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시각
     
여름 천렵
[이순원의 마음쉼터]
[15호] 2011년 07월 01일 (금) 이순원 economyinsight@hani.co.kr

이순원

우리는 그 고기를 ‘용곡지’ 혹은 ‘용고기’라고 불렀다. 표준말로는 ‘쌀미꾸리’라고 부른다. 시골에는 냇물에서 논으로 물이 들어가는 작은 도랑이 있다. 보를 막아 논으로 물을 끌어들이는 봇도랑인데, 여기에 용곡지가 바글바글하다.
강원도 산골의 논은 대개 계단식이다. 논마다 물이 흘러내릴 수 있게 도랑을 만드는데, 여기에도 바글바글하다. 봇도랑과 논도랑에 있는 용곡지 잡는 방법은, 그물을 댈 데가 못 되니까 곡식 가루를 치는 체로 잡는 것이다. 체의 올이 너무 가는 것은 진흙물이 쉽게 빠지지 않아 밑창이 빠져서 안 되고, 올이 가장 굵은 체를 써야 한다.
   
 

개울에도 용곡지가 많지만, 한꺼번에 큰 품 안 들이고 왕창 잡을 때는 봇도랑과 논도랑으로 가야 한다. 용곡지를 한 사발 잡으면 그중에 ‘알배기’라고 알을 밴 어미 용곡지가 스무 마리쯤 들어 있다. 굵기가 미꾸라지 중간치 정도 된다. 미꾸라지는 길고 미끌미끌하고, 용고기는 그보다 작다. 생긴 건 꼭 메기처럼 생겼다.
우리가 좀더 자라서 고등학교 시절엔 퉁가리와 메기를 잡으러 강릉에서 대관령을 넘어 다른 동네로 원정을 다녔다. 강릉 지방에서 옛날에 ‘용탕’이라고 하는 게 바로 용곡지를 넣어 끓인 국인데, 지금은 이걸 파는 음식점이 많지 않다.
시골에서는 복날에 아까운 닭을 잡아먹을 수도 없고 여러 집이 어울려 돼지 잡는 일도 쉽지 않으니, 용곡지를 몇 사발 퍼와서 고추장 풀고, 밀가루로 수제비를 빚어 넣고, 파를 왕창 썰어 넣고, 집에 닭을 키우면 달걀 하나 깨서 넣고, 그렇게 복날 먹을거리를 마련했다.
그런데 지금은 논도랑에 고기가 없다. 냇물에서 논으로 물이 들어가는 봇도랑도 예전 같지 않다. 냇물 고기 수도 농약 쓰기 전과 후가 10분의 1 정도 차이가 난다. 미꾸라지는 생명력이 강해 어느 정도 견디는데, 용곡지는 예전에 비하면 개체 수가 100분의 1 정도로 줄어들었다.
한 집 농약을 안 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산비탈 쪽 논부터 시작해 마을의 평지논까지 그 마을 전체가 농약을 쓰지 않아야 이런 고기가 되살아날 수 있다. 학교 다니던 시절 방학 때면 자주 집 앞 냇물로 나가 이 고기를 잡았다.
저녁이면 마당에 멍석을 펴고 그 옆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온 식구가 둘러앉아 밥을 먹던 시절이다. 늦은 저녁밥을 먹는 동안 하늘엔 별이 돋고, 공중엔 모기뿐만 아니라 반딧불이가 불빛을 이을락 끊을락 날아다녔다.
그때 마당의 아이들이 다 자라 어른이 되었다. 그때 우리 같은 아들을 둔 어른이 되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 집의 여름 천렵 전통은 여전히 이어져오고 있다. 시골집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시고, 또 형제와 조카들이 다 모이면 스무 명 넘는 대식구가 한 마당에서 며칠을 보내고 온다. 바다에도 가고 산에도 가고 계곡에도 가겠지만, 그래도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는 곳이 시골집 마당이다.
이번 여름에도 우리는 지난 시절의 추억을 찾아 그 마당으로 모인다. 한동안 보지 못한 반딧불이를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순원의 다른기사 보기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강대성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백기철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