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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새판짜기와 한국의 희망버스
[경제사 산책]
[16호] 2011년 08월 01일 (월) 이병천 economyinsight@hani.co.kr

이병천 강원대 교수·<시민과 세계> 공동편집인

물극필반(物極必反), 사물의 발전이 극에 이르면 반작용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반작용 시계추가 어떤 새로운 판짜기에 이를지, 어느 지점에서 더 높은 균형에 도달하게 될지는 불확실하다. 여전히 과거의 관성이 짓누른다. 또 대립하는 여러 힘들이 서로 다툰다. 2008년 위기 이후 세계는 어찌 돌아가고, 한국은 어디로 가고 있나?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를 전환점으로 자본주의의 새로운 판짜기를 위한 움직임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이 위기는 극단에 치달은, 고삐 풀린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어떤 치명적 결과를 초래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이는 생산적 기능의 죽음을 낳은 자본의 탐욕과 거대한 투기화, 대공황 이래 최악의 부채 거품, 그리고 노동권 및 분배·복지의 실종으로 나타났다. 요컨대 미국은 토지주택, 화폐금융 그리고 인간노동의 과잉시장화가 몰고 온 삶의 불안과 사회적 불안전, 즉 이중의 의미에서 ‘폴라니적 모순’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했다.

   
7월9일 밤 전국 각지에서 제2차 희망의 버스를 타고 부산에 내려온 시민들이 한진중공업이 있는 영도로 가기 전 부산역 광장에 모여 비를 맞으며 문화제를 열고 있다.

\삶의 불안과 사회적 불안정, 이중의 모순
반면 떠오르는 아시아의 새로운 용(龍), 중국 경제는 시장의 고삐를 잡아 관리하면 얼마나 거대한 규모로 폭발적·압축적으로 생산적 부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시장의 고삐를 풀어 저물게 된 미국과 고삐를 잡아 새롭게 떠오른 중국, 두 나라 운명의 갈림은 2008년에 갑자기 나타난 일은 아니다. 공교롭게 21세기를 시작하는 2001년은 두 나라의 희비가 엇갈리는, 세계경제의 지각변동을 알리는 상징적 해였다. 미국의 고삐 풀린 금융주도 자본주의에서는 1990년대 ‘신경제’ 성장의 끝자락에서 정보기술(IT) 거품이 붕괴됐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부동산 거품을 띄워 2008년 금융위기로 가는 자기 무덤을 팠다. 반면에 신흥 제조업 강국 중국에서는 덩샤오핑이 주도한 개혁·개방의 여세를 더욱 몰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제2의 개방을 단행해 ‘세계의 공장, 세계의 시장’으로 부상하는 새 모멘텀을 구축했다.
그렇지만 미국이 기울고 중국이 떠오른다고 해서, 미국식 발전 패러다임인 ‘워싱턴 컨센서스’가 파탄나고 중국식 발전 패러다임인 ‘베이징 컨센서스’가 뜨게 되었다고 해서 중국이 2008년 위기 이후 글로벌 대안 모델이 됐다고까지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 중국은 여전히 못사는 나라이고 추격 모델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WTO 가입 이래 본격화된 고환율·수출지향 모델은 안팎으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안으로는 계층·지역 간 불균형과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다. 중국 통계의 신뢰성에는 문제가 많지만, 지표상으로는 한국보다 더 심하게 나타난다. 밖으로는 대미 무역 흑자, 과잉 보유 달러의 미국 환류에 기초한 아시아와 미국 간 불균형한 의존 구조가 파괴돼 ‘글로벌 리밸런싱’이 진행 중이다. 이는 수출 독주와 수출·내수 양극화로 치달은 성장 체제의 경로 수정을 강제하고 있다. 또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뒤덮는 황사에서 보듯, 환경문제가 극심하다. ‘공산당 일당 독재’라는 정치적 낙후성에 대해서는 두말할 것도 없다. 중국이 사회·경제·정치적으로 어떻게 선진 민주복지 국가로 전환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중국은 앞으로 상당 기간을 저물고 있는 미국과 ‘차이메리카’(Chimerical)의 공생관계를 도모할 공산이 크다.

한국판 ‘물극필반’ 운동
그러나 정작 어두운 곳은 등잔 밑이다. 진짜 걱정거리는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그런대로 자신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한국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신이 누군지조차 잘 모르는 게 아닐까. 정치적 민주화 이후,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한국이 추구하는 발전 모델이란 대체 무엇일까? 나는 이 부분에서 한국이 표류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오늘의 한국 경제는 그간 이명박표 신자유주의 ‘역주행’ 전략, 또는 ‘두 개의 대한민국’ 전략으로 인해 민주복지 국가로 가는 데 쏟아야 할 아까운 시간을 까먹고 방향을 잡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그러나 폴라니의 말대로 고삐 풀린 시장만능주의의 역주행에 대한 반작용으로 광범한 사회적 대항운동, 즉 한국판 ‘물극필반’ 운동이 일어나게 됐다는 점에서 본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공로는 적지 않다. 오히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도한 자유주의적 민주정부 때는 현재와 같은 광범한 노동·시민 연대운동이 일어나지 못했다. 이는 역설적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돌이켜보면, 민주화 이후 보수의 국정 무능력을 여실히 폭로한 이명박 정부는 적어도 세 차례나 기회를 잃었다. 출범 때 과거 민주정부 시기에 대한 평가, 촛불시위에 대한 대응 방식, 그리고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대책이 그것이다. 모든 문제는 정부 출범 때 단추를 잘못 끼우면서 비롯됐다. 이 정부는 이전 자유주의 민주정부 10년이 초래한 한국 경제의 문제를 ‘좌파 정책’ 또는 ‘좌클릭’ 때문이라고 진단한 뒤, ‘우클릭’이 해답이라고 봤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경제보좌관을 지낸 조윤제씨는 일찍이 이명박 정부의 태생적 난점을 다음과 같이 짚은 바 있다. “이명박 정부는 바로 자신을 출범하게 한 그 정치적 포장에 갇히게 되어 국민 지지 기반을 잃을 수밖에 없는 형국에 놓이게 됐다. 지난 10년간 진행된 서민경제의 어려움은 성장률 저하에도 기인하지만 소득과 부의 양극화, 개방과 경쟁 심화에 따른 우리 경제의 구조적 변화에도 기인하는 것이다. 양극화 심화는 좌파 정책 때문이 아니라, 경쟁과 개방을 강화하는 보수적 정책에 의한 것이다. 바로 그런 데서 기인한 서민경제의 어려움을 극도로 우파적인 경제정책 기조로 살리겠다는 것은 잘못된 처방이다. 진단이 잘못됐으므로 처방도 잘못된 것이다.”
이처럼 애당초 자기 함정을 팠던 이 정부는 촛불시위와 마주해 신(新)공안정치로 대처하더니, 2008년 위기 때는 미국의 부시를 본뜬 ‘두 개의 대한민국’과 허망한 ‘낙수효과’(떡고물 효과) 전략을 밀고 감으로써 그 함정을 더 깊이 팠다. 고환율-부자감세-규제완화 정책를 통해 ‘재벌 주도의 수출경제’와 ‘부동산-토건 경제’를 두 축으로 해서 돌아가는 이명박 모델의 귀결에 대해서는 굳히 긴 말이 필요 없게 됐다. 이 대통령이나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같은 ‘불통’ 보수파는 여전히 민주복지 국가의 새 시대정신에 역주행하고 있으나, 이미 한나라당조차 변화에 착수해 민주당과 다툴 채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왜 실패한 걸까? 흔히 이 정부의 정책 기조를 ‘신자유주의적 개발주의’라고 말한다. 여기서 개발주의란 주로 4대강 사업으로 대표되는 토건 개발을 두고 하는 말이지만, 나는 이명박식 개발주의와 박정희식 개발주의의 중요한 차이에 대해 몇 마디 말하고 싶다.

85호 크레인과 민주화의 역설
이명박식 개발주의는 국가가 재벌과 지배연합을 구축하고 노동자와 시민의 발언을 짓누르고 재벌에 온갖 퍼주기를 했다는 점, 그렇게 ‘계급구조적 이윤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는 박정희식 개발주의와 거의 같다. 그러나 박정희 방식이 재벌에 대해 성과규율의 고삐를 쥐고 있었던 반면, 이명박 방식은 규율의 고삐를 완전히 놓았다는 점에서 중대한 차이가 있다. 이는 보수든 진보든 잘 안 보는 지점이다. 금융의 고삐도 놓아버렸다. 노동시장도 마음껏 유연화했다. 물론 개방의 고삐도 놓았는데, 고삐 풀린 전면 개방은 대니 로드릭이 말했듯이, 민중의 민주적 자기 통치권에 족쇄를 채울 뿐 아니라 자본에도 자유로운 탈출구를 열어줘 국가의 대외적 자율성과 자본권력에 대한 자율성을 빈껍데기로 만든다. 그러니 ‘삼성공화국’ 총수 이건희 회장이 정부 정책에 대해 “낙제점은 면하는 수준이다”라고 겁없이 말해도 길들일 도리가 없다. 그동안 열과 성을 다해 고환율, 부자 감세, 각종 규제완화 정책으로 재벌에 일방적으로 퍼주고 서민과 노동자, 자영업과 중소기업의 목을 졸라주었는데도 말이다.
정부, 국민경제, 서민대중 모두 재벌에 발목이 잡힌 꼴이 됐다. 또 한 가지, 이명박 대통령과 박정희는 둘 다 재벌 주도의 수출지향 정책을 추구한 점은 같지만, 그 효과는 다르다. 대외개방과 재벌권력에 대해 나름대로 고삐를 쥐고 있던 박정희 방식은 국민적 파급효과를 낳은 반면, 이명박 방식은 떡고물 효과도 낳지 못한 채 양극화만 심화했다. 그리고 고용불안과 고용 없는 성장, 무분별한 개방이 낳는 다수 대중의 불안정한 삶에 대해 복지를 확충하기는커녕, 겨우 시작한 국가복지마저 후퇴시켰다. 요컨대 이명박표 ‘강부자’ 정권의 실패는, 아무리 보수 정부라고 해도 국가가 특정 기득권 세력의 포로가 되지 않게 최소한의 규율 고삐를 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 결코 발가벗은 사익 권력으로 타락해서는 안 되고 최소한의 공공성 체신은 갖춰야 보수도 산다는 교훈을 망각한 데 있다.
그런데 이명박표 두 개의 대한민국 전략이 실패했다면, 노무현 시대를 이어받는 것으로 족할까. 잘 알다시피, ‘대통령 이후 대통령의 성찰’을 수행하며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을 키웠던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집권기에 노동시장의 과잉 유연화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 복지의 지체에 대해 자기비판을 한 바 있다. 친노 세력과 지식인 중 누가 이만한 성찰력을 보여주었나? 그러나 그런 노 전 대통령조차 삼성공화국 상황까지 낳은 재벌 체제 개혁 실패, 그리고 돌진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나아간 무분별한 개방의 반민주적·반국민경제적 효과에는 끝까지 침묵했다. 또 그는 김대중 정부에 이어 고환율에 기반한 ‘재벌 독식의 수출 독주-내수 빈혈’의 양극화 축적 체제를 밀고 갔다. 부동산 문제도, 금융은 거의 다 풀어놓고 가격 규제도 미약한 상태로 부동산 보유세에만 매달리는 답답한 처방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 김진숙이 싸우고 있는 85호 크레인 자리에서 김주익이 목매 하늘나라로 간 것도 슬프게도 참여정부 때 일이었다. 따라서 민주정부 시기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되는 이른바 ‘민주화의 역설’이 나타나고 지지 기반이 허물어진 것은 좌파 정책 때문이 아니라, ‘왼쪽 깜빡이 켜고 우회전’한 정책, 즉 ‘민주주의에 역행한 자유화’와,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자유화의 두 갈래로 찢어진 민주주의의 역풍 효과였던 것이다.
밖으로는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를 겪은 뒤, 안으로는 자유주의적 민주화 역설과 뒤이은 MB식 시장만능주의 실패를 체험한 뒤 한국의 대중은 다시 깨어나고 있다. 과잉시장화의 폴라니적 모순에 대항해 사회적 보호와 연대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의 새판은 어떻게 짜일까. 보수의 ‘선진화’ 기획을 뒤엎을 수 있는 복지국가 깃발이 새 대안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복지국가는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명박 이후의 보수’도 복지국가를 내세운다. 복지국가 시민정치운동은 까먹은 시간을 만회하는 운동으로 그칠까, 아니면 지난 민주정부와 여전히 미약한 민주당의 한계를 뛰어넘어 한국판 보편복지 국가를 착근시킬 새 동력을 만들어낼까. 시대정신의 빛은 밝은데 이를 구현할 시대의 몸은 정신을 따라가지 못한다.

보편복지의 문, 좁지만 넓은
노동세력이 주도하지 않는 복지국가 운동이라니? 민주화 시대의 노동 없는 민주주의는 권위주의 국가와 재벌 지배연합이 주도한 1961년 박정희 개발독재 체제의 덫이기도 하다. 더 위로는 1953년, 1948년 체제로 소급되는 약한 진보의 아픔이 서려 있다. 문제는 단지 노동의 힘이 약한 데만 있지 않다. 복지국가 건설이란 곧 국가를 경유하는 공적 연대를 구축하는 일인데 그 사회적 신뢰 기반이 얕다. 각자도생과 불신의 벽을 넘어 보편적 동의를 창출할 수 있는 공공적 주체력 부족이 문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보편복지 정치는 약한 노동, 약한 신뢰라는 한국적 조건에서 계급을 가로질러 보편적 동의와 연대를 구성할 수 있는 전략이라는 바로 그 점에서 진보 헤게모니 깃발에 값한다. 한국에서 보편복지의 문은 좁지만 넓다! 최루탄, 물대포, 경찰곤봉, 천민자본의 탐욕을 넘어 85호 크레인으로 가는 ‘희망 버스’의 연대력은 어떤가. 노동·시민의 연대 역량, 배제된 하위 주체와 다중 주체의 광범한 열린 연대를 통해 복지와 노동, 평등한 자유와 사회공공성이 상생하는 모두의 나라를 열려는 창의와 열정이 한 줄기 푸른 희망이다. 
lbch@kangwon.ac.kr


* ‘경제사 산책’ 코너는 지난호부터 홍기빈 소장(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과 이병천 교수가 번갈아 가며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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