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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혁신과 중용
[이제구의 Moral Innovation]
[16호] 2011년 08월 01일 (월) 이제구 economyinsight@hani.co.kr

이제구 미국 사우스플로리다대학 및 스페인 EADA 경영학과 교수

미국은 세계 최대 시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미국에는 없는 게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미국 전자제품 상가에 없는 게 있었다. 바로 6헤드 비디오 플레이어였다. 수년 전 아직 비디오테이프를 통해서 영상물을 시청하던 시절, 사용하던 비디오 플레이어가 고장이 났다. 새 비디오 플레이어를 사려고 미국에서 가장 큰 프랜차이즈 전자제품 상가를 찾았다. 그런데 당연히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6헤드 비디오 플레이어가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이내 다른 전자제품 상가로 갔으나 마찬가지였다.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따로 주문하고 몇 주를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업 혁신에 대한 오해
이 일을 친하게 지내던 미국 친구에게 털어놨다. 아니 우리나라에서는 그 흔한 6헤드 비디오 플레이어가 세계 최대 시장 미국에서 구하기 어렵다니. 나는 은근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우리나라는 이렇게 첨단을 달리고 있단다’라고 자랑이라도 하듯. 그런데 그 친구가 대뜸 이렇게 물었다. “굳이 6헤드 비디오 플레이어가 필요한 이유가 뭔데? 4헤드만 돼도 화질이 좋던데.” 뭔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렇지, 4헤드만 있어도 아무 문제 없는데 6헤드가 왜 필요하지?
우리는 기술 발전이나 재화 개발과 관련해 흔히 이런 오해를 한다. 기술의 활용도는 사회발전 단계와 비례한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하면 선진국에서는 높은 수준의 기술이나 재화를 주로 이용하고, 저개발 국가에서는 낮은 수준 그리고 단순한 기술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단순한 기술을 이용한 재화나 서비스가 미국을 비롯한 선진사회에서 많이 사용되기도 하며, 최첨단 서비스가 저개발 사회에서 일어나 선진사회로 전파되는 경우도 있다.
첫째, 본래 저개발 국가를 위해 고안된 제품이 선진국에서도 쓰임새가 있는 경우다. 우선 태양열로 발전해 이용하는 제품들이 있다. 예를 들어 태양열로 충전해 사용하는 손전등이나 랜턴이 있다. 보통 지붕에 장착하는 태양열 집적 패널도 있고, 휴대용 태양열 충전 장치도 있다. 태양열뿐만 아니라 사람의 힘을 동력으로 이용하는 제품들도 있다. 원리는 이렇다. 라디오에 붙은 손잡이를 돌리면 전기가 발생해 일정 시간 동안 라디오를 청취할 수 있다. 손전등을 사용할 경우 여러 번 흔들어주면 충전돼 불이 들어온다.
이 제품들은 본래 미국 소비자가 아니라 저개발 지역 주민들을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한다. 남미·남아시아·아프리카의 저개발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전기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전자제품은 차치하고 전등 조차 구경하지 못한다. 따라서 단 몇 시간을 밝힐 수 있는 전깃불도 그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소량의 전기를 발전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실제로 이런 제품들은 저개발국가 주민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영국에 있는 프리플레이(Freeplay)라는 회사는 인간동력으로 발전해 사용하는 라디오, 손전등, 발전기를 만들어 팔고 있다. 특히 유엔개발계획(UNDP)과 손잡고 아프리카 지역에 제품을 제공한다. 또한 이톤(eton)이라는 회사는 인간동력으로 발전하는 제품을 파는데, 미국 적십자와 제휴해 위급한 상황이나 비상시에 적합한 복합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런 제품들은 전기 공급이 일천하거나 자연재해를 당한 곳에서 큰 힘을 발휘하는데, 남미·남아시아·아프리카의 저개발 지역이 아닌 미국 시장에서도 잘 팔리고 있다.
둘째, 기술·재화·서비스에 대한 획기적인 혁신이 저개발국가에서 일어나 선진국으로 전파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선불제 휴대전화 서비스다. 지금은 미국에서 많이 대중화됐지만 몇 년 전만 해도 휴대전화 서비스는 정액제로만 운영됐다. 선불제 휴대전화 서비스는 멕시코 같은 남미 회사들이 선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하려면 신용조회가 필수였다. 따라서 신용을 입증할 수 없는 단기체류자나 불법체류자에게 휴대전화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 명의로 된 휴대전화를 사고파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런 불편한 점을 파고든 것이 선불제 휴대전화 서비스였다. 선불제 휴대전화를 쓰는 데는 신용조회가 필요 없다. 단말기를 사서 쓰고 싶은 만큼 시간을 사 넣으면 그만이다. 이 서비스는 휴대전화를 필요한 만큼만 쓰고 싶거나, 정액제가 너무 비싸 부담이 되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이런 간단한 서비스로 멕시코에 기반을 둔 ‘트랙폰 와이어리스’라는 회사는 2008년 이후 300만 대가 넘는 휴대전화를 팔았다. 또한 최근 새로 개통하는 휴대전화 서비스의 90%는 선불제라고 한다.
이와 비슷한 다른 예가 무담보 소액대출이다. 이 혁신적인 금융서비스는 2009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무함마드 유누스 교수가 주창하고 실천해 유명해졌다. 잘 알려졌다시피 무담보 소액대출이라는 아이디어는 방글라데시라는 저개발국가의 그라민은행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미국이나 우리나라를 비롯해 여러 선진국가에서 이용되고 있다.
무담보 소액대출은 결코 만만한 사업이 아니다. 우선 영세자영업자를 상대로 대출할 때 고려해야 할 전문지식이 필요하다. 그들의 사업이 현실성과 수익성이 있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에게 필요한 조언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영세사업자들이 활동하는 지역사회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성공하기 힘든 아이디어다.
이 점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가에서 선불제 휴대전화나 소액대출사업을 맨처음 고안해내고 발전시키지 못한 이유다. 선진국 기업들은 대체로 부유층을 위한 상품에만 매달린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영세한 계층에게 필요한 서비스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미국이나 선진국가에도 휴대전화 서비스가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영세한 자영업자가 있기 마련이다. 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선진국 사회에서 어려운 사정에 처한 이들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은 저개발국가에서 그 상황을 경험한 이들이다.
다시 비디오 플레이어 얘기로 돌아가보자. 당시 나는 4헤드로도 충분했는데 6헤드 비디오 플레이어를 고집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미국 친구는 내게 딱 필요한 만큼의 기술 수준을 이용하면 된다고 가르쳐주었다. 이렇듯 기업의 혁신이란 기술·서비스·재화를 발전시키는 데 사용자가 필요한 부분을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을 만큼 제공하는 ‘중용의 도’를 지키는 것이다.
 
중용의 도
   
짐바브웨 어린이들이 손으로 손잡이를 돌려 일으킨 력으로 작동되는 라디오를 앞에 두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기업 처지에서는 아무리 세계 최고 제품을 만들어도 소비자의 필요에 맞지 않는다면 아무런 가치를 제공하지 못한다. 흔히 선진국에서 가능한 고도의 기술혁신은 자본집약과 숙련된 노동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반면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에서는 자본과 숙련된 노동이 턱없이 부족하므로 높은 수준의 기술과 재화를 만들어내기도 이용하기도 힘들다. 그렇지만 사용자 처지에서는 항상 최첨단의 기술수준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필요에 맞는 적당한 수준의 기술이 바탕이 된 재화나 서비스가 쓰임새 있다.
그럼 우리는 최첨단 기술을 개발할 필요가 없는가? 그렇지 않다. 최첨단 기술은 당연히 필요하다. 다만 모든 사람에게 최첨단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수년 전 미국에서 일군의 과학자들이 남아시아 저개발 지역 어린이들에게 값싼 노트북 컴퓨터를 보내는 운동을 한 일이 있다.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은 이 운동은 급기야 100달러짜리 노트북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노트북에는 꼭 필요한 장치만 장착했다. 그런데 이 운동이 현지에 가자 큰 난관에 맞닥뜨렸다. 바로 인터넷 서비스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운동을 주도한 과학자들에게는 인터넷 서비스가 아주 당연한 것이었지만, 남아시아 오지에서는 굉장한 최첨단 기술이었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인터넷 접속 장치 대신 어린이들을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장착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아이들이 느꼈을 소외감이다. 노트북을 받아들고 인터넷 서비스가 자신들에게는 먼 세상 얘기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렇듯 무분별하게 장착된 최첨단 기술이나 서비스는 사용자에게 사회적 소외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같은 이유와 맥락에서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 산업사회와 자본주의의 발달은 사회적 소외라는 병폐를 낳기 쉽다. 이는 생산자가 소비자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소비자도 생산자가 어떻게 물건을 만들었는지 관심이 없어서 생기는 현상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이익 외에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적 소외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시장과 기업인, 그리고 기업의 역할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지속적으로 발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진취적인 기업가들의 창조적 파괴에 기인한다. 이들은 시장의 균형을 깨는 파괴자로서 활동한다. 다시 말하면, 최첨단 기술로부터 소외된 소비자에게 필요한 만큼의 기술이 바탕이 된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업가들은 잠재적 소비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가 무엇인지 올바르게 파악해야 한다. 그들이 쉽게 이용하고 그들에게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필요한 만큼의 기술·재화·서비스를 제공하도록 고민해야 한다. 이런 기업가들이 가진 창조성은 바로 문제해결 능력에서 온다. 이 창조적 파괴 과정을 통해 기업가와 기업은 자본주의라는 틀 안에서 생명력을 유지해나가야 한다.
 
사회적 기업 인증제의 모순  
요즘 국내에서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심이 가히 폭발적이라고 들었다. 나 또한 사회적 기업이 우리 사회에서 혁신을 달성하는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기업은 기업이라는 형태를 지니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취지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관심을 끈 것은 정부가 시행하는 사회적 기업 인증제도였다. 우선 기업가의 혁신 활동을 소비자가 아닌 제3자가 판단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다. 정부의 인증을 받은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사이에 성과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특히 균형과 안정을 추구하는 경제정책 입안자들이 창조적 파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정부가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이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것이라는 점도 걱정된다. 일자리 창출로 사회적 기업을 판단한다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일반 기업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기업은 자본주의에 끊임없이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명체여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사회적 기업을 결정한다는 것은, 인증받지 못한 기업들이 또 다른 형태의 소외를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기업의 혁신 활동은 중용의 도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기업가와 그 기업가의 서비스나 재화를 선택하는 소비자에 의해 발전할 수 있다.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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