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지난 6월1일, 남북 정상회담 비밀접촉이 폭로됐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세계 외교사에서 비밀접촉을 공개하는 경우는 드물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공개해버린 것은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제 남북관계는 끝났다.
북-중 관계는 어떤가? 지난 6월8일 황금평 착공식이 있었고, 다음날에는 나진항 특구 착공식이 있었다. 이제 ‘북-중 경제협력’이라는 기차가 속도를 내면서 달린다. 멈춘 남북관계와 달려가는 북-중 관계, 남-북-중 삼각관계의 악순환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남북관계, 막차는 떠나고
외교는 공개 영역과 비공개 영역으로 구분한다. ‘투명한 외교’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은 뭘 모르고 하는 얘기다. 예를 들어 한-미 정상회담을 하더라도 모든 대화는 공개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외교문서가 비밀 해제 기간을 설정해 먼 훗날에 공개하는 이유가 있다. 양자 협상이 국민과 제3국 모두의 이해관계를 충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비공개 접촉은 알고 보면 외교의 일반적인 형태다. 남북관계처럼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는 공개 외교보다 비공개 외교가 더 중요하다. 남북한은 1971년 남북 적십자회담을 하면서 처음으로 비밀접촉을 시작했다. 당시 비밀접촉은 7·4 남북공동성명 채택으로 이어졌다. 이후 전두환·노태우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비밀접촉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지난 40년 동안 비밀접촉이 공개된 적은 없다.

2009년 10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백화원에서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 만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공개했을까? 예비군 훈련에서 북한 지도자들을 표적지로 삼은 행위가 직접적 이유로 거론된다. 북한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 가능성이 없다고 결론내렸을 수 있다. 일본에서 열린 한-중-일 3국 정상회담 때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 원자바오 총리에게 상세하게 비밀접촉 내용을 전했고, 마침 중국을 방문 중인 김정일 위원장에게 후진타오 주석이 그것을 확인하면서 북한이 화가 나 공개했다는 추측도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명박 정부는 ‘왜 대화하지 않느냐’는 국제사회의 의혹에 ‘우리도 대화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려 했을 것이다. 진정한 의지가 아니라 홍보용으로 접근했다는 뜻이다. 당연히, 대화의 내용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면, 북한이 반발할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 교착의 책임을 상대에게 떠넘기려면 대화 내용을 공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개 이후 이명박 정부가 보여준 태도도 피차일반이다. 정부는 ‘북한이 먼저 만나자 했고, 정상회담을 제안하지 않았으며, 북한의 사과를 받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한다. 이 세 마디 말은 그 자체가 모순이다. 지난해 3월26일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일어난 천안함 사건의 경우, 북한은 자신의 소행이 아니라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만약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에 대해 사과를 받아내기 위한 접촉이라면, 북한이 먼저 제안했을 리 없다. 그리고 사과를 받아내기 위한 접촉이라면 굳이 비공개로 할 필요가 없다. 북한이 사과할 리 없는데 비공개 접촉할 이유가 있겠는가? 차라리 공개회담을 통해 우리 쪽의 원칙을 드러내는 것이 효과적인 회담 전략이었을 것이다.
북한의 폭로 이후 남과 북 모두 대화의 여지를 없애고 있다. 북한은 물증을 공개하겠다고 위협하고, 정부 역시 원래 대화할 생각이 없었다는 점을 확인시키고 있다. 이후의 남북관계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남북대화에서 멀어지고 있다. 대화의 막차가 떠났다.
현재 상황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가장 애를 태우는 사람들이 바로 대북사업을 해온 중소기업들이다. 벌써 개성공단을 제외하고 모든 남북 경제협력을 중단한 지 1년이 지났다. 그동안 교역과 위탁가공에 참여한 많은 중소기업들이 도산하거나 부도가 났다. 북한에 투자한 설비는 누가 보상해주는가? 남북관계가 조만간에 재개될 가능성도 없어지고 있다.

달려가는 북-중 경협
북-중 경제협력은 질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미 위탁가공에 참여한 많은 북한 쪽 생산 공장들이 중국과의 위탁가공으로 돌아섰다. 금강산관광의 독점사업권을 박탈하겠다는 북한의 조치는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오랫동안 공들여 확보한 사업권이 사라지고 있다. 모든 ‘비즈니스’ 기회가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다.
북-중 경제협력이 예사롭지 않다. 경제협력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크게 세 부분이다. 가장 중요한 지역은 압록강 하구다. 단둥~신의주 지역은 북-중 양국의 교통 요충지고, 북-중 무역의 70%가 이뤄지는 곳이다. 여기에 새로운 압록강 대교가 건설되고, 이제 황금평 경제특구도 시작됐다. 여의도보다 면적이 넓은 지역에 개성공단 비슷한 것을 만든다. 2002년 북한이 신의주 특별행정구역을 선포했을 때 떠들썩한 적이 있다. 지금은 그때와 비교되지 않는다. 북-중 양국 관계가 어느 때보다 발전했고, 산업 격차와 인건비 격차가 벌어져 분업 관계가 형성돼 있으며, 투자할 중국 쪽 자본가들이 나서고 있다.
두 번째 지역은 나진항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나진항은 중국 처지에서 태평양으로의 ‘출구’를 의미한다. 동북 지역의 경제에서 나진항 확보는 날개를 다는 격이다. 이제 원정리에서 나진항까지 도로 포장공사가 끝나면, 나진항은 중국 동북 지역의 중요한 해운 물류 거점이 될 것이다.
세 번째 지역은 무산 건너 남핑 지역이다. 여기에 북한의 광물자원을 안정적으로 수송하기 위해 철도 공사가 한창이다. 이미 대부분의 광산은 중국이 차지했다. 최근에는 중국의 남방 자본이 진출하면서 투자 규모가 커지고 사업 범위도 다양화되고 있다. 북-중 경제협력은 양국의 전략적 이해가 일치하고, 중국의 경제적 이익이 분명하며, 북한도 외자 유치의 대안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더 확대될 것이다. 이미 북한을 중국 동북 지역과 연결하는 중국 동북경제권의 구성 요소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북-중 경제협력은 동북아 질서를 변화시킬 것이다.
북-중 경제협력은 남북 경제협력의 기회 상실을 의미한다. 북한이 가진 광물이나 노동력은 한정돼 있다. 중국이 선점해버리면 우리의 기회는 없다. 북한, 중국의 동북, 그리고 러시아의 극동이 어울리는 북방 삼각 경제권이 이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한-중·한-러 관계도 좋아지기 어렵다. 중국이나 러시아는 한반도의 안정을 바라기 때문에 대립을 지향하는 한국의 대북정책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북방의 경제영토 잃어버린 한국
이제 한국은 북방 경제영토를 잃었다. 중국은 창지투(창춘∼지린∼투먼을 잇는 개발) 계획을 통해 동북 지역의 경제발전에 집중하고 있다. 러시아 극동도 마찬가지다. 201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열린다. 러시아도 극동 개발을 중요 국정 과제로 내세운다. 북한을 우회해서 중국, 러시아와 협력할 수 있을까? 그러기는 어렵다. 북한은 남한이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한 ‘다리’다. 다리가 끊어지면서 이제 한국은 다시 냉전의 섬으로 남았다. 남북 경제 공동체의 꿈도 멀어지고 있다.
dootakim@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