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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IT산업의 승수효과는 환상
[김국현의 IT 인문학]
[14호] 2011년 06월 01일 (수) 김국현 economyinsight@hani.co.kr

김국현 정보기술 칼럼니스트

브랜드 랭킹의 상위 과반수는 늘 애플·구글·마이크로소프트·인텔·IBM 등 정보기술(IT) 기업, 특히 미국 IT 기업들이 선점한다. IT 업종은 최종 소비재나 서비스임에도 그 산출물의 파급효과가 크다는 데 특이점이 있다. 제조업처럼 관련 산업의 중흥이 함께 일어날 뿐만 아니라, 근래 ‘스마트’ 붐에서 목격할 수 있듯, 사회 전반의 생활 및 노동 행태에까지 변화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브랜드란 일종의 소비자 기대가 반영된 것이라고 봐도 좋다.
실제로 미국 경제가 1990년대 중반부터 장기 경기 확대를 지속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이들의 활약을 손꼽는다. 생산성 향상과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한 기대는 거품을 불러오기도 했지만, 이 분야가 총수요를 확대해 결과적으로 개인 소비를 확대하는 사이클을 가동하리라는 낙관을 미국 경제는 여전히 하고 있다.

한국 IT의 경제효과와 하도급 관행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지난 4월13일 서울 삼성전자 사옥에서 열린 ‘삼성그룹 협력사, 공정거래 및 동반성장 협약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한국 IT에도 이런 경제적 파급효과가 있을까? 안타깝게도 IT 혁신이 사회 전체는 고사하고 업계 내 생산성 상승으로도 이어지지 않는 대표적 사례로 언급되는 것이 바로 한국의 하청 시스템통합(SI) 중심 IT 산업 구조다. 한국 IT 산업의 특징은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문화적으로는 건설업에서, 조직적으로는 제조업에서 파생된 ‘변종’ 임노동이라는 점에 있다.
‘무엇무엇의 경제효과’를 이야기하는 것은 흔한 테마다. 조달이나 하청에 의해 거래가 활발해져 관련 산업의 생산유발효과가 발생한다고 강조한다. 때로는 새로운 기간시설이나 이벤트를 유치할 때 수요의 파급효과가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동원되는 것이 ‘승수효과’다. 예컨대 공항이 들어서거나 올림픽을 유치하면 그 지역의 투자와 소비가 증가하리라 기대하기 마련이다. 이 증가는 일회성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연쇄적으로 관련 산업의 생산이나 고용을 증가시키리라 믿는데, 주입된 투자에서 추가적인 소비와 투자 지출이 유발돼 최종적으로 어느 정도의 경제적 효과가 유발되는지 계산한 것이 해당 산업의 승수다.
제조업·건설업과 같이 투자 승수효과가 크다고 믿어온 산업의 하도급 관행은 노골적이었고, 경제효과를 산정할 때 이 ‘협력업체’로의 소득분배와 승수효과는 당연시됐다. 그런데 제조업·건설업에서 이야기해온 승수효과는 실체가 모호하다. 하청기업으로 내려갈수록 근로에 합당한 소득을 얻지 못하므로, 한계소비 성향은 높지만 가처분소득은 뻔하다. 승수효과의 연쇄반응이 시장을 통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단계 하청’이라는 종속관계에 의해 일어난다.
시장을 통한 소비 진작 승수효과와 하도급을 통한 소비 진작은 다르다. 시장에서 소득이 승수효과를 통해 파급하는 것은 그 파급 단계마다 일이 마무리돼 생산이 일단락되는 것을 가정하기에 그만큼 사회 전체의 생산성은 향상된다. 하지만 하도급은 생산 책임이 마진을 뺀 채 아래로 이전된다. 제조업은 그나마 모듈화돼 시장을 통해 판로를 확대할 수 있지만, 건설업과 SI업은 인력이 그만큼 볼모로 들어간다. 이 상황에서 승수효과는 환상일 뿐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착취했다는 식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를 구성하는 각 산업은 서로 밀접한 거래 관계를 맺으면서 생산 활동을 한다. 특히 이를 가속시키는 것이 본능인 소프트웨어 산업은 투자·소비 수요가 발생하면 그것을 자극 삼아 새로운 혁신을 가져오게 마련인데, 이것이 기능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모듈화의 여력이 없는 소기업은 하청이 아니면 시장 참여가 힘들어지니 악순환이다. 장기적 관계에 기반한 외주화가 당연시돼 갑을병정의 피라미드를 내려가며 마진을 떼이고 일거리를 통으로 받아오는 관행이 정착하니, 창조적 혁신보다 장기적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기술이 중시된다.
임금 격차가 개인의 한계생산 가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피라미드상 위치에 따라 벌어진다. 동일노동·동일임금은커녕 하청이 사실상 일은 다 하지만, 마진은 하도급기업 중 피라미드 최상부에 있는 ‘을’기업이 가장 두툼하게 가져가버린다. 대개 하청 대기업인 ‘을’기업의 영업이익률은 10%에 달하지만 병·정으로 내려갈수록 5%로 떨어진다. 이대로라면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사이의 생애임금에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부정적 IT 승수효과
외국에도 대규모 조달에서의 하도급이 있고, 이 관행이 중소기업에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문제는 이런 구조 아래 창조적 혁신 아이디어의 발원지인 IT, 그중에서도 소프트웨어 산업이 기능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사회 전체의 지속적인 IT 투자의 결과로 IT 자본스톡(Capital Stock)은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총요소생산성(TFP) 성장률에 대한 기여도 면에서 극히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 IT 투자의 효과가 플러스인지 확신할 수 없다. 일거리가 하청회사로 가면 그냥 알아서 승수효과가 나타나리라 믿은 것은 순진한 경제학이었다. 오히려 긍정적 승수효과가 아니라, 네거티브 승수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예컨대 ‘100맨먼스(Man-month)’ 프로젝트가 있다고 하자. 100맨먼스라는 일의 총량은 하청 단계를 내려가면서 크게 줄지 않지만, 마진은 단계마다 떨어져나간다. ‘맨먼스’ 자체가 어불성설이어서, 한 사람이 한 달에 해낼 수 있는 일의 양은 개인 역량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원칙적으로는 역량이 뛰어난 이들에게 높은 하도급 보수가 지급되는 구조가 돼야 하지만, 현실상 그냥 피라미드 단계별로 배분돼버린다.
하도급 단계가 진행될수록 단계마다 감소되는 일의 양보다 마진이 줄어드는 폭이 훨씬 더 크다. 이에 따라 등비급수적으로 보수는 마이너스 수렴된 금액을 받고, 일은 오히려 피라미드 최하부의 인력이 대부분을 수행하는 난센스가 발생하게 된다.
발주 금액이 1억원이고 각 단계의 한계 ‘하청’ 성향이 0.6이라 하자. 즉, 이때 수주를 받은 하도급기업 ‘을’은 6천만원을 다른 하청 ‘병’에게 지급한다. 그러나 영업이익률 및 개발 구조의 관행을 볼 때 전체 프로젝트(1단위)에서 ‘을’이 직접 수행하는 일의 양은 자신이 받는 하도급 금액인 0.4(4천만원)보다 훨씬 적다. 실제로는 0.9 정도의 일을 병에게 넘기고 을이 단지 0.1 정도의 일만 처리한다고 하자. 이 경우 을이 받는 하도급 금액(0.4)에서 을이 실제 수행하는 일의 하도급 금액(0.1)을 뺀 0.3의 가치가 단계별로 증발하게 된다. 3천만원어치는 을이 돈만 챙기고 이 금액에 해당되는 일은 병에게 보수를 지급하지 않은 채 떠넘기는 셈이다. 0.3만큼의 승수효과가 역으로 발생하게 된다. 그러면 결국 1억원에서 5714만원(=(1억)-(1억×0.3)-(1억×0.3²)-(1억×0.3³)-…)이라는 사회 전체의 후생이 오히려 반감돼버린다고 볼 수 있다.
하도급 및 하청은 저평가된 중소기업에 새로운 시장과 만나게 하는 절호의 기회를 주는 활동일 수 있다. 반면에 시장을 통한 소득의 파급을 방해해 경제 전체의 승수효과를 저해하는 주된 요인일 수도 있다. 이런 관행 때문에 각 기업의 IT 혁신을 지원할 개혁도, IT 자본스톡을 살려낼 기술적 인력 양성도 지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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