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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불안’, 복지 탓으로 돌리지 마라
[Special Report Ⅱ]재림한 불안사회, 계급 논의 부활하나
[15호] 2011년 07월 01일 (금) 김보근 economyinsight@hani.co.kr

닫힌 사회 막다른 골목은 ‘계급’인가
신자유주의 확대에 따른 복지 축소로 ‘불안정 사회’ 다시 올지에 촉각

‘복지의 시대’ ‘소통의 시대’는 이제 옛날의 일이 돼버릴 것인가? 최근 유럽 사회가 복지 축소로 갈등을 빚으면서 다양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 복지 축소를 부른 신자유주의 정책이 사회 불평등을 확대하면서 유럽 지성계에 계급 논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현재의 갈등이 산업자본주의 초기 그 광포한 시대의 첨예한 대립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우리 사회의 불평등이 치러야 할 많은 비용을 진지하게 성찰해봐야 할 시점이다.  _편집자
   
 


김보근 편집장

유럽이 연일 시끄럽다. 그리스를 필두로 포르투갈·스페인·영국 등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복지 축소에 항의하는 시위가 줄을 잇고 있다. 이런 유럽 사태는 우리에게 ‘복지의 시대는 끝났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과연 우리는 복지의 시대를 마감하고, 새롭게 도래하는 ‘불안정 시대’를 살아갈 수밖에 없을까?
우선 현재 유럽의 상황을 점검해보자. 지금 유럽 사태의 핵심에는 그리스가 있다. 지난 6월 하순까지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 중심부 신타그마 광장(헌법광장)에는 연일 정부의 재정 축소 계획에 항의하는 시위대로 넘쳐났다. 그리스 시민들은 그들의 절박함을 플래카드에 “삶도, 돈도, 아무것도 없다”고 적음으로써 드러내려 한다. 이들은 그리스 정부가 지난 6월9일 4년짜리 추가 긴축안을 통과시킴에 따라 이에 격렬히 항의한 것이다.

4년간 일자리 15만 개 없애는 ‘긴축’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는 이날 8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 끝에 △2015년까지 공공분야 일자리 15만 개 축소 △연금 동결 및 4년간 사회복지 지출 40억유로 감축 △인기 관광지로 꼽히는 국유지 매각 △재정 개혁에 대한 유럽연합(EU) 감독 허용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긴축안을 통과시켰다. 그리스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과 EU 국가들의 지원이 없다면 오는 7월 중순께 국가 부도를 맞을 수 있는 상황이라며, 외부 지원에 필수적인 긴축재정 편성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그리스는 지난해에도 EU 국가들과 IMF에서 1100억유로를 빌려왔다.
하지만 일자리와 복지 축소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긴축안이 통과되자 노동자와 시민들은 즉각 반발했다. 일자리 축소 대상이 된 국영 분야 노동자들이 당장 24시간 파업에 나섰고,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대표하는 양대 노총도 15일 공동파업에 나섰다.
   
지난 6월13일 그리스의 한 시위자가 아테네 의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중 길바닥에 반정부 구호를 적고 있다.
이런 파업과 시위가 그리스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지난 6월5일 중도우파인 사회민주당이 집권 사회당을 누르고 승리한 포르투갈에서도 시위와 파업은 낯설지 않은 상황이다. 포르투갈 총선에서 집권 사회당이 패배한 원인 중 하나도 복지 축소다. 포르투갈 사회당은 늘어나는 재정 적자 해결책으로 지난해 11월 50억유로 규모의 공공부문 임금 감축안을 발표해 포르투갈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불렀다. 포르투갈은 결국 지난 4월7일 EU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로 결정하고, 약 한 달 뒤인 지난 5월3일 총 780억유로(약 1160억달러, 약 124조원)의 구제금융을 받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이는 포르투갈 내부의 갈등을 해소하기보다 강화하는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포르투갈이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수용한 재정 적자 감축 비율을 달성하기 위해 또다시 복지 축소 정책을 취하면서 노동자와 시민들을 거리로 불러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은 EU 등과 올해 재정 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5.9%로, 2012년 4.5%, 2013년 3.0%까지 줄이기로 합의했다. 이런 조건을 충족하려면 긴축예산 편성이 불가피하고, 또다시 복지 축소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 밖에 지난 6월15일 카탈루냐 의회 앞에서 2천 명이 의회의 공공지출 및 사회복지 예산 10% 삭감을 저지하기 위해 시위를 벌인 스페인이나, 연간 1550억파운드에 이르는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복지예산 축소 등을 예고한 영국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복지 축소 물결과 항의 시위가 왜 유럽 대륙을 휩쓸고 있는 것일까. 보수 논객들은 손쉽게 ‘과잉 복지’를 그 원인으로 제시한다. 즉 한 나라의 경제력에 걸맞지 않은 과도한 복지 정책을 폄으로써 재정위기를 부르고, 이 재정위기가 구제금융으로 이어지면서 복지 축소라는 결과물을 낳았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은 한쪽만을 보는 것이라는 지적이 높다. 무엇보다 복지가 지닌 내수 진작 효과나 이를 통한 경제 안정성 효과 등을 도외시하는 논의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복지를 늘린다는 것은 저소득층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함을 뜻한다. 이렇게 저소득층에 더 많은 돈이 들어가면 국내 총소비는 늘어나게 된다. 왜냐하면 저소득층은 고소득층에 비해 추가 수입이 생겼을 때 더 많이 지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랏돈을 고소득층이 움켜쥐고 있을 때보다 저소득층에 복지 형태로 분배했을 때 더 큰 소비를 유발할 수 있고, 이는 경제성장과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스웨덴, ‘복지 통한 경제안정’ 모델
복지 지출 비중이 30% 전후로 유럽 최고 수준을 보이는 스웨덴이 바로 ‘복지 체력’을 입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스웨덴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뒤, 지난해 경제성장률 5.5%를 기록하는 등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스웨덴이 이렇게 위기에서 벗어나 높은 성장세를 보이는 데는 높은 복지 지출이 다시 내수로 환원돼 국내 소비를 높였다는 점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더욱이 그리스의 경우, 복지 확대가 국가 부도 위기의 주원인이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정세은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충남대 경제학과 교수)은 최근 <프레시안> 기고문에서 “남유럽의 복지 체제는 선진국 중에서도 그 수준이 낮고 사각지대가 많으며 비효율적이라는 특징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스나 포르투갈의 위기가 복지 수준이 높아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그는 남유럽 위기의 본질은 “유럽 통합 설계상의 근본적인 문제점에서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럽 통합이 “이자율 정책, 환율 정책, 재정 정책이라는 전통적 거시경제 수단을 모두 쓸 수 없”게 한 상황에서 이뤄짐에 따라, EU 국가들이 “경기조절용으로 각국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유로 도입 이후 유럽의 금융시장이 통합되면서 남유럽 국가들은 이전보다 좋은 조건으로 자금을 끌어다 쓸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이번 위기의 주요한 원인으로 꼽았다. “마치 외환위기 전 우리가 그러했듯이 남유럽 국가들도 해외로부터 자금을 끌어다 썼다”는 것인데, 이런 과도한 차입이 ‘국가 부도 위기’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물론 원론적으로 한 국가가 감당할 수 없는 복지 시스템은 궁극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 그러나 현재 유럽의 소동이 과도한 복지 탓인 양 해석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분석이다. 복지는 오히려 내수 진작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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