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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세계화 아닌 건전한 세계화를 찾아서
[경제와 책]
[15호] 2011년 07월 01일 (금) 고빛샘 economyinsight@hani.co.kr

고빛샘 전문번역가

   
 
“지나치게 잘 돌아가는 국제금융의 수레바퀴에 모래를 뿌려라.”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 국제정치학과 교수로 있는 대니 로드릭이 쓴 <자본주의 새판짜기>의 논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이다. 이 주장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토빈이 처음 제기했다. 그는 “단기성 외환거래에 금융거래세를 부과해 단기 투기자본의 폐해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드릭은 토빈의 주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제금융뿐 아니라 무역의 수레바퀴에도 모래를 뿌릴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무분별한 세계화의 고삐를 당기고 개별 국가에 더 많은 자율성과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세계경제 기반을 더욱 건전하고 확고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10여 년 전부터 ‘세계화’라는 말이 유행처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범세계적 신자유주의 물결에 영향받은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를 주요 정책 목표로 내세웠다. 그리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시장 개방을 추진했다. 그 신호탄은 금융실명제였다. 세계화란, 꼬집어 정의하기 힘들지만 어떤 정책과 주장을 펼치든 가져다 쓰기만 하면 꽤 그럴싸한 논거가 되었다. 경제 개방을 하면 큰 파이의 한쪽을 차지하리라는 기대감과, 시류에 동참하지 못하면 국제무대에서 도태되리라는 위기감은 사람들을 묘하게 흥분시켜 옆과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맹목적으로 앞으로만 내달리게 만들었다.  

새로운 자본주의, ‘자본주의 3.0’
세계화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국내적으로는 1997년 금융위기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끊이지 않는 잡음과 마찰, 국제적으로는 최근 전세계를 휘청거리게 했던 서브프라임 위기 등이 대표적인 세계화의 그림자다. 세계화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이 그런 문제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계화는 불가항력적 시대의 흐름이며,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정적 현상은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라 주장한다. 반면 세계화 반대론자들은 세계화가 미국 중심의 초국적 자본 권력이 후진국의 경제적 종속을 촉진해 빈부 격차를 더욱 심하게 만들 뿐이라고 성토한다.
대니 로드릭은 <자본주의 새판짜기>를 통해 두 극단 중 어느 쪽에도 치우지지 않은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는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시장 기능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는 경제학자의 전형적인 주장도, 선진국이나 거대한 권력 집단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목적으로 세계화 담론을 이용해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다’는 날선 비판도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고 대립되는 두 진영의 중간 입장을 취하는 쉽고 편한 길을 걷지도 않는다.
<자본주의 새판짜기>의 가치는 쉽고 부드러운 논조로 세계경제의 ‘정치적 트릴레마(Trilemma)’라는 새로운 생각의 틀을 제공해주는 데 있다. 이 틀에 맞추어 담담하게 전개되는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로드릭이 제시하는 새로운 자본주의 모델인 ‘자본주의 3.0’의 당위성에 수긍하게 된다.
그가 말하는 세계경제의 정치적 트릴레마란 무엇일까. 서로 상충되는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만 골라야 하는 양자택일의 상황이 딜레마라면, 트릴레마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얽혀 있는 3가지 선택지 중 2가지만 골라야 하는 ‘삼자택이’ 상황을 말한다. 우리 앞에는 민주주의·국민국가·세계화라는 3마리 ‘토끼’가 있다. 세계화라는 토끼를 잡으려면 민주주의를 제한하거나 국가의 주권을 약화시켜야 한다. 민주주의라는 토끼를 잡으려면 세계화를 포기하거나 국민국가를 포기해야 한다. 국민 주권 강화라는 토끼를 잡으려면 세계화와 민주주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대니 로드릭은 17세기부터 시작된 국제화 역사를 개관해 보여주며 트릴레마의 원리가 항상 적용돼왔음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그에 따르면, 금본위제가 지배하던 1914년 이전까지는 강대국이 무역 규제를 완화하면서 세계화가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즉, 당시의 세계화는 국민국가의 영향력이 미미해 가능했다.
   
2009년 4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G20 세계금융정상회담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19세기 후반 들어 유럽 대륙에 보호무역주의가 팽배해졌다. 국민국가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민주주의 요구가 거세지면서 세계화는 슬그머니 힘을 잃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각국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자유무역 이데올로기를 양립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해졌다. 이때 등장한 것이  브레턴우즈 체제였다. ‘다자주의’라는 용어로 대표되는 브레턴우즈 체제는 각국의 자율권을 인정하는 동시에 적정 수준의 세계화를 가능케 하면서 출범 이후 30년 동안 세계경제를 받치는 버팀목 역할을 한다.
1990년 무렵 신자유주의와 시장근본주의가 힘을 얻으면서 개개의 정부는 재화와 자본시장의 국제 통합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모든 국가가 규제를 완화하고, 노동조합 세력을 약화시키는 등 세계화 물결에 동참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이로써 브레턴우즈 체제는 막을 내리고 더욱 진전된 ‘초세계화’(Hyperglobalization)를 추구해야 한다는 압력이 거세지게 된다. 그 중심에는 세계무역기구(WTO)가 있었다. 하지만 WTO 협상 과정은 계속 난항을 겪는다. 2001년 이후 협상은 확실한 매듭을 짓지 못한 채 번번이 결렬되고 만다. WTO를 대체할 새로운 제도적 체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저자는 과거에서 교훈을 찾자고 말한다. 그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브레턴우즈 체제 덕분에 가능했던 ‘얕은’ 혹은 ‘느슨한’ 세계화다. 각국 정부가 저마다의 경제 현실에 맞는 정책과 제도를 추진하도록 국민국가에 힘을 실어줄 때 더 나은 세계화를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국가의 힘을 강화하는 것이 곧 세계화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완벽한’ 세계화라는 망상을 버릴 때 비로소 건전한 세계화를 이룰 수 있다.

과시적이지도 음모론적이지도 않은…
이 책은 국제화와 관련된 다양한 경제 담론을 두루 짚어가며, 또 한편으로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거나 유력한 견해만 좇는 경제학자들의 성향을 질책한다. 경제학자들이 시대마다 유행하는 담론과 증거만 믿고 나머지는 묵살하며, 과거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최근의 경험만 중시하고, 외부인에 대해 배타적이고 오만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경제학자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와 오류를 저지를 수 있다. 하지만 경제 청사진을 그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서 자신의 역할과 영향력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공(功)은 공대로 인정하되 과(過) 또한 잊지 않고 반성을 촉구하는 저자의 태도는 자못 겸손하고 신선하다.
각종 통계와 전문 용어로 무장한 채 논리를 앞세우는 글은 가려운 구석을 시원하게 긁어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너무 날카롭고 과시적이라 불편하다. 장막 뒤에는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거대하고 강력한 집단’이 있으며, 그 뿔 달린 괴물이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한다는 음모론은 흥미롭지만 대개 감정적이고 터무니없다. 두 방법 모두 글 쓰는 사람이라면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자본주의 새판짜기>는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고 시종일관 명쾌하면서도 사려 깊게 논지를 전개해나간다. 더군다나 책 말미에는 본문의 핵심을 짚어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놓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나온다. 세계화 과정을 한눈에 돌아보면서 자본주의의 미래를 고민하게 하는 대목이다. 대니 로드릭이 제안한 자본주의 3.0을 실현하면 동화처럼, 그리고 모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게 될까?
lvoice@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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