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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아래 흐르는 정치·사회의 힘
[시장 들여다보기]정치적 시장
[14호] 2011년 06월 01일 (수) 조계완 economyinsight@hani.co.kr

조계완 부편집장
 
지난 5월17일 한나라당 소장파 모임 소속 의원들이 “이명박 정부가 시장과 경쟁, 성장만을 강조하는 ‘강자의 논리’로 중도보수 세력의 지지를 상실했다”고 비판했다. 시장, 경쟁, 사회, 보수 세력, 그리고 정치…. (‘정치 시장’이 아니라) ‘정치적 시장’은 ‘경제적 시장’과 무엇이 다르며, 둘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 것일까? 정치가와 관료를 포함한 정치적 시장, 그리고 ‘사회’를 경제적 시장의 틀 속에서 들여다보자.
 
경제적 시장과 정치적 시장, 그리고 정치
자본주의 경제가 일정한 성장 수준을 성취한 단계에 들어서면서 ‘성장’으로서의 경제보다 ‘사회’ 및 ‘정치’의 영역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학문적으로 경제학은 ‘인간행동’을 분석하지만, 현실의 경제는 주로 성장과 동의어였다. 1770년대에 경제성장의 불을 찾아나선 애덤 스미스는 국부를 증진시키는 요체는 인간 이기심, 교역, 노동분업, 저축의 미덕 등이라고 했다. 그 뒤 오랫동안 “경제성장은 오직 ‘저축’에 달려 있다”는 믿음이 지배했다. 즉 저축을 통해 자본량을 더 많이 축적할수록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으로, 여기서 기업은 단지 그 저축을 임대해 사용하는 기계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앨프리드 챈들러가 기업을, 경제성장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보이는 손’으로 명명하면서 경영학이 부상했다.
그런데 이제 경제성장의 원천은 정치와 사회 복지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게 아닐까? 최근의 복지국가 논쟁 역시 그 바탕에는 ‘정치가 경제를 이끌어간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저녁에 길을 걷다가 보게 되는 불 꺼진 수많은 미분양 주택을 보면서 ‘저 주택업자는 망했구나’라고 혀를 끌끌 차지만, 그 업자에게 돈을 빌려준 저축은행들이 망하고, 부실 저축은행 처리를 공적자금(세금) 투입으로 해결한다면 이제 저 미분양 주택은 내 지갑의 크기를 결정하는 문제가 된다. 기업가들은 수많은 서민이 모은 저축예금을 빌려 마치 자기가 저축한 돈처럼 사용하면서 이윤을 추구하고, 또 정치가와 관료들은 특별소비세 등 소비억제·저축장려책으로 이를 뒷받침해왔다. 옛 한보그룹 부도 사태가 보여주듯 서민들의 저축을 끌여들여 사업을 일으키고 확장해온 기업들은 대출을 위해 정치적 로비를 일삼고, 한번 삐끗해 더 이상 대출 페달을 밟지 못하면 쓰러질 수밖에 없는 자전거였다. 이명박 대선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 것도 ‘정치적 시장’을 매개로 내 주식과 아파트값이 오를 것이라고 기대한 건 아니었을까?
물론 ‘정치’ 시장과 정치적 ‘시장’은 다르다. 정치(인) 시장은 특정 지역의 사투리를 쓰는 정치인들의 집합소(정당)일 수도 있고, 미국의 경제학자 프랭크 나이트 교수가 말한 ‘기러기떼’ 무리일 수도 있다. V자를 이루며 날아가는 기러기떼 편대의 경우 맨 앞에서 이끄는 한 마리가 리더인데, 한참 가다 뒤돌아보니 뒤따르던 기러기들이 다른 쪽으로 이동해 다시 V자형을 이루며 날아가고 있으면 자신도 즉각 그쪽으로 이동해 또다시 선두에 서서 기러기떼를 이끈다. 정치적 신념을 고집하기보다 대중의 욕구에 맞추는 것이 정치적 리더십이란 말이다. 우리나라 정치 시장에서 대중적 욕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가난을 팔아 획득하는 표’였다. 즉, 달동네에서 살았다거나 “가난한 유년시절을 딛고 일어섰다”는 말이 선거 때마다 표 획득에서 무시할 수 없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정치적 시장은 경제적 자유시장에 개입한다는 의미에서 특수한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시장은 수백 쪽에 이르는 두꺼운 경제원론 교과서가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가르치는 대로, 인류가 발명한 가장 나은 유일하게(?) 효율적인 자원배분 메커니즘인 것일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경제학의 향연>에서 “현실 시장경제는 고도로 불완전한 체제다. 그러나 인간이 생각해낸 다른 어떤 체제보다 더 낫다”고 말했다.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은 볼테르의 <캉디드>에 나오는 팡글로스 박사처럼 “모든 것이 언제나 최선의 상태”라는 낙천적 생각에 따라 언제나 지금 상태가 모두에게 최선이라는 ‘팡글로스 경제학’을 주창한다. 즉, 시장경제학은 본질적으로 현실 경제 상태가 최선이라는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띨 수밖에 없다. 이런 철학에서 도출되는 결론은 정치적 시장 개입, 즉 국가의 금융·재정 정책은 생활수준 향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기껏해야 경제 불안정을 더 높일 뿐이라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것이 극단적으로 표현된 게 ‘어떤 개인·집단이 경제를 지휘한다 해도 실제로 지휘하는 사람은 이론적으로 확정돼 있지 않으며, 사회적으로 중요하지도 않다’는 명제다. 이와 관련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새뮤얼슨은 “경쟁시장 체제에서 자본가가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도 자본을 빌려 생산설비를 갖출 수 있다. 경쟁시장에서 누가 누구를 고용한다는 건 정말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회의가 열리고 있다.

‘시장’ 속에 단단히 박혀 있는 ‘사회’
그러나 현실에서 거의 모든 경제문제는 시장을 통한 해결이냐, 국가·제도를 통한 해결책이냐는 문제로 집약된다. 케인스는 <일반이론>에서 “만약 우리 정치가들이 자유시장원리 교과서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국가 재정지출을 통한) 피라미드 건설이나 지진, 심지어 전쟁까지 부를 증가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시장을 통한 해결을 주창하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은 시장의 위대함과 공평성을 그 특유의 대중적 언설로 설파한 바 있다. “빵을 사먹는 사람은 그 빵의 원료인 밀을 백인이 만들었는지 흑인이 만들었는지 알지 못하며, 기독교인이 만들었는지 유대인이 만들었는지, 또는 공산주의자가 재배했는지 공화주의자가 재배했는지 파시스트가 재배했는지 알 수 없다. 이는 시장이라는 비인격체가 ‘경제적 행위’와 ‘정치적 행위’를 어떻게 분리시키는지 잘 보여준다. 밀 재배자 역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만 관심 있을 뿐 사회가 피부·종교 등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상관하지 않는다. 경제행위에서 생산의 효율성과 무관하게 피부색 등으로 차별하는 기업가는 시장경쟁에서 도태되는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다.”(<자본주의와 자유>) 시장은 정치적·인종적·성적 차별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주는 메커니즘이라는 얘기다. 또 다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 역시 “시장 경쟁이 차별을 자연스럽게 없애줄 것”이라며 “생산성 이외에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고용에서 차별하는 기업은 차별하지 않는 경쟁기업에 비해 비용 등 측면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고, 결국 장기적으로 시장에서 차별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제적 시장과 정치·사회적 행위는 구분되는 듯하면서도 서로 얽혀 착 달라붙어 있다. 프리드먼과는 정반대로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은 “날마다 새벽에 내 집 뒷문에 우유병을 배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는 당혹감이 사회학자의 길에 들어선 계기가 됐다고 했다. 한쪽은 시장이 비인격체라서 좋은 제도라고 말하고, 다른 한쪽은 비인격체인 ‘시장 사회’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는 것이다. 사실 사회는 시장 속에 늘 다양한 모습으로 깊숙이 박혀 있다. 정치인이나 관료들의 면면을 보면 교수 출신을 비롯해 이른바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누리는 명예와 지위를 얻는 데 ‘시장 경쟁’에서 자신의 능력도 작용했겠지만, 여러 측면에서 ‘사회’가 돕고 지원한 구석이 많다. 대학 다닐 때 국가의 대학보조금이 없었다면 더 많은 등록금을 내야 했을 것이고, 석·박사 학위 과정의 장학금도 국가든 기업이든 사회가 지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덧붙이면, 가난한 집에서 자란 젊은이들은 고등학교 졸업 뒤부터 직장에 나가 세금을 내고, 이 세금 중 일부가 상류층 자녀가 다니는 대학보조금으로 투입됐을 수 있다.
그만큼 혜택을 받은 그들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의 상호작용을 날카롭게 통찰한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는 “개인들은 시장적 행위자이면서 동시에 시민이다. 그런데 시민으로서 선호하는 자원배분은 시장을 통해 도달하는 배분과 일반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 시장은 자신이 소유한 자원을 가지고 배분을 위한 표를 던지는 메커니즘이며, 자원이 항상 불평등하게 분배된다. 반면에 국가는 시장적 결과와 다르게 분배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서 자신이 소유하지 않은 자원을 배분하는 체제”라고 말했다. 국가의 권한과 그것이 만들어낸 시장질서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 담배시장과 언론시장이다. 담배 판매는 지정 업소 간 거리 제한이 있는데, KT&G 임원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 구멍가게들이 여전히 먹고살고 있는 원천에는 담배 판매 매출액이 있다고 한다. 제도가 경쟁과 탈락이라는 시장에서의 결과를 어떻게 배분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은 1인당 언론매체 수가 매우 높은 편인데, 수많은 언론기업들이 경쟁 시장에서 생존하는 기반이 바로 재벌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다. 정치와의 끈끈한 유착을 통해 성장하고 공고화한 독점 대기업에서 받는 큰돈의 보험성 광고 매출이 주요 수입원인데, 정치적 시장을 통해 형성·강화된 재벌체제의 또 다른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선거에서 사람들이 정부를 뽑지만, 정반대로 정부가 오히려 시장에서 사람들을 뽑고 선택하는 격이 아닐까? 결국 어떤 정치와 사회를 만드느냐가 시장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결정한다.
선출직 정치인들 못지않게 시장 질서를 바꾸는 힘을 가진 쪽은 ‘선출되지 않은 또 다른 권력’인 관료들이다. 누군가 ‘영혼 없는 관료’라고 했지만 관료들은 ‘통계 수치’라는 막강한 무기를 지녔다. 각종 통계 데이터 ‘숫자’는 정책을 만드는 기초인데, 정부기관이나 전문가집단에 의해 작성된다. 지식과 권력을 소유한 집단이 이런 데이터의 생산자들이다. 우리가 매일 아침 받아보는 언론 지면의 상당 부분이 정부기관이나 국회의원 보도자료에 의존해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날그날 대한민국의 사회적 의제를 관료와 정치인들이 자기 입맛대로 만들어 기획·생산·유통·소비시키는 셈이다. 정부 발주 용역보고서의 연구자 일부는 발주자가 요구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통계 패키지를 돌리고 또 돌린다.

   
지난 2월 서울 서초구 KOTRA에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경제대책회의가 열리고 있다.

팡글로스 박사의 낙천주의와 시장 교정
시장에서의 결과가 양극화·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는데도 한국인들은 왜 경쟁을 ‘추구해야 할 가치’로 여기는 경향이 강할까? 정치와 관료가 지난 수십 년간 만들어놓은 독과점적 시장질서에 대한 강한 반감 때문은 아닐까.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동업자들은 오락이나 기분 전환을 위해 만나도 그들의 대화는 대부분 대중에게 불이익을 주는 음모나 가격 인상을 위한 모종의 책략으로 끝난다”고 말했다. 훗날 밀턴 프리드먼은 이에 덧붙여 “업종 담합은 정부의 도움을 구할 수 없는 한 불안정하고, 또 오래 지속될 수 없다”며 “우리가 선출한 정치인들에게 도덕 개혁을 부르짖을 필요는 없다. 현명한 해결책은 선출한 사람들의 권한을 필요한 정도로만 제한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시장을 확대하고 정치와 사회의 영역을 줄이자는 프리드먼의 주장은 ‘팡글로스 경제학’의 자유시장 논리에서 비롯된 이야기일 뿐이다. 오히려 시장 경쟁의 힘에 따라 만들어진 ‘잘못된 균형’(불평등과 양극화)을 교정할 재분배 권력을 지닌 정치의 역할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경제·정치·사회는 분리된 영역이 아니다. 현실 경제에서의 소득·자원 배분은 정치 또는 정치적·사회적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이 결정된다. 결국 경제를 혁신하려면 정치와 사회를 바꿔야 한다. 문제는 경제적 약자들이야말로 어쩌면 ‘경제적 시장’에서보다 ‘정치적 시장’에서 더 불리한 처지에 있다는 것이다. 시장의 약자들은 그들이 가진 기회와 권력자원 측면에서 볼 때 정치적 쟁탈전에서 이기는 데 필요한 기술이 부족하고, 더 큰 능력을 가진 집단을 당해낼 힘이 없다.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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