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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파산 결정하는 ‘투기 컴퓨터’[기사 전문]
[Special Report]유럽, 시장과의 전쟁
[2호] 2010년 06월 01일 (화) 울리히 피히트너 <슈피겔> 경제부문 기자 economyinsight@hani.co.kr

울리히 피히트너 Ullrich Fichtner  <슈피겔> 경제부문 기자

부동산, 기업, 신용대출, 원자재 이후 이제 한 나라 전체가 국제적 투기자본의 장난감이 되고 있다. 머니게임의 주역은 악당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에 의해 냉정하게 투자하는 컴퓨터다. 컴퓨터가 국가 파산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 흘러가고 있다. 일요일 새벽 4시 시드니 시장이 열리고 금요일 밤 10시 뉴욕 시장이 닫히는 사이 6일간의 주식 거래일 동안 138시간, 8280분, 49만6800초, 4억9700만 밀리초, 그 사이에 인간과 기계는 비즈니스와 세상의 운명에 관련된 결정을 끊임없이 내리고 있다. 모든 것이 흘러가고 있다. 이것은 크고 작은 소식들의 흐름이다. 유럽 시간으로 새벽 2시 뉴질랜드에서는 신용카드 매출액이 발표됐고, 3시에는 시드니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수출량이 보고됐다. 도쿄에서는 4시30분에 일본 산업에 관한 새로운 소식이 전해지고, 아침 7시에는 제네바에서 소비자가격에 대해 더 많은 사항이 알려질 것이며, 7시30분에는 브뤼셀에서 유럽 중앙은행 총재인 장클로드 트리셰가 언론 앞에 선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10시에 연설을 할 것이고, 유로존 재무장관회의 의장인 룩셈부르크인 장클로드 융커가 낮 12시에, 미국 재무장관 티머시 가이트너가 오후 2시에 연설을 할 것이며, 3시에는 그리스의 새로운 6개월물 단기 국채의 판매 실적이 어떤지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시카고 선물시장에는 캐나다의 농업, 스위스의 은행 감사, 영국의 석유 거래 시장, 인도의 철강산업, 홍콩의 항구 관리, 오스트레일리아의 농업협회에 대한 새로운 데이터가 주어진다. 그 뒤에야 거래일 하루 24시간이 지나간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아주 조금 변화했다. 조금 더 부자가 되었을지 아니면 더 가난해졌을지 모른다. 단지 이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투자은행과 헤지펀드의 시장교란에 중앙은행은 속수무책이다. 런던 시내 영란은행 앞 버스 정류장에 시민들이 서 있다.

심장 없는 투자자
포르투갈의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공공부채 비율이 근래에 중요해졌다. 미국의 노동시장 정보는 주기적으로 주식시장을 뒤흔든다. 헝가리의 인플레이션 비율이 중요한 요소가 될지 모른다. 물론 중국의 환율정책은 언제나 중요하다. 영국 파운드의 환율도 한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어떤 역할을? 그리고 현재의 트렌드는 무엇인가? 그리스 경제 위기와 같은 사태가 왜 발생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이 매주·매일 전세계 중앙은행, 금융회사 이사회, 헤지펀드회사의 연구부서, 신용평가회사의 사무실과 대형 컴퓨터, 전세계적으로 운용되는 연금펀드와 보험회사의 긴 복도에서 ‘투자자’라고 칭하는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서 구해지고 있다.
‘투자자’가 도대체 누구인지 단번에 이해해보려는 시도는 언제나 실패했다. 그들을 단순한 도둑으로 낙인찍는 사람들은 핵심에서 한참 멀리 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을 이 시대의 멋진 영웅이자 ‘금융 우주’의 지배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역시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머니게임의 주역이 그들의 이성을 이미 오래전에 컴퓨터 시스템에 양도했다는 소문이 사실일 수도 있다. 성공적인 투자자가 악당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의 규칙과 약점을 잘 이해하고, 그것을 완벽한 기계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를 위해 이용할 줄 아는 이 시대의 지식인이라는 것도 맞는 소리일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도덕적 선함이라는 것이 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세계에 살고 있다. 그들은 무도덕적으로 행동하고, 시스템 논리를 따르며 냉정하게 자신들의 지렛대를 누른다.
그들의 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종종 성공적이면서도 대부분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인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박사 혹은 그 외 다른 호칭을 단 경우가 많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인간의 본능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 투자자와 만나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왜 주식시장이 침체되고 한 국가가 휘청대는지 그리고 오늘날 자본주의가 큰 그림으로 볼 때 어떠한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감을 잡게 된다. 왜 지금 미국의 부동산 시장에서 시작된 대출의 리스크가 전세계적으로 투기 대상이 되었고, 이제 그리스·포르투갈 같은 나라(아일랜드도 이에 포함될지 모른다)를 국가 부도의 위기로 몰아넣어 제3단계로 발전해 전세계를 집어삼키게 된 것인지도 이해하게 된다.
이 분야에 대한 취재는 내부 사정을 공개하지 않고 비밀을 엄수한다는 재계의 불문율로 인해 매우 어렵다. 이름을 밝히고 나서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입을 열더라도 대부분 사건의 배경 설명에만 동의한다.
사실 그들의 이름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그들의 이름은 언제라도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이 회사의 수석 딜러였던 자가 내일은 다른 곳의 이사회 임원이 될 수도 있다. 조금 전 런던에서 큰돈을 관리하며 일하던 사람은 곧 홍콩이나 뉴욕에서 같은 일을 하게 될 수도 있고, 해고되거나 조기 은퇴의 황금 낙하산을 타고 이 세계를 빠져나가는 바람에 아예 더 이상 일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어떤 시장도 금융시장만큼 빠르게 돌아가지 않고 일일 영업을 조 단위로 계산(산출)하지 않는다.
거래되는 것은 국채·화폐·선물이고, 도박의 기준은 경제성장 곡선, 주식시장 동태, 금리 예상이며, 도박에 거는 것은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금액으로 이 모든 것은 거의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전략으로 처리된다. 이 시장에서 일하는 자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그들은 도대체 그리스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투자자는 어떤 사람들이고, 무엇을 하고, 무엇을 생각하는 것일까?

파도 기다리는 서핑과 유사해
“헤지펀드는 해안의 암벽 뒤에서 손발을 퍼덕이며 헤엄치면서 다음에 올 커다란 파도를 기다리는 서핑에 비할 수 있습니다”라고 런던의 한 헤지펀드 회사의 수석딜러는 말한다. 그는 켄싱턴의 한 바에 앉아 백포도주 한 잔을 앞에 두고 있다. 하이드파크가 멀지 않고, 바의 문 앞 가까운 곳에는 포르셰 카이엔이 주차돼 있다. “실력 있는 서퍼는 참을성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람과 물과 날씨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장 좋은 시점을 가려낼 수 있습니다. 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자들은 자주, 충분히 크다고 판단하는 첫 번째 파도에 올라타죠. 그리고 저쪽에서 진짜로 거대한 파도가 다가오는 순간을 놓치는 겁니다.”
그가 운용하는 헤지펀드는 업계의 선두주자 그룹에 끼어 있다. 그는 지난 10년간 매년 평균 20%의 수익을 올렸으며, 그가 관리하는 자산은 100억달러 이상이다. 이 회사에 참여하고 싶은 고객은 최소한 100만달러를 투자해야만 한다. 하지만 대개의 고객은 그보다 훨씬 많은 5천만·2억·3억달러와 같은 큰돈을 투자한다.
고객은 보통 부유한 개인이 아니라 은행, 투자회사, 재단과 같이 손실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그들의 돈을 가능한 한 넓게 투자하는 기관이다. 누구도 세계 금융시장 룰렛에서 빨강색이나 검정색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 그들은 정교한 시스템에 따라 많은 숫자 조합과 숫자 필드에 거는데 이것을 ‘세분화한 리스크’라고 칭한다.
그가 일하는 헤지펀드 회사는 크기는 하지만 수많은 헤지펀드 회사 중 하나일 뿐이다. 그 때문에 이 회사를 전형적인 헤지펀드 회사라고 규정할 수 없다. 이 세계에서는 전형적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1999∼2007년 헤지펀드 회사 수가 전세계적으로 9천 개가 넘고 그들이 관리하는 자산이 1조6천억달러로 5배 늘었을 때 그들의 투자 분야와 방법 역시 매우 다양해졌다.
2008년의 경제 위기를 놀라울 정도로 잘 버텨낸 펀드는 보통 그들의 사업을 특정한 지역이나 외환에 집중한다. 또 다른 기관들은 저평가됐다고 판단되는 주식에 특화하거나, 현재 곤경에 처한 대기업에 투기를 하거나, 그리스와 같은 한 나라의 국채에 특화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자동차 브랜드 수만큼이나 다양한 헤지펀드 형태가 있습니다. 그중에는 때로는 도요타처럼 액셀러레이터에 문제가 생기는 자동차도 있는 법이지요”라고 런던의 딜러는 말한다.
이 런던 펀드회사는 지금까지 큰 문제가 생겼던 적이 별로 없다. 이 회사는 유능한 서퍼가 파도를 타는 것처럼 트렌드에 올라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천재적인 아이디어로 돈을 불리는 새로운 방법을 지속적으로 개발해내는 것이 아니다. 직원 200명 중에 100명이 자연과학자(수학자, 통계학자, 핵물리학자, 생화학자)다. 그들의 최우선 임무는 시장을 예측할 수 있게 만들고 인간적 약점을 계산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 군단의 신조다. 여기에는 옥스퍼드·케임브리지·하버드·스탠퍼드대학의 우수한 졸업생이 모여 있는데, 의외로 경제를 전공한 사람은 드물다.
그들은 인간 행태를 분석한 뒤 그것을 인간 본연의 모습, 혹은 그들이 생각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규정한다. 그들에게 인간은 참을성이 없고, 규율에 따르기를 싫어하고, 자기중심적이고 탐욕스럽고 거만하며, 언제나 현실을 똑바로 보려 하지 않는다. 회사의 내부 문서에 바로 그렇게 적혀 있다. 이러한 인간적 특징에 관한 지식과 이해가 결국에는 성공 혹은 실패의 기초가 되며, 최고의 헤지펀드 회사들은 이런 인간 행태를 이진법의 컴퓨터 언어로 번역하는 데 성공했다.
과거 뛰어난 딜러였던 조지 소로스나 워런 버핏처럼 투자자가 세계 현황을 날카로운 이성으로 판단하고 냉혹하게 결정을 내리는, 폭이 넓은 바지 멜빵을 한 ‘최고의 사상가’(Meisterdenker)라는 생각을 이제 떨쳐버려야 한다. 조지 소로스 혼자서 영국의 파운드를 유럽 통화연합에서 밀어낸 일은 언제나 전설이다. 소로스는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의 거대한 무리 속에서 수영했고, 그들의 집단 행위는 거대한 ‘시장의 움직임’이 되었다.

헤지펀드 거래의 95% 자동으로
오늘날 헤지펀드 매니저는 한곳에 모여 그리스의 긴축정책이 효과가 있을지, 타이 정부가 버틸지, 혹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예’ 혹은 ‘아니요’라고 답할지에 대해 토론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들의 기계에 지속적으로 새로운 데이터를 입력하고 컴퓨터에 정보를 넣는다. 이미 숫자로 가득 찬 하드디스크를 가진 이 컴퓨터는 수학적 모델에 따라 이런저런 상황에서 가장 최선이 무엇인지를 출력한다.
입력되는 것은 경제 통계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인류의 기원도 입력하고 싶을 것이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이 런던의 헤지펀드 회사 컴퓨터에는 17세기의 은행 데이터, 르네상스 시대 플로렌스 공화국의 예산, 전쟁과 경제 위기 시대의 시장 통계까지 입력돼 있다. 프랑스혁명 중에 영국의 국채는 어떤 움직임을 보였는가? 크림전쟁은 어떤 영향을 미쳤나? 제1차 세계대전 전에는 강세장(Bull Market)이 어떤 단계였는가? 2차 걸프전쟁 뒤 약세장은 어떻게 진행됐는가?
이 엄청난 양의 데이터와 상상이 불가능한 숫자들에서 일종의 패턴, 즉 반복 과정, 미래 전개에 대한 확률, 인간 무리 본능의 구조를 산출해낼 것을 희망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인간의 희망과 공포, 탐욕과 경계심이 숫자로 변환되고 있다. 유럽 국가의 수장들이 그리스 지원 정책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이 기계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헤지펀드는 95%의 거래를 완전히 자동으로 행한다. 컴퓨터가 경제 곡선의 움직임과 주식시장, 전세계의 가격과 금리를 분석하고 특정한 조합이 이루어지면 바로 명령을 내린다. 그리고 기계는 정치가들이 좀전에 무엇을 결정했는가 또는 평론가가 어떤 논설을 썼느냐에 상관없이 포지션을 사고 판다. 이 시스템에서 인간의 역할은 컴퓨터에 최신 업그레이드를 설치하고, 그 소프트웨어를 관리하고, 알고리즘을 조정하고, 프로그램 오류를 제거하는 것뿐이다. 이들은 매년 자사 고유의 연구를 위해 예산의 절반가량을 투자한다. 즉, 아우디의 슬로건에 나오는 것처럼 ‘기술을 통한 진보’가 계속되는 것이다.
고객 중 절반 이상은 은행이고, 5분의 1은 투자펀드, 그리고 나머지는 정부와 연금공단, 대형 재단이 차지하고 있다. 그들의 돈으로 헤지펀드는 전통적인 업계 영역에서 일한다. 주식과 통화 거래, 국채에 투자를 하고, 귀금속·원자재·곡물 심지어 가축까지도 거래한다. 그리고 모든 딜은 미래를 향하고 있다. 모든 것이 ‘장래성’에 달려 있고, 선물거래가 중심이 된다. 모든 분야는 매년 서로 완전히 다르게 전개된다.
이는 매우 빠른 속도의 회전목마를 타고 있는 것과 같다. 돈은 언제나 수은처럼 빠르게 최상의 투자 기회를 찾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과거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자동화와 경제 수학의 엄청난 발전이다. 이로 인해 과거에는 실행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복잡한 거래가 오늘날에는 가능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은 분리에 관한 것이다.
20세기의 80년대와 90년대까지는 금융거래와 외환선물거래가 실제 제품, 원자재, 공산품 혹은 농산품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미국 수입업자가 독일에서 기계를 사는 데 필요한 유로화를 제공하기 위한 현물 시장(Spot Market)은 여전히 거대한 시장이다. 하지만 이 시장에는 오로지 돈만 거래되는 가상의 형제가 많이 생겼다.
사람들은 외환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몇 개의 ‘피프’(pips), 즉 콤마의 한참 뒤에 있는 초 단위 환율 이익을 얻기 위해 수백만유로를 팔고 달러를 사거나 그 반대로 거래한다. 사람들은 한 회사를 믿고 이윤을 얻기 위해 주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사용료를 받고 그 주식의 가치 하락에 투기를 하는 고객에게 빌려줄 수 있기 때문에 사들인다. 이를 ‘공매도’(Short Selling· 주식을 빌려 판 뒤 시장에서 사들여 되갚는 것)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캐리 거래’(carry trade)가 이어지고 있다. 이 거래는 돈을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놓아 돈을 불리기만 한다. 이런 거래의 전형적인 예는 1990년대에 있던 일본 엔으로 이뤄진 게임이다. 당시 많은 딜러, 은행, 보험회사가 1%의 금리 혹은 그 이하를 요구하던 일본 은행에서 돈을 빌렸다. 그들은 이 일본 엔을 오스트레일리아 달러로 환전해 당시 5% 혹은 6%의 이자를 주던 오스트레일리아의 은행에 저축했다.
이러한 거래는 금리와 환율이 안정적일 때는 잘 돌아가지만, 환율이 하락하면 급속하게 재앙으로 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모든 투자자가 ‘리스크 혐오’ 증상을 보여 자신의 리스크를 관리하고 소멸시키기 위해 병행 거래를 맺는다. 이러한 일은 점점 더 거래 모델이 복잡해지게 만든다.
어쨌든 금융시장에 대해 공부할수록, 그리고 그 시장의 주역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그리스가 매우 크고 다채로운 그림의 모자이크 타일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 은행 혹은 수십억 자산을 가진 투자자의 포트폴리오 내 하나의 포지션일 뿐으로, 다른 포지션보다 너무 거대해졌을 경우에만 문제가 되는 것이다.
또 하나 배울 수 있는 것은 몇몇 양심 없는 도박꾼이 그리스의 국가 부도 혹은 유로화의 가치 하락을 유도할 수 있거나 그것을 시도할 수 있다고 믿을 근거가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국제 외환시장에서 매일 3조5천억달러 이상의 외환 거래가 이루어진다. 그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달러와 유로의 환전 게임이다. 어떤 개별 투자자 혹은 투자자 그룹, 헤지펀드 그룹일지라도 이 시장에 영향을 미칠 만큼 충분한 자산을 가지고 있지 않다.
국채 거래도 마찬가지다. 국채는 오늘날 금융시장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도구’다. 국가가 장기 혹은 단기, 석 달 혹은 10년 기한으로 세계시장에서 돈을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이다. 국가 부채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는 때는 보통 국채 상환, 채권 이자 상환을 의미한다. 독일 국채를 사는 사람은 독일에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이 국채를 다른 사람에게 팔면 그와 함께 부채가 넘어가는 것이다.

100파운드가 장부상 500파운드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채권시장인 미국에서 정상적인 거래일에 하루 4천억달러 이상의 국채가 사고 팔리며, 이를 통해 두바이·카자흐스탄·프랑스·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일본·폴란드 사이에 국가적으로 연계된 약 40조달러 규모로 추정되는 자금이 세계 시장 전체에 떠돌아다니고 있다.
그리스의 경우 그 금액이 확연히 적지만, 만일 그리스가 40억유로 상당의 채권을 새로 팔려 한다면 가장 돈이 많은 개별 투자자라 할지라도 이런 거래에서 가격과 이자를 진짜로 조종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투자자는 개별적으로 본다면 마치 메뚜기와 같다. 큰 동물에 비하면 언제나 작은 벌레일 뿐이다. 아니면 코끼리 등 위의 모기와 같다고도 할 수 있다. 그 웽웽거리는 소리 때문에 귀찮기는 하지만 혼자서 코끼리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만한 힘은 없다.
“오늘날 은행 시스템은 거대한 눈 뭉치 시스템과 비슷합니다.” 런던의 웨스트엔드에서 정오에 스파게티를 먹고 있던, 얼굴에 곰보 자국이 있는 스코틀랜드인 투자 은행가가 말했다. 그는 먹고 말하는 도중에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고 목소리도 커졌다. 그는 거래가 가상화해가며 계속 수상쩍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우리가 지금 막다른 골목에 들어와 있는 겁니다. 단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을 뿐이죠. 하지만 이곳 런던은 세기말 분위기입니다. ‘게임은 끝났다’는 느낌입니다.”
그는 거의 30년간 은행 업무에 종사했다. 1980년대 남미의 경제 위기를 지켜보았고, 90년대 아시아의 폭풍과 러시아 경제 위기, 멕시코 경제 위기,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를 겪었다. 스웨덴 은행이 부도나는 것을 보았고 아이슬란드의 몰락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그는 돈을 잘 벌었다. 2008년 마침내 붕괴된, 이국적인 금융거래와 신용상품의 구성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지금 그는 스스로의 과거를 역겨워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여전히 투자 은행가로 남아 있었다.
그는 “예전에 은퇴자가 100파운드를 은행에 저금하면, 은행이 빌려줄 수 있는 돈은 100파운드 늘어났습니다. 지금 시스템에서는 몇 가지 트릭을 사용하면 100파운드를 갑자기 500파운드 또는 그 이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중 최소 100파운드는 다음 결산 발표일에 해당 은행 회계의 순이익으로 기록된다는 데 돈을 걸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되죠? 그는 “아주 간단합니다”라고 소리쳤다. “아직도 그걸 못 알아챘다니!” 은행은 100파운드를 500파운드를 빌려주기 위한 담보로 삼는다. 이 500파운드에 은행은 즉시 신용부도스와프(CDS·거래 상대방이 부도를 냈을때 떼인돈을 대신 갚아주는 보험상품) 계약을 맺는다. 그들은 채무자가 부채를 갚지 않을 것이라고 보지도 않고 그것이 계약을 체결하는 진짜 이유도 아니다.
사실 은행은 자신들의 대차대조표가 좋아 보이도록 하기 위해 CDS를 체결한다. 그들이 CDS를 사들이는 순간 500파운드 부채는 장부에서 사라진다. 이 말은 부채가 완전히 없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헤지’(hedge)로 회계상 소멸하는 것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보장 매도자(CDS를 판 기관)가 지급하고 은행은 지급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은행은 “그들이 얼마나 미쳤느냐에 따라” 은퇴자의 100파운드를 담보로 다시 새로운 신용대출을 해줄 수 있다. 그리고 또다시 이 대출에 CDS를 들 수 있다. “이렇게 계속하는 겁니다. 이것은 눈 뭉치 시스템이에요. 은행에 화폐 인쇄 허가가 난 꼴이죠”라고 말했다.
은행은 오늘날 더 이상 런던 중심부에 있지 않다. 그들은 도시 동쪽에 위치한 과거 템스강 항만 구역 중 하나였던 ‘아일 오브 도그스’(Isle of Dogs)에 거처를 차렸다. 그곳으로 가는 사람은 스레드니들가(街)의 영국 은행 앞에서 전차를 탄다. 이 건물은 코린트식 기둥이 받치고 있는 18세기식 궁전으로, 영국이 바다와 시장을 지배하고 산업혁명이 시작되던 시기에 만들어진 건물이다.
여기서 카나리 워프까지는 멀지 않다. 카나리 워프는 강철과 유리로 만들어진 번쩍이는 구역으로, 템스강이 그 사이를 흐르고 있다. 이곳의 거리와 광장 이름은 뱅크스트리트, 캐봇과 캐나다스퀘어 등이며 광장을 둘러싸는 오피스 타워에는 세계 자본계의 유명한 이름들이 모여 있다. J. P. 모건, HSBC, 바클레이스, 크레디트스위스, 모건스탠리, 무니히 레, 웰스 파고, 시티그룹, 셰브런, 뱅크오브아메리카, 여기에 신용평가회사 피치, <파이낸셜타임스>, 그리고 관광객을 위한 동판에는 아직 리먼브러더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들은 뱅크스트리트 25번지에 위치한 녹색 유리 외장의 40층 건물에 입주해 있었다.
이곳의 한 건물에서 어느 주요 은행의 수석 외환 딜러가 손님을 맞이했다. 복도에 깔린 카펫은 특급 호텔의 카펫만큼이나 두꺼웠고 회의실에는 열대 목재로 만들어진 조각된 탁자가 놓여 있고, 벽에는 현대 미술작품이 걸려 있다. 접수처에는 네 명의 완벽하게 차려입은 사무 여직원들이 앉아 있었다.
 
그리스에 대한 모순적 태도

딜러는 흰색 노타이 셔츠를 입은 40대 남자였다. 완벽한 매너를 보여주는 영국인으로 손님에게 직접 커피를 따라줬다. 왜 투자자들이 그리스 국채를 사지 않는 거죠? 그는 “국채를 안 사는 투자자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장기 투자에 묶이는 걸 두려워하는 연금펀드와, 보장이 필요한 은행과, 그리고 몇몇 투기자본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 말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그리고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그는 거짓말도 했다. 하지만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리스 경제 위기의 요소를 파악할 수 있고, 금융시장에서 도대체 누가 진짜 게임 참여자이자 투자자인지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다.
독일의 연금펀드는 국제적으로 통상적인 형태가 아니기에 독일 내 토론에서는 큰 역할을 하지 않았다. 바로 이 연금펀드는 1천억달러 혹은 2천억달러 이상의 자본을 가진 거대한 투자기업과 마찬가지다. 그들은 금융시장의 주역이기도 하다. 그들은 주로 국가기관이거나 준공립기관으로, 일본이나 캘리포니아에서 공무원의 연금 지급을 담당하고 있다. 이 기관들 중 많은 수가 리먼브러더스의 부도가 발생하기 전까지 몇십 년간 유럽 국채를 “기꺼이 사들였다”고 카나리 워프의 은행가는 말했다.
그리스는 유럽연합(EU) 가입 이후 잘 발전해왔다. 포르투갈과 아일랜드처럼 낙후된 분야에서 유럽연합 국가들을 따라잡았다. 그들이 숫자를 속였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스 국채는 잘 팔렸고 재판매도 잘됐다. 이 국채는 ‘유동적’이고 언제나 독일 연방 국채보다 몇% 높은 이자를 지급했다.
그리스와의 거래가 이렇게 잘되고 위험성이 없어 보이자 많은 연금펀드 매니저들은 자신들의 포트폴리오를 말 그대로 그리스 국채로 가득 채웠다. 가장 심한 경우에는 그리스 국채가 현재 전체 투자 중 10%를 차지하는 펀드 매니저도 있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과 11월 경제 위기가 닥치자 그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리스 국채의 가치가 떨어지고 거의 팔 수 없게 되었다. 국채는 금방 쓰레기가 된 것처럼 보였다. 12월 신용평가회사들은 점점 빠른 주기로 그리스 국채의 평가를 하향시켰다 그리고 이 국채에 CDS를 체결하려는 자는 점점 더 많은 돈을 내야 했다.(부도위험이 커진 만큼 보험료도 상승)
연금펀드는 “장기 투자에 묶이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은행가는 말했다. 그리스 국채는 5년 혹은 10년 기한이다. 그렇다면 적당한 이자를 붙여 그리스 국채를 사들인 뒤 최대 채무자인 그리스를 지탱하는 것이 논리적이지 않을까?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펀드매니저는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입장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를 구하고 싶고 구해야만 한다. 그들은 그리스 국채의 파산을 감당할 수 없다. 이것은 그리스 국채를 추가로 사들여야 하는 명확한 명분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측면을 보면 절벽 끝에 서 있는 나라에 돈을 더 투자하는 일도 미친 짓이다. 그리스의 주요 지표는 악몽이고 전망은 어둡다. 만일 모든 구조 시도에도 결국 부도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망하기 직전의 그리스에 돈을 더 퍼부은 매니저는 얼마나 어리석게 보일까? 이런 이유로 그리스 국채를 사들이는 것을 반대한다. 이런 요소가 국채 이자를 높이고 있다.
그리스의 경우 4월19일 월요일, 10년 만기 국채에 유럽 최고 기록인 7.63%의 금리가 붙었다. 그리고 5월5일에는 심지어 10.17%로 높아졌다. 이런 숫자들은 끔찍한 불안감을 표현하고 있으며, 이 숫자들이 진짜로 말하는 것은 그리스의 미래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 때문에 투자자는 지금 그들이 구해낼 수 있는 것을 구하는 중이다. 그들은 도박을 시작했다. 그들은 이제 6개월물·3개월물 단기 국채에도 불합리할 정도로 높은 이자를 요구한다. 마치 과거 투자자들이 복수하는 모양새처럼 그리스에 벌금을 내라고 소리치는 것과 같다. 이제 의문이 생긴다. 설마 저 극도로 보수적인 연금펀드가 이 순간의 진짜 투기꾼일까?
카나리 워프의 은행가는 이렇게 말했다. “은행들은 보장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보장은 ‘담보’를 의미한다. 은행은 자신이 쓸 돈을 유럽중앙은행에서 받기 위해 담보가 필요하다. 그들은 프랑크푸르트에 일정 수준 이상의 평가를 받은 유가증서를 맡겼을 경우에만 이 돈을 받을 수 있다. 그리스 국채가 이런 유가증서였다. 그리스 국채는 아직도 담보로 쓰기엔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고,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으며, 이자도 높다. 다시 말해 이 국채는 중앙은행의 돈을 받아내기에 좋은 도구다.

그리스 부도 땐 독일 은행 타격
카나리 워프의 은행가가 우아하게 숨긴 것은 독일과 프랑스의 은행을 필두로, 유로존의 여러 은행이 이미 오래 전부터 엄청난 양의 그리스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 역시 지금 그리스 국채를 계속 사들여야 한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들도 연금펀드와 비슷한 처지다. 그들은 자신이 이미 소유한 가치를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지켜야만 한다. 즉, 채무자인 그리스를 지원해야 하는 것이다.
유럽중앙은행이 이를 돕고 있다. 3월 말 유럽중앙은행은 신용평가회사로부터 매우 나쁜 평가인 BBB를 받은 유가 증서도 담보로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했다. 5월3일 유로화의 보호자인 유럽중앙은행은 그리스 국채가 어떤 평가를 받더라도 앞으로 계속 담보로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함으로써 자신들의 현금 배분 원칙을 더욱 약화시켰다.
이것이 유럽의 모든 안정화 정책을 비웃는 통화정책 변화라는 사실, 그리고 유럽중앙은행이 이를 통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스스로를 부정했다는 사실은 침묵 속에 묻혔다. 얼마 전까지 유럽은행 총재는 A등급의 유가증권만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5월 초의 결정이 의미하는 것은 은행이 시장에서 잠재적 가치가 없어 ‘쓰레기’라고 평가되는 유가증서도 담보로 맡기고 현금을 받아올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그리스는 자국 국채를 감당할 수 없게 되고 아마도 이미 부도가 났을 것이다. 이것이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의 배경이다.
그리스의 국가 부도 사태는 <이코노미스트>에서 얼마 전에 예상한 바와 같이 유럽 은행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독일 금융기관이 약 300억유로 상당의 그리스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일지 모른다. 하이포 부동산(Hypo Real Estate· 독일의 상업용 자산 대출기관) 혼자서 거의 80억유로에 가까운 그리스 국채를 소유하고 있다. 프랑스에는 500억유로 상당의 그리스 국채가 뿌려졌다. 유로존의 모든 은행을 합산하면 총액이 약 1629억유로가 된다.
그리스가 진짜 국가 부도를 내면 이미 자신들의 행동으로 인해 세계경제 위기를 불러왔다는 눈총을 받는 은행들은, 또다시 곤란한 처지에 빠진다. 그리고 리먼브러더스 쇼크 직후와 마찬가지로 분명히 정부가 이들을 궁지에서 구해내기 위해 도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 때문에 유럽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은 그리스를 현금으로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독일에서 브레이크를 걸어 300억유로만 지원했고, 이제는 어쩌면 너무 늦었을지 모르는 1100억유로를 다시 지원한다. 현금이 투입되지 않으면 그들은 자국 은행을 비슷한 금액으로 다시 지탱해야 할지 모른다. 그리스 지원은 은행의 새로운 ‘긴급 구제’다. 이 아름답지 않은 진실을 가리기 위해 독일을 포함한 EU 국가가 계속 돈을 내야 하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정상회의서 소리 지른 사르코지
3월25일 EU의 국가 정부 수장들이 회담을 위해 브뤼셀에서 만났을 때 이 중 어느 것도 공개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오토바이 편대가 도시를 누비고 국가 원수 전용 차량이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오후 4시15분∼5시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유럽의 TV팀이 촬영하고 음향기사들이 거대한 마이크를 들이대는 가운데, 차례차례 빠르게 유럽 위원회의 VIP 입구로 들어섰다.
이 근사한 건물 로비에는 언론인 500∼600명이 16개의 긴 테이블에 마치 연회처럼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접시가 아닌 노트북이 놓였고, 기자들은 정부 수장들이 공개적으로 말한 적이 없어 지금까지 알 수 없던 것에 관해 적고 있었다.
메르켈 독일 총리와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단독 면담을 하는 중이라는 소식이 오후에 돌았다. 정부 관계자 역시 의도적으로 정보를 흘리거나, 기자들과 짧은 배경 설명 토론을 했다. 그리고 5시13분 메르켈과 사르코지가 그리스 지원계획에 합의했다는 속보가 들렸다.
이것은 전부 사실이 아니며, 사르코지가 헤르만 판롬파위 상임의장에게 소리를 지르는 극적 장면이 있었다는 것, 독일과 프랑스가 전혀 합의하지 못하고 더 멀어졌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려졌다. 하지만 ‘시장’은 즉시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기대와 달리 유로화 환율이 오르지 않았고, 그리스 국채의 이자는 하락하지 않았다. 그리스 국채에 대한 CDS도 여전히 비쌌다. 마치 결정권이 있는 사람들이 브뤼셀의 발표를 믿지 못하는 것 같아 보였다.
브뤼셀에서는 의문이 떠돌았다. 경제 위기가 발생할 때 도대체 EU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금융시장에 대해 정치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이미 몇 년 동안이나 정치가들은 연설대에서 금융시장을 제어하고, 약탈 자본주의를 억제하고 방호벽을 만들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행동으로 옮겨진 것은 거의 없다. 바젤의 세계 중앙은행에서 계속 만들어지는 새로운 규정은 적용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은행가가 이 새로운 규정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이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정치는 은행의 돈, 그들의 자체 자본에 손을 대야 한다. 그들에게 더 많은 돈을 서면상으로가 아니라 실제 보유하게끔 강제하고 그들이 어느 정도 돈을 빌려줄 수 있는지 훨씬 더 과감한 규칙을 부여해야 한다. 이런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면 모든 정치는 단순한 제스처에 불과하다.
“유럽의 정치적 행동은 효과가 없거나 어쩌면 해로울지 모릅니다.” 취리히에 있는 헤지펀드 회사에서 일하는 한 펀드매니저가 말한다. 여행 중 파리에 잠시 머물고 있던 그는 생제르맹 교회 정문 앞에 있는 카페 ‘레 드 마고’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는 원래 그리스인으로 거기서 자란 뒤 미국에서 입자물리학 박사 학위를 따고 돌아왔다. 수많은 금융도시에서 높은 자리를 거치면서 자랑할 만한 이력을 쌓은 사람에 걸맞은 잘 손질된 수염과 명민한 머리를 가졌다. 그는 그리스인이 어떻게 그렇게 깊이 진흙탕에 빠져들 수 있었는지에 관해 참조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줬다. ‘유럽의 요람’ 없이는 EU를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른 유럽 국가는 정치적으로 그리스의 이러한 부정을 항상 허용하고 눈을 감아줬다.
이 자발적 눈감기는 거대한 속임수가 발각되고 나라가 불시착 중인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스 정부의 개혁 계획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완전히 환상일 뿐이며, 한 나라의 모든 세금을 극단적으로 인상하고, 공무원의 임금을 철저하게 삭감하고, 국내 소비를 완전히 억제하면서, 동시에 경제성장을 이루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는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오직 숫자
취리히 헤지펀드 회사의 그리스인 헤지펀드 매니저는 그리스 경제는 예상처럼 0.8%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내년에 최소 -3%, 현실적으로는 -4%의 역성장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가들이 아무리 이 사실을 숨기고 상황이 생각만큼 심각하지 않다고 설득하려 해도 3천억유로에 이르는 자산을 관리하는 매니저나 200만 명에게 연금을 지급해야 하는 연금펀드 CEO는 그러한 감언이설에는 관심이 없다. 중요한 것은 오직 숫자다.
이 헤지펀드 매니저는 사실 그리스 부채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은 아주 쉽게 계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내년에 그리스의 부채는 이 나라 전체 경제 규모의 1.5배가 될 것이고 새로운 부채는 국내총생산의 15%로 늘어나 유로존의 허용치를 5배 이상 넘어서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은 그가 절대로 그리스 국채를 사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인가?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기한이 석 달이나 여섯 달인 국채야 살 수도 있겠죠. 어쩌면 1년짜리도 괜찮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10년짜리? 이자가 30% 이상 되기나 한다면 모를까!”
이런 태도는 탐욕과는 별 상관이 없다고 그는 말한다. 오늘날 금융시장은 무엇보다 기존 리스트에 정확하게 가격을 매기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특히 투자은행은 물론 모든 투자자는 “현재 상황으로 미뤄보아 지금으로부터 10년 뒤 그리스가 채무를 상환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를 추측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현재 그날 상황에 따라 7.63% 또는 10.17%다. “돈은 도덕적이지도 비도덕적이지도 않습니다. 돈은 그냥 무도덕적이고 냉혹할 뿐이죠”라고 그리스인은 말했다.
하지만 어떤 뉴스가 진짜 중요할까? 어떤 뉴스가 ‘그날의 상황’을 결정할까? 일주일에 6일간 24시간 동안 증권 시세기가 깜박거리는데, 어떤 것이 핵심이고 어떤 것이 비핵심적인 것일까? “스스로 알아내야 합니다. 너무 많은 정보는 혼란만 일으키지요. 혼란은 잘못된 결정을 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잘못된 결정은 투자자에게 새로운 옵션을 만들어줍니다. 그렇게 세상이 돌아가는 것이죠”라고 그는 말했다.
금요일 밤 10시 뉴욕 시장이 닫히고 일요일 새벽 4시 시드니 장이 열릴 때까지 세상은 멈춰서 있다. 환율 차트, 채권이자 다이어그램, CDS 가격 박스, 시세가 변화되면 화면을 접속 불량 상태인 것처럼 깜박이게 하는 뉴스의 증권 시세표, 이 모든 것이 몇 시간 동안 멈춰 있다. ‘투자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휴일을 맞이한 것이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그리고 자신들이 몸담은 시스템이 여전히 아무런 문제가 없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시간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정확히 베를린장벽 붕괴 시점부터 시작돼 이후 이어진 세계화의 승리 행진이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하지만 투자자는 이런 것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과 인간에 대해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보는 세상과 인간은 참을성이 없고, 탐욕스러우며, 규율을 싫어하고,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그들은 이 약점을 자연과학적인 방법과 카오스 이론 그리고 정교한 확률을 이용해 착취하는 데 그치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했다. 카지노 자본주의 시대와 터보 자본주의(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부자 위주의 자본주의) 시대가 지난 뒤, 이제 드디어 개인적인 책임이 존재하지 않는 테크노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누구나 자신은 완벽하게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혹은 자신을 컴퓨터에 의해 제어되는 기계의 작은 톱니바퀴 중 하나일 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 기계가 시장을 넘겨받았다. 마치 공상과학(SF)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 같지만 이것이 월스트리트, 프랑크푸르트, 웨스트엔드, 카나리 워프의 일상이다. 그리스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을지는 결국에는 컴퓨터가 결정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컴퓨터는 지금이 부도가 날 때라고 결정했다.
이 시스템에서는 어떤 사람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여러 나라가 지난 20년간 차례차례 위기를 맞는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아시아·남아메리카·동유럽 국가가 위기에 처하더라도 누구도 도울 수 없다. 그 숫자들은 그 일들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컴퓨터는 경제 위기를 계산해내고 인간들은 그 분석을 따른다. 숫자들은 지난날 멕시코·러시아·일본·아르헨티나·타이·아이슬란드가 겪은 바와 같이 이제는 그리스 차례가 돌아왔다고 말한다. 내일은? 아마도 스페인 차례일 것이다. 그리고 모레는 유럽 전체일 것이다. 그것을 오늘 이미 알고 있는 사람, 그 사실을 아는 기계를 가진 사람은 아주 큰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무대의 주역들이 그들의 이성을 컴퓨터 시스템에 넘겨준 것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절벽 끝에 서있는 나라에 돈을 더 투자하는 일도 미친 짓이다. 투자자가 폭이 넓은 바지 멜빵을 한 최고의 사상가이던 시절은 지났다. “돈은 도덕적이지도 않고 비도덕적이지도 않다. 돈은 그냥 무도덕적이고 냉철할 뿐이다.” 바로 코 앞에서 벌어지는 은행들을 위한 새로운 ‘긴급정책’. 금융시장에 대해 정치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 Der Spiegel(distributed by NYT syndicate)
번역 황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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