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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하기 힘든 경기장의 유혹
[스포츠 경제]
[14호] 2011년 06월 01일 (수) 김창금 economyinsight@hani.co.kr

김창금 <한겨레> 스포츠부 부장

프로야구 SK는 인천 문학야구장 외야에 초가집 쉼터를 만들었다. 관중이 원두막을 연상시키는 지붕 아래 평상에 앉아 노닥거리며 야구를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스타디움이라는 현대적 건축물에 전통적 정서가 결합하는 상상력에서 한 명의 관중이라도 더 끌어모으기 위한 마케팅 마인드를 엿볼 수 있다.
SK는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 등 여럿이 어울려서 야구를 볼 수 있는 ‘파티데크’도 설치했고, 지난해에는 ‘삼겹살존’을 열었다. 국내 8개 야구 구단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관중몰이가 인상적이다. 프로야구 넥센도 올 시즌 목동야구장을 관중 친화적으로 바꿨다. 1만여 좌석에 팔걸이를 설치하고, 맥주컵 받침대를 달았다. 이장석 넥센 사장은 “앞으로도 경기장 리모델링은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경기장을 ‘고객 프렌들리’로 연출하려는 노력은 야구에서만이 아니다. 프로농구 SK는 올 시즌 4년 연속 15만 관중을 돌파하며 같은 기간 관중 동원 1위 팀에 올랐다. 팀 성적은 하위권이지만 팬서비스만큼은 최고다. 경기가 끝나면 선수들과의 팬사인회 기회를 주고, 포토존과 게임존, 유아 놀이시설로 가족 유인 효과를 높였다. 패밀리석과 연인석 등 다양한 좌석제는 고정팬 확보와 직결된다.

보트 타고 홈런볼 줍는 재미
축구에서는 FC서울이 가장 공세적이다. 서울월드컵 경기장 북쪽 광장에 어린이 놀이동산을 만들어 경기 시작 2~3시간 전에 와도 심심하지 않다. 선수단 워밍업 때는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할 수 있다. 야구장에서 흔히 즐기는 치킨과 도넛 등 먹을거리를 쉽게 구할 수 있도록 이동식 판매처를 대폭 늘렸다. 세일즈 전문가인 정종수 FC서울 사장은 “야구는 매일 열려서 장사가 되고, 축구는 일주일에 한두 번 열려서 장사가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마라. 한 명의 고객이라도 즐거움을 줄 때 축구가 산다”며 직원들을 다그쳤다. 야구에서 본뜬 치어리더가 경기장 분위기를 돋우고, 여러 장의 티켓을 묶어 저렴하게 파는 티켓북 제작 등 세세한 부분에 신경을 쓴다. 지난해 홈경기 평균 3만 관중 동원으로 모두 50만 명을 불러모은 힘의 배경이다.
프로스포츠가 발달한 미국에서는 경기장 자체가 볼거리인 경우가 있다. 가령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AT&T야구장은 오른쪽 외야 너머에 바다를 끼고 있는 천혜의 조건으로, 바다를 보면서 야구를 즐길 수 있다. 홈런볼이 나오면 보트를 타고 가서 주울 수 있는 이벤트는 덤이다. 시카고 커브스의 리글리필드는 담쟁이덩굴 펜스와 주변 빌딩에서도 경기장 안을 볼 수 있는 낭만이 있어 지역 명물이 됐다.
야외 벌판이나 공원에서 시작돼 붙인 야구장의 다른 이름은 ‘볼파크’인데, 야구를 즐기면서 공원에 나온 효과를 주는 셈이다. 외야의 담장을 높이거나 낮추고, 중앙 홈런 구역의 공간을 깊게 파거나 높은 펜스를 설치하는 등 변형을 줘 팬의 흥미를 높이기도 한다. 지자체가 구장을 소유하더라도 프로 구단에 큰 재량권을 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새로운 경기장은 더욱 화려하고 기술 집약적이다. 2009년 15억달러(약 1조6300억원)를 들여 새로 문을 연 5만여 석 규모의 양키스 구장은 스카이 박스 등 고가의 관람석 시설을 갖춰 5성급 호텔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뉴욕시와 양키스 구단의 합작품인 이 경기장은 도시 개발과 관광자원화라는 지자체의 다양한 활용 목적을 담고 있다. 메이저리그사커(MLS) 캔자스시티의 홈경기장은 오는 6월 개장 예정인데, 어느 스탠드에서라도 그라운드까지 30m 거리의 시야를 확보한다. 북쪽과 동쪽 스탠드 가장 앞쪽에서는 그라운드까지 5m다. 2억달러(약 2185억원)짜리로 1만8천여 명을 수용하다가도 더 큰 규모의 행사가 있으면 확장할 수 있다. 경기 중 리플레이 등 영상 정보를 위한 300대의 고화질 텔레비전이 곳곳에 설치된다. 2012년 완공 예정으로 추진 중인 플로리다 말린스 야구장은, 동물보호단체의 반대에도 홈플레이트 뒤쪽 펜스 중앙과 양쪽에 커다란 방탄유리 수족관을 만든다. 에어컨이 가동되고 비를 막아주는 덮개, 수영장 등을 갖추게 된다.

   
미국 프로야구 플로리다 말린스 홈구장 조감도.

소주병 투척도 막아주는 ‘깔끔 경기장’
국내 스포츠에서는 2002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시설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엄격한 시설 기준을 충족시킨 10개 월드컵경기장은 팬들의 눈높이를 끌어올렸다. 주차장부터 좌석, 인터뷰룸, 출입구와 화장실, 엘리베이터까지 팬들은 이전과는 다른 경기장을 만났다. 서울 월드컵경기장의 경우 A매치 땐 주차하는 데 1시간이 걸리는 등 불편이 따르지만, 일반 프로팀 경기 때는 주차에 큰 무리가 없다. 신문선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970년대에는 축구장에 소주병이 날아다니고, 80년대에는 물병이 투척되는 때가 있었다”며 “깔끔한 시설에서 경기하면 팬들의 의식 수준도 높아지게 된다”고 했다.
하드웨어에 대한 관심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서울시는 내년부터 시내 중심에 자리잡은 장충체육관을 리모델링한다. 1963년 만들어진 장충체육관은 최초의 돔체육관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하지만 주차 규모가 100여 대밖에 안 되고 우묵하게 파인 바닥 구조나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 등으로 팬들을 흡인하지 못했다.
최태원 SK 회장이 연맹의 수장으로 있는 대한핸드볼협회도 올해 서울 올림픽공원 안에 핸드볼 전용 체육관을 짓는다. 이럴 경우 리그의 안정적 운영과 핸드볼 관전 집중도가 높아질 수 있다. 1990년 개관한 국내 최초의 축구 전용 경기장인 포항 스틸야드는 이미 지역사회 축구 열기의 ‘용광로’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시설이 열악한 대구와 광주 야구장은 지자체장이 선거 공약으로 리모델링을 약속했다. 스포츠 복지 요구가 높아지면서 지자체들의 체육시설 투자가 늘고 있다.
지자체가 시설을 소유·관리하는 것은 양날의 칼이다. 야구·농구·축구 등 프로스포츠 구단에서는 시설에 손을 댈 수 없는 현재 상황이 마케팅 활동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고 불평한다. 잠실야구장을 쓰는 두산의 한 관계자는 “올 시즌 관중이 증가해 수입이 크게 늘었지만, 서울시에 내는 두산과 LG 두 구단의 연간 사용료가 35억원에 이른다”며 “그나마 장기 임대라면 좋겠지만 그렇지도 않다”고 했다. 서울을 연고로 하는 프로농구 삼성이나 SK의 마케팅 담당자는 “뭘 해볼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구단 마케팅 방해하는 서울시
신영락 F1그랑프리 조직위원회 국제마케팅 부장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경기장은 마치 도로나 상하수도처럼 공공의 인프라스트럭처로 인식되고, 지자체는 시민의 행복추구권을 위해 스포츠 활동 참여에 많은 지원을 한다”며 “우리나라 지자체는 시설 사용료를 대폭 내리고 장기 임대를 통해 프로구단이 마케팅을 활성화할 수 있게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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