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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선 중소기업, 사회도 쾌청
[Trend]‘생산적 실패’ 위한 중기 패자부활센터
[15호] 2011년 07월 01일 (금) 백필규 economyinsight@hani.co.kr

백필규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인력기술실장
 
사업이 정말 하고 싶던 H씨는 부모님과 아내에게 빌린 2천만원으로 1996년 창업했다. 창업 뒤 3년간 기술 개발에 몰두한 덕에 독보적인 특허 기술을 갖고 대기업에 납품할 수 있게 되면서 매출이 크게 오르고 수익률이 50% 가까이 되는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납품하던 대기업에서 일주일 뒤 거래를 끊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느라 3년간 35억원을 쏟아부은 시점이었다. 특허를 20개나 가지고 있어 은행 돈이나 정책자금은 쉽게 빌릴 수 있어 그동안 거침없이 대출받아 투자했지만, 납품 거래가 중단되면서 대규모 투자는 오히려 독이 됐다. 결국 2004년 최종 부도를 내고 말았다.

부도·폐업은 개인 넘어 사회적 손실
부도는 냈지만 그는 도망가지 않았다. 협력업체 사장을 만나 성실히 부도 배경을 설명했고, 직원 60명에게도 상황을 설명했다. 2001년부터 3년 동안 할 필요도 없는 외부 감사를 꼬박꼬박 받을 정도로 회사를 투명하게 경영했기 때문에 협력업체 사장이나 직원이 그를 사기꾼이나 도둑놈 취급은 하지 않았다. 그는 매일같이 공장에 출근하면서 새로운 아이템 개발에 몰두했고, 그 결과 국내 최초로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해 다른 대기업에서 납품 제의도 받았다. 그러나 공장이 경매에 붙여져 쫓겨나고 말았고 새 아이템마저 잘나가는 대기업 1차 협력업체에 빼앗기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도 직전 한창 사업을 확장할 때 공장을 신축하면서 건축업자에게 보증금을 받았는데 부도를 맞으면서 이를 갚지 못하게 돼 사기죄로 재판까지 받게 됐다. 성실 납세자로 국세청장 표창까지 받은 그는 부도 이후에도 투명하게 자료를 제출했다. 그런데 이 때문에 자료를 없앴을 때의 세액보다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게 됐다. 그는 “다시 사업을 해도 투명 경영을 원칙으로 삼겠지만, 솔직히 다른 사람에게는 투명 경영을 권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부도와 또 한 번의 재기 실패, 그리고 재판과 과중한 세금 부담으로 그는 의욕과 자신감을 많이 잃었다. 커가는 아이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는 자책감에 그는 이제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업 따위는 그만두고 취직해서 아이들 뒷바라지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기업나라>, 2008년 8월호
   
표_부도업체 연도별 추이
인용이 길어졌지만 이 사례에는 실패한 기업인들의 현황과 문제점이 잘 요약돼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겠다는 기업가정신을 갖고 사업에 뛰어들어 일시적으로 큰 성과를 올렸지만,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큰 손실을 입고 부도에 이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외환위기가 터진 1997년, 이때 부도를 내고 사라진 기업 수는 1만7천 개사에 이른다. 1998년에는 2만3천 개사가 부도로 쓰러져 2년 동안에 무려 4만 개에 이르는 기업이 시장에서 사라졌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1999년부터 2010년 현재까지 부도 기업은 총 4만7천여 개사에 이른다.
부도 기업은 실패한 기업의 전형적인 형태이지만 실패 기업에 꼭 부도난 기업만 있는 건 아니다. 사업 부진을 이유로 스스로 폐업한 기업도 실패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기업은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2009년 한 해 법인만 따져도 2만 개사에 이른다. 어느 연구에 따르면 창업 뒤 2년 내에 문 닫는 기업이 절반, 10년 뒤까지 살아남는 비율은 13%에 불과하다. 성공은커녕 생존조차 쉽지 않은 것이 사업의 세계임을 보여준다.
부도나 폐업은 개인적·사회적으로 큰 손실을 가져온다. 우리나라 창업자들은 충분한 준비 없이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퇴직금을 쏟아부어 창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업이 뜻대로 안 돼 끝내 부도나 폐업에 이르게 되면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잃고 신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된다. 사회적으로는 많은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고, 기술력과 영업망 등이 손실되고, 값비싼 설비가 가동을 멈추거나 고철값에 팔리는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손실이 방대한 규모에 이른다.
 
재기 불가능한 사회·제도적 환경
   
경기도 반월공단의 한 업체는 주문이 없어 설립 18년 만에 문을 닫을 예정이다. 가동을 멈춘 기계들이 비닐로 덮여 있다.
더욱 안타까운 건 부도나 폐업이 불가피하더라도 적절한 시점에서 관리되면 실패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데도 관리가 제때 취해지지 못해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실패 비용이 커지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는 기업 경영이 위기에 빠지면 사업정리형 인수·합병(M&A)이나 사업재생 비즈니스 등을 활용해 사전에 출구를 찾을 수 있다. 부도난 뒤에도 채무자에게 관대한 도산 제도를 이용해 채권자에게 보호받으면서 동시에 채무 상환이라는 책임에서 벗어나 실패를 딛고 재기할 수 있는 지원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일본도 ‘기업재생협의회’라는 제도를 통해 기업이 부도라는 최악의 위기를 맞이하기 전에 컨설팅을 통해 기업을 재생시킴으로써 실패 비용을 최소화하는 노력을 한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부도가 나기 전에 상담이나 컨설팅 등을 통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예방 시스템이 거의 마련돼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기업 대표는 위기가 닥치면 패닉 상태에 빠져 합리적인 대응을 못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부도에 직면한 기업인은 ‘불안감→절망감과 공포감→상실감→초조감’ 등의 단계를 거치는데, 가장 위험한 것은 절망감과 공포감 단계에서 상실감의 단계로 이행하는 과정이다. 이 시기에 자살 등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 과정에서 기업 채무가 기업 대표 개인의 채무로 전가되는 ‘대표이사 연대보증제도’로 인해 부도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질질 끌다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타격받은 상태에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 부도 위기를 전후해 적절한 완충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일단 부도가 나면 재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전국부도기업인재기협회가 2005년 2월 부도 기업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부도 이후 채무 관계를 해결하고 예전처럼 기업인으로 재기한 경우는 단 1%에 불과했다. 가장 많은 것은 ‘장사나 행상, 일용직 노동자로 생계 유지’(60%)였고, ‘폐인이나 노숙자로 전락’한 사람은 20%, ‘타인의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을 내고 일하지만 악전 고투 중’이 19%였다. 사업에 한번 실패하면 재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왜 그럴까? 실패자에게 가혹한 사회적·제도적 환경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단 부도가 나면 신용불량자가 되어 금융거래가 불가능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증을 낼 수도 없고, 취업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실직 근로자에게 주는 재취업 교육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최빈곤층으로 전락해 기초생활대상자로 지원받아야 하는 처지임에도 그런 자격 역시 부여되지 않는다. 특히 부도나면 회사 채무가 회사 대표 채무로 모두 전가되는 ‘대표이사 연대보증제도’로 인해 한번 실패하면 영원한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굴레를 안게 된다. 실패했을 때 재기가 어렵다면 기업가정신이 위축돼 창업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이 역시 사회적 손실이 크다.

실패 기업을 ‘사회적 기업’으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2005년 벤처기업협회의 주도로 ‘벤처기업 패자부활제’가 도입됐다. 벤처기업 패자부활제란 실패한 벤처기업인들의 기술과 경험이 사장되는 것을 막고 기업가정신을 높이기 위해 부도를 낸 벤처기업가 중 신용 회복, 도덕성, 기술성 등 일정 기준을 통과한 사람에게 재기자금을 지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혜를 받은 대상은 고작 3개 업체에 불과해 유명무실한 제도가 돼버렸다. 실패한 기업 중에 성공 가능성이 있는 기업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패자부활을 지원하려다 보니 자격 요건이 까다로워 이에 합당한 기업을 찾기 어려운 것이 큰 원인이었다.
   
 그림_부도 기업인의 심리적 과정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지난해 3월 ‘재창업지원자금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종래의 지원 요건을 대폭 완화해 △지원 대상을 벤처기업에서 모든 중소기업인으로 확대하고 △기업 평가 때 재무 평가를 생략하고 기술성·사업성·경영능력 등 비재무 평가만 실시해 신용 회복과 함께 저금리로 시설·운전자금을 지원해주는 것이다. 지난해 16개 재창업 기업이 지원받았다. 올해는 지원 대상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의 부도 기업과 저신용자에게까지 확대하고, 지원 기업에 적용되던 가산금리를 폐지해 재기 중소기업인들의 부담을 더욱 완화했다.
실패한 중소기업인들에 대한 지원 요건을 대폭 완화해 수혜 대상이 크게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있다. 실패 기업에 대한 지원 건수는 늘었지만 재기에 필요한 지원 금액이 너무 적다는 지적이 있다. 지원받은 기업에서 제대로 된 성공 사례가 나오지 못할 경우 이 제도가 존속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따라서 수혜 대상을 단순히 양적으로만 늘릴 게 아니라 실패자를 최소화하는 노력과 함께 지원 기업이 성공 사례로 이어질 수 있게 패자부활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나는 이와 관련해 실패한 중소기업인들에게 재기에 필요한 토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패자부활센터’의 설립을 제안한다. 패자부활센터는 부도나 폐업의 위기에 직면한 중소기업인들에게 심리적 안정 상태에서 위기에 합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상담과 보호 기능을 제공하고, 불가피하게 부도나 폐업을 한 중소기업인에게는 재기에 필요한 전문적 조언과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또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재기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기관이다. 이와 함께 실패한 중소기업인이 취업이나 사업을 재개하려 할 때 현실적 장벽이 있는데, 이를 감안해 실패한 중소기업인 중심으로 구성된 기업을 장애인 기업에 준하는 기업으로 간주해 ‘사회적 기업’으로 인정해야 한다. 사회적 기업으로 간주되면 인건비와 판로를 지원받게 된다. 사회적 기업은 실패한 중소기업인들이 당면한 생계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실패한 중소기업인끼리 함께 사업하는 경험을 통해 기존 경영 실패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장이 될 수 있다. 재기에 필요한 본격적인 자금 지원은, 이 과정을 통해 정보가 축적되고 실패 요인이 보완됐다고 인정된 기업인에게 이뤄질 때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패자부활센터를 통해 창업 뒤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실패의 경험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그러면 실패에 따른 사회적 손실을 최소화할 뿐만 아니라 기업가정신을 제고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pgpaik@kosb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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