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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정부인정’ 고대 잡스는 ‘시장인정’ 전념
이원재의 기업&기업人 - 이건희vs스티브 잡스② 서로 다른 '인정 투쟁'방식
[16호] 2011년 08월 01일 (월) 이원재 economyinsight@hani.co.kr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지는 평창입니다.”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의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지는 순간, 한국 참석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눈에 띄는 한 장면이 있었다. 바로 눈물을 보인 이건희 삼성 회장의 모습이었다.
이건희 회장의 측근들조차, 이 회장의 눈물을 목격한 것은 처음이라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이 회장은 공개석상에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성공은 무척이나 감격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그는 왜 그렇게 감격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 감격은 이 회장이 끊임없이 노력하던 ‘사회로부터의 인정’을 받아내는 순간으로 느꼈기 때문에 온 것이다. 그 자리는 이 회장에게 그만큼 중요한 승부처였던 것이다.
그 시작은 2009년 12월31일, 정부가 이 회장을 단독 특별사면하던 순간이었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로 검찰 수사가 이어졌고, 그 결과 조세포탈과 배임 등의 혐의에 대해 이 회장은 법원에서 유죄를 받았다.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부인 홍라희씨와 함께 지난 7월8일 평창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뒤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서 ‘특별사면과 복권’을 홀로 받은 것은 법원의 형이 확정된 지 불과 4개월 만이다. 그리고 정부가 밝힌 그 이유는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를 위해 열심히 뛸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 사면권 행사를 놓고 논란은 거셌다. 이런 과정을 거친 이 회장이 가진 마음의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터져나온 눈물은, 겨울올림픽 유치로 사회에 대해 그 빚을 갚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 나온 게 아닐까.
경영자는 늘 승부하는 사람이다.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바로 경영자의 직무다. 성공하면 과실이 크지만, 실패했을 때는 책임도 크다. 또한 경영자의 자리는 공짜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치열한 ‘인정 투쟁’을 거쳐서만 주어지고 유지된다.
이 회장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끊임없이 ‘인정 투쟁’을 벌인다. 한 번은 조직 내부로부터, 한 번은 사회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첫 번째 싸움은 삼성 내부에서 벌어졌다.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벌인 ‘신경영’ 드라이브가 그것이다.
이 회장은 2세 경영자다. 창업주가 아니다. 따라서 삼성의 회장 자리에 올라도, 그 조직의 어떤 부분도 그가 원하는 대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 선대 회장의 방식이 곳곳에서 단단한 바위처럼 진을 치고 있기 마련이다. 이 모든 것을 깨뜨리고 자신의 방식을 심기 위해 나온 게 바로 ‘신경영’ 선언이었다. 신경영은 2000년대 들어 ‘창조경영’과 ‘디자인’ 강조로 이어진다. 관리에 철저한 것으로 알려진 삼성에 그와 반대되는 창조경영과 감성적 디자인을 강조한 것이다. 삼성에 필요하지만 갖추지 못한 것을 강조하면서, 조직 내부에 자극을 주고 존재를 인정받는 과정에 있었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조직은 새로운 리더에게 적응해가기 마련이다.
인정 투쟁의 또 한 축은 ‘사회의 인정’을 얻는 싸움이었다. 2005년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며 8천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발표하던 장면은 유명하다. 삼성의 치부를 드러낸 ‘X파일’ 사건으로 사회가 들썩거리자, 국정감사 증언을 피해 해외로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이었다. 사상 유례없는 거액 사회 환원 발표로 큰 화제가 됐고, 그 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의 1조원 사회 환원 등이 이어졌다. 이 역시 평창 겨울올림픽 개최를 위한 노력처럼, 사회의 인정을 얻기 위한 투쟁의 일환이었다.
사실 이 회장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사회의 인정을 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경영자들이 있다. 스웨덴의 발렌베리 일가가 그렇다. 발렌베리 일가는 한때 스웨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40% 이상을 지배할 정도로 독점적 지위를 차지했다. 20세기 초부터 발렌베리 일가가 계속 그 기업을 지배하면서 독점적 지위를 놓지 않고 있다. 그래서 계기만 주어지면 스웨덴에는 반(反)발렌베리 정서가 널리 퍼지고 언론과 시민사회의 집중적 비판 대상이 되곤 한다.
그런데 발렌베리 일가는 1930년대 정부와 노동조합 등과의 대타협을 통해, 재단과 지주회사 체제를 통해 이익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지배구조를 도입했다. 동시에 황금주 등을 통해 발렌베리 일가가 오랫동안 그룹경영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얻어냈다. 그 시기 발렌베리 일가는 전 재산의 대부분을 재단에 출연한다.
물론 기업지배구조와 사회공헌의 역사를 따지면 발렌베리가 삼성보다 훨씬 앞서 있다. 또 이 회장은 독특하게도 ‘정부의 인정’이 곧 ‘사회의 인정’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그래서 정부가 원하는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에 온몸을 던진 것이다. 노동조합이나 시민사회와 같은 집단의 인정은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발렌베리는 그렇지 않았다. 노조, 시민사회 등 말 그대로 ‘사회의 인정’을 놓고 싸웠다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발렌베리 역시 사회의 인정을 놓고 싸우는 가운데 재단법인과 지주회사 중심의 투명한 경영과 이익 모두의 사회 환원이라는 결론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이 회장의 방식을 미국의 창업가들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보인다. 에너지나 군수산업 같은 강력한 규제산업은 예외지만, 시장에서 승부가 나는 소비재 기업의 창업가는 대부분 시장에서 승부를 낸다. 사회의 인정, 특히 정부의 인정을 받는 데는 크게 관심이 없다. 오로지 ‘시장의 인정’이 중요하다.
애플의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 잡스의 예를 살펴보자. 그는 1980년대 후반 애플2를 내놓으면서 컴퓨터 시장의 기린아로 떠오르지만, 그 뒤 매킨토시의 실패 등으로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한다. 그러나 픽사를 인수해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 등의 히트작을 내며 다시 존재를 입증하고는 애플로 되돌아가 CEO를 맡는다. 그 뒤 연이어 나온 것이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의 히트상품이다. 시장의 소비자들 앞에서 성공이든 실패든 모두 승부가 났다.
‘정부의 인정’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스티브 잡스의 부인 로렌 파월은 민주당의 오랜 후원자다. 각종 선거에서 공개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며, 공화당 소속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캘리포니아 주지사이던 시절 반대 후보 쪽 후원자로 나서기도 했다. 빚도 없고 눈치도 볼 필요 없다는 태도다. 미국의 다른 창업 기업가들도 비슷한 태도를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확정 기사에 이런 내용을 썼다. “한국의 고위 올림픽 관계자를 둘러싼 부패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김운용 전 IOC 부회장은 2005년 착복 혐의를 받고 물러났었다. 올림픽 후원사인 삼성 이건희 회장은 ICO 위원 자격을 2008년 포기했다. 탈세 혐의가 확정됐기 때문이다. 박용성 한국 올림픽위원장은 착복 혐의가 확정됐지만 2007년 사면받았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탈세 혐의가 확정돼 3년형을 받았지만, 1200만달러의 벌금을 내고 풀려났다.” 탈법과 처벌과 사면과 보은을 반복하는 과거 기업의 행태가 계속되기엔 한국 경제가 너무 규모가 커지고 중요해졌다. 사회에 대해 부채 없는 기업인이 우리 경제 전면에 나서고, 정부를 상대로 ‘인정 투쟁’을 벌이는 대신 시민사회의 인정을 받고 시장에서 당당하게 승부하는 기업인이 한국 경제 전면에 나올 때가 됐다.
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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