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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 위기 빈라덴, “나를 순교자로”
[Focus]미국과 빈라덴의 끝나지 않은 전쟁
[14호] 2011년 06월 01일 (수) 토마스 다른슈타트 외 economyinsight@hani.co.kr

토마스 다른슈타트 Thomas Darnstadt
클레멘스 회게스 Clemens Höges
한스 호잉 Hans Hoyng
마르크 후예르 Marc Hujer
발터 마이르 Walter Mayr
코르둘라 마이어 Cordula Meyer
얀 풀 Jan Puhl
마티유 폰 로르 Mathieu Von Rohr
마르셀 로젠바흐 Marcel Rosenbach
브리타 잔트베르크 Britta Sandberg
그레고르 페터 슈미츠 Gregor Peter Schmitz <슈피겔> 기자

추적은 1990년대 초·중반에 이미 시작됐지만 목격자들의 증언이나 위키리스크에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당시 미국은 아직 본격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최소한 미 중앙정보국(CIA) 때문은 아니었다. CIA는 ‘빈라덴팀’을 결성해 그의 신상정보를 모으고 도청한 전화 내용을 평가하고, 빈라덴이 머무는 장소를 분석했다. 이들은 성전을 선포한 이 사우디아라비아 갑부의 아들이 안고 있는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
빈라덴은 1993년 초 CIA의 추적자들을 피해 아프가니스탄의 산속으로 숨었다. 잘랄라바드 근교의 먼지 쌓인 지방 활주로에 세워진 한 개인 제트기에서 3명의 부인, 13명의 아이들, 경호원, 참모진, 아랍인 전투원들과 파키스탄인 코란학교 학생들로 이루어진 빈라덴의 측근들이 내렸다. 같은 해 8월, 빈라덴은 미국을 대상으로 20쪽에 걸친 파트와(Fatwa·이슬람교의 종교적 유권해석에 의한 칙령)를 발표했다. 알카에다는 1998년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 대사관에 폭탄테러를 가해 224명의 목숨을 잃게 만들고 5천 명 이상에게 부상을 입힘으로써 그들의 위험성을 최초로 전세계에 드러냈다.
클린턴은 빈라덴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미국의 국가안보보좌관이던 리처드 클라크는 지난 4월 말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우리는 빈라덴이 특정 장소에서 특정 시간에 어떤 사람과 만날 것이라는 비밀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크루즈미사일로 공격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며칠 뒤 빈라덴의 의뢰로 독극물을 생산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던 수단의 한 공장을 목표로 미국 전투함에서 80기의 크루즈미사일이 발사됐다. 하지만 그 공장에서는 독극물이 생산된 일이 없었고, 빈라덴은 이미 오래전에 알카에다 캠프를 떠난 상태였다.
지금은 미국의 비밀문서, 관타나모 파일, <슈피겔>에서 공개한 외교부 문서를 통해 빈라덴이 어떻게 매번 추적자들을 따돌리고 도망칠 수 있었는지 어느 때보다 정확히 추정해볼 수 있다. 이미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2001년 10월 카불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했지만 알카에다의 수장은 당시에도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이 상황은 2001년 11월에야 바뀌었다. 경호원이던 살림 아메드 함단은 그의 조사관에게 빈라덴의 부인 3명을 칸다하르에서 안전한 지역으로 탈출시키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을 아프가니스탄 국경지대로 데리고 갔다.
빈라덴은 잘랄라바드를 넘어 토라보라의 산악지대로 도주했다. 그는 험한 지역을 잘 알고 있었다. 소련에 대항해 성전을 벌이던 시절 그는 전우들과 함께 이 지역으로 후퇴했다. 산기슭의 한 언덕에 원시적인 수영장을 갖춘 진흙과 돌로 만든 빈라덴의 집이 있었다. 무엇보다 동굴이 많은 토라보라는 격렬한 게릴라 전투를 치르기에 적합한 천연 요새였다.

   
2001년 10월13일 밤 중무장한 탈레반 병사들이 아프간 국경도시 토르크햄에서 차에 탄 채 대기하고 있다.

추격자 4명에서 8명으로 늘어나
하지만 CIA는 빈라덴과 그의 전사들의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처음에는 4명이었다가 나중에는 8명으로 늘어난 팀이 그를 추적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은 알카에다 부대의 위치를 파악했다. 알카에다 부대 규모는 700명 정도고, 곳곳에 배치된 기관총으로 보호하고 있었다. CIA 요원들은 “찾았다”고 당시 CIA 국장 게리 벤센에게 연락한 뒤 미 공군 폭격기를 불렀다. 이들은 56시간에 걸쳐 1100개 이상의 정밀폭탄을 투하했다. 요원들은 빈라덴이 그 장소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 사망자에게서 워키토키를 입수한 뒤 그들은 빈라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빈라덴은 기도를 하고 명령을 내렸다. 일행 중에는 빈라덴의 목소리를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던 아랍인이 있어서 CIA에서는 그 목소리가 빈라덴의 것이 맞다고 확신했다. 이들은 빈라덴이 왼쪽 어깨에 심한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도 알았다.
2001년 12월13일 다시 한번 빈라덴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들려왔다. 그는 자신의 전사들을 이 전투에 끌어들인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부하들에게 항복 허가를 내렸다. 자신은 ‘새로운 장소’에서 전투를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2001년 12월 말 빈라덴은 34분짜리 비디오를 통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간의 고생이 드러난 얼굴로 빈라덴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죽더라도 전투는 계속될 것이오.” 빈라덴은 그의 후원자 집을 나와 아프가니스탄의 쿠나르 지방으로 이동한 것 같다. 이 정보는 그를 숨겨준 집주인에 대한 관타나모 파일에 나와 있다.
 
미국 순찰대, 위험할 정도로 가까이 접근
2004년 겨울, 파키스탄 국경에서 미국 순찰대가 위험할 정도로 가까운 위치까지 왔다. 한 경비병이 미군이 나타난 것을 알렸다. 알카에다 조직원의 진술에 따르면 빈라덴이 안전한 장소로 급히 대피하기 직전이었다.
비상상황에선 그들은 그들의 지도자에게 총을 쏘았을 것이다. 빈라덴은 부하들에게 사로잡힐 위험에 처하면 마지막 순간까지 싸우다 자신을 ‘순교자’로 만들라고 명령했던 것 같다. 하지만 순찰대는 방향을 바꾸었다. 당시 CIA 요원이던 브루스 리델은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는 우주의 어둠 속으로 총을 쏘는 격이었다. 뭔가를 맞출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빈라덴의 추종자들은 원할 때마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을 통과할 수 있었다. 파키스탄의 안보기관 안에는 일련의 빈라덴 동조자가 있었던 것 같다.
그 뒤 많은 실패가 이어졌다. 2005년 쿠나르 지방에서 있은 소탕작전에서 알카에다 전투원들은 미국 특수부대원 4명을 포위했다. 그중 단 1명만이 살아남았다.
2009년 12월30일 CIA 요원들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그들의 목표에 가까이 도달했다. 그날 이들은 빈라덴 추적 중에 일어난 최악의 참사를 겪게 된다. 한 정보원이 아프가니스탄 채프먼 기지의 CIA 작전센터에 빈라덴의 대리인인 자와히리와 통하는 길을 안다면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 연초에 그동안 친해진 요르단 정보기관 요원들이 후맘 카릴 알발라위를 포섭해 이중첩자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스탄불에서 의학을 전공한 발라위(당시 32살)는 CIA와 요르단 정보기관으로부터 알카에다에 숨어들어 상층부까지 올라가라는 임무를 받고 아프가니스탄으로 보내졌다.
채프먼 기지는 세 겹으로 둘러싸인 철조망 벽과 감시탑으로 엄중히 보호되고 있었다. CIA의 여성 정보요원이던 제니퍼 매튜스는 이곳에서 목표 설정과 작전을 지휘하고 있었다. 이전에 그녀는 10년간 최고의 빈라덴 전문가들과 일했다. 매튜스는 흥분했다. 지금까지 발라위의 정보는 최고급이었다.
발라위가 도착하자 그녀는 동료들과 함께 발라위를 마중 나갔다. 발라위는 입구에서 검색당하지 않았다. 매튜스 옆에는 CIA의 알카에다 전문가 4명과 요르단의 정보장교 1명이 서 있었다. 발라위가 탄 차가 기지 안으로 진입했을 때 발라위는 즉시 어디에 중요한 인물인 CIA 요원 매튜스와 전문가들이 서 있는지 파악했다. 그는 벨트 폭탄을 폭발시켰다. 빈라덴 추적자 5명과 요르단 장교, 그리고 경비병들이 사망했다. 이 사건은 CIA에 26년 만의 최악의 타격이었다.
ⓒ Der Spiegel·번역 황수경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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