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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원도 무인도에선 휴지보다 못해
[주니어 경제]
[16호] 2011년 08월 01일 (월) 최진기 economyinsight@hani.co.kr

최진기 학원강사
  
돈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을까요? 인류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를 상상해봅시다. 당연히 그땐 돈이라는 개념이 없었겠지요? 철이는 낚시를 잘하고, 진수는 낚싯대를 잘 만듭니다. 철이는 자신이 잡은 물고기를 진수에게 건네주고 대신 새 낚싯대를 진수에게서 받으면 거래가 잘 이뤄지겠지요? 물고기와 낚싯대까지는 거래가 아주 쉽습니다. 하지만 물건 종류가 조금만 많아지면 어떻겠습니까?
물고기 담을 그릇은 영희가 잘 만들고, 땔감은 희숙이가 많이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릇이 많은 영희는 낚싯대가 필요하고, 땔감이 많은 희숙이는 그릇이 필요합니다. 물고기만 많은 철이는 낚싯대를 사서 영희와 그릇을 바꾸어야 하고, 그렇게 받은 그릇으로 땔감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제를 ‘물물교환 경제’라고 합니다.

월급을 소금으로 받았던 로마 병정
물물교환 경제에서는 거래가 복잡하고 힘든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필요한 물건이 다르고, 자신이 가진 물건을 거래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거래가 이뤄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럴 때 만약 물고기를 기준으로 삼으면 어떨까요? 물고기 한 마리면 그릇 2개, 낚싯대 3개, 땔감 5개를 살 수 있다고 서로 정하면 훨씬 거래가 편하겠지요? 여러 번 거래할 필요 없이 일단 물고기만 있으면 어떤 물건이든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거래의 기준이 되는 물고기가 바로 돈의 구실을 하는 겁니다.
실제로 고대에는 소금이 이런 역할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영어로 월급을 ‘샐러리’(Salary)라고 하는데, 이 말은 소금에서 유래했습니다. 과거 로마 병정들은 소금으로 월급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역사 때문에 지금도 월급이라는 말에 소금기가 남아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물고기나 소금을 돈 대신 쓰는 데는 좀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일단 물고기는 조금만 보관을 잘못하면 썩어버리겠지요? 게다가 물고기를 작게 나누기도 힘듭니다. 물고기를 반으로 잘라서 팔기도 좀 그렇잖아요. 소금은 물고기보다 좀 낫겠군요. 보관도 쉽고, 무게로 달면 작은 단위로도 거래할 수 있을 테니깐요. 하지만 물에 닿으면 녹아버리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군요.
특정 물건을 돈으로 사용하려면 이런저런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류가 가장 보편적으로 쓴 돈은 바로 ‘금’입니다. 금은 물론 쓸모가 많진 않죠? 금은 먹을 수도 없고 호미를 만들어 쓸 만큼 튼튼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반짝이는 아름다움 때문에 장신구로 만들면 누구나 가지고 싶어합니다. 또 절대 녹슬지 않고 무른 성질 때문에 나누기도 쉽습니다.
거기다 동전으로 만들면 가지고 다니기도 아주 편하지요. 그래서 금화는 곧 인류 역사에서 돈과 거의 같은 의미로 쓰여왔습니다. 거의 모든 문명에서 금은 돈으로 쓰였습니다. 금화만 있다면 어떤 물건이든 살 수 있었습니다. 어떤 물건이든 살 수 있는 엄청난 힘, 경제학에서는 ‘구매력’이라 부르는 이 힘을 누구나 갈망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인류 역사는 금을 가지기 위한 수많은 약탈 전쟁으로 물들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금화를 돈으로 쓰지는 않지요? 우리나라의 돈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동전도 있고 지폐도 있습니다. 세종대왕이나 퇴계 이황, 율곡 이이의 그림이 그려진 돈에는 ‘한국은행권’이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즉, 한국은행이 발행한 종이를 돈으로 쓰고 있습니다. 과거에 쓰던 금과 지금 쓰는 한국은행권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구성원 약속 있어야만 지폐가 화폐로 기능
과거의 금화는 그 자체로 가치를 지녔습니다. 금화 한 냥으로 소 한 마리를 살 수 있다면, 이 금화를 녹여서 금괴로 모양을 바꾸더라도 여전히 소 한 마리를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종대왕이 그려진 1천원짜리를 물에 풀어서 풀로 만들어 버린다면 아무것도 살 수 없겠죠?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세종대왕 지폐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합니다. 그냥 우리가 ‘이것은 1천원 정도의 가치를 지닌다’고 약속했을 뿐입니다. 이 약속이 없는 곳에서는 아무것도 살 수 없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세종대왕 지폐에 대한 약속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 달러나 일본 엔화로 바꾸어야만 물건을 살 수 있습니다.
과거 금화는 이런 약속이 따로 필요 없었지요. 금화든 금괴든 금반지든 상관없습니다. 금 자체가 바로 그만큼의 가치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돈은 사회가 이것을 돈으로 쓰기 위해서 약속해야만 하고, 그 약속을 모두가 믿어야 합니다.
만약 ‘한국은행권’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1천원짜리 한 장은 정말 휴지보다 못한 물건이 될 수 있습니다. 무인도에 떨어진 사람들이 있다면 돈 100만원과 맥가이버 칼 한 자루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당연히 칼을 선택하겠지요. 무인도에서는 돈에 대한 믿음이 없으니 전혀 쓸모가 없지만, 맥가이버 칼은 엄청나게 유용할 테니깐요.
코 한 번 푸는 데도 못 쓰는 이 ‘쓸모없는 돈’을 우리가 쓰게 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아무런 쓸모가 없지만, 모든 쓸모 있는 것을 살 수 있는 돈이라는 발명품은 대단한 것입니다. 물론 인류가 이런 시도를 최근에야 처음 한 것은 아닙니다. 몇백 년 전부터 이런 시도는 꾸준히 해왔지만, 대부분 처참하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과거 유럽에서도 영국과 프랑스가 거의 동시대에 이런 ‘종이돈’을 발행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냥 종이돈을 쓰자고 하면 누가 쓰겠습니까? 그래서 이 종이돈은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식민지를 경영하는 회사의 주식과 같은 가치를 가진다고 정했습니다. 1700년대 초반, 프랑스는 미국 미시시피강 주변의 개발권을 가진 회사의 주식을 발행했고, 영국은 서인도제도 개발권을 지닌 회사의 주식을 발행했습니다.
그러나 이 종이돈의 실험은 대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 회사들은 선전한 것과 전혀 다르게 가치가 없었고, 종이돈을 거의 무제한으로 찍어 돌렸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들의 사기를 깨달은 사람들은 종이돈의 허망함을 피눈물을 흘리면서 깨달아야 했습니다. 모두 빈털터리가 된 것입니다.
다시 유럽은 금화의 세계로 돌아왔습니다. 이후로도 계속 금을 중심으로 한 화폐 체제를 유지해왔습니다. 한 50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달러화는 은행에서 금으로 바꿔준다는 약속의 증표였습니다. 달러 이외의 돈은 모두 달러와 딱 정해진 비율로 바꿀 수 있게 했습니다. 금은 달러로 바꿀 수 있고, 달러는 다른 나라의 돈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거대한 약속은 1971년 미국이 깨버렸습니다. 미국에 금이 모자라서 도저히 바꿔줄 수 없다고 배짱을 부린 것입니다. 엄청난 약속 위반이었지만 어쩌겠습니까. 세계 최강대국 미국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1971년 이후부터는 금으로 바꿀 수 없는 그야말로 순수한 종이돈의 세계로 들어왔습니다. 종이돈의 세계에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하겠습니까? 아까도 말했듯이, 종이돈은 우리의 ‘믿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믿음’ 그 자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이 믿음이 깨지면 그냥 휴지보다 못하니까요.
종이돈의 ‘믿음’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 무절제하게 돈을 막 찍어내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과거 영국과 프랑스의 종이돈 실험도 바로 이 ‘막 찍어내기’ 신공 때문에 망한 것입니다. 종이돈뿐만 아니라 모든 돈은 ‘막 찍어내기’를 하면 무조건 망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흥선대원군이 당백전이라는 돈을 막 찍어내다가 나라 경제가 절단 난 경험이 있습니다.
당백전은 ‘당백전 1개에 상평통보 100개의 가치를 가졌다’는 의미였습니다. 새로 경복궁을 짓는다고 당백전을 막 찍어냈으니 그 가치가 어떻겠습니까? 길거리에 떨어져도 줍지 않을 정도가 되어버렸죠. 우리가 가끔 ‘땡전 한 푼 없다’는 말을 쓰죠? 이 땡전이라는 말도 ‘당백전 한 푼 없다’는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막 찍어내서 온 동네에 널리고 널린 이 땡전 한 푼도 없다는 말은 그만큼 가난하다는 말이 된 것입니다.
 
돈이 돌아다니는 원리=경제학   
몇 년 전 미국에서 리먼브러더스라는 큰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세계경제가 엄청나게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미국 정부가 택한 방법이 바로 ‘일단은 급하니깐 돈을 막 찍어내자’였습니다. 돈이 좀 풀려야 사람들이 이 돈을 쓰면서 경제가 굴러갈 테니깐요. 하지만 돈을 너무 많이 찍어낸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결국 돈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우리가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돈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수없이 고민하고 실험하면서 이뤄낸 위대한 ‘발명품’입니다. 경제는 이 발명품이 어떻게 돌아다니면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연구하는 학문이기도 합니다.
satamjink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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