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수출은 2006년 1042억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최초로 1천억달러를 넘어섰다. 이후에도 최근까지 1990년대 말에 비해 250% 이상 늘어나는 등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반면 중소기업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43%를 정점으로 2000년대 중반 32%로 하락한 뒤 정체돼 있다. 이는 수출로 발현되는 중소기업의 역할이나 위상에 대한 우려는 물론 중소기업 수출지원 정책의 효율성에 대한 논란을 제기하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특히 대·중소기업 간 상생 관련 이슈가 이해당사자 간 인식차를 보이는 최근 상황에 더욱 미묘한 기류를 형성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글로벌 생산사슬의 다양화·복잡화·네트워크화로 인해 대다수 중소기업이 대기업 가치사슬의 협력기업화하는 현상이 심화되는 것을 고려하면 이런 인식에 대해 주의가 필요하다.
실제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액정표시장치(LCD)·자동차·선박 등의 경우 중소기업에서 직접 수출하기보다 부품·소재를 최종 수출품 제조 대기업으로 납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중소기업의 실질적 역할에 비해 수출 기여도가 저평가될 수 있다. 중소기업 수출 비중 감소는 중소기업 생산 중심이 내수로 이동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중소기업 스스로 시장에서 판매하는 것보다 대기업으로의 납품이 주를 이룬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소기업의 수출 역량이 하락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중소기업의 수출과 관련해 현실적인 시사점을 도출하려면 대기업의 가치사슬을 통해 기여하는 중소기업의 ‘간접수출’까지 고려하는 것이 더 실질적 의미가 있다.

2008년 12월 부산 북항 부두에서 수출용 컨테이너 선적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간접수출 규모, 다양한 생산경로 고려해야
주요국의 중소기업 수출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직접수출 비중이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중소기업 중심의 산업구조로 알려진 대만은, 총수출의 중소기업 비중이 1990년대 초반 약 56%였지만(OECD·1997) 최근에는 20%에도 못 미치고 있다(SME Administration of Taiwan·2009). 인도 중소기업의 수출 비중은 199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약 35%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은 1997∼2007년 수출된 모든 상품의 30%가 중소기업에 의한 것으로 조사됐다(USITC·2010).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기업들이 대기업화되고 일반적인 대·중소기업 간 수출경쟁력에 차이가 있음을 고려하면, 중소기업 수출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대기업 중심의 수출촉진 정책을 강조해온 경우 더욱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간접수출인 경우 평가하기 쉽지 않다. 무역대행사를 통한 간접수출과 더불어 최종 수출품 생산 과정에 중소기업이 간접적으로 기여하는 다양한 경로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확한 통계에 기초해 이를 산출하기는  불가능하다. 언뜻 보기에 최종 수출품 생산과정에 납품된 중소기업 제품의 납품 원가를 고려하면 가능하나, 현실적으로 이를 산정할 수 있는 산업별·업종별 통계가 없다. 부품 생산 기업의 기여도에 대한 개념도 명확하게 규정짓기 어렵다. 많은 경우 부품·소재를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생산과정에 대기업의 기술력과 자금, 그리고 경영전략적 지원이 이뤄지고 있어 단순히 제조 과정에 납품된 제품의 가격으로 기여도를 산정하는 방법에 논란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수출에서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기여 비중을 산출하려면 최종 수출품의 수출 가격을 적용할 것인지, 생산원가를 적용할 것인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2002년 대만에서 설문조사한 바에 의하면, 대만의 총수출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직접비중은 18.5%에 불과하지만 간접비중(24.6%)을 합한 전체 기여도는 43.1%였다. 우리나라는 그 비중이 더 높게 나타난다. 2010년 중소기업연구원이 5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대상 중소기업의 97.8%가 대기업에 납품했는데 모기업이 중소기업인 경우 19.2%였다. 또 대기업상사는 8.4%, 중소기업 무역상은 1.4%로 나타났다. 중소기업 제품이 대기업에 납품돼 최종 제품으로 수출될 경우, 최종 제품 가격 대비 중소기업 납품 제품의 가치는 평균 33.4%로 조사됐다. 여기서 최종 제품은 대기업 및 중소기업 제품을 별도로 구분하지 않고 있으나, 중소기업의 대기업 및 중소기업 납품 비중이 2008년 기준으로 각각 43.5%, 56.5%임을 고려할 때 전체 대기업 수출액의 33.4%는 중소기업이 기여한 것으로 추정해도 큰 무리가 없다. 이를 근거로 전체 수출 대비 대기업 수출을 통한 중소기업의 간접수출 비중을 산출하면 약 23%가 되고, 이를 직접수출 비중 32%와 합산하면 중소기업의 직·간접 수출비중은 약 55%에 달할 것이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중소기업중앙회·중소기업청 자료(중소기업 실태조사 보고)에 나타난 중소기업의 모기업 납품액과 기업 규모별 납품 비중에 기초한 추정도 가능하다. 자료에 의하면 2008년 기준 중소기업의 중소기업 납품 비중은 56.5%(92.2조원), 대기업 납품 비중은 43.5%(71조원)이며, 대·중소기업의 전체 생산액 대비 수출 비중으로 나타나는 대·중소기업의 수출지향도는 각각 0.513과 0.265로 산출할 수 있다. 두 수치를 활용해 중소기업의 대기업 납품을 통한 간접수출액은 36.42조원, 중소기업 납품을 통한 간접수출액은 24.43조원으로 추산할 수 있다. 이를 전체 대·중소기업의 수출액과 비교하면 국내 중소기업들의 납품을 통한 간접수출 비중은 대기업 12%, 중소기업 17%로 추정한다. 2008년 국내 수출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68%이므로, 국내 중소기업이 대기업 납품을 통해 간접수출하는 비중은 전체 수출 대비 약 8%가 된다. 대기업 수출상사를 통해 수출된 중소기업 제품의 수출액이 중소기업 무역상을 통해 수출된 중소기업 제품의 수출액보다 클 것이므로, (2008년 중소기업의 직접수출 비중 32%를 합산한) 중소기업이 국내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직간접 규모는 40% 이상일 것이다.
산업별로 중소기업의 간접수출 비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산업인 자동차산업은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에서 발간하는 자료를 활용해, 2008년 전체 889개 자동차부품 제조기업 가운데 38개 대기업의 자동차부품 납품액을 차감하고 통계청의 자동차제조업 생산액과 비교하면 국내 자동차부품 제조 중소기업의 완성차업체 납품을 통한 간접생산 비중은 약 29.8%로 산출된다. 완성차의 경우 중소기업이 직접 제조·수출하지 않는 상황이므로 대기업 완성차 수출의 30%를 중소기업이 간접적으로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의 내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의 7개 완성차업체에 대한 납품 비중은 평균 39.4%로 조사돼, 앞서의 결과보다 10% 가까이 높았다. 조선산업은 2010년 중소기업연구원이 한국조선산업기자재협동조합 회원 150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 따르면, 대기업에 대한 중소기업의 기자재 납품을 통한 기여도는 45.4%, 용역을 통한 기여도는 16.3%로 대기업 선박 축조의 60% 가까이를 중소기업이 기여한다고 중소기업들이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대다수 중소기업이 최종상품 시장에서 대기업과 경쟁관계에 있다기보다 그들의 ‘글로벌가치사슬’(GVC·Global Value Chain)에 협력관계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이를 고려한 중소기업 정책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 앞서 제시된 사례들은 중소기업의 간접수출 경로와 그 기여도의 중요성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며,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수출 지원 정책이 이런 현실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전체 대기업 수출액 33.4% 중소기업이 기여
정책 담당자는 먼저, 현재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중소기업 수출지원 사업들을 공급자와 수요자의 공통된 시각에서 재평가하는 작업을 통해 직접수출 지원 중심의 정책을 재정비해야 한다. 다시 말해, 정부와 중소기업이 공통적으로 중요성을 인정하는 수출이나 해외 진출상의 애로점을 해결하는 현행 사업은 지속하되, 정부는 중요하다고 판단하나 중소기업은 중요치 않게 생각하는 사업의 효용성을 재검토하고 중소기업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정부는 중요치 않게 생각하는 장애 요인을 해결하기 위한 지원 수단을 강화해야 한다.
중소기업의 간접수출을 활성화하려면 수출 활성화 정책의 기본 방향을 단순히 제품을 만들어 ‘배출’(Production Out)하는 개념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 ‘진입’(Market In)시킨다는 개념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정책 담당자들이 글로벌가치사슬의 다양한 지배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당 가치사슬을 지배하는 대기업들이 각각의 다양한 기준과 견제 등을 통해 중소기업의 진입과 퇴출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에 대한 이해는 중소기업들이 해당 글로벌가치사슬의 지배자와 그들의 요구 사항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해당 사슬에 연계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는 데 가이드 역할을 하며, 정부 처지에서는 중소기업의 간접수출을 지원하는 정책을 수립하는 데 유용한 지침이 된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중소기업의 글로벌가치사슬 연계를 염두에 둔 전략적 외국인직접투자(FDI) 지원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국내에 투자하려는 외국계 다국적기업이 국내 중소기업과 연계될 경우, 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한 다양한 인센티브는 물론 국내 협력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한 조세를 지원해줘야 한다. 그래야 글로벌 공급사슬 내 중소기업의 진입이 촉진된다. 또, 다국적기업의 기술과 지식이 국내 협력기업에 이전되도록 FDI 정책을 고안해야 한다. 국내외 글로벌 대기업의 가치사슬에 대한 견학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사업도 고려할 수 있다. 해당 가치사슬을 관장하는 대기업은 단순히 기술·생산 현장만이 아니라 디자인·경영전략·마케팅 등 가치사슬 전 부문에 걸쳐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중소기업은 해당 기업이 주도하는 산업이나 업종, 품목의 미래 비전을 인지하고 이에 부응하는 전략을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런 사업은 대기업에서도 많은 중소기업에 미래지향적·시장경쟁적 환경을 조성해줌으로써 중·장기적으로 협력기업의 기술혁신과 납품 경쟁력 제고 등 실익을 기대할 수 있다.
정부는 중소기업의 간접수출뿐만 아니라 대기업의 수출경쟁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을 강조해야 한다. 글로벌가치사슬의 의미는 단순히 중소기업이 대기업 가치사슬에 상하관계로 연계돼 있음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중소기업이 네트워크화한 하나의 가치사슬로서, 또 다른 가치사슬들과의 경쟁에 직면해 해당 가치사슬 내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이 수출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johlee@kosb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