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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무관심 속 ‘황금열매’ 가꾸다
[Special ReportⅠ]아프리카 ‘신식민지’ 논쟁–②중국 중강그룹 진출기
[15호] 2011년 07월 01일 (금) 천주 economyinsight@hani.co.kr

천주 陳竹 <신세기주간> 특파원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시내에서 북쪽으로 15km쯤 달려, 사람들이 치안과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로 고통받는 복잡한 거리를 벗어나면 드문드문 들어선 서구식 건물이 나온다. 다국적기업들은 자카란다꽃이 활짝 핀 샌튼 상업지구에서 2~3층 높이의 건물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방범 비용을 분담한다. 건물을 겹겹이 둘러싼 고압 전류가 흐르는 3m 높이의 철조망이 기업단지와 거리를 격리해준다. 드문드문 떨어져 자리잡은 낮은 건물 사이로 17층 높이의 중강그룹 빌딩이 파란색 유리로 덮인 채 우뚝 솟아 있다.
2009년 남아공 현지 건설업체 에지 프로퍼티(Edge Properties)에서 지은 이 건물이 완공되자마자 중강그룹(中鋼集團, Sinosteel)이 5억랜드(남아프리카공화국 화폐단위, 약 3.33억위안, 약 600억원)를 주고 사들였다. 건물 내부는 평소 한산한 편이고, 일부 층은 외부에 임대했다. 아프리카에 상주하는 중강그룹의 중국 직원은 19명밖에 없는데다, 대부분 광산 근처나 요하네스버그에서 자동차로 3시간 거리인 림포푸주 폴로콰네시에 거주하기 때문이다. 중강그룹에는 이 건물이 갖는 상징적 의미가 실제 용도보다 더 중요했다. 하지만 최근 일부 변화가 감지된다.
   
2008년 5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청년이 “외국인이 우리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며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다. 중국 중강그룹은 지난 19년 동안 외국인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남아공에서 굳건한 터전을 일궈냈다.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을 상징하는 건물
지난해 11월 중순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의 남아공 방문을 앞두고 국유자산감독위원회,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중국투자유한공사, 중국아프리카발전기금 등 주요 기관의 고위급 인사가 중강그룹 건물에 모습을 드러냈다. 남아공 중국상공회도 중강그룹 건물에 간판을 달았고, 아프리카에 진출하는 다른 중국 기업들도 이 건물에 입주하기를 희망한다.
중강그룹은 남아공에서 크롬광산을 시작으로 19년 세월을 견디며 중국 국유기업 가운데 투자 규모가 가장 크고 뿌리를 깊게 내린 기업으로 성장했다. 최근 5년 동안 중강그룹은 남아공을 중심으로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으로 진출했다. 2006년에는 가봉, 2008년에는 짐바브웨와 카메룬에 진출하면서 현재 아프리카 지역에서 10개 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투자 금액이 10억달러를 넘었고, 총자산은 89억위안으로 크롬철의 생산능력이 90만t을 상회한다. 중강그룹은 국내 생산능력까지 더하면 연간 생산능력 130만t으로, 세계적 광산업체 엑스트라타(Xstrata)의 뒤를 이어 세계 2위의 크롬철 생산업체가 된다.
“아프리카의 수익성은 세계적으로 높은 편이다. 이윤이 괜찮다.” 남아공에서 꼬박 10년을 근무한 장쑤웨이(37)는 남아공의 자원 분포를 표시한 2m 너비의 대형 지도 앞에서 겸손하면서도 자신감 있게 말했다. 그는 중강그룹 아프리카대표처 총대표, 중강그룹 남아프리카크롬유한공사 상무이사 겸 최고경영자, 중강그룹 남아공유한공사 대표이사 등 세 가지 명함을 갖고 다닌다. 이제 그는 크롬광 채굴과 크롬철 생산 외에 남아공의 풍부한 망간과 우라늄, 석탄 자원에도 눈을 돌렸다. 중강그룹은 “이제 자리를 잡아 업계의 규칙을 파악했고, 새로운 과제를 앞두고 있다”고 했다. 자원국가주의 정서가 팽배한 세계시장에서 지역사회와 공존·공생하며, 주력 분야인 크롬철의 안정적 성장이라는 전제 아래 다른 자원에 투자할 기회를 잡는 것이 관건이다.

국교 수립 전 아프리카 방문
1991년 44살이던 둥즈슝은 중국야금수출입총공사 부총경리의 신분으로 처음 남아공에 왔다. 당시 남아공과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수교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중국 야금부의 총공정사 우시춘이 철합금 사업에 진출할 기회를 찾아 대표단을 이끌고 방문했다. 당시 중국은 크롬철이 부족했다. 보통 한 나라의 스테인리스 생산량은 철강 생산량의 약 4%를 차지했지만, 당시 중국은 철강 생산량이 1천만t이 넘는 반면 스테인리스 생산량은 30만t에 불과했다. 니켈과 크롬이 부족해서였다.
1992년 둥즈슝은 다시 아프리카를 방문했다. 이번에는 남아공 북부 림포푸주 딜로콩 광산으로 달려갔다. 이때 일본 미쓰이그룹과 이토추상사주식회사의 대표가 열정적으로 길을 안내했다. 이 일본 회사들은 남아공의 우수한 크롬광산에 눈독 들이고 있으면서도 투자 리스크를 우려해 대형 중국 기업을 끌어들이려 했기 때문에 기꺼이 다리를 놔주었다.
둥즈슝은 시찰단이 탄 차량이 광산에 들어서자 흑인 광부들이 ‘일자리를 달라’는 구호를 외치며 반겨주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는 그때 희망을 발견했다. 이전에 방문할 때만 해도 인종분리제도를 실시하던 남아공에선 중국 투자기업이 환영받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야금 관련 기관이 이 소식을 들고 베이징으로 날아간 둥즈슝을 주목했다. 1993년 2월 중국 야금수출입총공사와 중국강철재료총공사, 중국국제강철투자공사, 중국야금강재가공공사가 공동으로 중국강철공업무역그룹(중강그룹의 전신)을 창립했고, 둥즈슝은 총경리 비서로 승진했다. 그는 국가계획위원회에 예비 타당성연구보고서를 제출했고, 1994년 타당성보고서를 제출해 투자 프로젝트가 성공하길 기다렸다.
하지만 현실은 복잡했다. 중국과 남아공이 공식적으로 수교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심사와 비준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그때만 해도 중국의 장기적 국가 이익을 위해 해외 에너지 자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심각성을 인식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일부 심사부서의 책임자는 외환보유고가 부족한 중국이 외국 기업을 인수해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일자리를 늘려주느니 국내 자원부터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2007년 2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음베키 남아공 대통령이 두 나라의 협력과 관련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 중국 외교부가 사업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1994년 대만이 남아공의 거대 정당에 선거자금 1천만달러를 지원했고, 만델라 대통령이 당선된 뒤 대만과의 단교를 주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94년 6월 중국 외교부는 간부급 인사인 지페이딩을 남아공으로 보내 중국국제문제연구소 프리토리아 연구센터 주임으로 임명했다. 이 연구센터의 주요 임무는 남아공 각계에 로비해 중국과의 수교를 앞당기는 것이었다. 돌파구를 찾던 지페이딩은 중강그룹이 남아공 크롬광산에 투자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경제교류는 수교로 향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반겼다. 지페이딩과 외교부가 중강그룹 프로젝트를 후원하자 국내 다른 부서의 심사도 빨라졌다.
1996년 11월 중강그룹의 자회사 EAMI(East Asia Metallurgical Investment Co. Ltd)는 당시 남아공 림포푸주 북방발전공사(NPDC, 지금의 LimDev)와 합자회사인 아시아남아공금속유한공사(중강남아공크롬유한공사의 전신, ASA)를 설립했다. EAMI가 지분의 60%, LimDev는 40%를 갖고 1997년 남아공에서 공식적으로 탄생했다.
“그전까지 일본 기업을 스승으로 생각했다. 일본인들은 해외 광업투자 분야에서 신중하고 경험이 많다고 여겼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우리가 이겼다. 일본 회사가 하지 못한 것을 우리가 해냈고 성과도 괜찮았다.” 이것은 둥즈슝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경력이 됐을 것이다.

‘해외사업 매각’ 주장 단호히 배격
2003년까지만 해도 중강그룹의 자회사 대부분은 적자 상태였다. 그룹 전체의 연간 매출액은 130억위안, 순이익은 2억위안에 불과했다. 중신실업은행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대출 상환을 독촉하며 총재실의 문을 발로 찬 광경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다.
2002년에는 일부 경영진이 해외자산을 매각하고 국내 사업에 집중하자고 했다. 하지만 2003년 새로 총재로 취임한 황톈원은 취임 뒤 이런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해 계획경제가 남긴 폐단을 제거했고, 업무 중복으로 사업부서마다 해외에 진출해 자기들끼리 경쟁하는 국면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황톈원은 인수·합병과 구조조정을 통해 국내와 해외 사업을 동시에 추진해 중강그룹을 강하고 큰 기업으로 키웠다.
중강그룹은 그사이 남아공에서 크롬광과 크롬철 프로젝트를 확장했다. 중강그룹은 2007년 ASA에서 33억랜드(약 4억4천만달러)를 늘려 크롬광 프로젝트를 확대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연간 크롬철 생산규모 24만t에 달하는 폐쇄식 전기로와 연간 크롬원광을 54만t 생산할 수 있는 새로운 사갱 2곳이 포함된다.
이와 같은 해외확장 전략을 실시하자 남아공의 중강그룹 직원들은 크게 고무됐다. 실질적인 변화는 드디어 월급이 올랐다. 이제 사업 전망도 암담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직원들은 자신이 남아공까지 파견된 이유는 첫째 영어와 업무 경력 때문이고, 둘째는 ‘고분고분해서’ 조직의 결정을 잘 따르기 때문이라고 농담 삼아 말했다. 젊은 시절 몇 년 동안 고생하다 중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지만, 중강그룹이 해외사업을 너무 크게 벌여 해외 주재원이 부족해지자 한번 나오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무기징역’이 되었다.
2005년에는 폴로콰네시에 거주하던 ASA 상무부총재 류웨이의 집에 3인조 흑인 강도가 총을 들고 침입했다. 공포에 질린 나머지 다시 중국으로 돌려보내달라고 신청했지만 역시 반려됐다. 남아공에서의 체류 기간이 길어 고국으로 돌아간 뒤 적응하지 못하거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할 것 같은 걱정도 든다고 한다. 직장 생활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경력과 인간관계가 아프리카에 기반을 두고 있고, 그룹의 아프리카 사업이 확대돼야 개인의 앞날도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현지서 잔뼈 굵은 직원 간부 등용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의 월드컵 사커시티 경기장 건설 현장
중강그룹 아프리카대표처 총대표인 장쑤웨이가 경영진으로 발탁된 것은 2006년 ASA 총경리 후보자로 지명되면서부터다. 장쑤웨이는 중강그룹이 해외사업 일선에서 길러낸 경영자다. 동료들은 그를 아이디어가 풍부하며, 참을성이 많다고 평가한다. 1997년 중강그룹의 전신인 중국야금수출입총공사는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려고 둥베이대학에서 채굴과 제련 등 전공 분야 졸업생 3천 명 가운데 10명을 선발해 그룹의 관리자로 훈련했다. 13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 10명 가운데 7명이 외국기업이나 민영기업으로 자리를 옮겼고 3명만 남았는데, 장쑤웨이도 그중 하나였다.
동료들이 힘겨워하던 시기에 장쑤웨이는 명확한 목표를 갖고 미래의 기회를 개척하기 위해 준비했다. 2000년 남아공으로 파견되자 먼저 양샤오핑의 지도 아래 시장담당부서를 맡았고, 이어 재무부서로 자리를 옮겨 ASA의 외환관리와 재무·예산·결산·세무·원가조절·현금관리 등을 맡았다. 그때만 해도 ASA가 사업을 확장하기 전이라 업무가 바쁘지 않았다. 그는 3년 동안 남아공 현지에서 회계학 학사학위를 받았고, 다시 1년을 투자해 영국 국제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ASA는 물론 중강그룹 전체에서 유일한 회계감사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는 경영진이 탄생한 것이다.
장쑤웨이는 네이멍구 출신의 북방인이고 황톈원은 사오싱에서 자란 남방인이지만, 겸손하고 뭔가 대단한 것이 없어 보여도 부드러움 속에 날카로움이 번득이고 소신을 굽히지 않는 성격은 비슷했다. 두 사람은 해외사업의 전망이 밝다고 판단했고, 사업 구상에서도 뜻이 통했다.
장쑤웨이는 인프라 건설에 민감해서 남아공에서 철도를 건설하면 직접 가서 확인했다. 운송 환경만 갖춰지면 주변의 자원 가격이 폭등해서 수십∼수백 배 치솟을 것이라고 했다. 일부 직원은 직접 철도를 건설하자고 제의했지만 그런 의견에는 찬성하지 않았다. “남아공의 철도는 국유사업으로 완전히 개방하지 않았고, 개방한다고 해도 투자 규모가 방대하고 리스크가 크다. 잘 모르는 분야에 투자할 시간이 있으면 크롬석을 더 채굴하라.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인정하고 아는 척하지 말아야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장쑤웨이는 추진력이 강한 사람이었다. 취임한 뒤 사업을 확장하려는 황톈원의 뜻에 따라 ASA 크롬생산공장을 확충할 준비를 했다. 전기로 2기를 신축해 ASA의 크롬철 생산능력은 연간 12.8만t에서 36.5만t으로 늘어났다. 그는 “국제적으로 크롬의 수요는 중국이 결정하고 크롬의 공급은 남아공이 결정한다”고 말했다. 남아공의 크롬철 공급은 매장량이 아니라 전기로의 정상적 운전을 뒷받침하는 전력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남아공에서는 생산능력을 확대하려고 해도 전기를 구할 수 없는 것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남아공에서 95% 이상의 발전 능력과 전기 공급 시스템을 독점하고 있던 국영전력공사 EskoM은, 2008년 남아공의 크롬철 기업은 생산량을 10% 이상 줄여야 한다고 했다.

투기성 높은 자원 투자로 늘 긴장
다행히 장쑤웨이는 EskoM가 제한정책을 발표하기 직전에 선급금 방식으로 EskoM와 신규 전기로의 전기 공급을 보장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EskoM는 이 계약 때문에 다른 고객사에 소송당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2013년까지 남아공에서 신규 전기로를 확충하지 못할 것이다. 그 전까지 남아공의 크롬철 생산능력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2011∼2013년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장쑤웨이는 자신 있게 말했다.
자원광공업 분야는 가격과 환율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분히 투기적 요소가 많다. 일선에서 이 위험한 게임에 참여하는 장쑤웨이는 초조감과 흥분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글로벌 금융위기 때 다른 경쟁사들이 생산량을 줄이는 상황에서 ASA는 그룹 방침에 따라 오히려 생산량을 늘린 것이다. 당시 기업의 자금도 부족했고, 단기시장 전망도 불투명했다. 하지만 감산하기 시작하면 생산원가가 올라가기 때문에 그런 방법을 택할 수는 없었다. 그는 제품을 팔기 위해 직접 중국 내 업체를 찾아가 시장가격이 떨어졌을 때 사재기하라고 설득했다. 몇 달 동안 노력한 끝에 국내 업체들이 제품을 가져갔다. 더욱이 경기가 좋아진 뒤에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2008년 남아공의 다른 크롬철 제조업체들이 생산량을 줄이고 적자에 허덕일 때 ASA는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이익분쟁에서 한발 물러서는 지혜
이 일은 림포푸주 주지사 카셀 마탈레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그 뒤 방문하는 중국 기업에 큰 관심을 보였다. “우리는 취업에 큰 관심이 있다. 다른 업체들이 감산과 감원을 단행했지만 ASA는 그러지 않았다. 앞으로 우리 미래는 중국과 긴밀하게 연계될 거라고 믿는다. 중국과 협력하면 우리가 경제파동을 이겨내는 데 도움받을 것이다.” 그는 지난해 11월10일 <신세기 주간>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남아공에서 사업하기 위해 또 하나 넘어야 할 산은 외국인 투자자의 상상을 넘어서는 치열한 내부 이익투쟁이다. 내부 이익투쟁은 특히 경제수준이 낙후된 과거 흑인 거주 지역에서 심각하다. 각종 정당이나 노조, 지역의 토착세력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장쑤웨이는 이 문제를 인식했고, 지역 이익과 관련된 문제에서 중국인 투자자가 직접 나설 경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을 깨달았다. 2007년 크롬철공장 확장을 위해 부지 확보가 필요할 때도 이 일을 ASA 현지인 간부에게 맡기고 자신과 중국인 직원은 주민투표 현장 가까운 곳에 숨어 있었다. 이때 추장은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지 않았고, 237명이 투표한 결과 반대표는 단 2장이었다. 하지만 이 추장은 그 뒤 이익배분 문제에 휘말려 같은 종족원에게 살해되는 비극을 겪었다.
중강그룹의 또 다른 성공 요인은 철저한 현지화 경영에서 찾을 수 있다. 현지 법인의 전체 직원은 7천 명이 넘지만 중국인 직원은 19명으로 0.3%에 불과하다. ASA에서 장쑤웨이는 중국인 직원과 현지 직원으로 구성된 팀을 이끌고 있는데, 중국인 직원은 종합사무를 관장하는 리우웨이와, 투자 프로젝트와 생산기술을 맡은 부총경리 2명이다.
이익분쟁과 현지화의 파고를 넘어 2009년 8월과 10월 ASA의 3호기와 4호기 전기로가 조업을 시작했다. 이때 장쑤웨이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로 ‘흑인경제육성법안’(이하 BEE 법안)이 대두됐다. 이 법에 따라 지배구조를 변경해야 하는데, 자칫 중강그룹이 경영권을 잃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94년 인종분리 정책을 폐지한 남아공은 이후 BEE 법안을 제정했고, 정책적 지원을 통해 흑인이 중소기업을 발전시키고 국가 대형 기업 사업에 참여하도록 유도했다. 각 기업에 흑인 지분을 늘려 경영에 참여하게 하고, 기술교육에 참여하는 비중을 늘리는 목표를 설정해 흑인의 경제 참여도를 개선하려 했다.
   
콩고 콜웨지 제카민 광산 모습.
‘흑인경제육성법’이 던진 문제
이 법안은 2003년 남아공 국회에서 통과돼 2004년부터 시행됐다. 남아공 국내 기업들이 부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최저 지분인 ‘25%+1주’를 흑인과 ‘과거 불공정한 대우를 받은’ 사람들에게 매각하도록 규정한 조항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이 규정대로 따르면 중강그룹은 기업을 온전히 운영할 수 없다.
장쑤웨이와 동료들은 남아공에서 모든 관계와 인맥을 동원해 도움을 청했다. 중강그룹을 도와주겠다고 나선 사람 중에는 지페이딩의 친구인 남아공의 유명한 정치가 타보 음베키 전임 대통령의 동생 모엘레치 음베키도 있었다. 모엘레치는 BEE 법안을 공개적으로 질타해 “BEE 법안이 백인이 주도하는 회사가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지도자들에게 아부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했다. 결국 소수의 흑인 정치인들만 부자가 되고, 남아공 경제의 번영으로 연결되지 못하며, 빈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과 장리웨이의 설득에 따라 마탈레 림포푸주 주지사는 2006년 12월 협상에서 “중강그룹의 ASA에 대한 지분 60%는 변하지 않고, 주정부기업인 LimDev가 보유한 지분 40%만 BEE 법안에 따라 변화시키겠다”고 했다.
장쑤웨이와 동료들에겐 기쁜 소식이었다. 장쑤웨이는 “이렇게 해서 우리는 지배권을 유지할 수 있었고, 남아공의 법률 개정 과정에서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장기적 발전과 연관된 전략적 문제를 해결했다”고 당시를 되돌아봤다.
ASA의 사업 확장과 BEE 지분 분배가 일단락되자, 현장에서 발로 뛰던 장쑤웨이와 베이징 본사의 정책결정자들은 중강그룹이 남아공에서 5~20년 뒤를 내다보는 전략적 계획을 정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자금광업(紫金鑛業) 등 중금 기업들이 남아공에 진출했다. 이들은 19년 전 중강그룹이 그랬듯이, 낯선 환경에서 돌다리도 두들겨보는 심정으로 어떻게 살아남을지 고민했다. 장쑤웨이는 “중강그룹이 탐색기를 거쳐 어느 정도 경험을 쌓고 인맥을 구축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기회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제 착실히 한 걸음씩 나아가기보다 새로운 단계로 도약해서 다원화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크롬광 분야는 남아공에서 처리할 수 있는 최대 한도를 확보했는데 우라늄과 망간, 석탄 자원도 기회가 많고 시장 가능성이 밝다. 남아공의 우라늄 자원은 인지도가 이웃 국가인 나미비아에 미치지 못하지만 매장량은 세계 5위다. 중강그룹은 이미 중국광동원자력발전그룹, 중국원자력발전산업그룹과 함께 남아공에서 적극적으로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크롬 넘어 우라늄·석탄에 눈 돌려
석탄 역시 장쑤웨이가 기대를 걸고 있는 분야다. 남아공의 석탄은 품질이 우수하고 탄층이 얕아서 채굴 비용이 t당 20달러 미만이지만, 시장가격은 60달러 수준이라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남아공의 지방정부가 전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규 발전소를 확충하고 있어 2014~2016년 가동될 예정이다. 장쑤웨이는 지금 건설하고 있는 신규 발전소 위치를 기준으로 주변 광산을 공략해 5년 뒤부터 채굴을 시작하면 수익을 거둘 것으로 내다본다.
이처럼 기회는 많지만 시급한 문제는 역시 자금이다. 중강그룹의 한 내부 인사는 5년 전부터 ASA를 요하네스버그에서 상장하는 문제를 고려했다. 현지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기업 브랜드를 홍보하며, 지분을 주거나 스톡옵션 등의 방식을 도입해 경영진이 경쟁사로 자리를 옮기지 않도록 경영진을 붙잡아두는 1석3조의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았다.
중국 정부는 최근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기업들이 해외에서 자원을 확보하도록 지원한다. 이와 동시에 은행은 대출 심사를 할 때 확보한 자원의 상당 부분을 국내로 가져오도록 했다. 기업 운영을 시장에 맡기고 있는 ASA에는 정부의 이런 정책이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면이 있다.
ASA의 경우만 하더라도 2008년까지 크롬철을 단 1t도 중국으로 판매하지 않았고 일본이나 미주, 유럽 시장에 판매했다. 외국의 시장가격이 중국 내보다 평균 13~15% 높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인력이 풍부하고 생산비용이 적게 들어 터키나 카자흐스탄에서 크롬광을 수입해 국내에서 제련하기 때문에 국내의 크롬철 가격이 낮게 형성됐다.
남아공에서 중국까지 운송 거리가 너무 멀어서 크롬광이나 크롬철을 운송하기엔 채산성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장기적 이익을 고려해 생산량의 20%를 중국 고객사에 공급하고 있다. 서방 시장에서 어떤 변화나 사고가 감지되면 국내 시장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다.
장쑤웨이는 조급하고 안타까운 기분이 들 때가 많다. 몇 년 전까지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자원이 지금은 서로 차지하려고 경쟁하는 대상이 된 것이다. 홍콩과 오스트레일리아, 한국에서 온 광공업 기업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인수에 나서고 있다. “우리가 계속 가만히 있으면 모두 잃게 될 것이다.” 그는 예전처럼 눈앞에 있는 작은 프로젝트에만 집착하면 기업에 기여하는 효과가 작고 적기를 놓치게 될 거라고 했다.
ⓒ 新世紀週刊·번역 유인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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