루의 강력한 지도력에 힘입어 인도는 제3세계에서 상당한 발언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현재 아프리카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중국이 인도에 비해 월등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런 중국의 상승은 ‘경성권력’(Hard Power), 즉 한 국가가 군사력과 경제력을 통해 자신의 뜻을 실현하는 능력을 통해 대체로 달성된다. 경성권력에서 인도는 확실히 중국에 밀린다.
그러나 국제정치학의 역학 구도에는 경성권력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장을 지낸 조지프 나이는 경성권력과 대비되는 ‘연성권력’(Soft Power)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나이에 따르면, 그것은 ‘강압이나 지불(Payment)이 아니라 매력을 통해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능력’이다. 그것은 “한 국가의 문화, 정치적 이상, 그리고 정책들이 갖는 매력에서 유래한다”.
　
아직 개도국인 두 나라의 상보를 위하여
근년 들어 경성권력을 통한 중국의 세계적 팽창은 미리 계획되고 세심하게 조직된 국가 정책의 결과였던 반면, 세계에서 인도의 영향력은 대체로 연성권력을 통해 달성됐다고 칸나 교수는 본다. 중국이 공산당 독재 체제에서 군사력과 경제력을 키움으로써 경성권력을 강화해왔다면, 인도는 시끄럽고 효율성이 낮은 서구식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해오는 가운데 조용하게 세계인들을 향해 연성권력을 행사해왔다는 것이다. 인도 연성권력의 간판스타는 뭄바이 교외 발리우드에서 제작해 전세계로 수출하는 영화, 서구인들이 열광하는 수많은 구루(정신적 지도자), 세계인의 생활운동 요가다.
<24억~>은 중국과 인도가 엄청나게 덩치 큰 나라들이기는 하되, 모두 아직은 개발도상국에 머물러 있음을 간과하지 않는다. 중국은 1970년대 말 개혁·개방에 나서면서 외국자본의 중국 내 자산 소유를 ‘혁명적으로’ 허용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었고, 아직도 그 상황은 전국 차원에서 완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인도는 수십만 촌락들이 여전히 평균적으로 못사는 상황에서 ‘시골 사람들도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게 될 날’을 앞당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는 서로에게 이득이 됨을 이미 알고 있다고 칸나 교수는 단언한다. <24억~>을 통해 저자가 두 나라에 새삼 환기시키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상보’(相補)이다.
scottneari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