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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 악마화’가 덮은 중동의 진실
[미디어 비평]
[14호] 2011년 06월 01일 (수) 이봉현 economyinsight@hani.co.kr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지난 3월 말 시작된 리비아에 대한 공습은 미국보다는 프랑스가 주도했다. 이는 무엇보다 무아마르 카다피의 리비아가 프랑스의 아프리카 전략에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카다피는 아프리카통화기금, 아프리카투자은행, 아프리카중앙은행으로 대표되는 아프리카 연방 계획 구상의 주도자였다.
만일 아프리카 중앙은행이 독자 화폐를 발행하는 날이 오면, ‘세파(CFA)프랑’이라는 공동화폐를 통해 중·서부 아프리카 14개국(프랑스 옛 식민지 12개국 포함)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온 프랑스의 지역 패권이 위기에 처한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으로선 재선 가도에 카다피 제거가 필수 전리품이었던 것이다(<한겨레> 3월21일, 5월9일치 기사 참조).
아울러 서구의 리비아 군사 개입은 카다피가 중국과 맺은 주요한 경제적 계약을 무산시켜 이 지역에서 빠르게 팽창하던 중국 세력을 견제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카타르에 본부를 둔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미국과 유럽의 강대국들이 지난 10여 년간 중국이 아프리카에 막대한 투자를 하며 서구를 압박하는 데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보도한다.

   
리비아에 대한 서방의 군사개입에는 카다피에 대한 언론의 ‘악마화’가 큰 효과를 발휘했다.

카다피의 ‘악마화’에 열 올린 언론들
‘차이나프리카’(중국+아프리카)로 알려진 전략에 따라 아프리카는 2000년대 들어 중국의 자원 확보 전략에 깊숙이 편입돼가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 기업들의 아프리카 석유·가스·구리 등에 대한 투자는 2015년까지 5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한겨레> 5월9일치). 마이클 초소도프스키 교수(캐나다 오타와대학)는 <글로벌리서치>의 칼럼에서 “기름은 미국-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주도의 전쟁에 안겨주는 트로피”라며 “리비아에 대한 인도주의적 개입은 2003년 이라크 침공과 점령이 기업 이익에 봉사한 것과 똑같은 일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국내외 언론 보도가 이런 이면에 있는 것들을 얼마나 담아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서구의 국제적인 매체나 국내 신문·방송 할 것 없이 공습을 주도한 프랑스·미국·영국의 패권 전략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카다피와 리비아 정부를 일방적으로 ‘악마화’하는 데 몰두했다. 2003년 미국 주도의 이라크 침공 때 확인했듯이, 강대국이 주권국가나 지역분쟁에 개입할 때는 “이 나라를 가만둬서는 안 되겠다”는 국제적 공감을 만들어내는 ‘언론 전쟁’이 수반된다.
리비아 사태 역시 이런 전쟁 보도의 일반적 행태가 시위 촉발부터 군사 개입까지 한 달이란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재확인된 사례였다. 카다피를 정점으로 한 비정상적 독재집단과 이에 맞서는 이성적 세계로 진영이 갈라지고, 양 진영의 싸움은 ‘선과 악’의 타협 없는 대결이며, 국제사회의 군사 개입으로 ‘권선징악’을 이룬다는 것이 관련 보도의 큰 줄거리였다. 실제 국내 신문·방송의 보도 태도는 카다피에 압도적으로 비판적이었다.
특히 리비아에 대한 서방의 군사 개입이 신속하게 결정되고 이행될 수 있던 배경에는 리비아 지도자 카다피에 대한 언론의 ‘악마화’가 큰 효과를 발휘했다. 시위 군중에게 비행기와 탱크를 동원해 공격했다는 보도가 나온 뒤, 카다피는 어떤 비인도적 행위라도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는 ‘악당’의 굴레가 씌워졌다. 내전 발생 이전부터 서구 언론이 그에게 붙인 ‘괴짜’ ‘망나니’의 이미지가 다시 불려나왔고, 그의 오래된 기행이 환기되며 새로운 ‘악행’을 설명하는 맥락으로 제공됐다.
보도를 살펴보면 이미 1981년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중동의 미친개”(<한겨레> 2월18일치)란 별명을 붙인 카다피는 “정신 심리상태가 매우 비정상적”이 돼서 “기괴한 주장을 늘어놓으며 횡설수설해 정신이상설을 부채질”한다(<조선일보> 2월26일치). “어릴 때부터 특유의 과대망상”(<조선일보> 2월28일)으로 유명한 카다피는 “환상에 사로잡힌 독재자”의 어법으로 “시위대가 ‘악마를 섬긴다’며 지지자들에게 ‘바퀴벌레를 공격하라’고 선동”한다. 이런 모습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령군대’를 지휘했던 아돌프 히틀러의 마지막 순간”을 상기시킨다(<한겨레> 2월24일치). 결국 히틀러처럼 미쳐서 자살할 것이란 예측이다.

   
 
‘선과 악’의 단순한 구도를 벗어나야
그가 살아남거나 내전에서 이겼을 때 그의 광기는 가공할 두려움이 된다. 벵가지가 카다피 손에 함락될 경우 르완다식 학살이 재연돼 “50만 명이 목숨을 잃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중앙일보> 3월16일치). “카다피는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에 못할 짓이 없기” 때문이다(<중앙일보> 3월9일치). <알자지라>는 지난 2월24일 카다피 정권의 전 법무부 장관의 말을 인용해 “그가 압박을 심하게 받을 때 어떤 일이든 할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라고 했다.
카다피의 부활은 서구에도 악몽이 된다. 이번 사태로 “교훈을 톡톡히 얻은” 카다피는 “최근 몇 년간 쓰고 있던 ‘상냥한 카다피’의 가면을 벗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그는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을 다시 시작”할 것이란 얘기다(<조선일보> 3월16일치).
카다피가 언론 보도에서 비정상을 넘어 ‘미치광이’로 표상됨으로써 카다피와의 대화나 외교적 노력은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다. 오로지 무력에 의한 배제만이, 그것도 즉각적 행동만이 남아 있다. 이라크 전쟁이나 리비아 사태처럼 전쟁이 적의 지도자 한 사람의 광기 때문인 것처럼 ‘의인화’될 때, 상대방은 연합세력을 손쉽게 규합하고 전쟁의 명분과 행동 방향을 도출하게 된다.
이런 담론은 무엇보다 부정확한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고 편향성을 띤다는 점이 문제다. 리처드 폴크 프린스턴대학 석좌교수는 지난 3월28일 <알자지라> 칼럼에서 “카다피가 대량학살을 의도했다는 증거가 없고, 인도주의적 재앙이 진행 중이란 증거도 희박하며, 심지어 전투 과정에서 민간인 희생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불분명하다”고 밝혔다.
이런 보도는 역사적이고 입체적인 이해가 결여돼 있다. ‘민주 대 독재’의 구도로 리비아 사태를 바라볼 때 그 밑바닥에 깔린 부족 간의 갈등이나 반군의 불분명한 성격, 왜 다른 나라와 달리 시위가 빠르게 내전으로 발전했는지, 카다피가 왜 시위 진압에 전투기까지 동원했는지 등을 설명하기 어렵다. 미국 다트머스대학의 디에데릭 반데벨리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카다피 대 반(反)카다피 구도라기보다는 부족 대 부족 간 갈등 구조여서 리비아의 시위가 성공해서 카다피를 권좌에서 쫓아내도 민주화 가능성은 점치기 힘들다”고 밝힌다(<조선일보> 2월23일치).
뉴스는 담론의 일종으로 현실을 구성하고, 사회적 권력관계를 유지하거나 변화시키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 전쟁 보도가 ‘선과 악’의 대결로 사실을 단순화하고, 이를 통해 특정 방식의 대응을 이끌고 다른 고려는 배제하는 것은 언론의 ‘애국주의 보도’ 관행상 보편화됐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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