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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대리인, 한국도 장악
[Focus]신용평가회사를 평가한다
[2호] 2010년 06월 01일 (화)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economyinsight@hani.co.kr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신용평가사의 신용평가를 무시하라.” 국가나 기업의 신용평가를 가장 폭넓게 활용해야 할 세계 최대 채권펀드회사인 핌코(PIMCO)의 최고 투자책임자 빌 그로스가 유럽 재정위기가 확산일로를 걷던 5월 초에 한 발언이다. 월가 안에서조차 신용평가회사의 신용이 무너져가고 있음을 단적으로 알려주는 대목이다.
안정화되던 글로벌 금융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지고 이 위기 확산을 키우는 데 신용평가사들이 일조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면서 다시 한번 신용평가사에 대한 문제제기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4월 신용평가사들이 뒤늦게 그리스와 포르투갈, 스페인의 신용등급을 잇달아 강등시키면서 이들 국가의 재정위기를 증폭시켰다는 것이다. 정작 신용등급을 내려야 할 시점에서는 최고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가 위기를 수습해야 할 상황에서 뒤늦게 갑자기 신용등급을 떨어뜨려 위기를 가속화하는 행태가 또다시 재연된 것이다.
 
무디스는 한신평, 피치는 한기평 지배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 그리고 피치는 세계 신용평가 시장을 90% 이상 독점하고 있는 미국의 3대 신용평가회사다. 이들은 전세계에 네트워크를 구축해 각 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이나 채권신용도를 평가할 뿐 아니라, 주요 기업과 금융기관의 신용도를 평가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우리나라 3대 신용평가회사(한국신용정보,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가운데 무디스는 한국신용평가를, 피치는 한국기업평가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으므로 한국 신용평가시장 대부분 역시 미국 3대 신용평가사가 장악하고 있다.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들이 지금과 같은 막강한 위치에 오르게 된 것은 1975년 미국 증권거래소(SEC)가 무디스와 S&P, 피치 등 3개 회사를 SEC에 증권발행을 신고하기 위한 공식 신용평가 업체로 지정하면서부터다. 즉, ‘국가공인 신용평가기관’(NRSRO) 시스템을 도입하고부터다. 원래 기업이나 금융기관에 대한 신용평가를 실시하는 기본 목적은 미국 증시에 상장한 업체에 대해 투자자가 투자 안전성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는 데 있다.
그러나 자본과 금융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이들은 미국 증시에 상장하는 회사뿐 아니라 전세계 주요 기업과 심지어 국가들의 채권과 여기에 결부된 CDS 등급을 평가하면서 미국 금융자본의 투자 활동을 지원해왔다. 30여 년 동안 미국의 공인 아래 확고한 독과점 체제를 누리면서 한 나라 경제의 명운까지 쥐고 흔들 수 있는 입지를 세워온 것이다.
이처럼 금융 세계화 시대에 막강한 권력으로 등장한 이들 신용평가사의 신뢰와 신용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제기가 미국 안에서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다. 2001년 세계 최대 에너지 기업 엔론이 회계부정으로 418억달러라는 엄청난 규모의 파산에 이르기 불과 나흘 전까지도 무디스는 엔론에 대해 ‘투자적격등급’을 부여한 바 있다.
 그러나 3대 신용평가사 독과점 체제를 개혁에 대한 결정적 문제라고 제기한 계기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에서다. 당시 무디스와 S&P 등 3대 신용평가사는 문제의 서브프라임 관련 파생상품에 대해 위기가 본격화된 2007년 상반기까지 최고 등급인 AAA 등급을 부여했고,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어온 11개 대형 금융회사에 대해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높은 신용등급을 주었으며, 리먼브러더스가 도산하기 불과 1개월 전에도 A 등급을 유지했다. 대규모 손실로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AIG에 이들이 매긴 신용등급은 투자적격인 AA 등급이었다.

절대 공개 않는 내부 평가 과정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인가. 국제 금융시장에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가지는 이들 신용평가기관의 평가는 정말 공정한가, 또한 이들의 영향력과 권한에 상응하는 감독을 받거나 책임을 지고 있기는 한가. 사실 이들은 대단히 공적이고 객관적인 기관인 것처럼 행세하지만 국제협약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 표준 조직이 아니다. 다만 투자자문과 신용평가를 수익 모델로 운영되는 미국의 민간 기업일 뿐이다. 우선 이들의 평가 공정성에 대한 몇 가지 원천적인 문제점을 지적해보자.
첫째, 이들 평가회사는 제3자적인 평가 의견그룹이 아니라 명백한 기업이다. 이들 신용회사 수입의 상당 부분은 자신들이 평가하는 회사로부터 나오는데, 주 수입원인 고객사를 유지하고 확장할 필요성과 평가의 객관성 사이에는 상호 충돌하는 이해관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둘째, 이들은 내부 평가 과정을 공개하지 않으며 평가 시스템에 주관적인 평가나 조작, 압력이 끼어들 소지가 다분하다. 신용평가회사 안에 평가위원회가 구성돼 있지만 대개는 수석 분석가의 의견이 80% 정도 관철된다. 이때 수석분석가의 개인적 이해관계가 평가에 반영될 개연성이 상존하며, 심지어 신용발표 불과 수분 혹은 수초 만에 심층 분석도 없이 급조된 평가를 내리는 사례도 있다.
셋째, 더욱 심한 경우 신용평가회사들은 그들이 평가하는 기업들과 조직적으로 연계됐을 뿐 아니라 미국 정부와의 커넥션도 존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무디스의 경우 이사진 대부분이 그들이 신용을 평가하는 고객 기업의 임원을 겸하는데, 헨리 매키넬 무디스 이사의 경우 2005년 현재 신용등급이 최상위 Aaa 등급인 화이자의 회장과 엑슨모빌의 이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미국 정부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아 각국 신용등급을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해당 국가 경제를 흔들리게 하는 신용평가기관들은 냉정히 보면 일개 민간 회사일 뿐이다. 이들이 일차적으로 자신들의 고객과 미국의 금융자본 그리고 미국 정부의 이해관계를 우선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들이 평가등급을 올렸다면 해당 국가 국민경제의 질적 개선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기보다 미국 금융자본이 투자할 환경이 개선됐기 때문이다.

미국·유럽 고평가, 신흥국은 저평가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세계경제 대란을 겪으면서 신용평가사에 대한 규제와 제도 자체의 개혁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우선 미국부터가 그렇다. 미국 상원은 지난 5월13일, 신용평가를 담당할 평가회사를 선정하는 권한을 갖는 독립적인 신용평가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한 ‘프랭켄 수정안’과, 아예 ‘국가공인 신용평가기관’(NRSRO) 시스템 자체를 폐지하는 ‘캔트웰-리미우 법안’을 통과시켰다.
유럽 역시 범유럽 차원의 신용평가 감시법안을 준비하는 등 강화된 조치를 계획하고 있다. 아예 유럽 차원의 독립적인 평가기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사실상 미국 신용평가사들에 의해 가장 크게 휘둘리는 신흥국도 “왜 3개 평가기관은 모두 미국 회사인가”라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시장 참여자들에게 객관적 지표를 제공해야 할 신용평가, 특히 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국가 신용등급 부여 권한을, 공적 기관이 아니라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특정 국가의 민간회사가 맡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부터 문제였다. 단순히 ‘평가의 투명성 개선’ 정도 수준을 벗어나 어느 정도 개혁이 이루어질 것인지, 특히 국제 경제질서 조정의 대표 협의체로 부상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이 과제를 어떤 수준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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