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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금융, 어느 것을 택할까?
[Scholars Column]
[14호] 2011년 06월 01일 (수) 로버트 스키델스키 economyinsight@hani.co.kr

로버트 스키델스키 Robert Skidelsky 영국 워릭대학 정치경제학 명예교수

‘공매도’는 금융 고수들 사이에 잘 알려진 책략이다. 공매도는 자산 가치가 나중에 떨어질 것을 예상하고, 그때 이익을 거둘 생각으로 지금 돈을 빌려 그 자산의 가치 하락 가능성에 베팅하는 것을 말한다.
투기자는 ‘정부’를 공매도할 수도 있다. 어떤 정부가 발행한 국채 가치가 나중에 떨어질 것으로 예상될 때, 그 국채를 지금 현재 가격으로 빌리는 것이다. 이는 물론 나중에 낮아진 가격으로 거래를 청산해 차익을 챙기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2010년 1월1일, 나는 그리스 정부가 곧 재정 파탄에 직면할 것으로 보았다. 이때 2016년 만기로 그리스 정부가 발행한 국채가 0.91유로(액면가 1유로당)로 거래될 것이다. 나는 이 국채를 액면가 기준 1천만유로어치를 골드만삭스에서 6개월 시한으로 빌린다. 이렇게 빌린 국채에 대해 나는 6개월 동안의 예상 수익에 해당하는 돈을 골드만삭스에 지불해야 한다. 예상수익률이 연 5%라면 그 절반인 2.5%만큼, 그러니까 25만유로를 골드만삭스에 지불해야 한다.

   
2008년 12월14일 그리스의 폭동진압경찰이 최루가스가 난무하는 아테네 시내에서 시위대와 맞서고 있다.

공매도로 165만유로를 버는 방법
나는 골드만삭스에 빌린 그리스 국채를 곧바로 당시 가격인 0.91유로로 시장에 내다 판다. 이로써 나는 910만유로(0.91×1천만유로)를 벌게 된다. 다행히 5월 상황이 내 예상대로 전개돼 그리스 정부가 안고 있는 재정 문제의 심각성이 고스란히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액면가 기준으로 1천만유로어치의 그리스 국채를 골드만삭스에 되돌려주어야 하는 6월30일에 국채 가격을 보니 0.72유로다. 나는 시장에 나가 액면가 기준 1천만유로어치의 국채를 0.72유로 가격으로, 그러니까 720만유로를 주고 산다. 그러고 나서 차입 계약 내용대로 그 국채를 골드만삭스에 되돌려준다.
결국 내가 그리스 국채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내다보고 거래한 결과로 얻게 되는 이익은 165만유로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계산한다. 1월1일 국채를 빌린 뒤 곧바로 팔아 손에 넣은 돈 910만유로에서, 6월30일 그 국채를 다시 사들이면서 지불한 720만유로를 빼면 190만유로가 남는다. 여기서 다시 내가 골드만삭스에 지불해야 하는 이자 25만유로를 빼면 165만유로가 이익으로 남는다. 보라, 공매도 거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한 공매도자가 특정 자산의 가격을 ‘조작’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다. 물론 그 공매도자가 1992년 영국 파운드화를 공격하는 베팅을 해서, 자신은 떼돈을 벌었지만 영국을 유럽 공동의 환율제도에서 이탈하게 만든 조지 소로스가 아닌 한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한 무리의 투기자들이 특정 정부가 발행한 국채 가격이 너무 높다고 판단하면, 그 판단이 옳든 그르든 그들은 그 국채 가격을 떨어뜨릴 수 있다. 또한 국채수익률(국채를 발행한 정부가 지불해야 하는 금리)도 끌어올릴 수 있다.
투기자들이 그런 공격을 끈질기게 계속하면 공격 대상이 된 정부는 더 저렴한 비용으로 차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는 한 채무 이행을 중단한다는 선언을 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중앙은행(ECB)이 만든 구제금융기금은 그리스와 아일랜드를 비롯해 곤경에 처한 나라들(지금은 포르투갈도 포함)이 더 저렴한 비용으로 차입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 기금은 지원 대상 국가의 정부에 대해 짧은 기간 안에 재정적자를 없애려는 긴축 프로그램을 시행하라는 조건을 수용하도록 강요한다.
‘재정 적자를 없앤다’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재정 적자에 의존해 유지되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양쪽 모두의 일자리를 대대적으로 없애라는 뜻이다. 경제가 취약해진 나라에서 재정 적자를 감축하는 데 초래되는 경제적 비용과 인간적 비용은 끔찍할 정도로 크고, 그렇게 해도 그 목표가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총수요가 감소하게 돼 정부의 조세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투기적 공격에 직면한 나라의 정치인들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단순히 시장의 요구를 수용하고, 그에 따르는 고통을 국민에게 부과하는 것이 정치인의 역할일까? 금융시장이 자산 가격을 옳게 매긴다면 정치인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합리적인 대답일 것이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 2007~2009년 이어진 금융시장 붕괴는 민간 부문에 속하는 은행과 신용평가회사들이 자산 가격을 왜곡시킨 결과였다. 그런데 우리가 왜 그리스ㆍ아일랜드ㆍ포르투갈의 부채가 안고 있는 위험도를 시장이 정확하게 가격에 반영할 것이라고 믿어야 하는가?
그 가격은 떼거리 행동에 의해 ‘조작’된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 이유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오래전에 이미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우리가 예상 수익에 대해 추정할 때 그 근거로 삼을 수밖에 없는 지식의 기반은 대단히 취약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일부 국가의 정부가 분에 넘치는 지출을 해온 사실을 부인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공매도하는 것은, 금융시장이 그 정부에 책임감을 갖게 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나는 부인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보면, 정부에 책임감을 갖추게 하는 주체는 시장이 아니라 유권자다. 정부의 책임감에 대해 시장이 요구하는 기준과 유권자가 요구하는 기준이 다를 때는 유권자가 요구하는 기준이 우선돼야 민주주의가 살아남을 수 있다.
오늘날 유럽에서 고조되는 불만의 뿌리에는 민주주의와 금융 사이의 갈등이 자리잡고 있다. 투기자와 은행의 명령에 따라 실시되는 정부 예산 삭감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에서 정치지도자를 내쫓았고, 스페인에서는 총리에게 은퇴를 재촉하는 압력이 되고 있다.
 
국가주의는 좌절된 민주주의의 고전적 표현
물론 그 분노는 다른 표적으로 향하고 있다. 무슬림 이주노동자, 소수 인종, 은행 간부들이 챙기는 엄청난 액수의 보너스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 등이 그것이다. 국가주의 정당이 득세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핀란드에서는 범유럽주의에 반대하는 ‘진정한 핀란드인 당’이 급부상하면서 집권할 가능성까지 보여준다.
아직 이들 가운데 어느 것도 민주주의를 뒤흔들지 못했다. 그러나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여러 가지 일에 분노하게 되면 해로운 정치적 조류가 확산될 것이다. 특히 국가주의는 좌절된 민주주의의 고전적 표현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정치인들이 중요하게 여겨야 할 점은 힘든 결단 내리기를 피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의사에 따라 자신의 속도로 결단해야 유권자의 선택에 따라 구성된 정부가 채권시장에서 공격받을 때는 그 나라의 정치인들이 단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가 곤경에 처하면 야당 정치인들은 그 상황을 잘 이용해 집권하려 한다. 그렇지만 재정위기는 정치적 자제를 요구한다. 시장이 어떤 나라의 정부를 금융 측면에서 공매도한다면 그 나라의 야당은 자국의 정부를 정치 측면에서 공매도하기를 자제해야 한다.
이상적인 모습을 그려본다면, 정치적으로 가능한 범위 안에서 모종의 실천 계획을 마련하고, 그 실천 계획에 대해 정당을 초월한 한시적인 국가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다. 금융시장 압력에 직면한 나라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분열은, 결과적으로 보면 언제나 본능적 애국주의보다 훨씬 더 많이 민주주의와 경제를 망친다.
ⓒ Project Syndicate·번역 이주명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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