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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보다 더 그리스 같은 미국
[Special ReportⅡ]지속되는 달러 위기 ①
[16호] 2011년 08월 01일 (월) 우베 장 호이저 economyinsight@hani.co.kr

우베 장 호이저 Uwe Jean Heuser <디 차이트> 경제편집장

국가 채무 비율이 자국의 한 해 국내총생산(GDP)과 거의 맞먹는다. 3년 연속 GDP 대비 재정적자율이 10%에 육박할 정도로 재정지출액이 어마어마하다. 정부의 대규모 재정지출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세는 제자리걸음을 걷는데다 신규 고용 창출은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채무위기에 빠진 그리스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미국 이야기이다. 올해 미국의 경제지수만 보아도 역사상 최악의 재정 적자 늪에 빠진 그리스와 미국은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 하지만 국제 금융계는 정작 초강대국 미국이 아닌 경제소국 그리스의 재정 적자 위기에만 초조하게 대응하고 있다. 미국의 재정 적자 위험을 알리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울려대는데도 말이다. 이른 시일 안에 재정 적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해야 한다고 국제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경고했다. 급기야 세계 최대 채권펀드 운용업체인 미국 퍼시픽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PIMCO·핌코)도 최근 미국의 국채 거래에서 손을 털면서 미국의 재정 적자가 위험 수준에 도달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 역사의 살아 있는 양심인 워싱턴 정가의 이코노미스트 카르멘 라인하르트 메릴랜드대학 경제학 교수는 “채권국들이 미국의 채무 재조정을 요구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는 암울한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지난 7월13일 미국 댈러스에서 열린 ‘잡페어’ 등록 테이블에서 직장을 찾는 미국인들이 길게 줄을 선 채 구직 신청을 하고 있다.

그리스에는 발끈, 미국에는 여유로운 미소
미국 경제에 대한 암울한 전망은 아직까지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여느 국가들의 재정 적자 위기에는 발끈하는 국제사회가 미국의 재정 적자 위기에는 여유로운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각국이 역사상 최저 금리로 미국에 수백억달러를 계속 빌려주고 있다. 중국이 보유한 미국의 국채만 무려 1조달러가 넘는다. 미국의 국가 채무액이 지난 8년 동안 두 배로 급증해 14조달러를 훌쩍 뛰어넘었지만, 대다수 채권국들의 미국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굳건하다. 지난 100년 동안 갖가지 재정 적자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위기 극복 이후에 이전보다 막강해진 경제력을 과시한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가 쉽사리 깨질 리는 만무하다. 1930년대 대공황이나 1980년대 재정 적자 위기, 그리고 1987년 주가 대폭락이나 1990년대 초반의 신경제 몰락도 미국은 결국 극복했다. 이해득실 셈법에 빠른 자국 정치인들과 미국의 채무를 함께 상환해준 글로벌 투자자들 덕택에 미국은 재정 적자 위기마다 교묘하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과거의 재정 적자 위기와 이번 재정 적자 위기는 무엇이 다를까? 이번 재정 적자 위기는 기존 재정 적자 위기와는 확연히 구별될 정도로 차이점이 많다. 미국의 최대 위기는 지난 20년간 중산층이 빠른 속도로 사라진 것에 있다. 미국 사회를 지탱해온 중산층의 붕괴로 미국 사회는 병들어갔다. 미국의 최상위 1%의 수입이 전 국민 수입의 약 25%를 차지할 정도로 미국의 양극화는 심화돼 있다. 25년 전과 비교해 미국의 빈부 격차는 두 배나 벌어졌다. 미국 경제력의 혜택은 상류층에 집중됐고, 중산층과 하류층의 구매력은 오히려 악화됐다. 구매력 악화와 함께 일자리도 함께 사라졌다.
지난 3년간 경기부양책을 폈지만 미국의 실업률은 여전히 9%에 달한다. 구직자의 절반가량이 6개월 이상 장기 실업자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유연한 선진국인 미국으로서는 민망한 성적표가 아닐 수 없다. 25∼54살 고졸 이하 학력 남성의 약 25%가 실업자이다. 지금까지 미국의 하류층은 경제 상황과는 무관하게 실업률이 낮았던 점을 비춰보면, 현 미국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하류층에게는 지금이야말로 국가의 지원이 절실하지만, 안타깝게도 미국 정부는 하류층을 지원할 여력이 없다.
미국은 빈부의 양극화만 극단적인 것이 아니다. 개방적인 동·서부와 보수적인 내륙 지역, 좌파와 우파로 극단적으로 갈린 유권자, 국가 옹호주의자와 국가 반대주의자로 갈린 미국은 정치적 리스크가 극에 달했다. 국가적 사안마다 정쟁의 골이 깊어지면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대립각을 세우는 의회에서 긴축재정안은 번번이 부결됐다.
워싱턴 정가의 정치인들처럼 그리스 정치인들도 자국의 재정 적자 위기에 나 몰라라 했다면, 국제사회는 이미 오래전에 그리스에 대해 손을 놓았을 것이다. 워싱턴 정가의 정치 9단들은 경제회복에 역행하는 화폐정책에만 집착하고 있다. 결정적 순간에 항상 미국의 강점이 되었던 대연정만큼은 워싱턴 정가가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그 결과 부유층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세금 감면과 군사정책, 연금정책 및 복지정책은 열외로 하는 금융정책, 로비 덕택에 세금 감면 혜택을 받는 각종 예외 사례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고 미국을 재정 적자 늪에서 구해낼 빅딜은 좀처럼 성사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앞으로 몇 년간 재정 적자에 제동을 걸 결정적 합의가 도출되지 않고, 또 긴축재정 정책을 펴지 않고서는 재정 적자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미국의 채권국 중국은 자국이 투자한 수백억달러가 증발되도록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며, 채권국들도 미국의 재정 적자를 더 이상 두고 보고만 있지 않을 순간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재정 적자에 허덕거리는 동안 미국은 주적 오사마 빈라덴을 처단하는 개가를 올렸다. 하지만 죽은 빈라덴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발목을 잡게 될 것임을 누구도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미국이 이미 수십조달러를 날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2001년 9월11일의 테러 이후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조성된 뒤, 조지 부시 전 미 대통령은 부유층에게 추가 감면과 금융계에는 추가 규제 완화의 선물 보따리를 안겨주었다. 당시 부유층의 세금 감면과 규제 완화 결정은 당연히 경제적 논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늘날 미국이 전례 없는 재정 적자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도 당시 비논리적 결정에 따른 재정 적자 심화 때문이었다.

비경제적 논리가 재정 적자 심화의 주요 원인
빈라덴은 죽었지만, 미국은 여전히 재정 적자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비상사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월가에서 공공연히 떠도는 신랄한 표현처럼, 미국의 현 재정 적자 위기는 그리스보다도 더 그리스적이다. 물론 미국은 재정 적자 위기를 극복할 경제적 힘이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뿐만 아니라 전기자동차와 인텔리전트 전력망 제어 등의 산실인 실리콘밸리와 기업인으로 성공하겠다는 집념으로 똘똘 뭉친 이주자, 그리고 투기뿐만 아니라 혁신에도 과감히 투자하는 리스크 캐피털 문화 등을 원동력으로 미국은 국민 1인당 부채 4만5천달러를 충분히 갚아낼 힘이 있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의 성장 원동력 덕택에 미국은 재정 적자 위기에서 회복할 시간을 벌게 되는 역사적인 행운도 누리고 있다. 미국이 이성적 경제정책을 펴기 위해 잠시 휴지기를 갖더라도 서구는 몰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미국은 정책을 선회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미국 경제가 아니라 미국 사회이다. 미국 사회가 하나로 뭉치지 않으면 미국은 붕괴되고 말 것이다.
ⓒ Die Zeit·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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