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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저항한 반항아 ‘제로니모’
[Focus]미국과 빈라덴의 끝나지 않은 전쟁
[14호] 2011년 06월 01일 (수) 토마스 다른슈타트 외 economyinsight@hani.co.kr

토마스 다른슈타트 Thomas Darnstadt
클레멘스 회게스 Clemens Höges
한스 호잉 Hans Hoyng
마르크 후예르 Marc Hujer
발터 마이르 Walter Mayr
코르둘라 마이어 Cordula Meyer
얀 풀 Jan Puhl
마티유 폰 로르 Mathieu Von Rohr
마르셀 로젠바흐 Marcel Rosenbach
브리타 잔트베르크 Britta Sandberg
그레고르 페터 슈미츠 Gregor Peter Schmitz <슈피겔> 기자

지난 5월2일 월요일의 바다는 비교적 평온했다. 기상예보에 의하면, 작전이 시작된 현지 시각 오전 11시, 아라비아해에는 남서쪽에서 상쾌한 미풍이 불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파키스탄 앞바다 그 어딘가에- 정확한 위치는 미국의 국가 기밀이다- 2기의 원자로를 갖춘 길이 332m의 거대한 미 해군 원자력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5500여 명의 병력을 태우고 항해하고 있었다.
칼빈슨호는 인류가 만들어낸 강력한 무기 중 하나다. 칼빈슨호에는 ‘승리’(Victory)를 뜻하는 알파벳 문자 V와, 이 배의 표어 ‘Vis Per Mare’(힘은 바다에서 온다)가 쓰인 깃발을 부리에 물고 있는 공격하는 자세의 미합중국의 나라새 흰머리수리가 그려져 있다.
이 대담한 슬로건은 또 한 번 자신을 증명한 것처럼 보였다. 단 몇 시간 전에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이 약 1천km 떨어진 곳에서 미국의 ‘공적 1호’를 사살했다. 테러단체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은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서 가슴과 머리에 두 번 총을 맞고 죽었다. DNA 비교검사를 통해 사망자의 신원을 확실히 확인한 뒤, 미군은 그의 주검을 급히 칼빈슨호로 옮겼다. 이슬람 관습에 따르면, 24시간 이내에 사망자의 장례를 치러야 했다.

   
미국의 니미츠급 원자력항모 칼빈슨(9만3천t급). 이 거대한 미 항모에서 지난 5월2일 사살된 빈라덴의 주검이 수장됐다.

자루에 주검 담아 바닷속에 수장
미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대테러 담당 보좌관 존 브레넌은 얼마 뒤 백악관 핵심 참모진 가운데 최초로 이 작전을 공식 발표하며 “빈라덴의 주검 처리 및 장례는 이슬람식 관습과 종교적 장례법에 따라 엄격히 치러졌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칼빈슨호에서는 먼저 주검을 깨끗하게 씻기고, 이슬람 전통에 따라 세 겹 흰색 면포로 감싼 뒤 죽은이의 손이 가슴 위에 놓이게 하고 끈으로 묶었다. 장교 한 사람이 아랍어로 코란의 한 구절을 낭독했다. 본래 이슬람교도는 관에 넣지 않고 땅을 깊이 파서 죽은 이의 얼굴을 메카 방향으로 향하게 해 오른쪽으로 눕혀서 묻어야 한다. 수장은 전문가들 사이에 아직 논란이 있지만 비상상황에서는 허가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미국에는 비상상황이었다. 어떤 나라도 테러리스트들의 성지가 될 것이 뻔한 빈라덴의 무덤이 자국 내에 있는 것을 원치 않았다. 미국은 그들의 가장 큰 적의 주검을 넘길 곳이 없었다. 결국 칼빈슨호에서 몇 명의 미군이 주검 수습용 자루에 빈라덴의 주검을 담았다. 자루에는 주검이 수면에 떠오르지 못하도록 무거운 추를 매달았다. 그리고 주검이 담긴 자루를 바다 위에 띄운 판 위에 놓았다. 주검이 놓인 반대쪽 끝부분을 들어올리자 빈라덴의 주검이 바다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가라앉았다. 아라비아해는 매우 깊다. 대부분 수심이 3천m 이상이다. 이로써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하고 거창했던 18년에 걸친 인간사냥이 막을 내렸다. 이 사냥은 미 대통령 3명의 성공과 실패를 정의하는 척도 중 하나다.
빈라덴과 그 추종자들은 세계를 변화시켰다. 지상에 칼리프(이슬람 공동체의 최고 통치자)의 제국을 다시 세우려 했던 이 자칭 신학자는 아프가니스탄 산중에 있는 은신처에서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에 대항해 그의 충성스러운 ‘아사신’(보통명사로는 ‘암살자’를 뜻하나 본래 11∼13세기에 활동했던, 엄격한 규율과 훈련을 통해 종파상의 적대자와 정적을 암살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슬람의 한 분파)들을 파견했고, 몇 번이나 미국에 큰 굴욕을 주었다.
도대체 왜 그 거대한 워싱턴의 보안기구가 이렇게 오랫동안 이 남자를 체포하지 못한 것일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빈라덴은, 미국이 한 이슬람 근본주의 설교자의 강한 의지와, 자살을 포함한 그 어떤 일이라도 할 준비가 돼 있는 소수의 남자들에 의해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살아 있는 증거였다. 이 ‘산 위의 선지자’와 미합중국 사이의 전쟁은 단순히 불균형한 전쟁이 아니었다. 이 전투는 도전받은 미국을 극도로 분노하게 만들어, 결국 빈라덴을 추적하는 도중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 보호에 대한 자국의 원칙까지 깨뜨리게 만들었다. 빈라덴을 잡기 위해 미국은 수십억달러에 이르는 자금을 사용하고 항공모함, 잠수함, 인공위성, 크루즈미사일 그리고 로켓이 장착된 무인 비행기를 출동시켰다.
 
‘100만달러짜리 호화 주택’의 진실
아직도 영국 식민지배의 잔재가 남아 있는 파키스탄 한 국경도시의 푸른 언덕에서 이렇게 모든 것이 끝났다. 주민들은 파키스탄에서 이곳보다 영국과 가까운 곳은 없다고 말한다. 빈라덴의 험하고 거칠었던 힌두쿠시산맥 속의 도주로는 이 아름답고 살기 좋은 히말라야산 기슭으로 이어졌다. 그가 살던 철조망이 달린 페인트칠 안 된 높은 벽 뒤의 요새는, 처음 말이 나온 것과는 달리 고급 빌라가 아니라 단순한 외양의 그냥 큰 집일 뿐이었다. 빈라덴은 눈에 띄지 않기를 희망했다. 미국은 100만달러를 들여 빈라덴이 이 요새를 건축했다고 발표했다.  아마 이 ‘테러의 교황’을 사치를 즐기는 위선자로 보이기 위해서였겠지만, 현지의 이웃들은 비교적 소박한 이 집을 짓는 데 최대 25만달러 이상은 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곳은 사치스러운 궁전이 아니었다. 건물 주위에는 채소밭이 있고, 이곳저곳에 죽은 뱀의 껍질이 놓여 있었다.
마침내 지난 5월2일 일요일, 빈라덴의 마지막을 담은 영상이 백악관의 작전본부로 전송되고,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리언 패네타가 설명을 이어가는 동안 오바마와 그의 핵심 참모들이 지켜보던 집이 바로 그곳이다. 패네타는 랭글리에 위치한 CIA 본부에서 백악관에 모인 이들에게 지금 세계의 다른 쪽 끝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설명했다.
드디어 기다림을 끝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특수부대원이 마이크에 “제로니모 EKIA”라고 말했다. 미국은 빈라덴에게 그와 마찬가지로 미국 군대가 몇 년 동안 잡지 못했던 1909년에 사망한 아파치 인디언 부족의 추장 이름을 코드네임으로 붙였다. 그리고 ‘EIKA’는 미군이 즐겨 사용한는 약어 중 하나로 ‘enemy killed in action’, 즉 ‘작전 중 적 사망’이라는 뜻이다. 침묵을 깨고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오바마였다. “잡았습니다.” 사냥이 끝난 것이다.
ⓒ Der Spiegel·번역 황수경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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